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를 죽인 검사에 빙의했다-66화 (66/70)

〈 66화 〉 드디어 날 죽인 대통령과 독대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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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리리리’

송대기의 놀란 표정은 책상 위의 전화벨이 울리는 바람에 지워졌다.

“잠깐만···”

내게 양해를 구하고 책상으로 돌아가 전화를 받는 송대기.

“어, 무슨 일이야?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전화벨이 울리면서 지워졌던 동그란 눈의 놀란 표정이 전화를 받으면서 더 커졌다. 나도 무슨 일로 저러나 싶어 궁금해졌는데,

“민정 수석이 뭐?”

수화기를 귀에 댄 채 나를 보면서 눈을 크게 뜬다.

‘드르르륵’

그때 내 스마트폰으로도 전화가 왔다. 스크린을 보니 정화용.

“네, 계장님”

— ‘거··· 검사님. 지금 빨리 뉴스를 보셔야겠어요. 김필중 민정 수석이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 회견을 한답니다.’

“뭐라고요? 민정 수석이? 소통관에서?”

아까 송대기가 전화를 받고 놀란 것도 내가 정화용의 전화를 받고 놀란 것과 이유가 같았다. 송대기는 벌써 전화를 끊고 책상 위 PC 모니터에 생방송 뉴스 화면을 띄워놨다.

난 바로 전화를 끊고 송대기 부장 뒤로 달려갔다.

민정 수석은 국정 감사 때도 국회에 출석하지 않는 것이 관례다. 민정 수석의 국회 출석 여부가 여야 정쟁의 중요한 이슈가 될 정도다. 그런데 김필중이 국회에 간다? 그것도 자진해서?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 회견을 하기 위해? 청와대 민정 수석이 기자 회견을 하려면 청와대 춘추관에서 할 일이지 왜 국회 소통관인가. 김필중 이 작자가 무슨 수작을 하려는 걸까.

화면 속 국회 소통관은 북적거리는 기자들로 난리가 아니었고, 그 앞에 혼자 선 김필중은 긴장됐다기보다는 뭔가 결기에 찬 듯한 근엄한 모습이었다.

— ‘갑작스러운 회견 요청에도 이렇게 소통관을 채워주신 기자 여러분, 그리고 존경하는 대한민국의 국민 여러분,···’

김필중은 이미 작성해온 회견문을 읽기 시작했다.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다.

— ‘저 김필중은 오늘 부로 지난 2개월 남짓 일해왔던 대한민국 청와대 민정 수석 비서관의 자리를 내려놓고자 합니다.’

“뭐, 뭣?”

의자에 앉아있는 송대기가 왕방울 같은 눈을 크게 뜨고 뒤에 서 있는 나를 올려다봤다. 나 역시 정수리 끝이 찌릿찌릿했다. 김필중이 드디어 승부수를 던지는구나. 하지만 내 예상보다 빨랐다. 역시 김필중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 ‘대통령을 최측근에서 보좌하고 대한민국의 사정 기관을 총괄 지휘하는 민정 수석 비서관으로 일하면서 저 김필중은 지난 2개월, 짧은 기간이었지만 대통령님의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 제가 가진 혼신의 힘을 다해왔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아~ 씨바, 저 기레기 새끼들 키보드 좀 살살 칠 수 없나? 시끄러워서 민정 수석이 하는 말이 제대로 들리지가 않잖아. 테레비 유튜브로 다 나오는데 저 기레기 새끼들은 왜 전부 저기 앉아서 키보드를 쳐대는 거야? 요즘 누가 저 기레기 새끼들 쳐 갈기는 쓰레기를 읽고 살아? 세상 쓸 데 없는 종자들···. 어이 독고다이, 안 그래?”

송대기가 또 나를 올려다보면서 쏘아붙이더니, 신경질적으로 노트북의 볼륨을 최대한으로 높였다. ‘기레기’들의 키보드 소리 때문이 아니라 송대기의 큰 목소리 때문에 김필중이 하는 말을 나도 몇 마디 놓쳤다.

“예예, 부장님. 맞습니다. 한 번 들어보죠.”

“음음”

— ‘저 김필중은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보좌하는 민정 수석이기 이전에, 대한민국의 정의롭고 공정한 사법 질서를 지키겠다는 사명을 가슴에 새기고 20년을 살아온 검사였습니다.’

“풉!”

이번엔 내가 웃음이 나왔다. 송대기도 나를 올려다보면서 싱긋이 웃는다.

— ‘정의롭고 공정한 사법 질서를 지키라는 사명은 대통령이나 정권에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헌법과 국민으로부터 받은 것이었습니다. 저 김필중은 그러나 이번 백영기 대통령의 해외 비자금 계좌 사건 수사를 위해 검찰을 지휘하면서 민정 수석이기 이전에 헌법과 국민으로부터 사명을 부여받은 검사로서, 대한민국의 많은 혜택을 받고 산 법조인으로서 심각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송대기와 나 모두 침을 꼴깍 삼켰다. 모니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 ‘현재 서울 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부에서 수사 중인 백영기 대통령 해외 비자금 계좌 은닉 의혹 사건은 20년 넘게 경제 사건을 비롯한 갖가지 사건을 수사해온 저 김필중의 경험을 비추어보건대, 명백히···’

지금까지 미리 준비해온 회견문을 찬찬히 읽어나가던 김필중이 고개를 들었다.

잠시 휴지를 두고 기자들을 둘러본 뒤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회견문을 읽어가던 때와는 확연히 다른 단호하고 강한 어조였다.

— ‘백. 영. 기 대통령이 국민이 민주적 절차를 통해 부여한 권력을 사유화해 기업으로부터 뇌물을 갈취하고···.’

소통관에 모인 기자들의 탄식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탁탁거리는 키보드 소리가 기자들의 탄식과 웅성거리는 소리에 섞여 더 요란하게 나기 시작했다.

반면, 송대기와 나는 어떤 말도 주고받지 않았다. 난 송대기 뒤에 있는 창틀에 엉덩이를 기대고 팔짱을 끼고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팔짱을 낀 내 손에 심장박동이 강하게 느껴졌다.

— ‘부도덕한 기업주와 결탁해 주가 조작을 공모, 결행해 선량한 투자자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반대로 자신들은 막대한 수익을 창출, 공유한 뒤, 해외에 미리 만들어둔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빼돌린 사건입니다. 뇌물 수수, 주가 조작, 해외 재산 불법 반출 은닉 등 경제 범죄의 종합판을 대통령과 기업주가 결탁해 저지른 것입니다.’

김필중은 또 잠시 휴지를 뒀다. 기자들을 쭉 둘러본다. 웅성거리던 기자들도 더 이상 떠들지 않았다. 시끄럽던 키보드 소리도 더 이상 나지 않았다. 화면 속 국회 소통관도 화면 밖 송대기와 나도 침묵했다.

김필중이 다시 고개를 숙이고 준비해온 회견문을 읽기 시작했다.

—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전 민정 수석직을 사직하고 평범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제 후배들은 용기와 사명감을 잃지 않고 권력과 금력이 결탁해 저지른 이 사건을 끝까지 수사해 진실을 속속들이 밝혀내고 국민 여러분께 이 나라 대한민국에 정의와 공정이 살아있음을 증명해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비록 공직을 떠나지만 저 김필중은 최대한 후배 여러분을 도울 것··· 입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도 제 후배 검사들의 노력에 격려와 응원을 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 흑··· 감사합니다.’

김필중은 마지막에 감정에 복받치는 듯 눈물을 흘렸다.

회견문을 접어 안주머니에 넣은 후 단상 옆으로 나와 90도 인사를 했다. 기자들 중 몇몇은 손을 들고 질문을 하려 했지만 김필중은 기자들에게 손만 흔들어주고 소통관을 빠져나갔다. 더 이상 따라붙는 기자도 없었다.

“후~”

한숨을 몰아쉬는 송대기. 나를 올려다보더니,

“야, 독고다이.”

“네”

“저거··· 뭐냐?”

“뭐 말입니까?”

“헛참, 나 참 기가 차서. 눈물 말이야. 저거 뭔거 같냐?”

“준비 많이 했네요. 민정 수석.”

“늑대도 우냐?”

“요즘 늑대는 그런가 보죠. 뭐.”

“야! 그나저나 독고다이 바쁘겠어? 민정 수석께서, 아니 전 민정 수석께서 눈물까지 흘리시면서 저러셨으니···”

“그러게요. 바쁘게 일해야 되니 아까 말한 전태기 자료 다 주세요. 한번 빡세게 해 보게요.”

송대기가 씩 웃으면서 사건 서류철을 내게 넘겼다.

“나도 계속 보고 있을 테니까···”

“네, 연락드리겠습니다. 상호 협조···”

“대한민국의 정의와 공정을 위해! 오케이? 후후”

“넵!”

받은 서류철을 이마 끝에 틱 갖다 대고 경례를 붙이고는 송대기 방을 나왔다.

김필중의 눈물쇼. 재밌었다. 좀 유치했지만, 요즘은 또 유치한 게 대세니까.

***

‘쨍그랑, 쿠당탕.’

백영기가 크리스털 물컵을 65인치 LED TV를 향해 던졌다. 물컵은 산산조각이 돼 바닥에 쫙 퍼졌고, 물컵에 스크린 한복판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TV는 물컵 맞은 곳을 중심으로 스크린 유리가 방사형으로 쫙 갈라지면서 바닥으로 턱 엎어져 깨졌다.

“기~~임 필주~~웅. 이 개~~~ 새~~끼! 으아~~~~”

물컵 투척 후 터져 나온 백영기의 괴성.

손에 잡을 수 있는 건 죄다 집어 벽에다 집어던지고, 탁자와 의자는 거꾸로 뒤집어엎고 난리판을 만들었다.

대통령이 난동을 부리는 걸 물끄러미 쳐다보고만 있는 비서실장 황상철.

그의 머릿속엔 저 대통령을 진정시키고 구해야겠다는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

김필중에게 선빵을 맞았다는 아쉬움, 이제 여기서 어떻게 추하지 않은 모습으로 발을 뺄 수 있을지에 대한 잔머리 굴림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황상철~~!”

백영기가 거칠게 소리 질렀다.

“네. 각하.”

황상철이 대답하는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기··· 김필중이 이 짓 하려고 그동안 코빼기도 안 보였던 거야. 맞지? 내 느낌이 싸하더니만 그랬던 거야. 이 새끼가 내 뒤통수를 치다니. 너! 황상철! 넌 뭐했어?”

백영기가 황상철에게 뛰어와 멱살을 턱 잡았다.

“윽!”

갑자기 공격을 받은 황상철은 숨이 컥 막혔다.

“너 이 새끼, 내가 김필중이 속내를 알아보라고 했지? 너 뭐했어? 만나보고 처리한다고 하지 않았어? 비서실장이라는 새끼가 그런 거 단속하고 사전에 막으라고 있는 자리 아냐?”

멱살을 잡힌 황상철의 고개는 자연스레 뒤로 젖혀졌고, 때문에 황상철이 백영기를 아래로 내려다보는 모양새가 됐다. 일부러 그렇게 하려고 한 건 아니지만 황상철은 이런 자세가 만들어진 게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각하”

그래도 서슬 시퍼런 검찰 공안부장 출신 황상철이다. 멱살을 잡힌 건 황상철이었지만 멱살 잡힌 덕에 자연스레 눈을 아래로 깔면서 말하게 된 전직 공안부장 황상철의 말은 멱살을 잡은 백영기를 압도했다.

백영기는 멱살을 슬그머니 놓았다. 고개를 숙이고 돌아서면서 맥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음··· 어···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임자···”

황상철은 아무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산산조각이 나 바닥에 퍼져있는 유리조각과 엎어져있는 대형 LED TV를 쳐다봤다.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저 유리잔과 TV와 같다고. 뭘 한들 다시 돌이킬 수는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때,

맥없이 고개 숙이고 돌아섰던 백영기가 다시 황상철을 향해 홱 몸을 틀면서 말했다.

“검사가 누구랬지? 이 사건 맡은 검사 말이야.”

갑작스러운 질문에 황상철은 대답을 하지 못했는데,

“그래, 최용구! 최용구랬어. 그 젊은 친구. 여기 와서 나와 식사도 했었지. 은하 그룹도 나를 위해서 패대기 쳐줬던 그 젊은 검사. 그 친구를 봐야겠어. 희망··· 희망이 있어. 최용구를 불러줘. 지금 당장. 여기로 데리고 와!”

‘최용구가 희망’이라고 말하면서 백영기의 표정이 환해졌다.

***

청와대 관저로 왔다.

죽기 전 이재훈 일 때 두 번 왔었고, 최용구 몸속에 들어온 이후는 오늘로 두 번째다.

이재훈 일 때 왔던 두 번은 모두 독대였는데, 이번도 독대다. 최용구로서는 처음이다.

“오~ 최용구 검사~ 어서 오시게.”

안경 너머로 눈웃음을 지으면서 다정한 톤으로 나를 맞는 백영기. 토할 것 같았다.

“이번 사건을 맡고 있다고 들었네. 맞는가?”

“네, 맞습니다.”

“허허, 나 그래서 참 안심이 된다네. 허허허”

날 보고 안심이 된다고 말하는 노욕에 찌든 철없는 늙은이 백영기.

하회탈 같은 표정을 만들면서 웃고 있다.

웃으니 아예 아래위 주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백영기의 눈.

한때 난 백영기의 저 눈을 좋아했던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백영기의 눈이 사슴을 닮았다 했고, 나 역시 선량해 보이는 백영기의 크고 맑은 눈이 좋았다.

하지만 권력을 잡고 4년이 지난 지금 백영기의 눈은 작고 탁해져 선량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게 변했다. 눈웃음을 치고 있지만 다정함이라고는 1도 느껴지지 않았다.

날 죽인 백영기.

추하게 변해버린 백영기.

옆을 든든하게 지키던 제갈량과 호위 무사를 모두 없애고...

드디어 백영기와 단 둘이 독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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