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를 죽인 검사에 빙의했다-64화 (64/70)

〈 64화 〉 꽃을 꺾을 때는 제대로 꺾었어야지. 게다가 너무 늦었어.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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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검찰에서 저보고 또 출두를 하라고 하네요.”

서초동 드래곤 타워 39층. 일명 ‘회장층’.

원종태가 ‘형님’인 원종우 방에 왔다.

“허허, 동생. 뭐 별 일 있겠어? 또 수원 지검인가?”

원종우가 시치미를 뚝 떼고 물었다.

“아뇨. 이번은 서울 중앙지검이랍니다.”

“뭐? 중앙지검이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는 원종우. 나이가 들수록 연기가 많이 느는 것 같다는 생각이 스스로도 들었다.

“하하, 형님. 걱정 마십시오. 검사가 최용구랍니다.”

“아··· 최용구면 지난번에 찾아왔던 그 젊은 친구 말인가?”

또 모르는 척 시치미.

“네. 형님. 백가 놈 해외 계좌로 요즘 좀 시끄러우니까요. 그냥 넘어갈 수 없으니까 한 번 불러다가 조사하는 척해야 하는가 보죠. 사실 지난번에도 그랬었잖습니까?”

“그래, 맞아. 난 또 수원지검이 아니라 서울이라고 하길래 살짝 놀랐지 뭔가. 하하하. 잘 다녀오시게.”

“네네, 형님. 저야 뭐 형님이 제 뒤에 계시니 무슨 일이 닥치더라도 안심 든든입니다.”

인사를 꾸벅하고 돌아나가는 원종태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 원종우.

문을 닫을 때도 빼꼼히 원종우에게 한번 더 웃어주고 나가는 동생 원종태.

문이 닫힌 이후 원종우는 책상 위에 있는 아버지 원영철의 사진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아버님. 회사는··· 이제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

“안녕하십니까? 이번이 두 번째네요? 최용구 검사님? 아! 다른 데서 본 거 말고. 여기 검찰 조사실에서 본 것만 치면 말이죠. 하하하.”

원종태가 서울 중앙지검 조사실에 왔고 나와 마주 앉았다. 검찰 조사실에 불려 온 사람 같지가 않다. 한껏 여유로운 표정인 것이 TV 예능프로에 인터뷰하러 온 사람 같다.

“이거 지난번에 최용구 검사께서 수원 지검에 있을 때 다 했던 건이잖아요? 다시 하는 이유가··· 흐흐 뭐 다 정치죠. 정치. 그런데 말이죠, 검사님. 이거 기업 하는 사람을 이렇게 정치적인 이유로 검찰이 오라 가라 하는 거··· 이거야말로 청산돼야 할 악습이고 쌓이고 쌓인 폐단 아닙니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최용구 검사님.”

원종태가 이제 여유를 넘어 객기까지 부려본다.

난 그저 정화용이 준비해준 조사 자료만 슬슬 넘겨볼 뿐 별로 대꾸해주고 싶지 않았다.

“뭐 대답 안 하시네요. 그럼 뭐 조사 빨리 시작하시죠. 뭐가 문제라는 겁니까?”

원종태가 다리를 척 꼬면서 옆에 앉은 로버트 리 변호사를 향해 씩 한 번 웃어준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같이 로버트 리에게 씩 웃어줬다.

원종태의 웃음을 보고는 같이 웃던 로버트 리가 내 웃음을 보고는 약간 당황한 듯 정색을 하면서 별로 정리할 것도 없는 옷매무새를 매만졌다.

머리를 뒤로 올백으로 넘기고 검고 동그란 뿔테 안경을 쓴 로버트 리는 내가 죽기 전 이재훈 일 때 월 스트리트나 실리콘 밸리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초짜 변호사의 모습이었다.

좋은 집안에서 자라 일류 사립 대학에서 공부해 머리는 좋고 아는 건 많지만, 세상 험한 꼴 못 겪어 봐서 세상에서 자신들이 최고라는 자부심이 넘쳐났던 초짜 변호사들. 처음 월가에 들어올 때는 각자 가진 빵빵한 배경과 머릿속 싱싱한 지식 때문에 주목을 받지만, 결국 닳고 닳은 월가의 늑대들에게 하나둘 씩 차례로 물어 뜯겨 나갔었던 그 변호사들.

나도 이재훈이던 시절, 그런 초짜 변호사들을 누구보다 못하다고 하면 서러워할 만큼 잔인하게 물어뜯었던 늑대의 한 명이었다.

지금 내 눈앞에 앉아있는 로버트 리를 보니 내가 들어와 있는 최용구의 ‘독고다이’ 본능에 더해 이재훈으로 살 때의 늑대 본능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그래, 본능이 살아난 김에 원종태에 대한 공격은 이 교포 변호사로부터 시작하기로 한다.

나도 다리를 꼬고 상체를 로버트 쪽으로 돌리면서 물었다.

“로버트 리라고 하셨나요? 미국 변호사시군요.”

“네? 네... 한국에서도 변호사 자격증이 있습니다.”

“오~ 한미 양국의 변호사 자격증을 다? 욕심이 많으시군요. 그런데··· 부회장께서도 아까 말씀하셨지만 이번 조사가 두 번째라는 거··· 알고 계시죠?”

“네.”

로버트 리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답했다. 벌써부터 저렇게 긴장을 하다니.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지난번 조사 때는 지금 로버트 리씨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던 것도 아시고?”

로버트 리가 앉아 있는 자리를 턱으로 틱 가리키면서 말했다. 아주 거만하게.

“아··· 예.”

“이번 조사가 그때 거기 앉아있었던 사람··· 지금은 어디 가 있죠? 아··· 두바이랬나? 뭐 여튼 그 사람 아버지하고 관련된 사건이라는 것도 아시죠?”

“알고 있습니다.”

“후후 그 아버지가 누군지는 아실 테고··· 그럼 지금 두바이에 있는 그 사람이 지난번 조사 때는 왜 부회장님 옆에 앉아 있었는지도 아시나요?”

“네?”

“대통령 아들 백승철이 원종태 부회장의 옆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이유. 그걸 아는 게 이번 사건의 핵심인데··· 그걸 몰라요?”

“흠흠흠”

신음소리에 가까운 짧은 헛기침이 질문을 받은 로버트 리가 아니라 원종태로부터 나왔다.

하지만 난 원종태에게는 아직 시선을 주지 않았다. 원종태 차례는 우선 이 로버트 리라는 이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속살부터 뜯어먹은 뒤다.

“지금 의혹이 불거진 대통령의 해외 계좌. 그거 어떻게 해서 대통령한테 가게 됐는지가 이 사건의 핵심 첫 번째고, 그 계좌가 갔다는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원종태 부회장 옆에 자신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박아 넣었어야 했다는 게 이 사건 핵심 두 번째인데···”

난 돌아보지 않았지만 원종태의 얼굴 표정이 어떻게 변했을지는 안 봐도 비디오였다.

처음에 내게 여유를 부리고 ‘기업 하는 사람을···’ 어쩌고 하는 객기를 부릴 때가 좋았지. 이제 그런 여유, 객기는 다시는 내 앞에서 부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핵심 두번째인 백승철 씨가 지금 두바이로 날아갔고 그 자리에 로버트 리가 앉아있다. 이게 무슨 뜻인 거 같아요?”

“최 검사! 사건하고 관계없는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

원종태가 날 보고 소리쳤다.

“풉”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 겨우 참았다. 원래 저런 멘트는 변호사가 피의자를 방어할 때 잘 쓰는 말인데, 원종태가 저런 말을 하다니. 도대체 누가 변호사고 누가 피의자인가.

난 원종태는 무시하고 나이브한 변호사 로버트 리 물어뜯기를 계속했다.

“뭔가 대통령과 여기 원종태 부회장 사이에 틀어진 일이 있었다는 뜻이겠지? 원종태 부회장이 대통령한테 비밀을 깔 수도 있다는 경고를 보낸 것이기도 했겠지? 어떻게 생각하쇼? 로버트 리 한미 양국 변호사님”

로버트 리는 어안이 벙벙. 원종태를 돌아봤는데,

“대답하지 마. 로버트 리 변호사”

“하하”

이번엔 도저히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원종태가 변호사를 변호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 보였고, 그 변호를 듣고 그대로 하는 로버트 리라는 변호사의 모습이 너무 애처로웠다.

로버트 리의 속살 뜯어먹을 게 조금 더 남았다. 한번 정도 분량이 남은 것 같긴 한데···.

“두 번째 핵심에는 대답을 못 하셨고, 그럼 첫 번째 핵심은 어떠실까. 로버트 리 씨, 대통령 해외 비밀 계좌는 말 그대로 계좌인데, 로버트 리 씨도 미국에 살아봤으니 미국 금융기관들 어떻게 하는지 잘 알 테니까 내가 묻는 건데··· 계좌에 잔액··· 그러니까 돈이 없으면 계좌를 유지시켜 주지도 않고 아예 처음부터 만들어주지도 않잖아? 지금 문제 되는 계좌가 계속 유효하게 남아 있다는 건 돈이 있다는 건데··· 그 돈··· 어디서 어떻게 나온 걸까? 혹시··· 아시나?”

로버트 리는 다시 원종태에게 고개를 돌려 구원 요청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원종태도 변호인을 변호하는 역할 대행을 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나만 죽일 듯이 노려보면서 말했다.

“최 검사. 지금 뭐 하자는 거요?”

“부회장님은 저 이마에 피도 안 마른 변호사를 제 앞에서 치워주시고···”

난 테이블 밑으로 손을 뻗어 마이크와 CC-TV를 껐다.

“나는 이것들 끄고··· 둘이서만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해보시는 게 어떻겠나. 이 말이죠.”

원종태는 한참 노려보고 있더니 손을 들어 로버트 리에게 나가라는 신호를 줬다. 동시에 나도 정화용에게 로버트 리를 데리고 나가라는 신호를 줬다.

이제 둘 만 남은 조사실.

원종태가 먼저 입을 열었다.

“김필중 민정 수석하고 말이 다 끝난 건데··· 최 검사 모르고 있는 거 아니요?”

“무슨 말이요? 저는 수사를 철저히 하라는 말 밖에는 들은 게 없는데요?”

“흥! 최 검사. 지금 이거 실수하는 거요.”

“오호~ 어디서 많이 들어본 멘트네요. 전 근데 그런 진부한 멘트 엄청 싫어해요. 우리 재벌 회장님들 툭하면 하시는 말씀이 ‘감당할 수 있겠소?’ 아니면 ‘당신 지금 실수하는 거요’. 좀 레파토리를 다양하게 바꾸시면 좋겠더만···.”

“최 검사. 도대체 왜 이러는 겁니까? 우리 이런 거 아니었잖소? 적당히 뭉개고 넘어가고 우리는 민정 수석을 금전적으로 돕고 당신은 민정 수석의 호위 무사가 되는 거 아니었소?”

“누가 그래요?”

“뭐?”

“뭘 이리 놀라실까? 민정수석을 금전적으로 돕고 말고는 그쪽에서 생각하신 시나리온지 계획인지니까 나하고 상관없는 거고··· 내가 민정 수석의 호위 무사가 된다? 그것도 그쪽에서 그냥 넘겨짚으신 거 같은데··· 여튼 난 금시초문입니다.”

“아··· 아니···”

“부회장님. 제가 지난번에 찾아갔을 때 화무 십일홍 이야기했던 거 기억하시나요?”

당황하고 놀란 원종태는 입을 열지 못했다. 대답 대신 고개만 까딱.

“열흘도 못 가는 꽃. 제일 좋을 때 꺾어야 된다고 제가 말씀드렸었는데···”

“···”

“근데 꺾긴 꺾으셨는데 너무 늦게 꺾으셨어요. 그리고 기껏 꺾었다는 게 대통령 아들 두바이로 보낸다? 그런 걸로 꺾었다고 하시기엔 너무 약하죠.”

“최··· 최 검사···”

“더군다나 아까 제가 말한 그 계좌. 말레이시아 에마스를 이용해서 ND 케미칼 주가 조작해서 세탁한 돈을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백영기와 나눠가진 계좌. 대통령 계좌에는 그 돈이 아직 그대로 있는데 부회장님 계좌는 다 털렸죠? 이번에 캘리포니아에도 그것 때문에 가신 거고.”

“아··· 아니 그걸 최 검사가 어떻게···”

“어떻게 아냐고요? 나 비록 검사스럽게 사는 검새지만 그 정도 정보력은 있어요.”

“으···”

“근데 부회장님. 주가 조작도 부회장님이 하신 거고 말레이시아 에마스도 부회장님이 만드신 건데 돈은 대통령한테만 있고 부회장님은 한 푼도 없어요. 대통령한테 열 받지 않으세요? 그냥 대통령 아들 두바이 사막에 보내버리는 걸로 그게 화풀이가 됩디까?”

부들부들 떠는 원종태. 아직도 상황 파악이 잘 안 되고 헷갈려하는 것 같았다.

“최··· 최 검사··· 도··· 도대체 원하는 게··· 뭐···”

“원하는 게 뭐냐구요? 하하 제가 아무리 검새라지만 그래도 나라의 녹봉을 받고 사는 공무원인데 진실을 캐고 밝히는 거 조금은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ND 케미칼 주가 조작 인정하시죠? 비자금 만들어서 대통령 백영기에게 뇌물 공여하신 거 인정하시죠? 주가 조작으로 인한 부당 이익금 1억 불, 뇌물 공여액 5천만 불. 인정하셔야죠. 이게 이 검새가 원하는 겁니다. 부회장님, 꽃을 꺾는다면 이 정도는 해주셔야 꺾는다고 할 수 있겠죠. 안 그렇습니까?”

부들부들 떨던 원종태가 이제는 머리를 막 흔들어댔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는 상체를 최대한 나 쪽으로 당겼다. 큰소리로 물었다. 이 방에 들어온 이후로 가장 높은 목소리다.

“최 검사. 그거 까면 대통령도 아니 이 정권도 안전하지 않아. 모든 게 뒤집어질 거라고. 그걸 모르나? 혹시 그걸 원하는 거야? 응?”

난 원종태의 흥분이 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짧게 답했다.

“네. 그거. 내가 원하는 거.”

원종태가 멍한 표정이 됐다. 나 쪽으로 당겼던 상체를 의자 뒤로 턱 기댄다.

“너··· 최용구··· 미쳤구나. 민정 수석 만나야겠어. 그분이 너 그냥 둘 거 같아? 미친 새끼.”

난 씩 웃어주고는 준비해 간 조서를 내밀었다.

“이거 다 김필중 민정 수석이 지시하신 대로 하는 겁니다.”

“뭐··· 뭐? 민정 수석이?”

“후후, 저보고 미쳤다고 하셨나요? 민정 수석이 더 미친 거 같은데. 자자, 뇌물 공여, 주가 조작. 부회장님 하시는 거 봐서 구형량은 조절해드리는 걸로 하죠. 대통령하고 친하셨잖아요. 같이 좋은 시간 보낼 수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조서를 내려다보는 원종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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