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를 죽인 검사에 빙의했다-60화 (60/70)

〈 60화 〉 날 이용해 사람까지 죽여놓고 내가 기억이 안 나?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서울 서초동 드래곤 타워. ND 그룹 본사 사옥.

원종태가 백승철의 집무실이 있는 38층으로 직접 내려왔다.

원종태가 있는 이른바 ‘회장층’은 39층, 백승철 집무실은 바로 아래인 38층.

‘회장층’과 얼마나 가까이 있느냐가 곧 해당 임원의 힘의 크기를 그대로 증명한다. 백승철의 힘은 부회장 원종태 다음이라는 뜻이다.

“어머, 부회장님.”

예상치 못했던 원종태의 직접 방문에 백승철 부사장 집무실의 여자 비서 두 명이 깜짝 놀라며 벌떡벌떡 일어났다.

“어, 아니에요. 앉아요. 일 보세요.”

얼굴이 발개져서 고개를 조아리는 비서들에게 원종태는 온화한 미소를 날려줬다.

재벌 부회장이지만 부드럽고 소탈하기까지 한 이미지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원종태.

재벌 이미지의 출발점은 회사 직원들이고, 특히 회사의 핵심부에 있는 직원일수록 재벌 총수 일가의 일거수일투족을 세간에 알리는 ‘빅마우스’ 일 가능성이 크다.

모두가 선망하는 신비스러운 재벌과 최측근에 있다는 사실을 퇴근 후 집에 가서 가족들에게, 술자리에서 친구들에게 과시하고 싶어 하는 게 머슴으로 일하는 아랫것들의 인지상정이고, 조선시대 양반 사대부의 평판도 행랑아범이나 저잣거리에 장 보러 나온 머슴 놈 입에서 시작됐다는 것. 원종태는 잘 안다.

비서 데스크를 지나 백승철 집무실 문을 직접 열고 들어가려다가 딱 서서 비서들을 돌아보면서 한 마디 더 던진다.

“나 왔다고 차 준비하고 그럴 필요 없어요.”

“아, 네. 부회장님.”

여자 비서는 발개졌던 얼굴에 숨소리까지 가팔라졌다.

“나 금방 갈 거예요. 앉아서 하던 일 봐요. 하하”

온화하신 부회장님 역할극은 여기까지.

원종태는 백승철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바깥에서 나는 소리를 들은 백승철이 이미 문 앞까지 뛰어와서 90도로 인사를 하고 있다.

“부회장님. 여기까지 어인 일이십니까?”

39층에서 38층에 한 층 내려온 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어 뭐, 백 부사장한테 내가 왜 왔겠어요? 짧게 할 말 좀 있어서.”

문을 닫자마자 냉랭해진 원종태. 아까 문 바깥에서 여자 비서를 대할 때와 지금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고, 백승철은 벌써 이마에 땀이 송송 맺혔다.

“저··· 부회장님. 아버님께 제가 여러 번 연락을 넣어봤습니다만··· 요즘 저··· 미국 대사도 좀 귀찮게 하는 게 있고, 중국 쪽에서도 아시다시피 요즘 워낙 프레셔가 많고 해서 시간이 없으시다고··· 조만간 부회장님께 연락이 올 거라고··· 조금만 기다리시라고···”

“아, 미국, 중국? 외교적인 문제로 바쁘신 모양이군요?”

원종태는 백승철을 쳐다보지도 않고 저벅저벅 소파 쪽으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네··· 맞습니다. 특히 중국 쪽에서 대국이라고 어찌나 성가신 요구를 하는지···”

“중동은요? 석유는 잘 들어온답니까?”

원종태가 소파에 털썩 앉으면서 물었다.

“중동요?”

최근 들어 중동이 외교적 이슈가 됐던 적이 없었다. 석유 수입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갑자기 중동과 석유를 언급하실까?

백승철은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소파 상석에 앉은 원종태 옆 자리에 엉덩이를 살짝 걸치고 앉았다.

“중동은 별 문제가···”

“청와대는 그런 모양이군요.”

원종태가 옆에 앉은 백승철 쪽으로는 여전히 시선을 주지도 않고 귀를 파면서 말했다. 백승철은 불길한 생각이 더 강해졌다.

“네··· 저··· 부회장님 중동 쪽에서 무슨 소식이라도 들으신 게 있으신···”

원종태는 계속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파면서 툭 던지듯이 말한다.

“백 부사장, 당분간 두바이 법인에 좀 나가 있어 줘야겠어.”

“네?”

역시 불길한 느낌은 틀리는 적이 없다. 게다가 지금 저 말··· 원종태 답지 않게 반말이다.

“청와대만 외교 하는 거 아니잖아. 우리 ND 그룹도 외국 놈들 때문에 골치가 아파서 말이지.”

“···”

“요즘 중동에 송사가 끊이질 않는데. 그래서 백승철 부사장이 가서 법률 지원도 하고 정리 좀 해줬으면 해.”

백승철은 얼마 전 원종태가 미국을 가면서 백승철은 한국에 있으면서 국내 사건이나 잘 관리하라고 말했던 게 기억났다. 그런데 이번엔 중동에 가서 법률 지원을 하라니. 중동은 해외 아니던가? 더군다나 지금은 인사 시즌도 아니다.

“알겠습니다. 부회장님.”

속이 쓰렸지만 할 수 없다. 지금은 이렇게 넘어가고 부회장의 속내는 시간을 두고 알아보면 될 일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참, 백 부사장. 그리고 나갈 때까지 한 달 정도 시간이 필요할 텐데... 그동안 38층은 좀 비워줘야겠어. 오늘 당장 비워져.”

“네?”

백승철의 표정이 황당함으로 일그러졌다.

“미주 본사의 로버트 리 변호사 알지?”

“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백승철. 이미 방 빼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먹었다.

“내일부터 여기로 출근하기로 했어. 이 방을 주는 게 좋을 거 같아. 괜찮지? 그럼 난 이만.”

원종태가 홱 일어나 문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백승철도 따라 일어났는데,

“아, 앉아있어. 따라 나올 필요 없어. 그럼 두바이 잘 가시고. 인사는 이걸로 갈음하지.”

원종태가 문을 쾅 닫고 나갔다.

원종태가 나간 문을 멍하니 보고 서 있는 백승철.

40대에 최연소로 부사장 승진했다고 신문에 대서특필도 되고, 대한민국 최고 기업 ND 그룹에서 한때는 부회장 원종태보다도 힘이 쎄다고도 했던 백승철.

좌천됐다.

부사장 승진과 동시에 ‘백사의 땅’ 중동 두바이로.

대통령 아버지 백영기의 힘빨이 떨어지고 있다는 증거다.

백승철은 앞날이 두바이 사막처럼 황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

“검사님. 무슨 급한 일이 있으셨나 봐요. 회사 빨리 들어가 봐야 하는데··· 뭐 그래도 검사님이 보자시는 거니까 시간 내야겠죠? 호호”

내 앞에 긴 다리를 척 꼬고 앉아 살랑살랑 흔들면서 박수미가 말했다.

커피숖 야외 테이블에 앉은 박수미의 모양새가 마치 유명한 TV 광고 모델 같았다. 테이블 옆을 지나가는 남자들은 물론이고, 커피숖 안에 앉은 사람들의 시선도 강탈 중이다.

수원지검에 있을 때 벙벙한 남방에 헐렁한 청바지를 입고 머리를 뒤로 틱 묶고 뛰어다니던 박수미와는 180도 다른 이미지다.

옷차림과 화장빨로 이렇게 사람이 달라질 수 있다니···.

박수미에게 쏟아지는 남자들의 시선은 내게도 잠깐 머물렀다 간다. 이런 미녀를 앞에 놓고 있는 나를 향한 부러움인지, 둘의 관계가 뭔지 궁금해하는 오지랖인지···.

“한재민 부장님께서···”

어색하고 불편한 마음을 억누르고 말을 꺼냈는데,

“날 만나라고 하셨죠? 역시 대한민국 검사들은 상사의 명령에는 절대복종이야. 호호.”

한재민이 자신을 만나라고 한 걸 안다. 박수미와 한재민은 도대체 무슨 관계일까.

“한 부장이 날 만나라고 한 게 며칠 된 걸로 아는데··· 뭐 시간이 좀 지나긴 했지만 그래도 마음을 이제 정하셨나 봐요? 최용구 검사님?”

“무슨 마음을 정했다는 겁니까?”

박수미가 오른손을 자신의 턱 밑에 괴면서 생긋이 웃으면서 내 말을 받는다.

“이거 왜 이러실까? 그럼 최 검사님. 나를 왜 보자고 하셨어요? 그것도 이리 급하게. 그거 아니었어요? 난 그건 줄 알았지.”

박수미가 ‘그거’라고 말할 때, 자신의 턱을 굈던 손을 떼서 청와대를 검지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검지 손톱에 발라진 매니큐어가 반짝했다.

“그건 그거고, 일단 궁금한 거부터 좀 압시다. 박수미 씨는 도대체 한재민 부장님 하고는 무슨 사입니까?”

좀 도발적으로 물었는데, 박수미는 대답은 않고 나를 빤히 쳐다만 본다. 앞으로 흘러내린 머리를 귀 뒤로 넘기느라 고개를 살짝 뒤로 젖혔는데 그러면서도 나를 보는 눈매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리고는,

“야! 최용구. 너 정말 나 모르겠냐?”

길 가다가 갑자기 뜬금없이 모르는 행인한테 뒤통수를 맞으면 이런 기분일까.

멍했다. 이 여자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흥! 나 정말 기억 안 나?”

박수미가 갑자기 목 위까지 채워져 있던 블라우스 단추 세 개를 틱틱 풀고 앞가슴을 훤히 보이게 벌리더니, 소매가 끌어올려 민소매로 만들었다.

“자··· 이래도?”

난 계속 멍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끗거리면서 보는 것 같았지만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박수미 씨, 지금 뭐하시는···”

“개~ 새액끼. 날 이용해서 라스베가스에서 사람 꼬신 거 기억 안 나? 그 사람 납치해 가서 사막에서 말라죽게 해 놓고는 내가 기억이 안 난다? 사람 그렇게 잔인하게 말라죽인 새끼가 여기 와서는 정의를 위하는 척, 불쌍한 청년 편드는 척··· 너 그러고도 상판때기가 간지럽지 않던?”

관자놀이를 뾰족한 뭔가가 세게 찌르는 느낌이 들었다.

박수미··· 그러니까 이 여자는··· 그때 그···.

날 죽인 최용구의 기억과 죽임을 당한 나 이재훈의 기억이 내 눈앞에 무질서하게 뒤섞이고 교차하면서 지나갔다.

라스베가스.

벨라지오 호텔.

바카라 테이블에서 큰돈을 벌고 있던 나. 내게 몰려든 여자들. 그중에서 고른 동양 여자.

그래, 그때 그 여자가 입고 있던 블라우스. 지금 박수미가 입고 있는 저 블라우스와 비슷한 얇고 가슴이 많이 파인 시쓰루 블라우스였다. 길고 쭉 뻗은 다리가 완전히 드러나는 레깅스에 빨간색 구두를 신고 있었던 짙은 흑발에 대조되는 하얀 피부의 동양 여자였다.

난 그 여자를 데리고 내 호텔방으로 갔고 침대 위에서 딥키스를 나눴고···

그리곤 죽었다.

최용구의 기억 속에선 이 여자···

최용구가 건넨 10만 불을 받아 들고 생긋이 웃었던 게 떠오른다. 여자 밝히는 남자 하나 꼬시는 간단한 미션에 이렇게 많이 주냐고 했던 것도 같이···.

“아··· 으···.”

날카로운 송곳에 찔린 듯 띵 하게 아파오는 양쪽 관자놀이를 엄지와 중지로 강하게 눌렀는데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새 나왔다.

저 여자에게 줬던 10만 불, 난 어디에서 그 돈을 구했지? 누가 줬었지?

관자놀이를 세게 누르면 기억이 나는가. 기억이 관자놀이에서 쥐어짜면 나오기라도 하는 듯 난 관자놀이에 댄 엄지와 중지에 더 세게 힘을 줬다.

그때,

“왜? 당신도 김필중이 시켰던 거라고 말하고 싶은 거냐? 봉급쟁이라 시킨 대로 했을 뿐이라고 변명하고 싶어? 흥! 10만 불 그까짓 거 뭐··· 나 그날 그 돈 하루 만에 다 썼어. 사람 죽이는데 쓴 돈이니 갖고 다니기 싫더라고. 한국 와서 김필중 그 인간이랑 좀 놀아보니까, 김필중 그 인간 10만 불 그 정도야 뭐 한국돈 10만 원보다 쉽게 쓰는 인간이던데?”

박수미의 이 말에 김필중과 최용구 사이에 있었던 일이 소환돼 올라왔지만, 그보다 ‘그 인간이랑 좀 놀아보니까’라고 말한 부분에서 난 더 놀랐다.

“흥! 그때는 김필중이 준 돈으로 사람도 죽이더만, 한재민 검사 말로는 이젠 그 김필중을 잡아 처넣고 싶어 하신다며? 권력을 위해서라면 사람 하나 죽이는 것도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해치우시는 우리 최용구 검사님께서 왜 갑자기 그렇게 되셨을까? 아하! 검찰은 견찰이고 검사는 검새, 이렇게 검찰의 신뢰가 바닥을 찍고 땅 밑으로 파 들어가고 있을 때, 조직의 위기는 곧 나의 기회! 검찰 최고 권력자 김필중을 찍어내는 검사가 되시겠다는 거지? 검찰 개혁의 상징, 정의 검사 최용구가 돼서 어리석은 국민의 마음을 휘어잡고 권력을 잡아보시겠다. 이거지?”

박수미가 마치 재판정에서 변론하듯 썰을 풀어댔다. 하지만 난 뭐라고 반론할 수도 없었다.

“한재민 검사가 나한테 당신을 도와주라고 하대? 웃겨서. 난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뭐 그게 김필중이를 잡아처넣는데 도움된다고 하니 뭐··· 그러겠다고 했지. 하기사 김필중 그 인간,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깜방은 고사하고 파출소 근처에라도 데리고 갈 수 있겠어? 최용구 당신! 프로톤 메일 있지? 주소 불러봐. 아니, 여기 찍어줘. 당신 목소리도 더 듣기 싫으니까.”

박수미가 자기 폰에 메모장을 열고 내게 내밀었다.

난 그저 아무 말 없이 하라는 대로 했고 박수미는 씩 웃으면서 내가 준 메일 주소로 메일 하나를 보냈다.

“이걸로 끝. 메일은 내가 당신 눈에서 사라지고 난 뒤에 열어봐. 우리 이제 다시 볼 일 없을 거야. 난 조만간 여기 한국을 뜰 거니까. 그럼 안녕. 아, 커피 잘 마실께.”

박수미가 아까 풀어헤쳤던 단추를 다시 목까지 잠그고는 벌떡 일어나 떠났지만, 난 한참을 그 자리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내가 죽던 날의 기억. 나를 죽인 자의 기억이 동시에 소환돼 머릿속이 범벅이었기 때문이다.

“후~~”

심호흡 한 번을 하고 박수미가 보낸 메일을 열었다.

메일엔 제목도 내용도 없었고 JPG 그림 파일 10개만 첨부돼 있었다.

“뭐지?”

첨부파일을 열었는데···.

“씨바··· 김필중 개~ 새끼.”

그림 파일을 보자마자 저절로 욕이 튀어나왔고 방금까지 멍했던 머리가 다시 상큼해졌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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