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를 죽인 검사에 빙의했다-67화 (67/70)

〈 67화 〉 돈과 권력을 뺏았는데 생명은 뺏어서 뭣하랴.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김필중이 나를 배신했어. 그 자식 분명히 권력욕··· 그래 지가 해 먹으려는 거지. 흥! 그게 지 맘대로 되나? 여기 최용구 검사 같은 젊고 정의로운 친구가 있는데. 안 그런가? 하하하”

백영기가 내 어깨를 툭툭 치면서 너털웃음을 털어냈다.

“전 검사로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각하.”

백영기가 순간 흠칫한다. 하지만 바로 표정과 자세를 가다듬고는,

“진실··· 맞아. 진실을 밝혀주게. 난 결백해. 한 점 부끄럼 없다고. 우리 최 검사도 잘 알잖은가. 김필중은··· 그거 알지? 저 자식은 검사 시절부터 권력욕이 컸던 놈이야. 더러운 놈.”

백영기가 소파 옆 탁자에서 봉투를 하나 꺼내 내게 내민다.

“최 검사. 이거 받아두시게. 내 성의일세.”

난 백영기가 내민 봉투를 받지는 않고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한마디 툭 던졌다.

“각하, 요즘도 페트뤼스 와인을 즐겨드십니까? 등급이 매겨지지 않는 유니크한 와인.”

“뭐?”

“지난번에 제게 페트뤼스처럼 등급이 매겨지지 않는 유니크한 검사가 되라고 하셨었지요.”

“응? 아... 그랬었지.”

“그런데 그 말. 다른 사람이 대통령께 했던 말 아니었습니까? 등급이 매겨지지 않는 유니크한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고 하면서 그 와인을 소개해줬던 사람. 기억하시나요?”

난 백영기의 작아진 눈을 뚫어지게 노려보면서 말했다.

“누··· 누구를 기억하냐고?”

내가 받지 않은 봉투를 내민 백영기의 손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이름이 이재훈이었죠? 그때 그 사람.”

“뭐··· 뭐?”

백영기가 손에 쥐고 있던 봉투를 툭 떨어뜨렸다.

“각하는 이재훈과 한 약속. 유니크한 대통령이 되시겠다고 한 약속. 지키셨습니까? 저는 각하께 유니크한 검사가 되겠다고 약속했었는데 그 약속 지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 동시에 각하가 이재훈과 한 약속도 제가 지킬 수 있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백영기는 작은 눈을 크게 떴다. 어리둥절··· 아마 지금 자기 앞에 펼쳐진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유일한 희망이 깨지고 있는 현실.

“검사로서 최고 권력자 대통령의 비밀을 파헤치고 권좌에서 끌어내릴 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재산을 모두 동결시켜버린다면 전 등급이 매겨지지 않는 유니크한 검사가 될 수 있죠.”

“최··· 최 검사··· 지금 그게···”

“또한, 각하도 권좌에서 쫓겨나고 재산까지 모두 뺏겨버린다면 그것 또한 등급이 매겨지지 않는 유니크한 대통령이 되는 거죠. 각하를 유니크하게 만들어드림과 동시에 저도 유니크하게 되는 것이니 이런 걸 뭐라고 할까요? 꿩 먹고 알 먹고인가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건가요?”

순간 백영기가 벌떡 일어나더니 내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았다.

“이 색끼. 이거 이재훈이가 시킨 거야? 너 이재훈이 안 죽였어?”

충분히 예상했던 바, 난 기습적인 백영기의 멱살잡이에도 조금도 놀라지 않았고 오히려 멱살 잡은 백영기의 손을 바로 뿌리쳤다. 때문에 백영기는 내게서 밀려나 소파 앞에 있던 탁자에 털썩 앉게 됐다. 동시에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제 오히려 내가 백영기를 내려다보는 형국이 됐다.

“미국에 있는 엑소더스 펀드라는 돈 되는 일이라면 안 하는 일이 없는 놈들이 FBI에 각하의 계좌 두 개. ND에서 받은 것과 은하에서 받은 것. 그 두 개 모두를 계좌 동결 신청을 했고, FBI는 그걸 받아들이고 계좌의 자금 흐름에 대해 수사에 나설 것이랍니다. 아, 한국 검찰도 동일한 내용으로 FBI에 요청을 할 예정이라는 사실. FBI 수사에 적극 협조할 것이라는 사실. 알아두시기 바랍니다. 각하. 얼마 있지 않아 백영기 씨라고 부를 날이 오겠군요.”

백영기는 나를 올려다보고 무슨 말을 하려 했으나 제대로 나오지 않는 듯했다. 입술만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너··· 최용구··· 너··· 누구야? 뭐하는 새끼야? 이재훈이 어딨어? 어딨냐고오~~~.”

내가 문에 다다랐을 때, 그제서야 말문이 터진 듯 백영기가 괴성을 질러댔다.

나를 죽였던 백영기.

생명도 뺏고 싶었지만 그것까지는 참았다.

백영기에겐 생명보다 소중한 권력과 돈.

이 둘을 뺏었는데 생명 그까짓 거 뺏어서 뭐하랴.

***

“안녕하십니까? H-TV 8시 뉴스 하대석입니다. 방금 전 7시에 백영기 대통령이 특별 성명을 통해 자진 하야 형식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현직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물러나는, 우리 헌정사에 또 한 번의 오점이 남겨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 평론가 송철민 교수를 모시고 향후 펼쳐질 정치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송 교수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얇은 뿔테 안경에 앞이마가 조금 벗겨진 동그란 얼굴의 송철민 교수가 카메라를 보고 대답 없이 고개만 까딱 인사를 했다.

“송 교수님, 대통령의 오늘 발표는 연일 이어진 국민들의 하야 요구에 굴복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이 사태 어떻게 보십니까?”

하대석 뒤에 설치된 대형 화면에는 시위 장면이 나오고 있다.

“어떻게 보고 말고 가 있겠습니까? 권력자의 총체적 부정부패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과 환멸이 극에 달한 결과죠. 연일 이어지는 수백만 시민들의 하야 요구 시위에 버텨내기 힘들었을 거구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해외에서 우리를 어떻게 보느냐에 굉장히 민감해하지 않습니까? 이건 해외에서 먼저 알고 제기된 의혹이고, 조만간 미국 FBI도 그 계좌에 대해서 이미 동결조치를 하고 수사에 들어간다는 거 아닙니까? 더욱 견디기 힘들었을 겁니다. 뿐만 아니라, 권력의 핵심 중의 핵심인 민정 수석이 폭로를 하고 나가 버린 상황, 이걸 어떻게 수습합니까? 그때부터 대통령은 이미 직무수행이 불가능한 지경이 돼버렸어요. 사임한 김필중 전 수석의 후임도 정할 엄두도 못 내고 있었으니까요.”

송철민의 목소리는 탁하고 카랑카랑했는데 말을 할수록 하이톤이 돼갔다.

“이제 대통령이 하야했고 바로 새로 대통령을 뽑아야 할 텐데요. 향후 전망 어떻게 보십니까? 어떤 인사가 유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좀 더 상황을 지켜봐야겠지만 현재로서는 사실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 아닌가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무슨 말씀이신가요?”

“김필중 전 민정 수석 밖에는 없는 거 아닌가요?”

“김필중 전 수석요? 그분은 아직 정치를 시작하겠다고 말도 안 했는데요?”

“아직 정치 시작하겠다고 말도 안 한 사람의 지지율이 지금 정치하고 있는 사람들보다 세 배 이상 높게 나오고 있어요. 지금 국민들이 가장 실망하고 또 그래서 가장 원하는 게 뭡니까? 정의, 공정. 이런 거 아닙니까? 그런 면에서 김필중 전 수석의 지난 기자 회견이 국민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거고··· 본인이 의도했든 안 했든 그게 곧 정치 선언이었다고 할 수 있는 거죠.”

“아, 그게 곧 정치 참여 선언이었다.”

“그렇죠. 본인이 원했든 아니든, 김필중 전 수석은 이미 정치 활동을 시작한 거고요. 누가 유망하냐? 그건 여론조사가 다 말해주고 있지요. 지금 여당이고 야당이고 다 지리멸렬이잖아요? 얼마 전까지 선두를 달리던 정수명 부총리도 살인 교사에 조폭 연루로 감옥에 있고···.”

“아,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그걸 밝혀낸 사람도 김필중 전 수석이죠. 수원 지검에 있을 때.”

“그런가요? 그건 몰랐네요. 여하튼 지금 여권에선 인천 시장 조순건이 제일 지지율이 높은데 10%대 박스권이고, 야당은 뭐 볼 것도 없구요. 결론적으로 여야 통틀어 김필중 전 수석이 가장 유망합니다.”

“그렇게 보시는군요. 알겠습니다. 송철민 교수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필중이 물이 올랐군.”

서울 중앙지검 한재민 부장실에서 나와 한재민이 마주 보고 앉았다. 한재민은 최근 실시한 대통령 선거 여론조사 뉴스를 스마트폰으로 보면서 시니컬한 웃음을 지었다.

“김필중 지지율이 40%를 넘는군. 압도적이야. 조순건 인천시장이 2등인데 10% 남짓. 야당 놈들은 전부 5% 이하고. 대한민국 1당 독재 국간가? 후후.”

한재민이 내 동의를 구하는 듯 날 쳐다보면서 웃었지만, 난 정색하고 말했다.

“부장님, ND 그룹 원휘준을 소환 조사하겠습니다.”

“원휘준? ND 벤처캐피탈 최대주주?”

“네. 최대주주인지 아닌지, 2대 주주는 또 누군지를 밝혀내겠습니다.”

에이스 검사 한재민. 내 말에 담긴 속뜻을 모를 리 없다.

“자신 있어?”

난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 뻔한데 왜 묻는지.

“그래, 해봐. 물이 바짝 올랐을 때 꺾어야 맛이 더 있는 법이지.”

***

“뭐? 중앙지검이 원휘준 상무를 소환 조사해?”

김필중이 청담동 자택에서 강민철을 불러 보고를 받고 있다.

강민철은 김필중이 민정 수석을 그만두면서 같이 나왔다. 어렵게 잡은 동아줄. 끝까지 잡고 갈 생각이다.

“네. 수석님”

강민철은 아직 김필중은 수석님으로 불렀다. 하지만 조만간 대통령님 아니면 각하라고 부를 날이 올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게 되면 강민철 본인이 저 ‘수석’ 자리를 꿰차고 검찰과 경찰을 부리게 될 것이다. 상상만 해도 짜릿하다.

“담당 검사는 누구래?”

이걸 묻는 김필중은 좀 답답했다. 민정 수석 때는 이런 거 묻지 않아도 바로바로 책상 위에 보고돼 올라왔었는데···. 뭐, 조금만 참으면 된다. 청와대 접수할 날이 얼마 안 남았다.

“금조부에 한재민이 지시해서 최용구가 담당을 한다고···”

“최용구?”

다른 사람도 아니고 최용구라면··· 뭔가 찝찝하다.

“알았어. 어떻게 진행되는지 바로바로 알아내서 보고하도록 해. 디스미스트”

“넵”

강민철이 90도 절을 하고 나간 뒤, 김필중은 책상 서랍 속 깊숙이 넣어둔 ‘크리티컬 리스트’를 꺼내 최용구의 기록을 살폈다. 사진을 보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독고다이 최용구 쉬키, 니가 한재민이한테 붙었다 이거지? 얼마나 가나 보자.”

***

서울 중앙지검 조사실.

원휘준이 소환돼 왔다. 옆에는 로버트 리 변호사가 또 같이 와서 앉았다. 지난번 원종태 조사 때 왔던 그 나이브한 미국 변호사.

난 이번에는 이 로버트 리는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내 상대가 안 된다는 사실을 지난번 만남을 통해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바로 원휘준에게 찔러들어갔다.

“원휘준 상무님. ND 그룹의 신수종 사업이 태양광 패널 모듈인가요?”

“···”

원휘준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을 뿐이다. 희한하게도 이번에는 로버트 리도 아무 말이 없다.

“상무님. 이거 뭔 지 아시죠?”

난 책상 밑에 두고 있던 서류철 하나를 들어 원휘준에게 건넸다.

“드라코 셀 테크 매트리얼즈라는 회사 자료입니다. 이 회사 아시죠?”

“···”

“태양광 패널 모듈에 들어가는 핵심 소재를 만드는 회사더군요. 원휘준 상무님. 이 회사··· ND 그룹 위장 계열사죠?”

“···”

원휘준이 숙인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눈을 꾹 감는다. 내 시선만 피하고 싶은 게 아니라 지금 이 상황 자체를 피하고 싶다는 뜻이다.

원휘준. 아버지를 잘 만나 대한민국 최대 그룹의 상무까지 달았지만 아직 어린애에 불과하다. 이런 어린애에게 ND 그룹 전체를 넘겨주겠다는 생각을 원종태가 하고 있었으니 형 원종우의 꼭지가 돌만하다.

“상무님. 제 말 듣고 계십니까? 조사에 협조는 해주셔야지요.”

하도 답답해서 좀 목소리를 높여서 말했는데,

“뭘 드리면 됩니까? 검사님.”

원휘준이 처음으로 고개를 들고 말했다. 고개 숙이고 있을 때 조금 울었는지 눈이 발갛다.

“이 회사의 주주 명단이 필요합니다. 차명 말구요. 실소유주로.”

“드리죠. 전부.”

원휘준은 담담했는데 놀란 건 오히려 나였다. 너무 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검사님···”

원휘준이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는 말했다.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난 욕이 튀어나오려는 걸 참았다.

‘감당할 수 있겠냐’는 저 말, 은병진도 했던 말이다. 재벌 아들이라는 놈들은 다들 어째 이리 똑같은 말을 할까. 나 같은 아랫것들이 감당 못 할 뭔가를 자신들만 쥐고 있다는 저 교만함.

“내가 감당하고 안 하고는 상무님 걱정하실 게 아니죠.”

조금 목소리를 높여서 말했는데, 내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로버트 리가 가방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서 내게 내밀었다.

“얼마 전 이 회사 주식을 차명으로 보유하고 있던 사람 한 명이 자살했습니다.”

로버트 리가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건.”

“실소유주가 이 사람입니다.”

로버트 리가 서류에 적힌 이름을 손가락으로 찍었다.

서류 위의 이름은 ‘김필중’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한 분입니다.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검사님.”

이 말을 하는 로버트 리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올라왔는데, 지난번 원종태 조사 때 나한테 당했던 걸 복수했다는 승리감 같은 게 미소에 담겨있었다.

“그래서요?”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내가 물었다.

“네?”

로버트 리 얼굴에서 미소가 싹 가셨다. 승리감에 도취됐던 시간 총 0.5초.

“이게 다예요? 내가 감당 못 할 거라는 게··· 이게 다냐구요.”

내가 미간을 살짝 찡그리면서 물었다.

“어··· 저··· 그게··· 네··· ”

“참나, 무슨··· 뭐 대단한 거 있는 줄 알았네. 장난해? 알았습니다. 조사 끝내죠. 이 서류는 증거 자료로 가져가겠습니다. 그럼 이만.”

원휘준은 다시 고개를 푹 숙였고 어깨를 들썩거리는 걸로 봐서 또 울고 있는 것 같았다. 로버트 리는 내 얼굴과 울먹이는 주인의 뒤통수를 번갈아 살피면서 어쩔 줄 몰라했다.

조사실을 나오면서 한숨이 나왔다. 아동 학대를 하고 나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

인천 공항 출국장.

얼굴을 반쯤 가린 둥근 썬글라스를 낀, 키가 꽤 큰 여성이 법무부 여권 심사대에 섰다.

검은색 레깅스 위에 엉덩이를 살짝 덮는 하얀색 박스 티를 입었다.

여자는 여권을 제출하면서 썬글라스를 벗었다.

여권 사진과 여자의 얼굴을 대조하면서 출국심사 직원이 물었다.

“박수미 씨?”

“네.”

여권을 돌려받고 보세 구역으로 나온 박수미는 아이폰을 꺼내 메일 앱을 열었다.

내용 없는 메일을 제목만 써서 ‘Send’ 버튼을 눌렀다.

제목은 ‘Mission Comple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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