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를 죽인 검사에 빙의했다-63화 (63/70)

〈 63화 〉 이렇게 믿음직스러운 부하를 가졌다니...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대통령에 대한 수사야. 아주 정교하게 면밀하게 가야 돼.”

김필중이 말했다.

난 말이 떨어지자마자, 옆에 서 있는 한재민의 표정 변화를 살폈다. 김필중의 저 말은 평소 화법과 달랐기 때문이다. 김필중은 자기 밑에 사람들을 앞에 놓고서 백영기를 말할 때는 항상 ‘각하’였지, ‘대통령’이었던 적이 없다. 김필중의 속마음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단번에 눈치챌 수 있는 대목이다. 한재민은 이걸 알까?

“어디까지 수사할까요?”

한재민이 물었다. 난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아까 김필중의 화법 변화에서 난 이미 저 질문에 대한 대답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김필중의 마음은 이미 청와대에 가 있다. 몸만 삼청동 안가에 있을 뿐. 그걸 모르는 걸로 보아 한재민은 아직 어리다.

“어디까지 라니?”

김필중이 목소리를 높였다.

“대통령님에 대한 수사라면 정치적 고려가 있어야 할 것···”

“뭐? 참내~”

김필중이 한재민을 꼬나보면서 혀를 끌끌 찬다.

“한 부장은 평소에 수사를 그렇게 하나?”

“···”

“검사는 사건이 있으면 수사하면 되는 거야. 누가 대통령이든 황제든 무슨 상관이야? 한 부장 그래 안 봤는데 권력 눈치 보면서 수사하나?”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김필중의 입에서 저런 공자님 말씀이 나오다니.

“이 사건 수사하려면 원종태 부회장이 키맨인데, 지난번엔 소환해서 별 거 없었고 약식 기소로 끝냈었습니다. 이번에도 다시 소환할까요?”

한재민이 이 말을 할 때, 김필중이 나를 흘끗 봤다. ‘뭐 할 말 없나?’라는 뜻이다. 지난번 원종태 조사와 약식 기소 결정의 장본인이 나이기 때문이다. 나를 은근히 간접적으로 까면서 지난번 처분에 대해 김필중에게 항의하는 말이다.

난 그저 김필중의 시선을 외면하고 마룻바닥만 쳐다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높으신 분 둘이서 해결 보실 일.

“지난 번은 지난 번이고. 그때는 없었던 증거 자료가 이번에 나왔으니까 재수사하는 거지. 왜? 한 부장은 이 수사하기 싫나?”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원종태 부회장 소환부터 하겠습니다.”

“실무는 최용구. 니가 맡을 거지?”

난 한재민 눈치를 다시 살폈다. 이번엔 한재민이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이 없다. 싫지만 어쩔 수 없다는 긍정의 뜻.

난 바로 고개를 빳빳이 들고 대답했다. 목소리에 일부러 힘을 좀 넣었다.

“네, 제가 하겠습니다.”

“좋아. 아, 그런데 이번 일은 대통령에 대한 일이고,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일이니까···”

김필중이 말을 중간에 끊고 잠시 뜸을 들였다. 다음 말을 이어갈까 말까 망설이는 듯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는 걸까··· 했는데,

“언론 브리핑은··· 꼭 나를 통해서 하도록··· 아냐, 내가 직접 할 테니까··· 그리 알아.”

아까의 ‘공자님 말씀’ 때보다 더 웃겼다. 나만 그런 게 아닌 거 같았다. 한재민도 웃음을 참고 있는 게 보일 정도였다.

***

“안녕하십니까? H-TV 8시 뉴스 하대석입니다.”

하대석의 목소리와 표정이 평소와 달리 사뭇 긴장돼 있다.

“오늘은 백영기 대통령의 해외 계좌 의혹 관련 뉴스부터 시작합니다. 스튜디오에 서한무 기자 나와있습니다. 서한무 기자?”

“네, 서한뭅니다.”

“검찰이 의외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느낌이 드는데요. 백 대통령 임기가 1년이 채 남지 상황에서 해외 언론인 단체에서 제기한 의혹에 대해서 검찰이 이렇게 빨리 예민하게 반응했던 적이 있었나 싶습니다만··· 현장에서 취재를 한 기자 입장에서 볼 때··· 어떻습니까?”

“네, 그렇게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오히려 여당 주변에서는 이런 문제는 빨리 털고 가는 게 임기말을 향해 가는 대통령 입장에서도, 차기 대선을 준비해야 하는 여당 입장을 봐서도 더 낫다는 기류가 강한 상황입니다.”

“아, 그렇군요. 그런데 이번 검찰 수사는 어떻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을 하고 있습니까? 제일 먼저 ND 그룹 이야기가 나오고 있던데요.”

“그렇습니다. 백영기 대통령과 ND 그룹과의 관계는 백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 후보 시절부터 현 야당 진영에서 끊임없이 제기해왔던 문제인데요, 비록 해외 언론인 단체에서 제기한 의혹이긴 하지만 검찰이 수사를 하겠다고 한 이상 ND 그룹, 특히 원종태 부회장은 소환 조사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이번 사건은 검찰 어디에서 진행할 예정이랍니까? 지난번에 원종태 부회장이 소환돼 조사받았던 적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때는···”

“네, 그때는 수원 지검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서울 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부에서 실시한다는 계획입니다.”

“오, 중앙지검이 드디어 나서는군요.”

“네, 그런데 이번 수사에서 특기할 만한 사실은 김필중 민정 수석이 직접 나서서 언론 브리핑을 하고 수사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음··· 김필중 민정 수석이라면··· 세간에서 백영기 대통령의 ‘호위 무사’로까지 불렸던 분인데요··· 그분이 나선다면 대통령 의혹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될까 하는 의심도 세간에서 불거질 것 같기는 한데요.”

“결과를 지켜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시죠. 지금까지 서한무 기자였습니다.”

***

청와대 대통령 관저.

백영기가 김필중을 불렀다.

“아니, 필중이. 이게 도대체 뭐야? 지금 날 수사하겠다는 거야? 헛 참.”

“각하, 여론이 좀 안 좋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나서기로 했습니다. 너무 염려 안 하셔도 되실 겁니다.”

김필중이 무릎 위에 가볍게 주먹 쥔 양손을 얹고 앉아서 말했다.

백영기는 김필중이 저런 자세를 취할 때마다 기분이 좋다. 자세는 테니스나 골프만 중요한 게 아니다. 세상 일은 매사가 자세부터 시작한다. 자세가 저렇게 딱 각이 잡혀 있으면 무슨 일을 맡겨도 백 프로 이상 해낼 것 같다는 믿음이 생긴다.

“허허, 내가 뭐 우리 필중이 하는 일에 염려를 할 일이 있나? 선거 때 이미 다 묻고 지나간 일이 또 불거져서 사람 귀찮게 하니 참 한심하다는 말이지. 허허.”

“제가 평소에 철저히 관리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또 귀찮게 해 드렸습니다. 해외에서 이렇게 들쑤셔 댈 줄은 몰랐습니다. 제 불찰입니다. 죄송합니다.”

김필중의 무릎으로 뻗은 팔이 더 빳빳하게 펴지는 게 보였다. 백영기 마음은 더 흐뭇해졌다. 이렇게 자신에게 충성을 바치는 신하가 있다니. 이럴 때는 정말 세종대왕도 부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때 머리를 때리는 아이디어 하나.

백영기는 김필중 쪽으로 상체를 가까이 가져가면서 물었다.

“근데 이번 사건 수사하려면 ND 놈들을 건드려야 하지 않나?”

“네, 그렇습니다.”

“음··· 지난번에 우리 승철이 건으로 필중이가 만나봤다고 했지?”

“아, 미처 그때 결과를 보고 드리지 못했습니다. 송구합니다.”

“아냐, 아냐. 뭐 별로 나한테 이야기할 꺼리가 나오지 않았었나 보지. 안 그래?””

그래도 혹시 모르게 뭔가 돈 될만한 이야기가 있지 않았나 싶어 김필중의 대답을 기다리면 침을 꼴깍 삼켜봤지만,

“네. 각하. 아무런 긍정적인 대답도 듣지 못했습니다.”

“고얀 것들. 마침 잘 됐어. 이번 기회에 원종태 그 자식을 불러 놓고 혼줄을 내줘. 그러면 다시 내 밑에 기어 와서 살려달라고 하지 않겠어? 어때? 조사하는 김에 질질 끌지 말고 원종태를 바로 불러서 그냥 까버려. 빙빙 둘러갈 필요 없잖아. 어차피 우리 필중이 뭐··· 다 알고 있는 내용 아냐? 응?”

백영기가 ‘우리 필중이’를 말할 때 김필중의 왼쪽 어깨를 툭 쳤다. 오늘따라 유독 김필중이 마치 친동생처럼 여겨졌다. 이렇게 믿음직할 수가.

“네. 각하.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수사 실무는 누가···”

“최용구에게 맡기기로 했습니다. 이번에 서울 중앙지검 금조부로 제가 데리고 왔습니다.”

“아~~ 아아. 그 친구. 믿음직스럽지. 좋아, 좋아. 빨리 끝내버리자고 이 사건. 하하하”

“각하, 전 그럼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그래, 그래. 일 봐~”

김필중은 일어나 90도로 각 잡힌 인사를 하고는 돌아섰다.

돌아나가는 김필중의 뒷모습을 대견한 듯 흐뭇한 웃음으로 바라보고 있는 백영기의 얼굴과,

돌아나가는 중에 대어를 잡은 듯 환한 웃음을 짓는 김필중의 얼굴이 대조적이었다.

***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최용구 검사님~”

삼청동 안가에서 돌아와 검찰청 건물로 들어가려는데 늘봄 신문의 ‘정의의 사도’ 조준호 기자가 스윽 달라붙었다.

“어이고, 이거 옆에 금조부장 한재민 검사님까지 같이 계시네요. 둘이 어디··· 좋은 데 갔다 오시나 봅니다?”

한재민은 조준호를 돌아보지도 않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고 나도 그러려고 했는데, 조준호가 나와 출입문 사이에 끼어들어 나를 막아섰다.

“이거 뭐하는 짓입니까? 비키세요.”

“흐흐, 뭘 또 저보고 비키라고 하십니까? 항상 비키고 피하는 건 원래 우리 최용구 검사님 전문이셨으면서. 진실을 비켜가고 정의를 피해 가시는 검사님.”

실실 비웃어가면서 코앞으로 흘러내리는 앞머리를 뒤로 젖히는 조준호. 어느새 주변에는 다른 검찰청 출입 기자들도 한두 명씩 모여들었다. 우두머리가 먹이를 물자 같이 먹자고 모여드는 꼬붕들.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하이에나 떼와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 알고 싶어서 이러는 거요?”

하이에나 우두머리를 째려보면서 물었다.

“뭐긴 뭐야? 잘 아시잖아요? 이번 대통령 해외 계좌 건. 그거 수사 최 검사가 맡으셨죠?”

“그렇습니다. 근데 왜요?”

“최 검사님 뭐··· 수원 지검에 있다가 중앙 지검 금조부로 옮기셨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맡는 사건은 비스무리 하네요? 뭐 그럼 사건 처리도 비스무리하게 하시겠네요. 뭐 보나 마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뭡니까?”

“똑바로 하란 말입니다. 똑바로. 국민의 혈세를 받아먹는 검사가 맨날 재벌들 뒤나 봐주고, 대통령 눈치나 보고 살면 되겠나 이 말입니다. 예? 언제까지 최 검사는 재벌 검사, 정치 검사 노릇이나 하면서 국민 혈세를 낭··· 비··· 어··· 어···.”

기세 좋게 떠들던 조준호가 말끝을 흐린 것은 내가 조준호에게 바짝 다가가 얼굴을 마치 키스하듯 가까이 갖다 댔기 때문이었다.

최용구는 조준호보다 키가 15센티 정도 크다. 그러다 보니 내가 조준호를 내려다보는 자세가 됐고, 조준호는 뒤로 멈칫멈칫 조금씩 물러서야만 했다.

주춤주춤 안절부절못하는 조준호의 얼굴에 대고 속삭이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준호 기자. 정수명 씨 옥바라지는 잘하고 계십니까?”

“뭐요?”

“다음 달이 2심이라던데. 정수명 장관 감방에서 외로우실 텐데 잘 챙겨드리세요. 우리 조준호 기자님도 그때 같이 넣어드렸어야 했는데. 서로서로 보살피면서 옥살이하시게 말이에요. 그것만 생각하면 할수록 장관님께 미안해요.”

이러면서 조준호의 어깨를 툭툭 쳤다.

“이··· 이···”

조준호의 욕 솜씨는 입 거칠기로 유명한 기자들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편이다. 그런데 지금은 욕 나오는 목구멍이 막혔는지 혓바닥 밑에서 딱 걸려서 그 흔한 쌍시옷 하나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내 듣기로 천우민 성갑수도 깜방 안에서는 완전히 정수명 장관님한테 등 돌렸다고 하던데. 범죄자 새끼들 하는 짓이 그렇지 뭐, 밖에서야 피를 나눈 형제처럼 굴다가도 안에만 들어가면 서로 원수니까. 어쩌지? 우리 정 장관님 불쌍해서? 우리 조준호 기자님, 어째? 지금이라도 넣어드릴까? 나 그때 조 기자님 그분들하고 같이 뭐하셨는지... 자료 싹 다 가지고 있는데. 그거 다시 꺼내서 한 번 엮어줘? 원하신다면 뭐 언제라도 해드릴 수 있는데.”

“우··· 뭐···”

왜 이리 말문이 막혀 터지지 않는 건지. 조준호는 답답해 미칠 거 같았다.

난 답답해하는 조준호의 가슴팍을 탁탁 쳐주고 씩 웃으면서 돌아섰다.

“에이~ 저 씨팔 쉐~이끼.”

내가 돌아서자마자 희한하게도 조준호의 가슴팍이 확 열리면서 욕구멍이 터진 것 같았다.

“야! 최용구 이 씨발 새끼야. 내가 씨바 민정 수석 유선진도 날린 사람이야! 너 따위 새끼 검사 하나 못 날릴 거 같애?”

난 걸어가면서 뒤를 돌아보지는 않고 오른손을 흔들어 바이 바이 신호를 줬다.

“씨바~ 저 새끼 반드시 내가 날린다. 개~새끼”

하이에나처럼 주위에 슬금슬금 모였들었던 다른 기자들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면서 할 말을 잃었다.

조준호는 그들을 보기에 좀 많이 민망했다. 기자들을 향해서 씩 웃어주면서 말했다.

“여기 모인 기자들 말이야. 잘 들어. 나, 정의를 위해서 목숨 바치는 조준호야. 조준호. 나 저 검사 새끼 반드시 날린다. 꼭 봐! 내가 어떻게 이 세상을 깨끗하게 만드는지. 개~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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