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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인 검사에 빙의했다-62화 (62/70)

〈 62화 〉 대통령 조사해서 잘 된 검사 없는데...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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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리더십은 도둑같이 찾아온다네.”

원종우의 말.

삼청동 안가에 혼자 남은 김필중은 이 말을 곱씹고 또 곱씹으면서 앉아있다.

스르르 입가에 미소가 올라왔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고 가슴도 뛰는 것이 이런 느낌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자신이 홀로 앉아있는 안가를 고개를 들어 쑥 훑어봤다.

검사장으로 있을 때는 한 번 들어와 보기도 힘들었던 이곳. 민정 수석이 되자 이 넓고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이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서 쓰이는 곳이 됐고, 대한민국에 내로라하는 권력기관장, 재벌 총수들을 차례로 불러 깨고 호통치고 윽박질러도 누구 하나 불평 한 마디 내뱉지 못한다.

마치 이곳은 청와대로 들어갈 자신에게 마련된 연습 공간이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고, 김필중은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조금 우습기도 하여 히죽거렸다.

“1년밖에 안 남았지요. 준비하실 시간이. 결코 많지 않은 시간입니다.”

원종우가 이 말도 했다. 정말 맞는 말이다.

현재 여권에 유력 주자인 인천 시장 조순건은 여론조사만 하면 항상 1등이고, 비록 깜방에 갇혀있긴 하지만 정수명의 ‘정의’ 좋아하는 빠돌이 지지자들도 여전히 굳건하다.

김필중은 이제 시작해서 언제 저들을 따라잡나.

민주주의라는 이 빌어먹을 정치 체제에서는 대중의 인기를 확 끄는 자가 결국 권력을 잡는다. 바보든 무당이든 조폭이든 상관없다. 대중의 인기만 잡아낸다면 모든 게 용서된다.

그걸 어떻게 한 방에, 1년 만에 잡아낸다?

4번 타자가 정규시즌 경기에서 친 홈런 10방보다 이름 없던 7번 타자가 한국 시리즈 7차전에서 날린 적시타 한 방에 더 열광하는 게 대중이다.

100개를 예상하고 있을 때 100개를 던져주면 대중은 아무도 반응하지 않는다. 하지만 101개를 던져주면 열광한다. 단 1개 차이로 대중이라는 저 개돼지들은 조폭을 대통령으로도 만들고 바보를 천재로 둔갑도 시킨다.

“부족한 시간은 충분히 메꾸고도 남을 만큼 저희 형제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원종우의 이 말이 핵심이다.

백영기의 비밀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ND 그룹의 도움을 받아 대중의 인기를 한 방에 얻어낼 수 있는 방법이라면?

모두가 백영기의 호위 무사라고 알고 있는 김필중이 그 모두의 뒤통수를 치면서 만들어낼 한국시리즈 7차전 적시타와 같은 드라마는 어떤 일일까?

김필중의 입꼬리가 스윽 올라갔다.

***

“내 동생을 만나고 가셨다던데 나는 안 보고 가셨길래 최용구 검사님을 뵈러 직접 왔습니다.”

나를 태운 차가 스르륵 움직이자 옆자리에 앉은 원종우가 말을 꺼냈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지요.”

“일전에 은하 그룹 은성표 회장님과 이야기를 짧게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아, 은성표 회장님은 세간에서 알고 있는 것처럼 저와 아웅다웅하는 견원지간이 아닙니다. 그 반대지요. 제가 필요할 때마다 찾아뵙고 자문을 구하고 좋은 말씀을 얻어 듣는 그런 사이입니다.”

의외다. 하지만 별 관심 없다. 재벌 회장 둘이서 어떻게 지내든 말든.

“그런데요?”

냉랭하게 되물었다.

“내 동생이 하는 말이 김필중 민정 수석이 백영기의 호위 무사이듯이 최용구 검사가 김필중 민정 수석의 호위 무사가 되시기로 하신 것 같다고 하기에···.”

“풉! 호위 무사는 무슨··· 대한민국 최고의 재벌 회장님들께서 무협 소설 쓰십니까?”

“후후, 안 그래도 은성표 회장님께서 그러시더군요. 최용구 검사님은 김필중 따위에게 인생을 걸 그런 하찮은 사람이 아니라고 말이죠.”

싱긋이 웃어주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은성표 회장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최용구 검사께서 거래에 아주 능하다고 하시더군요.”

올림픽 대로를 달리고 있는 차는 이미 잠실을 지나고 있었다. 멀리 은하 그룹의 스카이 호텔이 보였다.

“회장님도 저와 거래를 하고 싶으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우선 뭘 주실지부터 말씀해보시죠.”

“김필중을 잡고 그 자리에 최용구 검사님을 올려드리겠습니다.”

난 또 씩 웃었다.

“그 대가로 전 뭘 해드릴까요?”

“내 동생. 원종태와 그 아들 원휘준을 잡아넣는데 협조해주시오.”

이번엔 웃지 못했다. 차를 탄 이후로 줄곧 차창 밖으로만 향하고 있던 내 시선이 처음으로 원종우에게로 홱 돌아갔다.

“후후, 검사님께서 이렇게 놀라시는 걸 보니 거래가 성사될 것 같군요.”

원종우.

ND 그룹 창업주 아버지 원영철 회장이 사망했을 때 형인 원종우는 지분을 더 많이 물려받았고 상속세와 증여세 문제로 동생 원종태에겐 더 많은 지분을 주지 못했다. 원종우는 그걸 늘 미안해했고, 회사 경영에 대한 권한은 동생 원종태에게 훨씬 많이 줬다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회사는 변한다.

경영권을 가진 동생은 그걸 이용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새로운 사업에는 새로운 지분이 생기고 그건 당연히 동생의 아들인 원휘준에게로 집중된다.

아버지 원영철에게서 원종우가 물려받은 지분은 과거지만, 원종태가 경영권을 쥐고 만들어가는 새로운 지분은 미래다.

원종우에게도 아들이 있다. 그런데 미래를 동생 원종태와 조카 원휘준에게 뺏기고 있다.

내가 동생한테 미래를 뺏기는 건 참을 수 있다.

하지만 내 아들이 조카에게 뺏기는 미래는 참을 수 없다.

“동생한테 가 있는 경영권을 되찾아오시겠다는 거군요. 그냥 찾아오시려면 형제의 난 같은 불미스러운 사건이 생길 거고. 회사 이미지, 아니 회장님의 이미지가 아주 나빠질 테니, 검찰의 도움을 받아서 찾아오자. 이거로군요.”

“후후, 그렇습니다. 최 검사님. 역시 듣던 대로 스마트하시군요.”

“그런데 대한민국 최대 최고 기업집단 ND 그룹의 경영권을 찾아오시는 건데, 그 대가로 제게 주시겠다는 게··· 김필중? 그거 너무 약한데요?”

“그럼 검사님의 조건을 말씀해보시죠.”

차는 잠실대교를 건너 강북강변도로로 접어든 지 꽤 되었다. 멀리 여의도가 보였다. 백영기가 4년 전 저기서 취임연설을 하던 모습이 생생히 떠올랐다.

“백영기”

“네?”

원종우가 뭘 잘못 들었나 싶었는지 인상을 쓰면서 다시 물었다.

“백영기요. 대통령.”

“잠깐. 차 세워.”

원종우가 기사에게 큰소리로 명령했고, 기사는 급하게 비상등을 켜고 세웠다. 무단 정차.

원종우가 차에서 내렸고, 나도 따라 내렸다.

자동차 전용도로에 갑자기 나타난 행인을 보고 놀란 차들이 경적을 요란하게 울려댔다.

“무슨 소리요? 그게? 장난칩니까, 지금?”

원종우가 차 건너편에 서서 내게 소리 질렀다. 바람과 차 경적 소리가 컸는데도 원종우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충분히 들릴만큼 컸다.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백영기.”

나도 큰소리로 답했다.

“이미 갈아타기로 결정하신 거 아닙니까? 백영기는 용도폐기. 새로운 리더로 갈아탄다. ND 그룹은 갈아타기 타이밍의 고수 아닙니까? 어차피 갈아타기로 한 거 갈아 치면서 경영권도 동생에게서 받아오면 꿩도 드시고 알도 같이 드시는 거 아닙니까?”

원종우 뒤로 차들이 빵빵 거리면서 지나갔다. 원종우는 바람에 머리털을 날리면서 한참을 차 건너편에 서 있는 응시 했다.

“싫으면 마시든가요. 여기 언제까지 이렇게 있을 겁니까? 교통경찰 바로 옵니다.”

원종우가 차 뒤를 돌아 나 쪽으로 왔다.

“백영기를 치게 도와달라는 말이요?”

목소리가 아까보다 많이 차분해졌다. 딜이 가까웠다는 뜻이다.

“도움은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원종태를 치면 백영기는 같이 치게 돼있습니다. 둘은 경제 공동체니까요. 김필중이 중간에서 훼방질만 안 하면 가능합니다. 김필중이 그 짓만 안 하게 회장님이 해주시면 됩니다. 근데 이미··· 손 써놓으신 거 아닙니까? 김필중은?”

원종우가 씩 웃는다. 나도 따라 웃었다.

“차에 타시죠. 검사님.”

차는 다시 강변북로를 달리기 시작했고, 양화대교를 넘을 때쯤···

“마수걸이 치고는 화끈한 거래입니다. 검사님.”

원종우가 내게 손을 내밀었고, 난 그 손을 살짝 잡았다가 놓았다. 꽉 잡는 건 오히려 오바. 상대에게 너를 믿는다는 신호를 너무 강하게 줄 수 있다. 특히 이런 거래에선 금기다.

***

“검사님, 검사님. 이··· 이것 좀 보십시오. 난리가 아닙니다. 난리가.”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정화용이 내게 달려들며 호들갑을 떨어댄다. 정화용이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건 서울로 이동을 한 이후 처음이다. 정화용은 역시 이럴 때가 정화용답다.

“무슨 일로 그러십니까?”

난 다 알면서 모른 척 시치미를 뚝 뗐다.

“신문··· 뉴스··· 인터넷 온통 난리가 났습니다. 이것, 이것 좀 보세요. 검사님.”

— ‘국제 탐사보도 언론인 협회, 백영기 대통령 소유로 추정되는 계좌 다수 폭로.’

— ‘천문학적 금액이 담긴 계좌 확보 후, 청와대에 사실 확인 요청. 청와대는 노코멘트’

— ‘야당 총공세 준비. 여권 내부에서도 동요 감지’

정화용 말대로 스마트폰에 이 뉴스로 도배가 됐다.

“아, 이거요? 저도 봤습니다.”

난 아무 관심 없다는 듯 정화용을 지나쳐 책상에 가서 앉아버렸다. 하지만 나를 졸졸 따라온 정화용은 내 옆에 서서 호들갑을 멈추지 않았다.

“시민단체야, 야당이야 벌써 고발이야 고소야 난리가 아니던데요. 그러면 이거··· 우리 금조부에 배당될 게 거의 확실한데··· 우리 금조부에 배당되더라도 우리가 맡지는 말···”

내가 정화용을 무시하고 노트북을 열고 일을 시작하려 하자, 정화용은 슬그머니 물러섰다.

물러서면서도 혼잣말인 척 내게 들리라고 중얼거리는 걸 잊지 않았다.

“대통령 조사해서 잘 된 검사 한 명도 없는데··· 다 끝이 망이었는데···”

원종우와 강변북로 ‘회합’을 마치고 돌아온 후, 난 바로 국제 탐사보도 언론인 협회에 제보 이메일을 보냈다.

‘프로톤 메일로 보내고 계정 폭파하는 거 그거 결국 다 들통납니다. 그런 거 하실 일 있으면 제게 연락 주세요.’

은하 그룹 사건이 끝나고 날 찾아온 심덕환이 했던 말이다.

난 심덕환 말대로 했고, 심덕환은 장당 했던 대로 프로톤 메일보다 더 확실하게 발신처 추적이 불가능한 방법을 써서 내 메일을 국제 탐사보도 언론인 협회에 보냈다.

이메일은 내용은 당연히 내가 가지고 있던 백영기의 비자금 계좌 정보.

은하 그룹 은성표 회장과 거래를 통해 받은 것 하나와 내가 죽기 전 이재훈 일 때부터 알고 있던 계좌 두 개였다.

조준호 같은 한국의 기자들에게는 아예 보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국은 어차피 언론사도 독자도 양쪽으로 갈라져 있고, 서로 자기편끼리 모여서 자기들끼리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떤 뉴스든 양쪽으로 쪼개져서 정쟁의 대상이 돼 버리고 결국 유야무야 돼 묻히고 대중의 기억에서 사라진다.

온갖 비리 부패범들도 노리는 게 그거다. 어차피 정쟁이 되면 묻히니까 정쟁이 되게끔 만들면 된다. 언론사를 이용하면 그걸 한껏 증폭시킬 수 있다.

반면, 해외발 뉴스라면 다르다. 해외에서 한국의 누구누구를 어떤 일을 이렇게 본다더라, 나쁘게 본다더라는 뉴스가 뜨면 모두가 기가 막히게 믿어준다. 임팩트도 훨씬 크다. '나라 망신, 국제 망신'에 대단히 민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평소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국제 탐사보도 언론인 협회를 이용하기로 했다.

“아··· 이거 정말 우리가 맡으면 골로 가는 각인데···”

계속 나를 향해 힐끔거리면서 중얼거리는 정화용.

난 저런 정화용이 귀엽기까지 하다. 당신한테 피해 안 가게 해줄 테니 염려 붙들어 매시라.

이제 김필중이 어떻게 나오는지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디리리리’

스마트폰 화면에 뜬 이름은 한재민이다.

내 전화가 울렸는데 정화용이 화들짝 놀라면서 벌떡 일어섰다. 얼굴엔 걱정과 불안감이 가득 찼다.

“네, 부장님. 최용구입니다.”

— ‘청 앞으로 나와. 민정 수석 호출이야. 너하고 나 둘’

“민정 수석요?”

난 일부러 정화용 들으라고 큰소리로 말했다. 정화용이 고개를 푹 숙이고 한숨을 내쉰다.

“알겠습니다. 바로 나가겠습니다.”

청 앞에 이미 내려와 나를 기다리고 있는 한재민의 얼굴. 기대와 걱정이 교차하는 표정.

“부장님, 어서 가시죠.”

한재민을 잡아끌 듯 차에 태웠다.

웬일인지 자신감이 넘치는 나를 보고 한재민의 얼굴은 더 복잡한 표정으로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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