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를 죽인 검사에 빙의했다-49화 (49/70)

〈 49화 〉 겉으로는 웃는 얼굴, 속으로는 모두 딴 생각.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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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D 그룹 서초동 본사 사옥 드래곤 타워 39층.

원종태 부회장 집무실.

‘회장층’이라고 불리는 39층은 당연히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빌딩 로비에서 출발하는 엘리베이터는 모두 38층까지만 운행한다. 39층까지 가는 엘리베이터는 오너 전용 지하 주차장에서 39층까지 논스톱 초고속으로 쏜다.

점심 먹으러 가다가 전화를 받고 부리나케 서초동으로 달려온 권성훈도 ‘완행’ 엘리베이터를 타고 38층에 내려서, 시큐리티 직원의 안내를 받아 계단으로 원종태의 집무실로 왔다.

“어떻게 된 겁니까? 권성훈 검사. 검찰에서 부회장님을 소환 조사한다니.”

권성훈이 방에 들어가자마자 백승철의 고성이 터졌다.

서울 중앙지검에서 수원 지검으로 사건이 넘어갈 거니 소환 같은 건 없을 거라고 원종태 부회장한테 큰소리친 게 불과 며칠 전이다.

대한민국 검찰이 모두 자기 손아귀에 있다는 듯 장담했었는데 보기 좋게 당했으니, 백승철은 지금 누구든 원종태 앞에 불러놓고 마구 조져야 체면이 산다. 오늘 그 대상이 권성훈이다.

“미리 알려드리지 못해서 송구합니다. 저도 예상치 못 한 일이었습니다.”

권성훈이 맞은편 소파에 앉은 백승철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말했다.

“허허, 백 부사장도 참··· 이제 막 와서 앉은 사람한테··· 숨 쉴 틈이라도 줘야죠.”

‘ㄷ’ 자형 소파 세트의 상석에 앉은 원종태가 말했다.

“아, 네. 저도 워낙 뜻밖에 들은 소식이라 그만 좀 흥분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백승철이 원종태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하지만 머리를 숙인 상태에서도 곁눈질로 권성훈을 째려봤다. 권성훈은 정면으로 노려보는 것보다 이게 더 무서웠다.

법과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검사가 됐다고 최용구 앞에서 큰소리쳤던 권성훈이지만, 재벌 앞에서 검사의 그 따위 가오 잡기는 사치일 뿐이다.

“그래, 나를 조사할 담당 검사는 누굽니까? 이름은 들었는데 낯설어서···.”

“네, 부회장님. 최용구라고··· 독고다이··· 아, 죄송합니다. 그 친구 별명이 그건데···.”

고상하신 윗분들 앞에서 저속한 일본말을 내뱉다니. 권성훈이 두 사람의 눈치를 살핀다.

“독고다이?”

백승철이 물었다.

“네, 워낙에 앞뒤 물불 안 가리고 덤벼드는 좀 또라이 같은··· 아, 또··· 죄송합니다.”

윗분들 앞에서 일본말도 모자라 이번엔 저속한 아랫것들 말까지 내뱉다니.

권성훈은 자신이 생각해도 한심해서 미간을 찌푸렸다. 하여튼 말버릇은 평소에 고와야 된다. 그래도 평소 입에 달고 다니는 ‘새끼’는 안 나왔으니 그게 어딘가도 싶다.

“이 사건이 어떻게 해서 그런 검사에게 배당이 된 겁니까? 독고다이요?”

원종태가 물었다.

권성훈은 원종태의 말이 떨어지지가 무섭게, 몸을 원종태 쪽으로 반사적으로 홱 돌렸는데, 때문에 엉덩이를 반쪽만 소파에 걸치고 앉은 꼴이 됐다.

“네, 그게···”

원종태를 보고 대답을 하려고 했는데···.

“이런 중요한 사건은 권성훈 검사가 도맡아서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권 검사한테 사건이 안 가면 간부 검사들한테 항의라도 해서 따 와야죠. 뭐 하고 있는 겁니까? 권 검사는.”

백승철이 따지고 들어오는 바람에 권성훈은 다시 백승철 쪽으로 몸을 홱 틀어야 했다. 때문에 그나마 반만 걸쳤던 엉덩이마저 소파에서 떨어졌다. 꼬리뼈만 겨우 붙었다.

“네, 이번에 승진한 김필중 민정 수석이 갑자기 사건 배당을 콕 찍어서 최용구에게 하라고.”

“별 이유도 없이?”

“네. 김필중 민정 수석이 차장 검사 때부터 최용구를 총애하고 있습니다.”

“독고다이라면서요? 민정 수석이 그런 검사를 총애해요?”

원종태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때문에 권성훈이 또 몸을 원종태 쪽으로 틀었는데, 소파에서 떨어질 뻔했다.

“어이구, 권성훈 검사. 바로 앉아서 말하세요. 허허허.”

“아, 네.”

다시 소파에 자세를 바로 잡고 앉는 권성훈을 보면서 백승철이 혀를 끌끌 찬다.

“김필중 수석이 검사장으로 승진하고 민정 수석까지 가는데 최용구가 앞장서서 험한 일을 다 했었습니다. 김필중 수석이 저희 수원 지검에 차장 검사로 있을 때부터 최용구 그 친구는 부장 검사도 건너뛰고 김필중 수석과 직거래를 했었습니다. 워~낙 총애하고 있습니다.”

권성훈이 말했다.

“혹시 정수명 부총리 사건을 처리한 그 검사··· 입니까?”

백승철이 반말로 물을 뻔했다가 바로 고쳤다. 원종태가 옆에 있으니 반말을 평소처럼 할 수 없다. 평소 같았으면 반말 정도가 아니라 재떨이로 머리를 갈기든가 했을 텐데.

“네, 맞습니다. 지난번 은하 테크론 기술 유출 사건도 그 샊··· 아···”

결국 ‘새끼’가 입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겨우 막긴 막았는데 이미 반은 나와버렸다. 백승철 눈치를 보니 인상을 팍 쓴다.

권성훈은 ‘새끼’라고 말해서 그런 줄 알았지만, 사실 백승철에게 은하 테크론 기술 유출 사건이라면 동생과 연관된 사건이다. 그것 때문에 동생이 캘리포니아 객지에서 고생이 많았다.

“알았어요. 소환이 일주일밖에 안 남았어요. 권성훈 검사가 해줄 일이 뭔지 알죠?”

백승철이 말했다.

“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차질 없도록 하겠습니다. 심려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나가보세요.”

백승철이 차갑게 말했고,

“네, 그럼 부회장님. 저만 믿고 편안히 계십시오.”

권성훈은 120도로 상체를 숙여 인사하고 집무실을 나왔다.

ND 그룹 사옥에서 나오자마자 잡아탄 택시 안.

권성훈은 연신 땀을 닦아댔다.

“아~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네. 아~ 씨바. 양다리 걸치고 살기 힘드네, 좆도.”

양다리. 검사로서 정의를 위해서 사는 척 법질서를 세우는 척도 해야 되고, ND 그룹에 딸랑거려서 스폰서도 계속 받아야 된다. 그래야 마누라가 안 짤리고 계속 회사 다닐 수도 있다.

사실 정의를 위해서 사는 척은 그냥 입으로만 해도 된다. 누가 증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ND 그룹에 딸랑거리는 건 말로만으로는 택도 없다. 실물이 있어야 된다. 실물이.

‘음··· 백승철 부사장이 내가 아까 나올 때 뭐라 했었지? 원종태 부회장이 소환되기 전에 최용구가 들고 있는 수사 정보 물어 달라는 말이겠지. 조사받을 때 유리하기도 할 거지만, 대한민국 검찰은 자기 손아귀에 있다는 힘자랑도 원종태한테 할 수도 있을 테고. 첩자질을 하라는 말인데··· 어떻게 하지? 최용구 방에 몰래 들어가서 캐비넷을 열어볼 수도 없고···.’

강남역 사거리를 지나 역삼역으로 향하는 택시 창문 너머로, 오늘따라 권성훈의 ‘페이보릿’인 크리스찬 루부탱 구두를 신은 여자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루부탱···’

순간 루부탱의 빨간색 밑창만큼 강렬한 아이디어가 권성훈의 머리를 때렸다.

‘그래, 바로 저거야. 여자라고 생겨먹은 것들은 구두든 빽이든 명품이라면 환장하게 돼있지. 좋았어. 흐흐흐.’

***

오랜만에 내 검사실은 다시 분주해졌다. 원종태 ND 그룹 부회장의 소환 일정이 이틀 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동시에 바다 너머 캐쉬 넥서스에서 접속되는 그레이엄과 나의 채팅창도 분주했다.

— ‘칼리만탄 에쿼티 인수 완료했어, 스티브. 심덕환한테 맡겨봤는데 역시 잘하는군. 이번 일의 스킴(Scheme)도 간략하게 설명했는데, 하나를 말하니 열을 알아듣네.’

기술밖에 모르던 엔지니어가 세상 돌아가는 걸 조금씩 알아간다니 좋은 일이다.

— ‘좋았어. 개인적으로 본인에게 익숙한 스킴일 테니까. 고마워, 그레이엄.’

— ‘고맙긴, 내가 고맙지. 또 큰 건 하나 먹게 생겼는데. 하하.’

그래, 이번엔 제법 큰 걸로 먹여주지.

채팅창 너머 미국에 있는 그레이엄과는 정반대로, 검사실 안에 있는 정화용은 시종일관 시무룩이다. 내가 무슨 말을 걸어도 사무적으로만 짧게 대답하고 말뿐, 이전처럼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거나 톡톡 튀지도 않는다.

가끔 혼잣말로 하는 투덜거리면서 한다는 말이,

“흐유~ 검사 생활 종 치게 생겼는데 이런 일이 뭐가 좋다고 저래 열심히야?”

한숨만 푹푹 쉬어댈 뿐이다.

정화용은 내가 이 ND 그룹 사건도 정수명 부총리 잡아넣을 때나 은하 그룹 압수 수색하고 은병진 안봉진을 구속 수사할 때처럼 전광석화처럼 밀어붙일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내가 바본가?

내가 제 아무리 독고다이 짓을 하면서 원종태를 소환하고 구속해 족친다 한들, 원종태는 아무리 오래 있어봐야 두세 달 살다가 나갈 게 뻔하다.

ND 그룹과 대통령 백영기는 아직 운명 공동체 관계고,

그걸 받치는 호위 무사 김필중은 민정 수석이 돼 건재하고,

사법부 판사들도 초록은 동색일 테니,

내가 기소해서 재판까지 가봐야 질 게 뻔하다.

원종태는 보란 듯이 내게 비웃음을 날리면서 유유히 집으로 돌아갈 것이고.

원종태 같은 자들에게 가장 무서운 벌은 나라에서 때리는 징역, 벌금 이런 게 아니다.

그들에게 가장 무서운 벌은 돈이다.

언젠가 김필중이 정수명을 처넣을 때 했던 말.

‘법이 하지 못하는 일은 시장이라도 하게 해야지’

정답이다.

법은 원종태 백영기가 지 맘대로 주무를 수 있지만, 시장은 마음대로 못 한다.

난 시장의 힘을 이용해 원종태에게 벌을 줄 요량이다.

정화용 계장, 그러니 안심하시라고 말하고 싶지만··· 뭐 나중에 차차 알게 되겠지.

어느새 점심시간. 사내 전산망 메신저로 조사부 전체 점심 간다고 연락이 왔다.

“계장님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몰랐네요. 점심 식사 다들 맛있게 하시고.”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박수미도 같이 일어났다.

“저도··· 약속이 있어서 먼저··· 계장님 죄송해요. 호호”

이러면서 정화용에게 눈을 찡긋한다. 저렇게 예쁘게 눈을 찡긋하는데 기분이 나쁠 수 있겠나? 정화용이 활짝 웃는다. 정화용은 요즘 박수미에게만 저런 사람 같은 표정을 짓는다.

“아이고, 죄송은 무슨. 괜찮아. 맛점들 하고 오세요.”

박수미가 먼저 문을 열고 나갔고, 내가 뒤따랐다.

가는 방향이 정반대라 난 박수미의 뒷모습을 흘끗 봤는데 문득 구두가 눈에 들어왔다.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구두 밑창의 빨간색이 흘끔흘끔 보였다.

크리스찬 루부탱.

***

원종태가 검찰청에 소환돼 왔다. 백승철도 담당 변호사로서 같이 왔다.

모두 웃는 낯으로 나에게 한 마디씩 한다. 속으로는 모두 딴생각을 품고서.

“검사님 처음 뵙겠습니다. 원종태라고 합니다. 모든 의혹에 대해 성실히 답하겠습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나한테서 뭘 캐가겠다고? 어림도 없다. 이 애송이야.’

“안녕하세요? 담당 변호사 백승철입니다. 원만한 수사가 되도록 최대한 협조하겠습니다.”

역시 속으로는,

‘니가 그 독고다이냐? 내 동생을 해코지하고 나한테까지 대들겠다고? 웃기지 마라.’

“조사에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 역시 속으로는,

‘원종태, 백승철. 당신들은 모두 여기가 무섭지 않지? 당신이 진짜 무서워하는 게 뭔지 나는 잘 알아. 조만간 그걸 보여줄 거야. 기대해.’

이런 생각을 품은 나도 웃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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