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 이거 정말 청와대까지 때릴거야?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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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H-TV 8시 뉴습니다. 오늘 뉴스는 백영기 대통령의 해외 비밀 계좌 의혹 사건부터 시작합니다. 스튜디오에 서한무 기자 나와있습니다.”
하대석 앵커와 서한무 기자가 투샷으로 잡혔다.
“서 기자, 원종태 부회장 검찰 조사가 끝났다면서요?”
“네, 오늘 아침 서울 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부로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ND 그룹 원종태 부회장이 20시간가량의 마라톤 조사를 마치고 방금 전 귀가했다는 소식입니다.”
“어떻게 되는 겁니까? 원종태 부회장은?”
“네, 검찰은 원종태 부회장에게 뇌물 공여 등의 혐의를 적용해 내일 중으로 구속 영장을 청구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뇌물 공여요? 뇌물을 줬다는 겁니까? 줬다면 받은 사람이 있을 텐데··· 청와대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네, 아직 청와대는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만, 검찰의 수사를 좀 더 지켜본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형님···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저 최용구라는 검사 놈이 저를 구속한다고 하는데··· 전 도통 감이 잡히지가 않고··· 형님 이렇게 되면 저는···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검찰청에서 나온 후 곧장 원종우에게로 간 원종태는 형님 앞에서 거의 울려고까지 한다.
“동생··· 이거 나도 도통 감을 못 잡을 것 같네. 도대체 저 검찰 놈들이 무슨 꿍꿍이에서 이러는 건지 말이야. 내가 최대한 검찰 쪽에 줄을 대서 어떻게 된 일인지 한 번 알아보겠네. 동생이 이러고 있으니 이 형이 마음이 더 찢어지는 것 같네.”
원종우의 자애로운 말을 들은 원종태의 눈에선 결국 눈물이 죽죽 흘러내렸다.
“형님··· 흑흑흑”
“동생··· 울지 마시게. 이게 다 우리 ND 그룹에는 새옹지마의 일이 될 거라 생각함세. 비가 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는 말도 있잖은가. 나도 더 열심히 뛰어서 우리 동생이 되도록 빨리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보겠네. 아니다, 뭐··· 아직 영장 실질심사가 남았으니 깜방에 들어간다고 확정된 것도 아니잖나. 희망을 가져봄세.”
“흑흑, 형님. 제가 이렇게 맘이 안 놓이는 건 모두 휘준이 자식 때문입니다. 제가 빵에 들어가 있더라도 우리 휘준이 자식, 형님께서 잘 보살펴주십시오. 휘준이 자식 나이만 먹었지 아직 어린애입니다. 회사를 맡기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원종우는 ‘그건 원종태 너도 마찬가지야’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겉으로는,
“그건 말해봐야 잔소리지. 나한테 휘준이 조카는 아들이나 다름없다는 거 잘 알잖아. 걱정 말게, 동생. 내가 잘 보살필 테니.”
“네··· 그럼 형님만 믿고··· 흑흑”
원종태는 어린애처럼 팔뚝으로 눈물을 씩씩 닦고 원종우 방을 나갔다.
원종태가 나간 후, 원종우는 씩 웃으면서 책상으로 돌아와 앉았다. 책상 서랍을 열어 서류를 꺼냈는데, 원휘준이 보유한 회사 목록과 지분율이 적힌 자료다.
“휘준이를 잘 보살펴달라고? 미친 새끼. 아버님께서 나한테 물려주신 회사를 잘 경영하라고 경영권 줘놨더니 지 아들 새끼나 챙기고 앉았던 거 아냐? 흥! 내가 왜 니 새끼를 챙겨? 고얀 놈.”
원종우는 들고 있던 서류철을 책상 위에 패대기쳤다.
***
“검사님, 이거 사태가 심상찮은데요?”
정화용이 스마트폰에 뉴스 화면을 띄워서 내게 보여주면서 말했다.
— ‘ND 그룹 원종태 부회장 구속. 뇌물 공여 혐의 적용. 뇌물 준 사람이 있다면 받은 사람은 누구? 대통령 해외 계좌가 뇌물 수수용이었나? 의혹 증폭.’
— ‘검찰의 칼끝, 임기말 대통령을 향하나’
— ‘야당, 국정 감사와 특검 실시 총공세. 여당 내 일부도 동요 분위기 역력’
난 정화용의 스마트폰을 슬쩍 보는 척하고는 말았다.
정화용은 별 무관심이라는 내 태도가 조금 의아했던 모양이다. 한 발짝 더 다가와서 잔뜩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말을 걸었다.
“검사님. 이거 이러다가 정말 나라가 뒤집히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요. 벌써 광화문에는··· 아니다 여기 서초동 앞에도 지금 사람들이 막 모여들고 있어요.”
정화용이 창문 바깥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바깥에는 ‘백영기 수사하라’는 글을 휘갈겨 쓴 피켓을 든 사람들이 제법 많이 모여 데모를 하고 있었다.
“아~ 정말 세상 좀 조용하게 살고 싶은데, 이거 맨날 저렇게 데모를 해대니··· 엇? 검사님 속보··· 속보 떴어요.”
정화용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스마트폰을 다시 내게 들이밀었다.
— ‘국제 탐사보도 언론인 협회, 백영기 대통령의 해외 비밀계좌로 의심되는 계좌 추가 폭로. 미국 소재 금융기관으로 지난번 폭로된 계좌와 같다고 언급’
“검사님··· 이거 계속 나오는 거 아닐까요? 또 나왔다니. 정말 큰일입니다. 큰일.”
정화용은 한숨까지 땅이 꺼지게 쉬어댔다.
추가로 폭로된 해외 계좌. 그건 내가 은성표와 거래하면서 받은 계좌였고, 어제 다시 심덕환의 도움을 받아 국제 탐사보도 언론인 협회에 제보한 거였다.
‘계속 나오는 거 아닐까’냐는 정화용의 질문은 쓸데없는 것이다. 이제 더 나온다고 상황이 더 악화될 것도 없고, 더 이상 안 나온다고 해도 상황이 나아지기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 이재훈을 죽이라고 했을 때의 백영기와 지금의 백영기의 상태는 완전히 다르다.
백영기가 ND 그룹에 입막음용으로 붙박아뒀던 큰아들 백승철은 날아갔고,
백영기의 오른팔이라고 불렸던 제갈량 유선진도 없어졌고,
어떤 공격도 단칼에 막아내던 호위무사 김필중도 벌써 딴마음을 품고 돌아섰다.
백영기는 지금은 권력을 잡고 있으니 누가 자기를 해할 수 있겠냐고 생각해 안심했을 수 있다. 그 안심이 자기 목을 날리는 칼이 될 줄은 모르고.
“정 계장님, 이 추가 폭로됐다는 계좌에 대한 정보,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입수해주세요. 그럼 전 부장님 좀 뵙고 오겠습니다.”
“네···”
정화용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도 대답했다.
사실 계좌 정보는 나한테 다 있는데··· 정화용에게 좀 미안한 마음이 있기도 했지만 그냥 방을 나왔다.
***
“필중이. 필중이는 도대체 어딨어?”
청와대 대통령 관저.
백영기가 비서실장 황상철을 불러놓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다. 소파에 앉았는데 옆에 있는 소형 탁자를 주먹으로 쾅쾅 치기까지 한다.
“지금··· 수배를 했습니다만···.”
“전화··· 전화도 안 받아?”
“네. 연락이 도통 안 됩니다.”
“김필중 이 자식, 어디에 처박혀서 뭘 하느라고 코배기도 안 보이는 거야?”
백영기는 이렇게 김필중 욕을 해대면서도 김필중에 대한 믿음의 끈은 놓치지 않고 있다. 아니 놓고 싶지 않았다. 김필중과 함께 했던 세월이 얼만가. 그 충직했던 김필중이 딴 맘을 품었을 리 없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사건이 워낙 위중하다 보니 아마 김필중 수석도 사건 해결에 집중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연락이 안 되는 거일 수 있을 겁니다. 각하.”
백영기의 속을 읽은 황상철이 위로성 발언을 했다.
윗사람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재빨리 캐치해 듣게 해주는 게 아랫것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미션이라고 황상철은 믿고 있다. 일명 ‘심경 경호’라고 하는 것이다.
“음··· 그··· 그렇겠지? 그래도 임자··· 필중이를 빨리 수배해서 어떻게 된 일인지 내게··· 내게 보고 좀 빨리 하라고 해. 응?”
책상을 쾅쾅 치던 흥분이 가라앉자, 이제 두려움이 찾아온 것 같았다. 백영기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네, 각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관저를 나오는 황상철의 머릿속엔 이미 김필중이 어디에 짱 박혀 있는지 100% 확신이 드는 곳이 있었다. 만에 하나를 걱정해 백영기에게 말을 안 했을 뿐.
비서실장 관용차를 타면서 기사에게 말했다.
“삼청동. 안가로 가자.”
***
“여기 계셨군요. 민정 수석.”
황상철이 안가로 들어서면서 말했는데, 김필중은 소파에 몸을 깊숙이 묻고 앉아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각하께서 애타게 찾으십니다. 민정 수석”
“후후, 뭐 당연 그러겠죠.”
대답하는 김필중의 표정과 말투가 평소답지 않게 영 불손했다. ‘각하’라는 말만 나오면 자동으로 각이 잡히던 김필중이 아니었던가.
황상철도 공직에서 수십 년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이 정도 변화의 의미가 뭔지 캐치해내기엔 충분한 감은 있다.
“민정. 각하를··· 버릴 생각입니까?”
황상철이 마음을 굳게 먹고 물었다. 어떤 대답이 나올까 두려워서 그랬는지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왜요? 상철이 형은 계속 거기 붙어계시게?”
김필중의 틱 쏘는 듯한 대답에 황상철은 가슴이 철렁했다. 말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김필중이 자신을 ‘형’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지금은 엄연히 실장과 수석으로 만나는 자리. 김필중은 황상철 개인을 무시는 했을지언정, 이 공적인 관계를 뭉개는 언행을 한 번도 했던 적이었다.
그런 김필중이 자신을 ‘실장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형’이라고 불렀다는 것은 이미 김필중은 백영기가 만들어놓은 공식적인 직제와 서열을 부정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계속 붙어계시든가 말든가···. 뭐 하기사 형은 좀 둔했었지. 옛날부터.”
더 긴 대화가 필요 없을 것 같았다. 황상철을 돌아서서 문으로 향했다.
그런데,
“상철이 형, 장인은 잘 계시지? 안부 전해주쇼.”
김필중이 황상철의 뒤통수에 대고 큰소리로 말했다. 때문에 황상철은 문고리를 잡은 채로 잠깐 멈춰 서야 했다.
황상철의 장인.
여권 대선 유력주자인 조순건 인천 시장에게 오래전부터 공을 들이고 있는 사람.
김필중이 갑자기 그 장인 안부를 묻는다는 건···.
황상철은 머리 끝이 쭈뼛 서는 느낌이 들었다.
벌써 시작된 거다.
정상적 상황이라면 지금부터 반년은 지나서야 부상했을 권력 투쟁. 그때까지는 도광양회, 현직 청와대 비서실장으로서의 어드밴티지를 최대한 이용하면서 칼을 갈고 있다가 때가 되면 조순건 인천 시장에게 딱 붙을 생각이었는데··· 그게 벌써 시작된 거다. 김필중의 선빵으로.
안가를 나온 황상철은 차문을 열어주는 기사를 멀찍이 물리고 전화를 걸었다.
“장인어른, 황 서방입니다. 예··· 예··· 상황이 긴박합니다. 조순건 시장에게도 빨리 액션에 들어가야 한다고··· 네··· 네··· 그럼.”
전화를 끊고 황상철이 차에 타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필중이 새끼··· 내가 너한테 쉽게 먹힐 것 같으냐.”
***
“어이, 독고다이. 요즘 한참 바쁘실 텐데 중앙지검 높으신 곳에 계신 분께서 남부지검 이 누추한 곳까지 어째 왕림하셨나? 하하, 정말 웬일이셔?”
송대기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면서 나를 맞았다.
“아 참, 나 안 그래도 독고다이 니한테 물어보고 싶었어. 지금 이 사건 말이야.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원종태 구속 때렸다며? 그다음은? 정말 저~기를 때릴 생각이야?”
송대기가 ‘저~기’를 말하면서 턱으로 서울 북쪽 청와대 쪽을 가리켰다.
“민정 수석 말씀이···”
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가슴을 바로 세우면서 목소리를 과장되게 굵게 만들어 말했다.
“사건이 있으면 수사하는 게 검사지. 권력 눈치 보고 여론 봐가면서 수사하나?”
“킥킥.”
송대기가 익살스럽게 웃길래 나도 같이 웃어줬다.
“이렇게 말씀하신 관계로··· 흐흐흐”
“정말로 제대로 수사했다가 세상이 뒤집어지면? 민정 수석이 책임 진대?”
“뭐, 글쎄요. 그건 뭐 수석께서 다 복안이 있으시겠죠.”
“복안이라···”
송대기가 머리를 긁적였는데, 김필중의 ‘복안’이 뭔지를 생각해내려는 것 같았다.
“송 부장님. 그래서 하는 말인데요. 민정 수석의 복안에 대해서···”
“응?”
눈을 동그랗게 뜨는 송대기.
“지난번 전태기 전 총무 비서관 자살 사건 있잖아요?”
“엥? 응. 그 사건 니네들이 한다고 하지 않았어? 근데 그걸 왜 지금···”
여기까지 말하고는 송대기가 뭔가를 깨달은 듯 상체를 뒤로 젖히면서 팔짱을 꼈다.
이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 전태기의 자살이 김필중과 연결된 것일 수 있다는 추리를 했던 사람이 바로 송대기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전태기는 죽기 전 아내에게 김필중을 만나러 간다는 말을 했었고 조만간 청와대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른다며 좋아했었다고 했다.
“독고다이··· 너 지금···.”
불안해하는 건지, 겁에 질린 건지 미세하게 떨리는 송대기의 눈동자.
난 그걸 싱긋이 웃어주는 걸로 받아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