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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인 검사에 빙의했다-51화 (51/70)

〈 51화 〉 수사 자료 다 빼준 이유가 기껏 그거야?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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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가에서 나온 송대기와 나는 바로 차를 타기 않고 삼청동 길을 좀 걸었다.

“씨바··· 좆같지?”

둘 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 없이 걷다가, 송대기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런 거죠 뭐. 어쩌겠어요? 봉급 안 끊기고 살려면 이렇게 하는 수밖에요.”

“씨바, 어떤 인간들은 우리 검사들이 엄청 떵떵거리고 사는 줄 알겠지. 좆도. 이렇게 사는 줄도 모르고.”

“뭐 떵떵거리고 사는 검새들도 없는 건 아니죠. 몇 놈 안 되긴 하지만.”

“씨바, 솔까 우리 검찰에 정치 검사, 재벌 검사가 몇 놈이나 되냐? 검사 3,000명 중에 몇 퍼센트나 저 김필중 같은 정치 검사냐고? 씨바 나 졸라 억울해. 그런 시키들 0.1%나 되나? 나머지 99%는 그냥 봉급쟁이야. 박봉에 격무에 시달리는. 좆도.”

웬 검새 신세타령? 난 대꾸하지 않았다.

“씨바, 아까 김 수석 표정 봤어? 니가 원종태한테 딜 걸라고 했을 때 표정.”

“네, 봤죠. 좋아서 죽는데 겉으로는 아닌 척하는 거. 포커페이스가 그렇게 안 되나.”

“씨바, 약식 기소로 가는 걸로 딜 걸자고 하니 그렇게 좋아할 거면서. 처음에 왜 조사를 그 따위로 했냐고 치고 나오기는 왜 치고 나와? 에잇, 더러워서.”

난 더 이상 말 섞지 않았다. 이런 거 말 섞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기 때문이다.

“씨바, 야, 독고다이, 한 잔 빠까?”

벌써 밤 10시. 지금부터 시작하면 언제까지 빤다는 말인가.

“사건 끝내 놓고 하시죠. 회사 돌아가서 할 일도 많구요.”

벌써 광화문 앞까지 왔다.

“아 너 회사 간다고? 야야 그냥 집에 가.”

“그래도 됩니까? 정리할 게 아직 많은데요.”

“지랄, 부장이 가라면 가는 거지. 오늘 이만큼 했는데 뭘 더 하냐? 그리고 니 요새 마누라하고 사이좋다며? 마누라 자기 전에 빨리 들어가서 뜨거운 밤 보내야지. 새끼 너 이러다가 2세 하나 더 만드는 거 아니냐?”

“피~ 하나가 뭡니까? 요즘 분위기로는 열도 만들겠더만.”

“하하하 새끼.”

꾸벅 인사하고 광역 버스 정류장으로 가려는데,

“야, 독고다이!”

“네?”

송대기가 손을 슬쩍 들어 인사하면서,

“고맙다. 최용구. 그리고··· 내가... 좀... 미안하다.”

상남자 송대기 입에서 이런 말 나오기 쉽지 않다.

칼잡이 곰탱이 송대기.

사기꾼 좀도둑 잡으러 다니던 형사부 ‘땅개’ 시절에는 후배 검사들한테 지금처럼 미안하다는 말 따위 할 일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깨끗하게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자부심 같은 걸로 가슴이 뛰었던 적도,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있었다. 비록 형사부 ‘땅개’ 생활이 출세와는 거리가 먼 길이라 해도 세상 평범한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사는 맛에 마음은 편했다.

하지만 소위 잘 나가는 ‘인지부서’라는 조사부에 오니 오히려 후배들 보기 미안하다.

사건마다 윗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결론을 만들어 가야 되고, 살아남으려니 정치도 해야 되고, 윗사람들보다 힘세고 돈 많은 높으신 양반들을 위해 사실을 꺾고 진실을 덮기도 해야 되고, 검사가 조사 대상인 혐의자한테 굽신거리기도 해야 된다.

그럴 때마다 무력감이 들고, 이 짓을 왜 하나 싶기도 하고, 최용구 같은 후배 검사한테는 미안하다.

“최용구 너, 정말 괜찮겠어? 여론이 ND 죽이라고 난린데, 이 와중에 원종태 약식 기소로 넘어가면 신문들 방송들 유튜버들 난리 날 텐데. ’재벌 봐주기 수사’ 했다고 수원 지검 최용구 검사 실명 까고 신상 털고··· 너 몰매 맞고 조리돌림 당할 수도 있어. 정치권 야당 놈들도 들고일어날 거고.”

“상관없습니다. 까짓 거 그래 봤자, 출근길에 계란 맞는 거 정도 아니겠습니까?”

정수명 사건 때 지지자들에게 맞은 계란 생각이 나서 씩 웃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거 던진 사람은 참 할 일도 없다 싶다. 후라이라도 해 먹지. 계란 아깝게.

송대기도 같이 웃어준다.

“그래, 용구야. 어쩌겠냐? 세상이 돈 가진 놈들 마음대로 움직이는데. 그래도 힘내자.”

후배 검사를 위로한답시고 말을 꺼냈는데, 뱉어놓고 나니 되려 더 쪽팔리다. 이 상황에서 ‘힘내자’라니. 이 무슨 공자님 훈장질하는 소리란 말인가.

“야, 독고다이 시키! 사건 끝나고 나면 내 한 잔 거나하게 사께. 삐뚤어지게 빨자.”

“글라스에는 맥주만 담는다는 조건으로 하겠습니다 쏘주 글라스 석 잔 연짱으로 주시는 거는 사양하겠습니다.”

“알았어. 이 새꺄~ 하하하.”

송대기가 내 어깨를 툭 치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

“최용구 감시하라고 넣어놨더니, 권성훈이 첩자질을 해?”

김필중이 소리를 지르긴 했지만, 처음 내실로 들어올 때보다는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아무리 사나운 늑대라도 남자는 남자다. 하얗게 드러난 젊은 여자의 허벅지 앞에서 녹을 수밖에 없다.

“호호호, 민정 수석님, 아직도 모르시겠어요? 전후 사정 모르는 내가 봐도 최용구 검사 저 사람, 이재훈하고 아~무 관련 없어 보여요. 수석님이 완전 잘못짚으신 거 같아요. 이재훈에 대한 집착이 너~무 크셔서 판단력이 흐려지신 거지. 도대체 수석님한테 이재훈이 뭐길래 이렇게 집착을 하세요?”

김필중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푹 숙였다. 맞는 말 같았기 때문이다. 아까 백승철과 딜을 하는 게 좋겠다고 한 최용구의 말을 통해 이미 자신도 확인한 사실이다.

“그럼 넌 권성훈한테 왜 그랬어? 그 자식하고 잤어?”

“어머, 숙녀한테 그게 무슨 말··· 호호호. 그리고 남이야 잤든 말든 무슨 상관이에요? 그래요, 잤어요.”

“뭐?”

김필중이 눈을 부라렸다.

“어머, 수석님 왜 이러실까?”

“이··· 너··· 왜 그랬어?”

“어머. 기가 차서. 수석님. 이거 안 보이세요?”

박수미가 쭉 뻗은 다리 끝에 걸린 크리스찬 루부탱 구두를 턱으로 틱 가리키면서 말했다.

“내가 이거 얼마나 갖고 싶어 했는지 수석님은 모르셨죠?”

“뭐 그 따위 구두를···”

김필중이 인상을 팍 썼다.

“이것 봐, 이거. 그 따위 구두라니. 수석님은 역시 여자의 마음을 몰라. 내 팬티나 좋아하시지, 그쵸? 아, 그러고 보니 이 구두나 내 팬티나 똑같은 빨간색이긴 하네. 근데 대한민국 검사들은 왜 다들 빨간색을 좋아할까요? 아! 그러고 보니 수석님은 집착증 있으신 거 아님? 내 빨간 팬티, 이재훈. 맞네··· 집착증 있나 봐. 이를 어째? 호호호”

박수미가 입을 손으로 가리고 웃으면서, 꼬았던 오른 다리를 내리고 왼 다리를 그 위로 턱 얹었는데, 천천히 하는 바람에 짧은 치마 속으로 팬티가 보였다. 빨간색이었다.

김필중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하지만 얼른 시선을 딴 곳으로 돌리면서 말했다.

“여기선 안돼.”

“네? 어머. 누가 여기서 하쟀어요? 누굴 그 정도도 모르는 사람으로 아시나 봐.”

순간 박수미는 뭔가 깨달은 듯 눈을 찡긋하면서 말한다.

“아하~ 수석님이 지금 하고 싶으시구나? 호호, 내 말 맞잖아. 빨간 팬티만 보면 흥분하시는. 호호호. 빨간 팬티 집착증. 호호호. 이재훈도 그래서 집착하시는 거··· 아닐까? 호호호.”

속마음을 들킨 김필중은 순간 얼굴이 발개졌다. 이야기 주제를 얼른 바꾼다.

“평소 옷을 그렇게 입고 다녀?”

“아~뇨. 수석님이 좋아하시는 옷차림이라 여기 들어와서 갈아입었죠. 고객이 원하는 걸 디테일까지 챙기는 게 프로잖아요.”

박수미는 소파 다른 쪽 끝에 놓인 면바지를 턱으로 틱 가리켰다.

“평소엔 저거 입고 다녀요.”

단추 세 개를 풀어헤쳐 벌어진 블라우스 앞 섶을 손으로 가리면서,

“여기도 이렇게 가리고요. 호호”

김필중이 최대한 냉정을 유지하려고 애쓰면서 물었다.

“권성훈이한테 수사 자료를 왜 다 빼줬어? 정말 구두 때문은 아닐 거고.”

“구두 때문이기도 해요. 게다가 음··· 그 남자는 어떨까··· 호기심도 있었고.”

“뭐? 너 그럼... 정말···”

박수미가 얼굴을 김필중에게 가까이 들이대면서 말한다.

“어머, 수석님, 지금 질투하시는? 호호호. 근데··· 별로였어요. 생긴 거하곤 다르게 테크닉이 영 아니더라구요. 금방 싸 버리고. 테크닉은 수석님이 나았으니까 질투는 마세요.”

박수미가 꼬았던 다리를 풀고 상체를 많이 흔들면서 말하는 통에, 단추 세 개를 풀어헤친 블라우스 앞 섶이 더 벌어졌다.

하얀 가슴이 김필중 눈에 들어왔고, 김필중은 또 침을 꼴깍 삼켜야 했다.

주제를 또 얼른 바꾼다.

“그거 권성훈한테 넘겨주면 안 된다는 거 몰랐어? 그 시키 ND 그룹 장학생이야. 원종태 부회장 수사가 진행 중인 걸 알았잖아?”

“어머, 별 꼴이야. 이 사건 시작부터 결론 이미 내려놓은 거였잖아요?”

“뭐?”

“아까 최용구 검사가 말 잘하더만요.”

박수미가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고 최용구 흉내를 낸다.

“백승철 부사장과 딜을 붙으시죠.”

다시 생긋이 웃으면서 말한다.

“어유~ 최용구 검사 은근 뇌섹남이야. 어쩜 그렇게 수석님 속을 훤히 꿰뚫어 보고 함정을 피해 갔을까?”

“함정?”

“함정 맞잖아요? 수석님의 이번 목표는 최용구 검사가 이재훈 쥐새끼인지 아닌지 알아내는 거였지, ND 그룹 오너들 처넣는 게 아니었잖아요? 아까 최용구 검사가 수석님한테 원종태하고 딜 하라 그랬을 때 뜨끔하지 않았어요?”

김필중이 갑자기 헛기침을 한다. 박수미는 그러든 말든 말을 계속했다.

“최용구 검사가 ND 그룹을 상대로 수사 아무리 잘해봐야 뭔 소용이에요? 결론은 이미 나 있는 건데. 그런데 권성훈이가 날 살살 꼬시면서 수사 자료 달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뭐, 못 줄 이유 없다 싶어서 다 줬죠.”

김필중이 인상을 썼지만, 박수미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덕분에 구두도 생기고~ 한강변 특급 호텔에서 비싼 위스키에 칵테일도 마시고~ 쾌적한 침대에서 즐기기도 했고. 에잇, 막판에 권성훈 그 자식 테크닉만 좋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 맞다. 구두 한 켤레 사무실에 두고 왔네. 뭐, 이제 거기 안 갈 건데··· 할 수 없지. 하나 버리는 셈 치지 뭐. 여러 개 받았으니까. 몇 개더라? 다섯 개던가? 여섯 개던가? 호호호.”

박수미를 노려보는 김필중의 호흡이 빨라졌다.

“근데 최용구가 은근 매력 있어. 한 번 꼬셔볼까? 뇌섹남들이 침대에서도 오히려 강렬한 맛이 있는데··· 권성훈은 어휴... 역시 남자는 이게 모자라면 거기도 부실해.”

‘이게’를 말할 때는 손가락으로 자기 머리를 틱틱 치더니, ‘거기’를 말할 때는 김필중의 사타구니를 가리켰다.

김필중이 더 이상 못 참고 벌떡 일어났다. 나가려고 하는데, 박수미가 생긋 웃는다.

“나가실 때 문 좀 꼭 닫아 주실래요? 나 옷 갈아입어야 돼서.”

이미 박수미는 치마를 반쯤 내리고 있다.

김필중은 문 앞에서 서서 박수미를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조심해서 나가.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어머, 여기 한두 번 와보나? 비밀 통로는 내가 훠~얼씬 더 잘 알아요. 문이나 닫으세요. 아님··· 뭐, 거기 계속 서서 보고 계시든가. 이거 좋아하시잖아요?”

박수미가 치마를 쓱 내렸다. 빨간색 팬티가 완전히 드러났다.

팬티의 빨간색과 허벅지 하얀색의 선명한 대조.

순간 김필중은 평소처럼 박수미를 덮치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일었지만 꾹 참았다.

참으려고 용을 쓰는 바람에 문을 평소보다 더 세게 쾅 닫았다.

박수미는 닫힌 문을 보고 피식 웃으면서 바지를 입고 일어났다.

풀어헤쳤던 블라우스 단추 세 개를 목 밑까지 촘촘히 채우고, 머리도 단정하게 뒤로 넘겨 포니테일로 묶었다.

김필중이 닫고 나간 출입문 반대쪽 벽 끝에 붙은 책장을 밀고 내실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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