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를 죽인 검사에 빙의했다-48화 (48/70)

〈 48화 〉 나도 좀 살자 응?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라부안(Labuan)? 여기가 어디야? 말레이시아에 이런 데가 있어?”

송대기가 나를 옆에 세워 놓고 물으면서, 스마트폰으로 ‘라부안’을 검색해 본다.

“보르네오 섬 북쪽 말레이시아 영토에 붙어있는 조그만 섬인데, 조세 회피 지역입니다. ND 그룹이 여기에 페이퍼 컴퍼니를···”

“아~ 코타 키나발루(Kota Kinabalu) 옆이구나.”

스마트폰에 뜬 검색 결과를 보고 송대기가 큰소리쳤다.

“여기 나 알아. 작년에 가족 여행 갔다 왔지. 바다 빛깔이 어찌나 곱던지.”

“그러셨군요.”

무표정으로 짧게 반응하는 나를 올려다보고, 송대기도 무안했는지 헛기침을 한다.

“흠흠.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었다?”

내가 가져온 사건 서류철로 눈길을 옮겼는데, 그중 한 페이지를 보려고 눈을 멀리 뗀다. 노안이 심하다.

“이게 다 회사 이름이야?”

“네, 말레이어로 지었더군요. 지금은 청산돼서 모두 없어졌습니다.”

“에마스(Emas), 페라크(Perak), 강사(Gangsa). 이게 다 무슨 뜻이야?”

송대기가 물었다. 짜식, 이런 거까지는 모르겠지.

“금, 은, 동이라는 뜻입니다.”

머쓱해진 송대기.

“공부 많이 했네. 이런 거까지 아는 거 보니. 혹시 잠도 안 자고 일하나?”

“전 소주를 맥주잔으로 처마신 날도 잠 안 잤습니다. 부장님.”

“뭐? 새~끼, 하하하.”

송대기는 너털웃음, 나는 싱긋 웃음을 지었다.

“이 페이퍼 컴퍼니 만들어서 뭘 한 거야?”

송대기가 의자를 나 쪽으로 돌리고 팔짱을 끼면서 물었다. 경청 모드.

“싱가포르의 ‘페트로 아시아’라는 석유화학 회사가 보유하고 있던 ND 케미칼의 주식을 이 페이퍼 컴퍼니들 중 에마스가 매입했습니다.”

“에마스가? 그럼··· 금이 주식을 인수했구만. 얼마나 되는데? ”

“지분 15프로, 미화로 2억 불입니다.”

“15프로? 2억 불? 그 큰돈이 어디서 났어? 이 회사들 자본금이 얼만데?”

“1센트입니다.”

“1센트? 아니, 1센트짜리 회사가 무슨 돈이 있어서 그 많은 주식을 사?”

“빌려서 산 거죠.”

“1센트짜리 회사에 어느 정신 나간 놈이 돈을 빌려줘?”

“ND 케미칼이 지급보증을 섰습니다.”

“뭐? 자기 회사 주식 살 돈 빌리라고 지급보증을 서? 헛 참.”

송대기가 혀를 끌끌 찼다.

“페이퍼 컴퍼니는 달러 표시 채권을 발행했는데, 이때 채권 발행을 대행해준 사람이 바로 고소인인 노준태입니다.”

“그래서 다음은?”

“이 페이퍼 컴퍼니들이 주식을 산 직후의 주식 차트를 보십시오.”

내가 서류를 들춰 차트가 있는 페이지로 넘겼다.

“거의 두 배로 뛰었네. 냄새가 심하게 나는데?”

송대기가 진짜 악취를 맡은 거처럼 미간을 찌푸렸다.

“회사 실적도 안 좋았습니다. 올라갈 이유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올린 거야? 대형주라 작전도 안 됐을 텐데.”

난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여기 보십시오. ND 케미칼 경영진이 갑자기 주주 친화 경영을 한다면서, 배당을 세 배나 늘리고 자사주 매입에 소각도 합니다. 증권사 보고서도 긍정적 전망 일색입니다.”

송대기가 피식 웃으면서 말한다.

“그림이 그려지네. 이렇게 주가를 부양한 뒤에, 페이퍼 컴퍼니들이 들고 있던 주식을 팔아서 돈 한 푼 안 들이고 차익을 챙겼구만. 계열사 지급 보증으로 돈을 빌려서 주식을 사고, 역시 계열사가 주가 부양해서 팔고 나오고, 페이퍼 컴퍼니는 바로 청산하고. 근데 돈은?”

“빌린 돈은 상환했고, 주식 팔아 번 돈은 페이퍼 컴퍼니의 실소유주가 챙겼습니다.”

“실소유주?”

묻기는 했지만, 굳이 대답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 나도 눈 한 번 꿈뻑하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ND 케미칼 주가는 그 뒤에 폭락?”

“네. 유통가능 주식의 15프로나 되는 물량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으니까요.”

“개~ 새끼들”

송대기는 순간 잠자고 있던 칼잡이 본능이 되살아나는 걸 느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이거 이러면 안 되는데···’

검사란 조사하고 검증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檢事’가 아니라, 칼잡이를 뜻하는 ‘劍士’이기도 하다는 말을, 송대기는 입에 달고 다녔다. 말만 그랬던 게 아니라 송대기는 실제로 ‘칼잡이’였고, 덕분에 검사 생활 20년 동안 ‘땅개’ 부서만 전전해야 했다.

이번에 소위 ‘인지 부서’의 장이 됐을 때, 송대기는 이제 승질 죽이고 윗사람들 비위도 맞추면서 살아야겠다 다짐했었다. 차장도 달고 검사장도 돼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억누르고 있던 칼잡이 본능을 이 독고다이 나가 일깨우고 있다.

‘어떻게 잡은 자린데. 억눌러야 돼.’

송대기가 다시 냉정한 표정을 되찾아 묻는다.

“이번 수사, 어디까지 생각해?”

겉으로는 냉정한 척했지만, 송대기는 속이 쓰렸다.

수사를 하면 끝까지 가는 거지, 어디까지 가고 안 가고가 어딨나? 그걸 묻는다는 건 중간쯤 가다가 뭉개라는 뜻이다. 검사로서 참 쪽팔린 물음인 거다.

“우선 시작은 원종태 부회장 소환부터 하겠습니다. 재가해주십시오.”

“뭐? 원종태 부회장 소환? 거기까지 가면 그쪽에서 누가 나올지 알지?”

“네. 압니다.”

“너 마음 알아. 하지만 중앙 지검도 부담스러워서 수사 일정도 제대로 못 잡고...”

“알고 있습니다. 부장님. 소환할까요? 말까요?”

‘이 독고다이 새끼야. 나도 좀 살자. 응?’

송대기는 생각 같아선 이렇게 읍소라도 하고 싶었다.

“그래, 소환해. 나가봐.”

송대기는 더 말해봐야 속만 쓰리고 마음만 아플 것 같았다.

내가 굳은 표정으로 인사하고 돌아섰을 때,

“아 참, 고소인 조사는 했어? 노준태 말이야.”

나가려던 내가 멈춰 섰다.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고 대답했다.

“다음 주에 부를 예정입니다.”

“그래, 같이 보자.”

젠장, 자기도 모르게 이 말이 나오고야 말았다.

송대기. 어쩔 수 없는 ‘땅개’ 검사다. 인지 부서에서 정치 검사 돼서 날아볼까 했는데, 그것도 하던 놈이나 하는 거다. 송충이가 고기 욕심 낸다고 먹어지나.

***

“노준태 씨, 고소인 조사에 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노준태가 디꺼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칫!”

노준태의 저 태도 여전하다. 나는 씩 웃고 넘어갔다.

“고소한 게 언젠데 왜 이제서야 부르는 겁니까? 수사 의지가 있는 겁니까? 없는 겁니까? ND 그룹이라고 힘 쎄니까 그냥 어물쩡 넘어가려다가 여론이 등등해지니까 이제서야 부르는 거 아닙니까?”

“검찰은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최선은 무슨. 사건이 중앙지검에서 여기로 온 이유는 뭡니까?”

“중앙 지검이라고 수사를 더 잘하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 ND 케미칼 본사가 화성에 있으니 관할 지검이 수원지검이니··· ”

“칫!”

또 칫? 한 번 참고 넘어간 거 두 번 못 참겠나. 또 웃고 넘어가 준다.

“채권 발행 대행해주신 건 5년 전인데, 지금 고소를 하신 이유가 뭔가요?”

“무서워서요.”

“무서워요?”

“ND 그룹의 불법 행위를 도운 게 돼버렸으니까요.”

“뭐가 불법 행위라는 거죠?”

“흐유~ 이걸 도대체 몇 번을 설명하는 건지.”

“고소를 하셨으니 백 번이라도 하셔야죠.”

나의 말투가 차가워지자, 노준태도 눈치를 슬쩍 살피더니 한결 부드러워졌다.

“전 라부안에 있는 ‘칼리만탄 에쿼티’라는 회사 대표입니다. ND 그룹이 채권 발행한다길래 대행 계약 맺었는데, 계약 상대가 그룹이 아니라 오너가 만든 페이퍼 컴퍼니였어요.”

— ‘그룹 오너를 본 적이 있는지 물어봐.’

유리창문 밖에서 보고 있는 송대기가 이어폰으로 지시를 했다. 그대로 물었다.

“오너요? 원종태든 원종우든 한 번도 본 적 없어요.”

“근데 그 회사들이 오너가 만든 건지 어떻게 압니까?”

“그 당시에 ND 케미칼이 공시한 ‘주식 대량 보유 보고서’를 보세요. 주식을 대량 보유하면 증권거래소에 보고해야 되고, 매수자와 회사와의 관계를 보고서에 기재하게 돼 있잖아요? 그게 ‘관계 없음’이라고 돼 있어요. 근데 페이퍼 컴퍼니하고 원종태하고는 주식을 공동 보유한다고 돼있거든요.”

“주식을 공동 보유한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내가 죽기 전에 만든 구조고 난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벽 뒤에서 보고 듣고 있는 송대기에게 듣게 하고 싶었다. 나중에 내가 다 설명하려면 귀찮으니까.

“향후 매수나 매도를 하기로 합의한 관계, 그러니까 이면 계약이 돼있다는 말이죠.”

“실질적으로는 그 주식이 오너 소유였다는 말인가요?”

“그렇죠. 그러니까 ND 케미칼이 미친 듯이 주가 부양을 했죠. 들리는 말로는 그때 증권사 애널들도 난리가 아니었답니다.”

“난리가 아니었다?”

“밥이야 술이야··· 그것뿐이었겠어요? 이거에··· 이 짓도 엄청~”

노준태는 ‘이거에’라고 말하면서 검지 엄지를 동그랗게 만들어 흔들었고, ‘이 짓도 엄청’을 말할 때는 그 동그라미 위를 손바닥으로 탁탁 치고 검지 손가락을 엄지로 만든 구멍에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상황이 이런데 제가 안 무서웠겠어요? 주가 조작, 외환거래법 위반, 주식 탈법 거래. 이 모든 불법행위가 제가 대행해준 채권 발행부터 시작된 거예요. 저를 이용한 거죠.”

“ND 그룹 쪽에서는 노준태 씨가 돈 뜯어내려고 이러신다고 하던데.”

“맞아요. 돈 받아내야죠. 저요, 겁나서 말레이시아 떴어요. 미국 가서 아무것도 못 하고 있다가 이제 겨우 내 회사 인수해주겠다는 회사가 나와서 겨우 한 숨 돌렸습니다. 저요~ 그동안 날린 기회비용, 변호사 비용 다 받아낼 겁니다.”

“노준태 대표님 회사를 인수해주겠다는 회사 이름이 뭐죠?”

난 다 알면서 모르는 척 문서를 뒤적였다.

“엑소더스 펀드라고 하더군요. 거 얼마 전에 은하 그룹을 박살 냈던 액티비스트 펀드라고 하길래 두 번 생각하지 않고 계약 체결했습니다. 제 지위도 인수 후에도 유지해준다고 했고.”

“오~ 좋은 회사네요. 회사 이름 좋고.”

“거기 대표 분, 그레이엄이라는 분인데, 능력이 대단한 분이시더라구요.”

난 싱긋이 웃었다. 그레이엄 대표 능력 있지. 근데 그 대표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사람이 더 능력이 뛰어나지. 아주 많이.

***

“원종태 부회장 소환하기로 했다며?”

조사부 전체가 점심을 먹으러 가는 중, 권성훈이 나 옆에 바짝 다가와 말했다.

“나 이럴 줄 알았다니까. 역시 우리 독고다이 검사님은 다르셔. 그 어깨 힘 잔뜩 들어간 중앙지검 놈들도 못 한 걸··· 흐흐흐.”

마침 무릎을 살짝 덮은 타이트한 스커트를 입은 젊은 여자가 조사부 일행을 지나쳐 걸어갔다. 권성훈이 말 끝에 ‘흐흐흐’ 한 것은 그 여자의 뒷모습을 보면서 내뱉은 리액션이다.

“야! 최 프로. 저 여자 구두 좀 봐라. 저거 나의 페이보릿(favorite) 아니냐.”

나도 고개를 돌려 봤는데, 그냥 구두지 뭐가 특별한 건지 잘 모르겠다.

“아~ 쎈스 없는 자식. 저거 크리스천 루부탱이야. 봐봐, 구두 밑창이 빨간색이잖아? 걸을 때마다 빨간색이 살짝살짝 보이는 게··· 꼭 은밀한 부분을 훔쳐보는 거 같은 착각이··· 응?”

저게 길거리에서 부서 전체가 밥 먹으러 가는데 할 소린가? 그것도 검사가.

나는 권성훈을 떼어놓으려고 발걸음 속도를 높였다.

“한재민이 자식 똥줄 타겠군. 지가 하기 싫어서 떠넘긴 걸 우리 최용구 검사께서 멋지게 처리해주시면··· 하하하.”

권성훈은 계속 싱글벙글이다.

“이번엔 한재민 선배가 하기 싫어서 넘긴 거 아니라고 하던데요.”

“뭐? 누가 그래?”

“민정 수석님이요.”

“뭐?”

난 민정 수석과도 연통이 닿는 사이다. 건드리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싱글벙글하던 권성훈 표정이 싹 굳어버렸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앞서 가버렸다.

그때,

‘삐리 삐리~ 삐리 삐리~’

권성훈 주머니의 스마트폰 벨이 울린다.

“누구야? 점심시간에··· 헉!”

권성훈이 짜증을 내면서 스마트폰을 꺼내봤는데 화면에 뜬 이름은···.

백승철.

권성훈은 전화를 받느라 서서, 자신을 돌아보는 일행에게 그냥 가라고 손짓을 했다.

“네. 부사장님.”

“나 좀 봅시다.”

“네. 언제···”

“빠를수록 좋지.”

“지금 바로 가겠···”

‘딸깍’

상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리는 무례함.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권성훈은 쌍욕을 한 바가지 내뱉었을 것이다.

권성훈은 바로 택시를 잡아탔다.

“서울 서초동이요.”

서울 지검이 있는 서초동이 아니다.

ND 그룹 사옥이 있는 서초동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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