〈 68화 〉 니들이 이걸로 나를 잡겠다고 왔단 말이야? 나 원 같잖아서.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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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가스 공항에 내린 박수미는 곧장 택시를 잡아탔다.
“시저스 팰리스 (Caesars Palace).”
사막 한복판의 라스베가스. 차창으로 비치는 햇살 때문에 차 안이 더웠다.
박수미는 위에 입고 있던 박스티를 벗었다. 박스티 안에는 짙은 빨간색 탱크톱. 어깨가 훤하게 드러났다.
박수미는 이내 검은색 레깅스를 입은 긴 다리를 척 꼬고 앉아 썬글라스를 벗고 화장을 고친다. 입술에 바르는 립스틱 색깔이 레깅스 위에 입은 탱크톱보다 더 빨갰다.
인도식 터번을 머리에 두른 택시 기사가 립스틱을 바르는 박수미를 룸미러로 흘끗흘끗 훔쳐보다가 박수미와 눈이 마주쳤다.
머쓱해진 기사가 싱긋이 웃으면서 말을 걸었다. 강한 파키스탄 억양의 영어지만 능청스러운 느낌은 그대로 전해졌다.
“Where are you from? China? Here for what? Gambling? or···”
박수미를 보는 기사의 눈빛이 더 느끼해졌다.
“Something··· fun?”
박수미가 기사를 보면서 생긋이 웃었다. 빨간색 립스틱을 바른 입술이 햇살을 받아 더 빨갛게 반짝였다.
립스틱을 손가방에 탁 넣고는 말했다. 생긋 웃는 웃음은 그대로 유지한 채···
“Could you··· mind your own FUCKING business? FUCK on driving!”
호텔에 도착해 트렁크에서 박수미의 수트 케이스를 내려주는 운전기사의 표정이 심드렁하다. 박수미한테 한 칼 먹은 뒤로 호텔까지 오는 동안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박수미가 말한 대로 정말 운전에만 졸라 집중했다.
라스베가스 공항에서 이런 옷차림을 하고 택시를 타는 동양 여자는 꼬시기 쉽다. 연고와 목적이 확실한 사람이면 혼자 택시를 타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재수 좋으면 하룻밤 질펀하게 놀 수도 있다. 그래서 한 번 들이대려 했는데··· 욕만 먹었다.
“땡큐~”
박수미가 생긋이 웃으면서, 운전기사의 셔츠 가슴 주머니에 20불짜리 지폐 두 장을 넣어줬다. 손가락 끝에 기사의 젖꼭지가 닿았다. 주머니 안에서 일부러 손가락을 살짝 들었기 때문이다. 기사가 움찔하는 게 보인다.
“Oh~ you’re so cute”
수트 케이스를 끌고 호텔 로비로 들어가는 박수미의 늘씬한 뒷모습에 기사는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뭐지? 저 여자?
박수미는 호텔 체크인을 하고 바로 시저스 팰리스 카지노로 들어섰다. 어느새 꽃무늬 카미솔 쇼트 원피스로 갈아입었다. 카지노에서 도박에 열중하던 남자들도 한 번은 시선을 박수미에게 꽂을 수밖에 없었다.
평일이라 그런지 카지노는 보통 때보다는 한산했다. 박수미는 블랙잭 머신에 앉았다. 다섯 명 앉게 돼있는 머신에 박수미 혼자다.
47인치 모니터에 여자 딜러가 나와 가상으로 카드를 돌린다.
이때 박수미 옆에 남자가 와서 앉았다. 동양 남자.
남자는 앉자마자 박수미의 허리를 안았고, 둘은 키스를 주고받았다. 키스를 하면서 남자의 다른 손이 박수미의 허버지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나왔다.
둘은 블랙잭을 세 판 했고, 남자는 먼저 일어나 나갔다.
박수미는 한 판 더 하고 일어섰다. 일어서면서 박수미는 아까 남자가 허벅지 사이에 넣어준 작은 종이를 손에 넣었다. 썬글라스를 끼고 카지노를 빠져나갔다.
***
“안녕하십니까? 하대석입니다. 오늘 H-TV 8시 뉴스는 김필중 전 민정 수석에 대한 H-TV의 단독 보도로 시작합니다. 보도에 정치부 서한무 기자, 스튜디오에 나와 있습니다. 서 기자?”
“네, 서한뭅니다.”
“요즘 정치권에서 최고로 핫한 상한가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김필중 전 민정 수석이구요, 조만간 치를 대통령 보궐 선거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히고 있는데··· 그 김필중 전 수석 관련해서 비리 의혹이 불거져 나왔다구요?”
“네, 그렇습니다. 서울 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부가 ND 그룹 원종태 부회장의 아들인 원휘준 상무가 최대 주주로 있는 ND 벤처캐피탈의 수상한 해외 자금 흐름에 대해 수사하던 중에, ND 그룹이 김필중 전 민정 수석에게 ND 그룹 위장 계열사의 비상장 주식을 차명으로 증여했다는 혐의를 찾아낸 겁니다.”
“차명 주식이라면 이름을 빌려줬다는 건데, 빌려준 사람은 찾았습니까? 누굽니까?”
“네, 그게 참 묘한데요. 얼마 전까지 청와대 총무 비서관으로 근무하다 은하 게이트 사건이 터지면서 해임됐던 전태기 씨입니다.”
“전태기 총무 비서관. 은하 테크론 기술 유출 조작 사건 때 청와대 쪽에서 실무를 진행했다고 알려진 인물이었는데요··· 그 분이 그럼 자신이 빌려줬다고 자백을 한 겁니까?”
“아닙니다. 전태기 전 비서관은 청와대에서 해임된 이후에 ND 그룹의 위장 계열사에서 기획 담당 이사로 근무해오고 있었는데요, 얼마전 자택에서 투신 자살···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아··· 자살을요?”
“네, 그런데 이 사건은 서울 남부지검 형사 6부에서 수사를 해오고 있었는데 사망한 전태기 전 비서관과 김필중 전 민정 수석과의 연관점을 찾아냈다고 합니다.”
“아, 또 거기는 남부 지검입니까? 서울의 두 지방 검찰청이 김필중 전 민정 수석 한 명의 비리 의혹을 동시에 합동 수사 하는 모양새로군요.”
“그렇습니다.”
“문제는 전태기 전 비서관이 김필중 전 수석에게 명의를 빌려준 시점, 즉 ND 그룹이 김필중 전 수석에게 주식을 증여한 시점인데요. 김필중 전 수석이 아직 수원 지검에서 차장 검사로 있던 때였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김필중 전 수석이 자신은 ND 그룹으로부터 불법으로 주식을 증여받았으면서 백영기 대통령의 해외 계좌를 공격했다는, 일명 내로남불 행태를 보였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분석입니다.”
“김필중 전 수석, 아직 대선 출마를 공식화하진 않았습니다만, 만약 이 사건이 검찰 주장대로 사실로 확인된다면 지지율에 영향이 크겠군요. 아, 그렇게 되면 지지율이 아니라 아예 출마 자체를 못 하고 의왕시로 가게 되겠군요. 정치권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치권에서는 아직 이렇다할 반응이 나오지는 않고 있습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말을 많이 아끼고 있는 분위기인데요, 아마도 자칫 지금 김필중 전 수석을 이 건으로 공격했다가 만약 무혐의로 밝혀지면 지지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후보를 상대에게 헌납하는 꼴이 될 것을 염려해서가 아닌가 분석됩니다.”
“정치권의 수 계산이 복잡하겠군요.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서한무 기자 수고했습니다”
***
“니들이 지금 이걸로, 흥 나 같잖아서, 차명 주식 이걸로 날 잡겠다고 왔단 말이가?”
서울 청담동 김필중 자택.
김필중 앞에 한재민과 송대기, 내가 서 있고, 김필중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상대를 비웃는 표정을 지으면서 앉아 있다.
바로 검찰청 조사실로 불렀어야 하지만, 일종의 전관예우. 집까지 찾아왔다.
“야! 최용구. 이거 니 솜 씨지? 언론에다 먼저 흘려서 터뜨리고 압박하는 거. 맞다. 최용구 니 이전에 정수명이도 이렇게 해서 잡아넣었었지? 야! 니 이런 거 누구한테 배웠어? 가만있어봐. 내한테 배웠나? 아, 맞다. 내가 니 대가리 툭툭 치면서 그거 쓰라고 그랬지? 그거 장식 아니라고 그러면서. 하하, 야! 특공대 시키. 근데 니 이거 실수하는 기야. 가르쳐도 써먹을 데를 골라가면서 써야지. 정수명보다 내가 몇 수는 위라는 거 벌써 까묵었나?”
평소보다 걸쭉한 김필중의 경상도 억양.
수사 검사 시절, 김필중은 피의자를 조사실에 데려다 놓으면 일부러 더 심한 경상도 억양으로 무지막지한 말을 마구 쏟아내고 시작했다. 앞뒤 안 가리고 막 가는 검사라는 이미지를 피의자에게 줘서 일단 기를 죽여놓고 보는 수법.
“야! 글고 남부지검 송대기 부장. 영등포 여의도 거기 좋지? 인마 곰새끼 니는 내가 뽑아서 거기 꽂았어. 그것도 까묵었나? 곰새끼 니는 내 아니었으면 지금쯤 저~기 강원도 어디 처박혀서 감자가 캐고 있었을 낀데. 근데 니가 내를 잡겠다고 여기 온 기가?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그리고 흥! 중앙지검 에이스 검사 한재민 부장님께서는 어째 서 계시는 폼이 아주 디꺼우신 거 같네요? 왜? 책상물림 샌님 쉬~키를 여기까지 직접 오시게 해서 기분 나쁘십니까?”
김필중이 책상 위에 팔꿈치를 괴고 깍지를 낀 채로 검사 셋을 노려본다.
늑대의 눈빛.
경상도 억양에 이은 김필중의 두 번째 수법이다. 무지막지한 막말을 쏟아내고 난 뒤에 저 눈빛으로 한참을 쏘아보고 있으면 보통 반쯤 죽여나가곤 했다.
아무리 김필중이라도 후배 검사 셋을 동시에 상대하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경상도 막말과 눈빛에 못 버티고 떨어져 나가는 놈은 제끼고 버틴 놈만 상대하려는 것이다.
김필중의 전략은 먹히고 있었다. 송대기는 벌써 머리를 긁적거리고 있고, 한재민의 관자놀이에서는 흘러내리는 땀을 손으로 훔쳐내고 있다.
두 명은 제꼈고 마지막까지 남은 건 나.
나를 노려보고만 있던 김필중이 입을 뗐다.
“최용구. 너 원휘준 조사했었지?”
서울말로 돌아왔다. 나만 상대하겠다는 뜻이다.
“네.”
“원휘준 조사할 때 뭐 이상한 거 없었나? 원휘준이 그 자식, 말은 제대로 하더나?”
나는 시선은 김필중에게 고정시킨 채, 기억을 더듬었다.
원휘준은 조사받으면서 처음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었다. 진술은 옆에 앉은 로버트 리가 다 했었다.
“로버트 리라는 회사 변호사를 대동하고 왔었고, 그 변호사가 모든 진술을···”
“풉!”
김필중이 깍지 끼고 있던 손을 풀고 다시 등받이에 등을 턱 기대면서 피식 웃었다.
뭐지? 저 여유로운 모습은?
나는 속으로 불안감이 일었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다. 김필중을 향한 시선은 더 강하게 유지하면서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모든 진술을 로버트 리 변호사가 했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조금...”
“나중에 조금은 했어? 야~ 원휘준이 쉬키 많이 좋아졌네. 여하튼 그래, 최용구 니는 첨에 원휘준이가 말 한마디 안 하고 앉아 있었던 거 그거... 변호사의 조력권 행사로 봤단 말이지?”
“아니··· 었습니까?”
여기서는 나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말을 좀 더듬었다.
“풉! 독고다이 쉬~키. 아직 멀었네. 멀었어. 벼~~엉신.”
역시 눈곱만 한 상대의 빈틈도 놓치지 않는 늑대 김필중이다. 내가 순간 당황하는 걸 캐치했고 그 빈틈을 무시와 욕설로 바로 치고 들어왔다.
“야! 독고다이. 검사는 말이야, 모름지기 조사실에 피의자를 탁 데려다 놓고 몇 마디만 주고받아도 바로 피의자가 뭘 숨기고 있는지 뿐만 아니라, 심리 상태, 몸 상태, 심지어 속옷 색깔에 어젯밤에 마누라하고 잤는지 딴 년 하고 뒹굴었는지까지도 탁탁 알아차릴 수 있어야 되는 거야. 그게 검사야. 근데 너는 뭐? 원휘준이 데려다 놓고 조사를 했다는 놈이 그래, 그놈이 한마디 말도 안 하고 있었던 진짜 이유를 못 알아챘단 말이야? 그런 것도 못 알아챘다는 놈이 지금 이 따위 차명 주식으로 나를 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여기까지 기어들어왔어? 하하하. 아무리 독고다이라지만 정말 웃기는 짜장이야. 야이 새끼야, 내가 누구냐? 니 눈앞에 있는 내가 누구냐고. 나, 김필중이야. 김. 필. 중. 벼~~엉신 새끼.”
김필중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과 말투.
나도 순식간에 송대기 한재민과 마찬가지가 돼버렸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 한 걸 상대가 알고 있다고 호통을 치는 데는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 그게 뭡니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쪽팔렸지만 알고 싶었다.
“후후, 알고 싶냐? 벼~~엉신 새끼. 좋아. 나 알려주지. 니들이 이 차명 주식이라는 걸로 나를 못 치는 이유도 그것과 연관이 있으니까.”
아까까지 벌 받는 고딩처럼 서 있었던 송대기 한재민도 이제 고개를 들었다.
“원휘준이... 그 쉬키말이야.”
나는 김필중의 다음 말을 기다리면서 침을 꼴깍 삼켰다. 옆에 서 있는 한재민과 송대기도 마찬가지였다.
김필중은 앞에 서 있는 세 명의 내 표정 변화를 즐기듯 쓰윽 한 번 살피고는 천천히 말했다.
“그 쉬키··· 마약 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