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 니가 이러고도 검사야?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심덕환은 ‘입막음 비용’ 1억 불은 5천만 불까지는 네고를 쳐도 된다고 그레이엄으로부터 지시를 받고 왔다.
물론 그레이엄의 이 ‘지시’는 내가 해준 말이고.
네고의 하한이 5천만 불인 이유는 원종태가 백영기와 나눠 가진 금액이 딱 5천만 불이기 때문이다.
챙긴 게 딱 5천만 불인데 원종태가 ‘입막음 비용’으로 5천만 불 이상을 엑소더스 펀드에 주고 나면 원종태는 주가 조작을 통해 번 돈 모두 또는 그 이상을 잃어서 아무것도 남는 게 없거나 손해 보는 장사를 하는 게 된다.
어려서부터 ‘가나다라’보다 돈 계산부터 먼저 배운 재벌 2세 원종태다. 같이 주가 조작을 해서 5천만 불씩 나눠가졌는데 원종태는 다 뜯기거나 손해를 보고, 백영기는 고스란히 그 돈을 가지고 있게 된다면 원종태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돈이라면 백영기도 재벌 못지않다. 자기 주머니에 한 번 들어온 돈, 남에게 절대 주는 법이 없다.
백영기와 원종태는 백영기 계좌에 남아 있는 5천만 불을 가지고 지지고 볶게 될 거다.
내가 노리는 게 바로 이거다.
“저··· 심덕환 파트너님···.”
원종태가 결국 존댓말을 하기로 했다.
‘가나다라’ 보다 돈 계산부터 먼저 배울 때, 비굴해야 할 때는 철저하게 비굴해야 한다는 것도 같이 배웠다.
“아까 입막음 비용이라고 하셨는데···”
“후후, 부회장님 이제 나한테 존댓말을 하기로 하셨나 보네요. 그럼 저도 존댓말을 하지요. 그렇습니다. 원종태 부회장님.”
다시 깍듯한 비즈니스맨으로 돌아온 심덕환. 표정도 훨씬 온화해졌다.
“아무리 그래도 1억 불이면 입막음 비용 치고는 너무 비싼 거 아닌가요?”
이렇게 말하는 와중에, 원종태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머릿속 계산기를 부지런히 두들기고 있었다.
미국에서 가장 반기업적인 것으로 유명한 캘리포니아 주 법원. 대기업 편을 들어주는 법이 없다.
더군다나 ND 케미칼은 한국 회사, 엑소더스 펀드는 미국 회사.
누구 편을 들어줄지 안 봐도 비디오다.
만약 엑소더스 펀드가 1억 불을 배상 금액으로 하는 소송을 진행하고, 변호사 비용 엄청 써서 잘 막으면 8천~ 9천만 불 정도에서 판결을 끌어낼 수는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변호사 비용은 얼마가 될지 가늠이 안 된다.
게다가 소송 진행 중에 빠지게 될 주가는 또 어떡할 것이며, 만에 하나 심덕환이 아까 말한 대로 FBI가 개입돼 주가 조작에 내부자 거래 같은 무시무시한 형사 사건으로까지 비화되면 이건 돈으로 환산이 가능한 수준이 아니다.
1억 불···.
작은 돈은 아니지만 이 정도로 합의 보고 막는다면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1억 불은 너무 많고··· 5천 정도에서 합의를 보시는 게 어떨까요?”
그래도 역시 장사꾼은 장사꾼. 일단 절반으로 후려쳐놓고 본다.
“안 됩니다. 1억 불에서 한 푼도.”
심덕환이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원종태는 목이 탔다. 냉장고로 걸어가 문을 여니 ‘블링 H2O’가 가득 들어있다.
벌컥벌컥 거의 반 병을 한 숨에 마시고는,
“심덕환 파트너님도 물 한 잔 드시겠습니까? 이거 좋은 물입니다.”
심덕환이 원종태 손에 들려있는 물병을 보고는 피식 웃는다.
“블링 아닙니까? 그거 드십니까?”
“어? 이거 아시는군요. 이거 정말 좋은 물인 것도 아시죠? 나는 이거 말고는 안 먹습니다. 아니, 못 먹습니다. 이거 먹다가 다른 물 마시면 시궁창 냄새가 나서요.”
“그러시군요. 전 그냥 제가 가지고 온 거 마시겠습니다.”
심덕환이 백팩에서 텀블러를 꺼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흥! 심덕환 자식, 취향은 고급이 아니군. 저게 뭐야? 학생도 아니고 백팩에 텀블러에.’
원종태는 블링 한 병을 더 꺼내 코르크 마개를 따고 마셨다.
블링을 맛있게 마시는 원종태를 보면서 심덕환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한다.
“부회장님, 블링이 테네시 주에서 나는 물인 거 아시죠? 혹시 가보셨습니까? 테네시 주?”
“아뇨, 안 가봤습니다.”
테네시가 어디에 붙은 주인지도 모른다. 미국이라면 뉴욕 캘리포니아 텍사스 시카고 정도면 되지, 테네시 같은 촌동네는 알아서 뭐하나.
“전 가봤는데... 거기 으휴~~”
심덕환이 뭔가 냄새나는 더러운 게 생각이 나는 듯 인상을 팍 썼다.
원종태는 기분이 찝찝해졌다. 미국 사는 교포 놈이 저런 말을 하니 뭔가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동네길래 저러는 걸까.
심덕환이 아직 인상을 풀지 않은 채로 말을 이었다.
“테네시 주는 미국 최대의 닭 사육 지역이죠. 그 넓은 땅의 40%가 닭공장입니다.”
“다... 닭공장요?”
원종태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에 있는 블링블링 라벨을 붙인 물병을 내려다본다.
‘전체 땅의 40%가 닭공장이라면... 이 물도...’
방금 마신 물에서 닭똥 냄새가 나는 거 같았다.
심덕환의 마지막 말이 쐐기를 박았다.
“테네시 주에서 제일 큰 도시가 내쉬빌인데, 거기 공항에 딱 내리면 공항에서부터 닭똥 냄새가 진동을 하구요···”
“헉”
“터미널에 나오면요, 동네 곳곳에 닭 깃털이 막 날아다녀요.”
“다··· 닭 깃털요? 우웩~”
“괜찮으십니까? 이 물 좀 드십시오.”
심덕환이 자기 텀블러에 든 물을 권했다.
원종태는 텀블러를 뺏듯이 받아 들고 벌컥벌컥 마셨다.
“이거··· 수돗물 정수한 물인데... 괜찮으세요?”
심덕환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물었다. 물론 그 표정은 페이크다.
“괜찮습니다. 물 맛이 좋군요.”
“역시 물은 수돗물 정수한 물이 최고죠. 불소도 있어서 충치 예방도 되구요.”
심덕환이 싱긋이 웃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한심한 재벌 놈. 물이 다 같은 물이지 블링블링한다고 천사의 눈물이더냐?’
심덕환에게 좋은 물까지 얻어 마신 원종태는 몇 번의 줄다리기 끝에 합의를 봤다.
합의금은 결국 99,999,999달러.
ND 그룹의 옛날 이름은 구룡 상회.
창업주 원영철이 용 아홉(9) 마리가 승천하는 걸 보고 회사 이름을 지었다고 하고, 집도 그래서 구(9)룡 터널 근처를 떠나지를 않고, 회사의 모든 중요한 의사결정의 숫자는 9로 시작해서 9로 끝나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합의금도 1억 불에서 딱 1불 뺀 저 금액.
***
한국으로 돌아온 원종태는 하루 쉬지도 않고, 곧바로 서초동 드래곤 타워로 출근했다. 이례적이다. 보통은 해외 출장 후 일주일은 쉬기 때문이다.
“백 부사장 오라 하세요.”
인터폰을 누르고 비서에게 존댓말로 명령했다. 부드러운 성격의 원종태, 한국에 왔으니 다시 그 평판을 유지해야 한다.
백승철의 집무실은 소위 ‘회장층’ 바로 아래인 38층, 호출받고 5분도 안 돼서 뛰어왔다.
“출장 어떠셨습니까? 부회장님.”
계단을 뛰어올라오느라 숨이 차다. 조금 헉헉대면서 물었다.
“갔던 일은 다 잘 됐어요. 걱정 마세요. 백 부사장.”
원종태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아, 잘됐군요. 잘 될 거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혹시나 해서 걱정했었습니다.”
안심이 된 백승철, 환하게 웃는다. 원종태도 기분 좋게 같이 웃어준다.
“하하, 다 우리 백 부사장이 음으로 양으로 걱정해준 덕 아니겠습니까?”
“무슨 말씀을요. 다 부회장님 공덕이지요.”
이 무슨 조선시대 양반들 하나마나한 인사치레도 아니고. 원종태는 테네시주 닭똥 냄새가 뱃속에서 올라오는 것 같았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급하게 부른 건 딴 게 아니고, 백 부사장.”
백승철이 침을 꼴깍 삼켰다. 원종태의 표정에서 뭔가 불길한 걸 읽었다.
“아버님··· 대통령님 말이요. 아버님을 좀 봬야겠어요.”
“아버지를요?”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아버지를 보자는 이유가 뭘까? 백승철은 불길한 생각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원종태가 한국에 낸 1억 원 벌금은 푼돈이니 회삿돈으로 냈지만, 미국에서 뜯긴 1억 불에서 1불 뺀 그 돈은 순수 개인 돈이다.
백영기와 같이 1억 불 벌어서 5천만 불씩 나눠가질 때는 좋았는데, 지금 보니 원종태는 그것 때문에 오히려 5천만 불 손해를 봤다. 반면, 백영기 계좌에 5천만 불은 그대로고.
요약하면, 원종태가 5천만 불 써서 백영기 계좌에 5천만 불 넣어준 셈이 됐다.
원종태는 그걸 참을 수 없었다.
놀란 표정으로 서있는 백승철을 보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입막음 비용으로 내가 낸 돈 정산해야 할 거 아냐. 니 애비 만나서.’
***
‘쾅’
내 검사실 문이 부서질 듯 큰소리가 나면서 열렸다.
다들 놀라서 돌아봤는데,
한재민이다.
서울 중앙지검 에이스 검사를 정화용이 모를 리 없다.
“어? 한재민 검사님이 여기를 어쩐 일로요?”
정화용이 벌떡 일어나면서 물었다.
‘재민이가 왔다고?’
얼마 전에 봤었지만 난 재민이가 반가웠다.
활짝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선배님, 여기 웬일로 오셨··· “
‘퍽’
전광석화 같았다. 문 열고 들어와 1초도 안 지난 거 같은데 어느새 내 자리까지 와서 내 아구통을 정통으로 갈겼다.
“윽”
정통으로 맞았다. 왼쪽 어금니 두 개와 잇몸이 얼얼했고 비릿한 피 냄새가 확 올라왔다.
한재민은 얻어맞아 숙이고 있는 내 머리채를 끄잡아 홱 들어 올리더니, 넥타이를 꽉 잡고 흔들어댔다. 넥타이가 급하게 조여지면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켁··· 켁···”
“야! 최용구 이 개~ 씨이팔 새끼야! 너 같은 새끼가 검사야? 니가 검사 새끼냐고?!!”
‘퍽’
한 방 더 날렸다. 이번엔 오른쪽.
엄청 아팠지만 그래도 펀치를 날리느라 넥타이 잡은 손을 푸는 덕분에 숨은 쉴 수 있었다.
“선배님, 왜··· 이러십니까?”
씨바, 죽기 전 이재훈일 때라면 한재민은 까마득한 후배인데. 후배한테 처 맞다니.
“선배? 나 니 선배 아니야, 니 같은 놈 후배로 둔 적 없어. 니가 이러고도 검사야? 내가 왜 이러는 줄 몰라? 내가 준 자료 원종태한테 다 넘겼다며? 범죄자 수사하라고 준 자료를 범죄자한테 넘겨? 니가 이러고도 검사냐고?!!”
한재민은 박수미와 권성훈 사이에서 있었던 일을 모른다. 김필중과 송대기, 정화용 정도만 알고 덮기로 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한 검사님. 그건 그게 아니구요.”
정화용이 자초지종을 말하려고 왔지만 내가 눈짓으로 제지했다. 뒤로 멈칫하며 물러섰다.
“무슨 일이야? 이게?”
송대기가 들어왔다. 한재민이 워낙 큰소리를 질러댄 때문이다. 송대기만이 아니라 같은 층에 있는 다른 검사들, 계장들이 거의 다 나와서 구경을 한다.
“한재민. 너 이 시키, 지금 뭐 하는 거야? 서울 놈이 여기까지 와서 이 무슨 행패야?”
송대기가 한재민 뒷덜미를 잡아서 당겼다.
“이거 놔요!”
한재민이 자신의 뒷덜미를 잡은 송대기의 팔을 강하게 후려쳤다. 송대기 눈에 순식간에 불이 붙었다.
“이 쉐~~엑끼가!”
‘쫙’
송대기의 솥뚜껑 같은 손이 한재민 귀싸대기를 날렸다. 한재민의 안경이 2미터 정도 날아가 바닥에 떨어져 박살이 났다. 안경 낀 사람을 저렇게 때리면 살인 미수 아닌가?
안경 따위 신경 쓸 송대기가 아니다. 한 대 더 칠 기세로 소리 질렀다.
“너 이 새끼 눈에 뵈는 게 없어? 나 이 새끼야 여기 부장 검사야. 니 선배라고 이 새끼야!”
한재민이 입술에 피를 스윽 닦더니 피를 퉷 뱉으면서 말한다.
“씨~이바. 재벌한테 수사 자료 넘기는 새끼 하나 컨트롤 못 하는 주제에 부장이라고? 지랄하네. 선배라고? 검사도 아닌 새끼들이 검찰청에서 간부질에 선배 놀이까지. 좆도.”
“뭐야? 이 쉐에~엑끼가!”
이대로 두면 곰 같은 송대기가 한재민을 죽일 것 같았다. 정화용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둘은 동시에 송대기에게 달려들었다. 팔 하나씩 잡고 늘어졌다.
“부장님··· 참으세요. 참으세~요~”
과연 곰탱이 송대기. 두 명이 잡고 늘어져도 힘들었다. 복도에서 구경을 하던 사무관 한두 명이 더 뛰어들어와 송대기에게 매달렸다.
“야! 최용구!”
송대기를 잡고 있는 나를 보고 한재민이 소리쳤다.
“너를 믿은 내 잘못도 있다. 그래서 이 정도만 하고 간다. 그래도 넌 개보다 못 한 새끼야. 넌 오늘부터 최소한 나한테는 검사 아냐. 양아치 새끼야.”
한재민은 홱 돌아서 내 방을 나갔다.
복도에 서 있는 사람들이 슬금슬금 한재민을 피해 방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
“하하하, 한재민이가 최용구한테 개난리를 쳤다고? 수원까지 가서? 하하하”
김필중이 박장대소를 한다.
책상 위에는 검찰 정기 인사안이 올라와 있다.
김필중이 인사안 서류철을 열더니, ‘한재민’이라고 프린트 된 곳 아래에 ‘최용구’ 라고 쓴다.
“한재민, 최용구. 둘이 붙여놓으면 재미나겠어. 후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