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를 죽인 검사에 빙의했다-50화 (50/70)

〈 50화 〉 재벌과 딜을 붙으시죠.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원종태 부회장 조사가 끝났다. 8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피의자 조서 열람 시간이 서너 시간 걸린 걸 감안하면 반나절도 걸리지 않은 조사였다.

“검사님, 이거 이럴 수 있는 겁니까?”

조사를 마치고 검사실에 돌아온 정화용이 분통을 터뜨린다. 정화용은 조사가 진행되는 내내 나를 지원하기 위해 바로 옆에 앉아 있었다.

“뭐가요?”

“원종태, 백승철 저 사람들, 우리가 뭘 물을지, 어떤 증거를 가지고 압박하려 하는지 훤히 다 알고 왔어요. 우리가 완전 당한 겁니다.”

나는 별 반응 없이 책상에 와 앉았다. 자신의 열변이 안 통한 거 같자, 정화용은 책상까지 따라와 옆에 섰다. 아까보다 더 큰소리로 떠든다.

“검사님, 이거 보통 일이 아니에요. 아무리 대한민국을 쥐고 흔드는 ND 그룹이라지만 이럴 수는 없어요. 우리 내부에 그놈들한테 정보를 갖다 바치는 프락치가 있는 겁니다.”

“프락치라뇨?”

내가 눈을 위로 치켜뜨고 정색을 했다. 너무 많이 나가지 말라는 경고다.

“아니, 프락치라는 표현이 좀 심할 수 있지만...”

나의 매서운 눈빛 탓에 잠깐 멈칫했지만, 평소에도 수사와 관련한 자신의 의견은 웬만해선 굽히지 않는 정화용이다. 목소리를 더 키운다.

“검사님. 제 짐작이 맞을 겁니다. 짐작이 아니라 합리적 의심입니다. 내부 프락치가 아니고서는 오늘 이 상황이 도저히 설명이 안 됩니다. 제 경험상 이건 백 프로...”

“저··· 검사님.”

박수미가 둘 사이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갑자기 끼어든 박수미 쪽으로 고개를 돌린 정화용은 박수미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박수미의 큰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수미 씨, 왜 이래? 응?”

정화용은 당황해 어쩔 줄 몰라했지만, 나는 전혀 놀란 표정이 아니다. 턱을 괴고 박수미를 빤히 쳐다볼 뿐이다.

“검사님··· 제가···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흑흑흑”

“왜 그랬죠?”

내가 물었다. 냉랭하다.

“같은 검사님이고 해서... 드려도 되는 줄 알았어요. 권성훈 검사님이 우리 검사님을 많이 도와주시는 거 같기도 했고... 전 정말 몰랐어요. 이렇게까지 될 줄. 흑흑흑”

“아니, 이게 무슨 말이야? 응? 그러니까 수미 씨가... 권성훈 검사한테?”

정화용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박수미와 나의 얼굴을 번갈아 살피면서 말했다.

“됐어요. 그만 울어요.”

나는 박수미를 향한 시선을 책상 위의 서류로 옮겼다. 자리로 돌아가라는 말이다.

하지만 박수미는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울면서 방을 나갔다.

정화용은 박수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나에게 묻는다.

“그러니까 검사님... 박수미 씨가... 권성훈 검사한테··· 그 담에 권 검사는 그걸... ”

말을 제대로 못 잇는 정화용을 보고 나는 고개를 한 번 끄덕해줬다.

정화용은 양손을 허리춤에 차고 천장을 쳐다보면서 한숨을 푹 쉰다.

“야~ 진짜 세상 믿을 사람 없네. 바로 옆자리에 프락치가 있었다니. 나 원참.”

정화용은 아까 내 앞에서 프락치 어쩌고 큰소리로 말했을 때, 내가 왜 정색을 하고 말문을 막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검사님은 처음부터 다 알고 계셨던 건가요?”

대답하지 않고 서류만 챙겼다. 긍정의 의미다.

“그걸··· 검사님은 어떻게 아셨어요?”

난 정화용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고는,

“저거요.”

손가락으로 박수미 책상 옆에 있는 뭔가를 가리켰다.

“네? 뭐... 뭘 말씀하시는···.”

“구두요.”

“구··· 구두요?”

“크리스찬 루부탱. 밑창 빨간 거. 권성훈 선배의 페이보릿이거든요.”

“아···”

“얼마 전부터 박수미 씨가 저 구두를 매일 하나씩 갈아 신어 가면서 왔어요. 몇 켤레나 사준 건지 원···. 어제는 핑크였는데 오늘은 블랙. 그제는 화이트 슬리퍼였고···”

“그··· 그러니까 수미 씨가 구두 몇 켤레에 넘어갔다는···”

난 이번엔 아무 반응하지 않았다. 노트북 화면에 집중했다. 이제 그만하고 자리로 돌아가라는 뜻이다.

“네, 그럼.”

정화용은 넙죽 절을 하고는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니까 다 알고 있었으면서 말도 안 하고 조사 들어갔었단 말이야? 와~ 저 검사 정말 독한 양반이네.’

나를 슬쩍 보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그나저나 박수미 얘는 어쩌다가...’

박수미의 빈 책상을 보고 혀를 끌끌 찼다.

***

“원종태 부회장 조사를 왜 그 모양으로 했어?”

청와대 옆 삼청동에 있는 안가로 김필중이 송대기와 나를 불렀다.

민정 수석이 된 이후로 김필중은 이 안가를 자주 이용한다. 웬만한 업무 지시, 특히 검찰 수사와 관련된 지시는 이 안가에 검사들을 불러놓고 한다.

김필중이 나를 세워놓고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김필중의 불만은 조사 내용 때문이 아니다.

조사가 진행되는 내내, 김필중은 민정 수석실에 앉아 CC-TV로 백승철을 대하는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털끝 하나 놓치지 않고 살폈다. 전국 검찰청의 조사실 CC-TV는 모두 민정 수석실에서 볼 수가 있다.

‘최용구 저 시키가 이재훈의 쥐새끼라면 백승철에게 독사처럼 달려들 거야.’

하지만 김필중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나는 조사 내내 백승철에게 아주 고분고분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제대로 준비는 하고 부른 거야?”

나는 대답 대신, 옆에 서 있는 송대기에게 동의를 구하는 눈빛을 던졌고, 송대기가 고개를 끄덕해주자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김필중에게 내밀었다.

“수석님. 조사 들어가기 직전에 이런 문자를 받았습니다. 한 번 보시죠.”

“문자?”

김필중은 내가 건넨 스마트폰의 문자를 들여다봤다. 발신자의 이름부터 보고 깜짝 놀란다. 곧바로 나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조준호?”

“네. 늘봄 신문 조준호 기자입니다.”

“이 기레기 쉬키가··· 뭐야 이건?”

조준호의 문자에는 몇 장의 사진이 첨부돼 있었다. 문자를 모두 본 김필중은 책상에서 벌떡 일어나 소파로 갔다. 나와 송대기도 같이 걸어가 김필중의 옆에 앉았다.

“이 사진들이 원종태 조사하고 무슨 상관이야?”

“이 사진에 있는 여자는 제 방에 있는 사무관입니다. 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무관 년이 권성훈이를 만나서 지금 뭐 하는 거야?”

김필중이 내 폰을 쥐고 부르르 떤다.

내 폰에 있는 사진에는 권성훈과 박수미가 만나서 칵테일을 마시는 장면, 어깨동무를 하고 걷고 있는 장면 등이 찍혀있다.

“권성훈 선배가 여기 박수미 씨를 통해 제 방에 있는 수사 계획과 자료들을 빼내갔습니다.”

“수사 자료를? 지 사건도 아닌데 그걸 왜?”

“원종태 부회장 측에 넘긴 것 같습니다.”

“뭐야? 넘긴 것 확실해?”

“빼내 간 건 확실한데 ND 측에 넘겼는지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조사 과정에서 원종태 부회장과 백승철 부사장의 대응이 너무 완벽한 걸 보고 확신이 들었습니다.”

“음··· 어떤 자룐데?”

김필중의 이 질문이 나오길 기다렸다. 난 준비됐던 대답을 던졌다.

“한재민 중앙지검 금조부장이 백승철 부사장과 대통령 각하에 대한 내사를 혼자 진행해오고 있었는데···”

“뭐?”

“일전에 제가 은하 그룹 사건 때문에 한 부장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한 부장이 대통령에 대한 내사를 오랫동안 해왔었다고 저에게 자료를 줬었습니다. 제가 검토해보니 내사 수준이 보통이 아니었는데··· 그걸 권성훈 선배가···”

“개~~ 씨~~이팔 새끼”

이 욕은 누구를 보고 하는 걸까?

사무관을 명품 구두로 매수해 ND 그룹 첩자질을 한 권성훈일까?

이재훈에게 매수돼 대통령 내사를 한 한재민일까?

송대기는 100% 권성훈에게 하는 욕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한재민에게 터뜨리는 욕이라고 자신했다.

누가 맞는 것인지는 곧이어 터진 김필중의 말을 통해 드러났다.

“중앙 지검에도 쥐새끼. 수원에도 쥐새끼. 이래 가지고 법질서고 뭐고 제대로 잡히겠어?”

중앙지검 쥐새끼?

송대기는 의아했다. 수원지검의 권성훈이 쥐새끼인 건 알겠는데 중앙 지검 쥐새끼는 누구를 말하는 건지.

후후, 김필중도 별 수 없구나. 한재민이 이재훈 쥐새끼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는 속마음을 이렇게 쉽게 노출하다니. 역시 사람이란, 한 번 의심의 노예가 돼서 집착이 강해지면 판단력도 흐려지고 지 입으로 나오는 말도 통제를 못 하게 된다.

그래, 김필중아. 의심으로 더 활활 타올라라. 나에 대한 의심만으로는 부족하지? 이제 한재민에 대한 의심까지 보태서 기름을 끼얹어주마.

“수석님, 한재민 부장이 저에게 준 ND 그룹 비자금 자료는 상당히 깊이가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그게 넘어갔다는 건···”

“뭐? 깊이가 있어? 그 새끼가 왜 그런 짓을···”

검사가 비자금 자료를 조사했다는데 왜 민정 수석이 이렇게 흥분을?

송대기는 어리둥절··· 난 속으로 쾌재.

“흐흠···”

김필중도 송대기의 표정을 보고 정신을 차렸는지 안 나오는 헛기침을 한두 번 했다.

“그래, 뭐··· 권성훈이 그 새끼는 송 부장이 알아서 하고··· 사건, 사건은 어떻게 할 거야?”

김필중이 송대기를 보고 물었는데, 내 눈치를 슬쩍 살핀다.

송대기도 내게 눈짓을 했다. 나보고 말하라는 뜻이다. 송대기와 나는 수석실 들어오기 전에 이미 의논을 다 하고 들어왔다.

“수석님,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독고다이 니가 말해봐.”

김필중이 침을 꼴깍 삼킨다. 나를 향한 의심을 삼키는 걸로 보였다.

“우선 원종태 부회장 구속 영장은 안 치는 게 좋겠습니다.”

“왜?”

“아까 쥐새끼 말씀하셨는데, 그게 우리 검찰 뿐이겠습니까? 법원에도 넘쳐날 텐데, 이 정도 수사를 가지고 영장 쳐봐야 법원에서 기각할 게 뻔합니다. 되지도 않을 거 밀어붙이면, 수석님께도 정치적 부담만 됩니다.”

“기소는? 그것도 안 해?”

“기소는 합니다. 안 하면 조준호 같은 기자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대신 수석님께서 백승철 부사장과 한 번 만나주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백승철을 만나? 내가?”

“네. 백 부사장과 딜을 하셔야 합니다.”

“딜을 하라?”

“이번 사건, 덤벼봤자 수석님께 상처만 남을 뿐 실익이 없는 싸움입니다. 이미 법원 쪽도 ND는 손을 봐놨을 겁니다. 우리가 세게 나가봤자, 법원은 우리를 망신만 줄 겁니다. 구속 영장 심사만이 아니라 1심에서도 질 게 뻔합니다. 그렇다면 싸움보다는 딜을 붙으시는 게 낫습니다.”

“어떻게 딜을 붙을까?”

“소환 조사는 어쩔 수 없었다. 이해해달라. 약식 기소로 가서 벌금형 정도로 끝낼 수 있다. 여론이 안 좋아져서 정식 기소를 한다 해도 3년 이상 구형은 하지 않겠다. 그럼 집행유예다. 피차 항소는 하지 않기로 하자.”

나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던 김필중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 놈 봐라? 이재훈이 끄나풀 맞아? 내가 잘못짚었나?’

내가 말을 계속했다.

“백승철 부사장은 그룹 오너를 감방에 보내지 않고 사건을 잘 막은 걸로 돼서 그룹 내 입지를 더 강화할 수 있고, 수석님께서는 각하께 누를 끼치지 않은 것이 되구요. 검찰과 ND, 수석님과 백 부사장, 모두에게 좋은 윈윈이 됩니다.”

백승철의 ‘그룹 내 입지 강화’를 말하는 부분에서 김필중은 머리 끝이 쭈뼛 서는 느낌이 들었다. 이재훈의 쥐새끼라면 저런 말을 할 리가 없다. 정말 잘못짚은 건가.

“알았어. 내 생각해보지. 오늘은 여기까지. 디스미스트(Dismissed)”

송대기와 내가 수석실을 나가자마자, 김필중은 스프링이 튀듯 소파에서 일어나 집무 데스크 뒤에 있는 내실로 들어갔다. 삼청동 안가에만 있는 비밀 통로로 통하는 내실이다.

문을 쾅 닫으면서 소리쳤다.

“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시키는 일은 안 하고.”

내실의 소파에는 젊은 여자 한 명이 앉아 있었다. 소리치는 김필중을 향해 생긋이 웃어준다.

김필중은 목소리를 더 높였다.

“권성훈이 어쩌고는 또 무슨 소리야? 엉?”

짧은 스커트를 입은 여자는 오른쪽 다리를 들어 왼쪽 다리 위에 턱 얹어 꼬았다. 치마 밑으로 허벅지까지 드러난 하얀 다리가 꽤 길었다.

“호호호, 최용구 검사 스마트하네요. 저렇게 함정을 빠져나가다니.”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권성훈이 이야기는 뭐냐니까?”

“들으신 대로예요.”

“뭐라고? 너 지금···”

김필중이 여자 앞의 소파에 앉으면서 잡아먹을 듯이 소리쳤다.

하지만 여자는 오히려 더 생긋이 웃으면서, 길게 뻗은 하얀 다리 끝에 걸려있는 구두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구두는 밑창이 빨간색인 크리스찬 루부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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