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 소환 준비해주세요.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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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V에 하대석 앵커가 나왔다.
—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H-TV 8시 뉴스, 오늘도 ND 그룹 소식부터 전해드리겠습니다. 서울 중앙지검이 ND 그룹의 핵심 계열사, ND 케미칼의 화성 본사 사옥을 전격적으로 압수 수색을 했습니다. ND 그룹은 현재 패닉 상태라고 하는데요, ND 그룹 본사에 나가있는 송선미 기자 연결합···’
TV을 보고 있던 백영기가 리모콘을 들어 틱 꺼버렸다. 옆에 앉아있는 김필중을 보면서 한 마디 한다.
“저저저 하대석인지 하석대인지 하는 앵커 놈은 늙지도 않네. 기생오라비처럼 생겨가지고. 저 새끼는 물에 빠져 죽어도 아가리만 동동 뜰 거야. 비열한 새끼.”
“그래도 하대석 저 친구도 늙었는지 옛날 같지 않습니다. 시청자들도 옛날만큼 그렇게 신뢰하지도 않구요.”
“흥! 그렇겠지. 저런 뉴스나 맨날 때려대니 누가 좋아하겠어? 기생오라비 같은 놈.”
“그나저나 ND 그룹도 그냥 뭉갤 수만은 없을 것 같습니다, 각하. 하대석도 하대석이지만 요즘은 유튜브가 워낙 여론 형성력이 강해서 말입니다.”
“뭐··· 난 걱정 안 해. 그런 거 정리하라고 우리 김필중이를 민정 수석으로 떡 앉힌 거 아니겠어? 마음 같아서는 검찰총장을 시키고 싶었지마는··· 총장은 아직 임기가 1년이나 남았고, 거 짤라 버리면 말들이 많을 거 아냐.”
“각하. 최선을 다해서 각하를 지키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그래, 우리 필중이가 괜히 호위무사겠나. 나 믿지. 믿어. 하하하”
***
김필중이 대통령 관저에서 돌아와 민정 수석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 외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송대기가 비서와 함께 벌떡 일어서 인사를 했다.
송대기는 아까부터 김필중의 호출을 받고 청와대로 와 기다리고 있었다.
“수석님. 늦었지만 영전 축하드립니다.”
“축하는 무슨. 송대기 니는 그런 입바른 소리 안 어울려. 곰 새끼. 이리 와 앉아.”
김필중이 상석 소파에 앉으면서 경상도 억양으로 퉁명스럽게 말했다. 송대기는 김필중의 오른쪽에 다소곳이 앉았다.
“다른 게 아니고, ND 그룹 말이야. 거 시민단첸지 변호사 놈인지 하는 놈들이 중앙지검에 고소 고발한 거.”
“그거 또 중앙 지검 놈들이 못하겠다고 개깁니까?”
“아냐. 중앙 지검이 아니고, 내가 니한테 줄려고 해. 그 사건.”
“네?”
“왜? 하기 싫어?”
“아··· 아뇨. 하기 싫은 게 아니고. 그런 사건은··· 사실 정치적으로 얽힌 게 많아서···”
“지랄. 사건이 정치적이지 않은 게 어딨어? 마누라 두들겨 패고 들어온 가정폭력범도 정치적으로 마누라가 맘에 안 들어서 팼다고 지랄하더만.”
“네, 제가 맡겠습니다.”
송대기의 머리가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검사 임용 이후 형사부에서만 굴렀던 ‘땅개’ 송대기다. 이런 정치적 고려, 정무적 판단이 필요한 사건은 맡아본 적이 없다. 우선 누구한테 이 사건을 맡겨야 할지부터 고민이 됐다.
그런데,
“누구한테 맡길 거야?”
송대기는 깜짝 놀랐다. 김필중 이 양반이 사람 속을 읽는 능력이 있나?
“아··· 저··· 권··· 네. 권성훈한테 맡기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습···”
“뭐? 권성훈?”
김필중이 눈을 부라린다.
“왜? 그 새끼야”
틀린 답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도 왜 그런 답을 냈는지는 설명해야 한다.
“우선 그 사건은 거··· VIP 아드님··· 백승철 부사장이 ND 그룹에서는 맡을 것 같고··· 그러니 VIP께서도 각별히 신경을 쓰실 사건이 될 거고···”
“그런데 왜 권성훈이야?”
“아무래도 권성훈이 ND 그룹하고 관계도 좋고···”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ND 그룹 수사하는데 거기 관계 좋은 놈을 붙이면 어떡하겠다는 거야? 검사가 사건이 있으면 그냥 수사만 하면 되는 거지. 누가 누구 아들이든 어디서 뭘 하든 그게 뭔 상관이야? 송 부장 그래 안 봤는데 정치권 눈치 보면서 수사하나?”
이런 공자님 말씀, 김필중은 자기가 말하면서도 속이 니글거렸다.
“그게 아니라··· 아무래도 BH나 VIP의 의중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헛참. 이 사람이 큰일 날 사람이네. BH의 의중은 민정 수석인 내가 잘 알지. 내가 알아서 하면 되는 거고.”
“아, 네 맞습니다. 수석님”
“그리고 권성훈이는 ND 그룹하고 특수 관계 아냐? 그 새끼 마누라가 거기서 잘 나간다며?”
“잘 나간다기보다는 그냥 그룹 비서실에 부장···”
“그게 잘 나가는 거지. 머리를 써봐, 머리를···.”
김필중이 검지 손가락으로 송대기 관자놀이를 쿡쿡 찌른다.
“이 사건, 권성훈이한테 맡겼다, 늘봄 신문이 가만히 있겠어? 수사 발표나 제대로 할 수 있겠어? 권성훈 그 새끼 마누라 신상까지 털어댈 거야. 봐주기 수사다 뭐다 난리 칠 거야. 그런 게 안 보여? 송 부장은?”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송대기가 고개를 푹 숙였다. 아까 찔린 관자놀이가 얼얼하다.
김필중이 소파에 몸을 깊숙이 묻으면서 말한다.
“최용구한테 시켜.”
“최용구요?”
“왜 그 시키 요새 바빠?”
“아, 아닙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됐어. 디스미스트(Dismissed)”
송대기가 90도 인사를 하고 나갔다.
김필중은 송대기가 나간 뒤에도 한참을 소파에 몸을 파묻고 생각에 잠겼다.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ND 그룹 사건, 대통령 큰아들 백승철이하고 딱 붙여보면 알겠지. 최용구 그 시키가 이재훈이를 살렸는지 죽였는지. 이재훈이한테 매수가 됐는지 아닌지.”
***
“아니, 이 사건이 왜 또 수원지검으로 넘어갑니까?”
서울 중앙지검 금융조세 조사부. 일명 금조부.
한재민이 금조부장 강민철에게 큰소리로 따지고 있다.
“야, 저 위에서 그렇게 하라는데 내가 어떻게 하냐?”
“저 위면 어딥니까?”
“어디긴 어디야? 민정이지?”
“청와대요? 이번에 수석 된 김필중 그 작자 짓입니까?”
“야, 한재민. 이 새끼가 미쳤나? 그 작자라니? 이 새끼 눈에 보이는 게 없구만.”
“지난번 은하 그룹도 그렇게 넘겼는데 ND도 넘긴다는 게 말이 됩니까?”
“야잇 새꺄, 왜 그걸 나한테 지랄이야? 그렇게 승질나면 니가 지금 청와대 올라가서 민정 수석한테 가서 따져!”
“수원 지검 누가 한답니까?”
“누구겠냐? 거기서 이런 거 할 놈 독고다이 새끼 밖에 더 있냐?”
“독고다이요? 최용구 말입니까?”
“왜? 가서 한 판 붙게? 독고다이하고 중앙지검 에이스하고 한 판 붙어보시게?”
강민철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재민은 홱 돌아서 방을 나가 버린다.
‘쾅’
문도 부서질 듯 세게 닫고 나갔다.
“저~~ 개~~ 새끼! 어휴··· 승질나.”
강민철이 지르는 소리가 복도 멀리까지 들렸다.
강민철 방을 나온 한재민은 자기 방에 들어오기 전까지도 분을 삭이지 못하고 씩씩 거렸다.
방에 들어와 문을 닫자마자,
“최용구라고? 후후후”
아까까지 씩씩거리던 한재민은 온데 간데 없다.
“내가 준 자료들 잘 갖고 있겠지? 얼마나 어떻게 쓰나 한 번 보겠어. 최용구”
***
‘말레이시아에 페이퍼 컴퍼니 설립. 주력 계열사 ND 케미칼의 지급 보증으로 페이퍼 컴퍼니가 미 달러화 표시 채권 5천만 불어치 발행. 이 돈으로 ND 케미칼 주식 매집. 1년 후 매도··· ’
난 정화용을 앞에 앉혀놓고 사건의 개요를 화이트보드에 쭉쭉 적어나갔다.
“해외 비자금 조성은 물론이고 주가 조작까지 의심되는 사건입니다.”
설명하는 나만 열심일 뿐, 듣는 정화용의 얼굴엔 걱정스러운 표정이 가득 찼다.
“검사님. 저··· 근데요··· 이거··· 저쪽에서 누가 변호사로 나설지 알고 계시죠?”
“대통령 아들이 맡겠죠. 큰아들. 백승철이던가요? 이름이?”
정화용의 표정이 더 일그러졌다. 그걸 알면서도 이렇게 나서는가 싶어서다.
“저··· 검사님. 그분은 지난번 거··· 은하 테크론한테서 돈 뜯어가려고 했던 둘째 아들하고는 완전 다르거든요. 아시죠?”
“그런데요?”
“대통령 첫째 아들 백승철 씨는 지난번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났었어요. ND 그룹 생기고 최연소 부사장 승진이라고요. 나이 마흔 갓 넘었다고···”
“그게 이 사건하고 무슨 상관입니까?”
“검사님··· 백승철 씨는 대통령이 정~~~말 총애하는 사람이라는 말이죠. 둘째랑은 달라요. 그러니까 이런 사건은 저··· 다른 검사들 같은 경우는요···.”
“대충 수사하는 척하다가, 설이나 추석에 명절 뉴스 쏟아질 때나 아이돌 여가수 스캔들 터졌을 때 거기 묻어서 불기소 처분 발표하는 걸로 유야무야 정리한다··· 이 말씀?”
“아! 그게 꼭 뭐 그렇게 하자는 말이라기 보다는요. 검사님. 후유~ 이거 잘못하면··· 검사님 생활 종 칠 수도 있는···.”
“네네, 알겠습니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계장님은 우선 ND 케미칼의 주식 발행, 거래 내역부터 까 보세요. 3년 치 정도. 그리고 ND 그룹의 해외 법인 현황도 조사해주세요. 특히 있다가 없앤 것들까지 깡그리.”
“네···”
자기 자리로 돌아서는 정화용의 어깨가 축 처졌다.
“새로 검사를 구해야 할 날이 다가오는구나.”
혼잣말을 투덜거렸는데 나한테 다 들렸다.
사건은 ND 케미칼의 말레이시아 페이퍼 컴퍼니의 채권 발행을 대행해 준 노준태라는 사람의 고소로 검찰에 입건됐다. ND 그룹에 이용당해 자신도 위법자가 될 위험에 처했다는 게 고소의 이유였다.
‘노준태···.’
내가 죽기 전에 이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 때 몇 번 만나본 적 있다.
대한민국 굴지의 기업 ND 케미칼과 거래를 하게 됐다는 사실에 한껏 고무돼 있던 노준태. 곧 자신도 큰돈을 만질 수 있을 거라는 꿈에 젖어 들떠 있었던 게 기억이 난다.
“이거 해서 잘 되면 ND 그룹 고위직으로 취직도 될 수 있겠죠? 자금팀 임원 정도로···.”
노준태가 내게 해던 마지막 말이 이거였다. 이 자를 다시 만나게 되다니.
고소장에 있는 고소인 노준태의 인적 사항 서류를 열었다.
‘현재 캘리포니아 거주. 말레이시아 라부안 소재 ‘칼리만탄 에쿼티’ 대표.’
정화용을 보니 여전히 시무룩한 표정으로 사건 파일을 들춰보고 있다.
‘걱정 마쇼. 정 계장. 당신이 다른 검사 찾아다닐 일 없게 만들어줄 테니···.’
난 바로 캐쉬 넥서스(Cash Nexus)에 접속해 그레이엄을 찾았다.
— ‘어이~ 스티브. 무슨 일이야?’
여지없이 바로 응답하는 그레이엄.
— ‘어, 큰 거 한 건 생겼어. 회사 하나 인수해야겠어.’
— ‘회사? 어떤 회산데?’
— ‘말레이시아에 있는 칼리만탄 에쿼티라고. 조그마한 채권 브로커리지 펌이야.’
— ‘엥? 그런 걸 인수해서 뭘 하게?’
— ‘규모는 작지만 돈이 될 계약을 쥐고 있는 회사야. 아직 자기들도 그게 얼마나 큰돈이 될지 모르는 계약이지. 회사의 모든 계약과 권리 의무 관계를 100% 승계한다는 조건으로 인수해야 돼. 그게 포인트야.’
— ‘100% 승계? 고용까지?’
— ‘당연하지. 특히 대표 이사. 직위 직책까지 모조리. 아, 그리고 이 일은 심덕환한테 맡겨.’
— ‘심덕환? 그건 왜?’
— ‘일의 구조가 심덕환이 겪었던 일과 흡사해. 그러니 더 잘 할 거야.’
— ‘아~ 대충 감 잡았어. 스티브가 만드는 일이라면 확실하지. OK. 바로 들어간다.’
채팅창을 닫고 정화용에게 큰소리로 말했다.
“계장님. ND 그룹 부회장이 원종태죠? 일단 출금부터 치시고 소환 준비하세요.”
“네? 워... 원종태요? 소환이라구요?”
정화용이 놀라서 벌떡 일어나려다가 만다.
“저 송 부장님한테 갑니다. 원종태 소환 승낙받으러요. 준비 잘해주세요.”
엉거주춤 서있는 정화용 얼굴이 똥빛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