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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인 검사에 빙의했다-52화 (52/70)

〈 52화 〉 대한민국, 저~~엉말 조~은 나라야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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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오니 11시가 넘었다.

민석이는 이미 자고 있었고 아내는 민석이를 재우다가 깜박 잠이 들었었는지 졸린 눈을 비비면서 나를 맞았다.

“이제 와? 늦었네. 저녁은 먹었어?”

“그럼 저녁이야 벌써 먹었지. 들어가서 민석이 옆에서 계속 자. 난 할 일이 좀 더 있어서 마저 다 해놓고 잘께”

아내를 살포시 안아준 뒤 침실로 들여보내고, 난 책상 방으로 들어와 노트북을 열었다.

캐쉬 넥서스(Cash Nexus)에 접속해 그레이엄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 ‘모든 준비 완료. 내 시그널이 떨어지면 바로 액션이야. ND 케미칼 공매도 치는 것도 잊지 말고. 공매도는 지금 해도 이르진 않을 것 같아.’

— ‘OK 보스. We are ready!’

역시 잠시의 기다림도 없이 바로 답을 주는 그레이엄. 든든하다.

그레이엄과의 채팅을 끝낸 후, 아까 송대기와 주고받았던 대화를 생각했다.

원종태를 약식 기소로 가면 내가 힘들 거라고? 기자들이 날 괴롭힐 거고 계란 세례도 받을 거라고?

후후후, 송대기 순진한 양반.

조준호 같은 ‘정의의 사도’ 들이야 내 손바닥 위에서 갖고 놀고 있는 놈들이고, 정의로운 분들이 던지는 계란이야 계란이 아깝지 난 손해 볼 거 없다.

송대기의 걱정과는 반대로, 오히려 약식 기소는 내가 더 원하는 바다.

내가 죽기 전에, 말레이시아에서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고 칼리만탄 에쿼티 대표인 노준태와 채권 발행 계약을 맺을 때, 계약서에는 오토매틱 리걸 트리거 (Automatic Legal Trigger) 조항이 있었다.

만약 이 계약 행위로 인해 쌍방 중 하나가 한국 미국 말레이시아 등 어떤 정부의 사법당국으로부터 기소를 당할 시에는 다른 한 편이 자동으로 민사 소송을 걸 수 있다는 조항이었다.

계약할 때 노준태의 태도가 하도 불량하고 믿을 수 없어서 ND 그룹에게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넣은 조항이었는데, 이걸 거꾸로 ND 그룹을 상대로 써먹을 수 있게 됐다.

난 이미 그레이엄에게 모든 권리와 의무를 100% 승계하는 조건으로 칼리만탄 에쿼티를 인수하게 했다.

따라서, ND 케미칼이 이번 사건을 통해 약식이든 정식이든 기소가 되면 칼리만탄 에쿼티의 권리 의무를 100% 승계한 엑소더스 펀드가 자동으로 ND 케미컬을 상대로 민사 소송을 걸 수 있고, 소송을 걸 법원은 ND 케미칼 미주 본사가 있는 캘리포니아 법원이다.

민사 소송 금액은 원종태와 백영기가 ND 케미칼 주가 조작으로 번 전액 1억 불로 때린다.

1억 불···.

둘이 주가 조작으로 땡긴 돈이 얼마인지 아는 사람은 그 둘 말고는 나 밖에 없다. 그때 둘은 5천만 불씩 사이좋게 나눠가졌었지.

캘리포니아 법원에 민사 소송이 들어가고, 그 소식이 시장에 전해지면 주가가 아래 방향으로 향할 텐데, 그걸 확인하면 나와 엑소더스 펀드는 ND 케미칼에 대한 대량 공매도에 들어간다. 그러면 다른 하이에나 같은 외국인들이 덩달아 공매도에 나설 것이고 안 그래도 떨어지던 주가는 더 탄력을 받아 급전직하할 것이다.

원종태가 주가 조작으로 번 돈은 물론이고 회사 가치까지 허공으로 사라진다. 물론 원종태가 날린 돈과 사라진 회사 가치는 고스란히 내 계좌에 쌓인다.

약식 기소가 나한테 더 좋은 이유는 바로 이거다.

정식이든 약식이든 기소만 되면 미국 법원에 소송으로 가는데 굳이 정식으로 가서 시간만 낭비할 필요 없다. 어차피 한국 법원이 정식이든 약식이든 원종태한테 벌다운 벌을 줄 리 없다. 그런데 왜 괜히 아까운 시간을 버리나.

아이러니하게도 난 이 구조를 은하 테크론이 기획한 기술 유출 사건에서 힌트를 얻었다. 한국 사법당국에 의해 범법 행위 사실이 확정되기만 하면 미국에서 큰돈을 뜯기는 구조.

한국 재벌이 만들어낸 방법으로 한국 재벌을 혼내주기인 셈이다. 그래서 난 엑소더스 펀드에서 사건을 딜링 할 사람을 심덕환으로 하자고 그레이엄에게 말한 거였다. 비록 은하 그룹이 아니라 ND 그룹이긴 하지만, 초록은 동색, 자신을 괴롭힌 한국 재벌에게 복수를 조금이라도 할 기회를 준다는 의미에서···.

노트북을 닫고 침실로 갔다.

“음··· 일 다 끝냈어?”

아내가 이불을 들추면서 말했다. 아직 잠들지 않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아내의 하얀 피부가 빛이 났다. 난 바로 아내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이번에도 잘 받아들여준다.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

“약식 기소하기로 결정됐답니다. 부회장님.”

서초동 ND 그룹 본사 사옥 드래곤 타워.

백승철이 원종태에게 희소식을 전한다. 표정은 희희낙락, 입이 귀에 걸렸다. 자신의 위세를 다시 한번 원종태에게 과시하는 순간이다.

“아, 그래요?”

원종태가 퍼팅 매트 위에서 골프 퍼팅 연습을 하고 있다.

“약식 기소됐으니 부회장님 재판 같은 건 가실 필요도 없고 판사가 알아서 벌금형 정도로 마무리할 겁니다.”

“벌금요?”

원종태가 인상을 썼다. 퍼팅 매트 위의 공도 빗나갔다. 아무리 연습이지만 공이 빗나가면 기분이 안 좋은데 벌금 이야기까지 하다니.

“얼마나 내야 되는 겁니까?”

“최대 1억 정도일 겁니다.”

“1억요?”

페이퍼 컴퍼니를 세워서 주식을 회삿돈으로 사고팔아 챙긴 시세 차익이 딱 1억 불이었다. 그걸 다 벌금으로 내란 말인가?

“딸라로. 1억이란 말이요?”

“네? 하하하, 부회장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원화로 1억이지요. 그것도 최대치로요.”

“아~ 그러면 그렇지. 허허허. 내가 미국에 너무 오래 있다 와서··· 하하하.”

원종태는 다시 골프 퍼팅 연습에 열중한다. 공이 홀에 빨려 들어갔다. 미국 출장을 갔다 와서 골프 연습을 많이 한다는 건 출장 가서 뭘 하고 왔는지 알 수 있다.

“벌금 액수가 정해지면 자금팀에 준비해놓겠습니다.”

원종태 개인 돈이 아니고 회삿돈으로 내겠다는 말이다.

“그러세요. 이게 다 우리 백승철 부사장이 수고하신 결과 아니겠어요? 고생하셨어요.”

“고생이라뇨. 검찰 쪽에서 알아서 배려를 해준 겁입니다.”

“그게 다 백 부사장 수고죠. 백 부사장 아니었으면 검찰이 그렇게 했겠습니까?”

“하하 네, 감사합니다.”

“아, 민정 수석하고 식사 자리는 어떻게 됐나요? 한 번 마련해 주세요. 내가 사례는 해야지.”

“네, 준비하겠습니다.”

백승철은 15도 각도로 인사를 하고 부회장실을 나갔다.

백승철이 문을 닫고 나갈 때쯤, 원종태가 굴린 공이 또 홀에 빨려 들어갔다.

돈 한 푼 안 들이고 1억 불을 땡겼는데 벌금으로 1억 원만 내면 된단다. 그것도 회삿돈으로 내면 된다.

원종태는 퍼터 샤프트 중간을 잡고 빙빙 돌리면서 말했다.

“대한민국. 저~~엉말 조~은 나라야.”

***

“최용구 검사~. 나 좀 보시죠.”

출근하는 나한테 조준호가 또 따라붙었다.

“ND 그룹 원종태 부회장 벌금 나왔던데··· 얼만지 아세요?”

난 아무 대꾸도 하지도 않았다. 내 갈 길만 갔다.

“흥! 8천만 원! 예? 8천만 원 나왔다구요. 장난해? 재벌한테 벌금 8천만 원이 씨바 돈이야? 그게 벌금이야? 엉?”

조준호는 주변에 있는 기자들을 돌아보면서 아까 나한테 보다 더 큰소리로 떠들었다.

“이봐요, 최용구 검사! 벌금 8천만 원 때린 법원도 법원이지만 약식 기소 때린 당신이 더 나빠. 왜 그게 약식이야? 엉? 주가 조작에 해외 비자금까지 조성한 혐의가 어떻게 약식으로 기소할 일이냐고? 당신 ND 그룹에 돈 얼마 받았어? 법원 하고도 서로 짰지?”

뭐라고 떠들든 말든 조준호를 한 번 돌아보지도 않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지난번엔 은하 그룹, 이번엔 ND 그룹. 최용구 검사는 재벌 봐주기 검사야? 재벌이 그렇게 좋으면 재벌한테 가! 재벌 봉급 받고 살지 왜 국민 세금으로 월급 받고 검사해?”

내가 계속 아무 대답이 없자, 약이 오른 조준호가 내 팔을 잡아끌었다.

“이 봐! 최용구! 언제까지 암말도 안 하고 도망만 다닐 거야? 엉? 뭐라고 말이라도 한 마디 해봐!”

팔을 잡힌 나는 홱 돌아섰다.

갑자기 돌아선 때문에 좀 전까지 기세 등등하던 조준호도 흠칫한다. 난 아무 말 없이 조준호를 노려봤다.

한참을 그러고 있었는데, 조준호는 내 눈매에 쫄았는지 팔을 잡았던 손을 스르르 푼다. 나는 잡혔던 팔을 다른 손으로 틱틱 털고는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조준호는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다.

대신 돌아서서 다른 기자들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대한민국, 저~~엉말 조~은 나라야.”

***

“이게 무슨 소리요? 미국에서 1억 불 민사소송이라니?”

구룡터널 옆 내곡동 원종태 부회장 사저.

원종태가 침실에서 전화통을 붙들고 큰소리를 치고 있다. 새벽 1시다.

“이게 전화로 보고할 일입니까? 당장 뛰어오세요.”

원종태 전화를 받고 ‘당장 뛰어’ 온 사람은 다름 아닌 백승철이다.

“이게 어떻게 된 거요?”

“고소인이었던 노준태가 미국에서...”

“그 새끼가 어떤 놈인지는 알고.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이냔 말이요.”

부드러운 성품의 소유자라는 원종태 입에서 ‘새끼’가 나왔다. 얼굴은 이미 벌게졌고 손은 벌벌 떤다.

한국에서는 검찰에 소환돼 가서도 여유 있게 웃음만 지었던 원종태다. 그런데 미국에서 형사소송도 아니고 민사소송을 당했다는데 벌벌 떤다.

“노준태가 말레이시아에 있는 우리 페이퍼 컴퍼니와 채권 발행 계약을 맺을 때, 한국, 미국 말레이시아 3국 정부에 의해 불법 행위로 결정된 일을 했을 때에는 노준태가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도록 돼 있었습니다.”

“어디에 그렇게 돼 있다는 거요? 계약서에?”

“네.”

“계약서에 있었는데 그걸 어떻게 몰랐단 말이요? 알았으면 약식 기손지 뭔지도 못하게 막았어야 되는 거 아뇨?”

“죄송합니다. 설마 그 노준태··· 코딱지 만한 회사 사장이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하리라고는 생각 못했습니다. 제가 미처 챙기지 못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백승철도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린다. 현재 실내 온도 섭씨 23도. 쾌적 야간 모드로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는데도 땀이 멈추지를 않는다.

“계약에 그렇게 돼있다면 이건 빼도 박도 못···”

'빼도 박도 못 하는 거 아닌가’라는 말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저 백승철의 아가리에 뭐든 빼도 박도 못 하게 쑤시고 싶은 충동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법원은 어디요? 어느 주 법원인가가 중요하지. 주에 따라 다르니까.”

“캘리포니아···”

“뭐? 캘리?”

원종태는 평상시에도 캘리포니아를 줄여서 ‘캘리’라고 부른다. 미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캘리포니아 주 법원은 미국 50개 주 법원들 중에서 기업에게 가장 엄격한 법 집행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왜 캘리포니아야?”

드디어 반말이 나왔다.

“ND 케미칼 미주 본사가 캘리포니아 샌 라몬(San Ramon) 시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어떤 새끼가 미주 본사를 캘리포니아에 만들라 했어?”

라고 소리 질렀는데, 지르면서 생각해보니 그건 원종태 자기였다. 놀러 가기 좋으라고 거기 만들라고 했었다. 이번에도 출장 핑계 대고 가서 골프만 하루 종일 치고 왔으니까.

“부회장님, 제가 현지로 날아가서 이 사태를 수습...”

“됐어. 내가 직접 갈 거야. 백 부사장은 그냥 있어.”

당신은 한국 검찰, 법원한테나 끗발이 먹힐까, 미국 법원에는 끗발 없잖아 라는 뜻이다.

“됐어. 나가봐.”

집으로 돌아가는 백승철을 창문을 통해서 보면서 중얼거렸다.

“저런 놈이 대통령 아들이라고 설치고 다니니...”

혀를 끌끌 찬다.

“대한민국. 저~~엉말 조~은 나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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