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 대통령 계좌를 깔까요? 말까요?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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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인사 명령이 떴다.
김필중이 민정 수석이 돼서 주도적으로 추진한 첫 검찰 인사다.
◻ 검사장급
서울 중앙지검 검사장 윤성회 (현 법무부 검찰국장)
◻ 중간간부급 및 검사
서울 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부장 한재민 (현 서울 중앙지검 검사)
검사 권성훈 (현 수원지검 검사)
검사 최용구 (현 수원지검 검사)
서울 남부지검
형사 제6 부장 송대기 (현 수원지검 조사부장)
청와대 파견
민정수석실 강민철 (현 서울 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부장)
***
“이번 검찰 인사는 말 안 나오는 거 없나?”
청와대 근처 삼청동 안가에서 김필중이 강민철을 불러놓고 이야기하고 있다.
“네, 수석님. 몇 가지 있긴 합니다만, 그리 신경 쓰실 문제는 아닙니다. 인사 때는 항상 설왕설래가 많은 법이니까요.”
강민철이 김필중 옆에 꼿꼿이 서서 대답했다. 앉으라는 말을 김필중이 하지도 않았지만, 강민철도 감히 앉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이번 인사를 통해 강민철은 현 정권의 떠오르는 실세, 김필중 라인을 잡았으니 횡재도 이런 횡재도 없다 싶다. 십수 년 공직 생활을 통해 잡은 동아줄 중 가장 튼튼한 줄이다. 역시 공직은 줄이 곧 생명이다. 이번에 잡은 이 줄은 절대 놓치지 않고 갈 생각이다.
“몇 가지 있다? 그중에 한 가지만 떠들어봐. 뭐라고들 해?”
김필중이 소파 앞 탁자에 다리를 턱 얹고 새끼손가락으로 오른쪽 귀를 파면서 묻는다.
“한재민에 대해서 말이 있긴 합니다. 중앙지검 금조부장으로 꽂으신 거 말입니다.”
한재민은 강철민이 중앙지검 금조부장으로 있을 때 데리고 있었다. 그때 당했던 거 생각하면 지금도 이가 갈린다. 지금 김필중에게 한 말은 한재민 견제용이다.
하지만 초장부터 너무 세게 말하면 안 된다. 게다가 이 인사는 김필중이 민정 수석이 되고 처음으로 한 인사. 가타부타 안 좋은 말을 하면 안 된다. 어렵게 잡은 동아줄에 스크래치가 날 수 있다.
“풉, 너무 파격이었다 이거지? 중앙지검 금조부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선망의 대상인데, 평검사로 있던 부서에 승진해 바로 부장을 달아준다? 이거 너무 큰 파격이다. 이거지? 게다가 한재민이 시키, 나이도 어리니까.”
“메기 한 마리가 휘젓고 다녀야 청어들이 빠릿빠릿해지는 법입니다. 수석님.”
강민철은 마음에 없는 말을 했다. 딸랑거릴 때는 확실히.
“내가 다 생각이 있어. 한재민이 그 자식, 각하 뒤를 캐고 다닌다는 말이 있어.”
“네? 각하 뒤를요?”
“한재민 그 자식, 강민철 당신이 데리고 일해봤지? 잘 관찰해봐.”
“아, 네, 알겠습니다. 수석님”
“그리고··· 그 밑에 박은 최용구 말이야.”
“네.”
“그 시키··· 내가 수원지검에서부터 데리고 있었던 놈인데··· 나 일부러 그 자식을 한재민이 밑에 박아 넣었어. 그 시키도 수상한 점이 많아. 나 그래서 그 둘을 쌍으로 붙여놓은 거야.”
“네. 알겠습니다.”
“강민철 자네 할 일이 많아. 정신 바짝 차려. 알았어?”
“네. 수석님. 최선을 다하겠···”
“디스미스트!”
말이 끊기자 강민철은 더 꼿꼿하게 몸을 세우고는 90도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갔다.
김필중은 머리를 뒤로 젖혀 소파 등받이에 완전히 기댔다. 하얀색 벽지가 발라진 천장을 바라본다.
“흐흐, 삼청동 안가. 여기만 들어오면 마음이 이렇게 편할 수가 없어. 내 집 같아.”
요즘 김필중은 사람을 대부분 여기서 만난다. 일도 여기서 처리한다.
어제도 국세청장을 데려다 놓고 호통을 쳤다. 내일은 경찰청장에게 호통을 칠 생각이다.
대한민국의 권력기관장들을 차례로 불러다가 호통을 쳐보니 알겠다. 권력이란 것, 이걸 한 번 잡으면 왜 놓기 싫어하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어 하는 지를···.
민정 수석이 되기 전에는 검사장만 해도 아주 높은 자리인 줄 알았다. 그런데 민정 수석이 돼보니 완전히 다른 세상이 열렸다.
혼자 중얼거린다.
“대통령이 되면··· 또 얼마나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까. 나라고 백영기 호위 무산지 뭔지만 하고 죽으라는 법 있나. 후후후.”
***
“이야~. 검사님 덕분에 드디어 서울에 입성을 하는군요.”
정화용 입이 귀에 걸렸다. 정화용도 이번에 나와 같이 이동을 했다. 내가 요청한 거다.
“저··· 근데 검사님. 박수미 씨는 여기 못 데리고 오는 건가요?”
정화용은 박수미와 권성훈 사이의 더 깊은 이야기까지는 모른다. 그저 권성훈에게 속아서 수사 자료를 유출했다고만 알고 있다.
“박수미 씨는 사직했습니다.”
“그만뒀다고요? 회사를? 아니, 이 엄동설한에 밖에 나가서 뭘 해서 먹고살려고.”
이때 누군가가 방에 불쑥 들어오면서 큰소리로 말한다.
“최용구 있나?”
한재민이다. 아무 예고도 없었다.
“엇, 부장님.”
정화용은 잽싸게 기립했고, 나는 엉거주춤 천천히 일어섰다.
“부장이 왔는데 일어서서 맞는 꼬라지가 왜 이 모양이야? 왜? 내가 또 니 아구통 날릴까봐 무서워? 걱정마. 이젠 아구통 대신 사건으로 조질 거니까.”
한재민이 싱긋이 웃으면서 내 앞에 딱 서서 말했다. 지난번 얻어맞은 입 안 상처가 다시 얼얼해지는 것 같았다. 아직 아물지도 않았다.
“아, 그리고 난 보통 내 밑에 검사들을 ‘프로’라고 부르는데 난 최용구 너를 검사로 인정 안 하기로 했으니까 그냥 최용구라고 이름으로 부를 거야. 검사는 무슨, 니 같은 놈이.”
거들먹거리는 한재민을 보니 나도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내가 죽기 전 이재훈일 때 알던 그 ‘껌딱지’ 한재민은 잊자.
한재민은 몸을 홱 돌려 정화용에게 갔다. 정화용은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선 탓에 턱이 가슴에 거의 붙은 자세가 됐다.
“이번에 최용구 니가 수원서 데리고 온 그 수사관인가?”
난 대답하지 않았는데, 눈치 빠른 정화용이 잽싸게 90도 인사를 하면서 한재민의 주의를 자신에게로 끌었다.
“네. 부장님. 참여 계장, 정. 화. 용. 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부탁? 부탁은 내가 당신한테 해야지. 당신이 나한테 무슨 부탁을 해?”
“아! 네··· 저··· 그···.”
말을 못 잇는 정화용을 보고 재밌는 듯 웃으면서 정화용의 어깨를 툭 친다.
“목소리가 꽤 크네, 정 계장. 근데 난 말이야, 목소리 큰 것보다 빠릿빠릿한 게 좋아. 보통 목소리 키우는 건 느릿느릿한 걸 감추려고 그러는 경우가 많거든. 정 계장은 아니지?”
“아··· 아닙···”
“아니길 바래.”
“네.”
“잘해보자고.”
“네··· 네··· ”
한재민은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고 사무실을 휘휘 돌아다닌다. 이것저것 들춰보고 괜히 벽도 탁탁 두드려본다.
그러더니 내실 문 앞에 턱 섰다. 나를 돌아보고 말한다.
“어이, 최용구. 여기 들어가까? 내 방 가까?”
고개를 까딱한다. 빨랑 와서 문 열라는 말이다. 자기 손은 모두 바지 주머니 안에 꽂혀 있으니까 문 열 손이 없다.
난 얼른 뛰어가 문을 열어 옆에 섰고, 한재민은 그 앞을 쓱 지나 내실로 들어갔다. 한재민이 내실 안 소파에 앉는 걸 보고 나도 문을 닫고 들어갔다.
정화용은 자리에 털썩 앉으면서 한숨을 내리 쉰다.
“아··· 씨바··· 나이도 어린 새끼가···.”
***
내실 소파에 앉은 한재민과 나.
“어이, 최용구. 난 수사관들 군기를 이렇게 잡아. 내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발이 땅에서 떨어지게 만들어놔야 되거든. 최용구 니는 안 그러나 보지?”
“···”
“저 수사관은···”
닫힌 문 쪽으로 턱을 틱 가리키면서,
“잘해? 빠릿빠릿해?”
“저랑은 잘 맞습니다.”
“빠릿빠릿하냐고 물었는데 저랑은 잘 맞습니다가 뭐야? 그게 대답이야? 그럼 저 수사계장이랑 잘 맞는 당신은 빠릿빠릿하냐고 내가 다시 물어야 돼?”
“빠릿빠릿합니다.”
“누가? 주어가 빠졌잖아?”
“정화용 계장이 빠릿빠릿합니다.”
“대답은 그렇게 하는 거야. 최용구.”
“알겠습니다.”
대답하는 나를 보고 피식 웃는 한재민. 지 밑에 들어온 나를 확실하게 군기를 잡아두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1, 2, 3학년 때 어디에 있었어?”
1, 2, 3학년이란, 검사 임용 후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부임지를 말하는 검사들의 은어다.
“1학년은 의정부 지검에 있었고.”
“그래? 나쁘지 않네.”
‘의정부 1학년’은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사시와 연수원 성적이 좋아야 갈 수 있는 곳이다. 경기도기 때문이다. 물론 서울을 벗어나 본 적 없는 한재민에게는 경기도도 저~ 밑에 공부 못하는 것들이나 가는 곳이었겠지만.
“2학년은 원주 지청···”
“됐어. 뭐 그딴 거 다 줄줄이 읊으라고 물은 건 아니고. 그래, 수사 자료 재벌 놈한테 떠넘기는 거는 몇 학년 때 배운 기술이야?”
새~끼, 그걸로 수원에 있는 내 방까지 내려와서 내 아구통 양쪽을 갈기기까지 했으면 그걸로 끝인 거지. 또 들춰내나.
“3학년 때 배웠습니다.”
눈을 치켜뜨면서 말했다. 한 번 해보자, 이 자식아.
“뭐?”
내가 노려보면서 말하니 한재민이 당황하는 눈치다. 살짝 쫀 거 같기도 하다.
검사 임용 후 서울 요직만 돌면서 책상에서 머리만 굴린 한재민이다. 반면, 내가 들어와 있는 최용구는 인육 먹은 조폭도 때려잡은 행동파다. 행동파가 책상머리한테 눈을 치켜떴으니, 아무리 중앙지검의 ‘에이스’ 라도 쫄만하지.
“아까 3학년은 어디서 있었는지 말하려고 했는데, 제 말을 짜르셔서 말씀 못 드렸었는데··· 3학년은 부산 지검에 있었습니다. 거기서 조폭 놈하고 연통하던 경찰 놈 하나를 잡으려고 조폭 두목한테 우리 쪽 자료를 미끼로 넘겨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배웠습니다. 수사 자료를 미끼로 넘기는 법.”
“미끼?”
“그 미끼 물고 조폭 놈 깝치길래 바로 잡으러 갔더니 그 조폭 놈 인육을 잘라서 처먹고 있더군요. 같이 먹을까냐고 나한테 묻길래 난 소 돼지도 등심만 먹는데 그 인육은 뱃살이라서 안 먹겠다고 둘러치고 그 조폭 놈 빵에 처넣어줬죠. 그때 그 경험을 살려서 원종태한테도 수사 자료 미끼로 넘겼습니다. 원종태 자식 그 미끼 잘 물더군요.”
한재민이 상체를 소파 등받이에 기대면서 팔짱을 꼈다. 상대로부터 멀어지면서 팔짱을 껴서 자신의 심장부를 방어하겠다는 무의식적 움직임. 나의 공격이 효과가 있었다는 증거.
“대한민국 최고 재벌인 원종태가 이미 큰 고기인데, 얼마나 더 큰 걸 잡겠다고 미끼를 던져? 그 형인 원종우 잡으려고? 풉!”
한재민의 말 끝에 나온 비웃음. 당황하고 있는 자신을 숨기기 위한 술수다. 재민아, 너는 아직 더 커야겠다. 이 정도 술수를 상대의 눈에 훤히 보이게 쓰고 있다니.
난 아무 말 없이 한재민의 떨리는 눈만 뚫어져라 응시했다.
“대통령이라도 잡을 생각이셔? 풉!”
한재민이 비웃음과 함께 한마디 더 했다. 하지만, 내 눈동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최용구··· 너··· 설마···”
한재민 뭔가 낌새를 챘는지 등받이에 거만하게 기댔던 상체를 나 쪽으로 당겼다.
난 그제서야 한재민을 노려보고 있던 시선을 풀고 스마트폰을 열었다.
백영기와 원종태가 5천만 불씩 나눠가졌을 때 백영기가 썼던 계좌 번호가 적힌 메모를 불러내 한재민에게 내밀었다.
“이··· 이게 뭐야?”
“대통령 비자금 계좌번호입니다. 한 부장님도 원종태와 대통령 뒤를 많이 캐셨더군요. 하지만 이건 확보하지 못하셨죠?”
“뭐··· 뭐라고?”
한재민이 내 손의 스마트폰을 뺏아 들고 화면을 본다.
“이··· 이걸 어떻게···”
스마트폰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며 말을 잇지 못하는 한재민.
“부장님이 주신 원종태 자료를 제가 모두 그쪽에 넘긴 이유를 이제 아시겠습니까?”
한재민은 말이 없다. 내 스마트폰 화면만 뚫어지게 쳐다본 뿐이다.
“이게 있는 한, 다른 건 소용없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을 잡는데 원종태 따위는 피래미 새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부장님.”
“···”
“이제 어떡하시겠습니까? 부장님. 지난번 수원까지 친히 내려오셔서 저 아구통을 갈기시면서 니가 이러고도 검사야?라고 하셨었죠. 그럼 부장님, 제가 이걸로 대통령을 까려고 하면 막으시겠습니까? 그냥 두시겠습니까? 전 검사가 아니라고 하셨고, 부장님은 검사시니까 어디··· 검사답게 답변해 주시겠습니까?”
“최··· 최 프로···”
한재민 목소리가 많이 떨렸다.
역시 대통령이 쎄긴 쎈가보다. 날 검사 취급 안 하겠다더니, 대통령 까겠다는 내 말 한마디에 저렇게 바뀌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