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 민정수석을 날리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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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D 그룹 서초동 본사 사옥 39층.
원종태 부회장 집무실.
“부회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백승철이 부회장 집무실로 들어서면서 90도로 인사를 했다.
“아이고, 백 부사장, 어서 오세요. 이게 얼마만입니까? 하하하.”
원종태는 문까지 직접 가서 맞이한다.
원종태는 ND 그룹 총수 원종우 회장의 동생이다.
ND 그룹 창업주 원영철 회장이 사망했을 때 종우, 종태 두 형제는 회장과 부회장을 사이좋게 나눠가졌다. 지분은 형이 원종우가 훨씬 많이 물려받았지만, 형 원종우는 회사 경영에 대한 권한은 동생 원종태에게 훨씬 많이 줬다. 지분을 아무 불만 없이 형에게 양보한 동생이 너무 고마워서 그랬다고 한다.
둘의 형제애는 각별해 보인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다. 최소한 지금까지는 그렇다.
“백 부사장은 바로 아래 38층에 있는데도 1년에 얼굴을 보는 게 한두 번도 안 되는 것 같네요. 내가 이번엔 미국에 너무 오래 있었죠? 하하하.”
ND 그룹 서초동 본사 사옥은 40층짜리 빌딩으로, ‘드래곤 타워’라 불린다.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모양을 외벽면에 그려 넣었기 때문이다.
맨 꼭대기 층인 40층은 창업주 원영철 회장을 추모하는 뜻에서 그가 일하던 그대로 비워두고, 두 아들인 원종우 원종태 형제는 아래층인 39층을 반반씩 나눠서 쓴다. 그래서 39층은 ‘회장층’이라고 불린다.
백승철을 비롯한 고위직 임원들의 집무실은 38층부터 배치돼 있는데, 몇 층을 쓰느냐가 해당 임원과 오너 형제와의 친소 관계를 철저하게 증명한다.
요즘 제일 힘빨 날리는 백승철은 부사장인데도 회장층 바로 아래층인 38층을 쓰고, 어떤 힘빨 떨어진 사장은 사장인데도 30층 아래를 쓰기도 한다.
“앗참, 내가 미국에 오래 있느라 우리 백 부사장 승진 인사도 못 한 것 같네요. 늦었지만 축하합니다.”
“아, 아닙니다. 별말씀을요. 보내주신 축전 잘 받았습니다. 멀리서 그런 것까지 챙겨주시고 감사했습니다. 부회장님.”
백승철이 다시 상체를 90도로 숙이면서 원종태의 내민 손을 살짝 잡았다.
백승철은 키만 좀 더 클 뿐, 대통령 아버지 백영기를 빼다 박았다. 백영기와 두 아들 백승철, 백승환을 나란히 세워놓으면, 꼭 세 쌍둥이를 보는 거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과장이 아니다.
“부회장님, 미국 출장은 어떠셨습니까? 이번에도 캘리포니아에 계시다 오셨습니까?”
백승철이 원종태와 함께 소파로 걸어가면서 물었다.
“그럼요. 미국은 캘리포니아 말고는 갈 데도 없어요. 참 이번에도 역시 미국은 미국이다라는 걸 절실하게 느끼고 왔지요. 미국은 새로운 비즈니스 아이디어가 넘쳐나요. 특히 캘리포니아는 넘치다 못해 막 흘러내려요. 우리 한국도 좀 배워야 돼. 여기는 우리 기업인들이 조그만 거 하나라도 새로운 거 하겠다고 하면, 규제다 경제민주화다 하면서 얼마나 괴롭혀? 그런데 거기는 전부 자유야. 맘대로 해라야. 어찌나 부러운지.”
원종태는 10년 전, 선진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명분으로 캘리포니아 북부 도시 샌 라몬(San Ramon)에 현지 법인을 세웠다. 법인을 세운 후 원종태는 자주 출장을 간다. 어떨 때는 한 해에 200일 이상을 여기에 머물기도 한다. 가서 뭐 하는지는 본인만 안다.
“맞습니다. 배워야 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죠.”
“아, 그래도 백 부사장 아버님께서 정권을 잡으신 후에는 우리 기업인들에 대한 규제가 많이 풀렸어요. 대통령님의 기업 프렌들리 정신··· 존경합니다.”
“네, 아버님의 정신을 이어받는 사람이 다음 대통령이 돼야 할 텐데 그게 걱정이긴 합니다.”
“나도 그게 걱정이긴 합니다. 우리가 많이 노력해야겠죠. 아참. 그건 그렇고··· 보자마자 일 이야기부터 해서 미안합니다만.”
“ND 케미칼 본사 압수 수색 건 말씀하시는 겁니까?”
“에? 하하하. 역시 백 부사장은 빠르십니다. 그거 어떻게 된 겁니까?”
“걱정 마십시오. 중앙지검 놈들이 여론을 의식해서 오바를 한 거 같습니다. 제가 조치를 다 취해뒀습니다. 사건은 조만간 수원지검으로 옮길 겁니다.”
‘옮길 거라고 들었다’가 아니라 마치 자기가 사건을 옮길 거라고 말한다. 검찰은 자기가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걸 원종태에게 이렇게 과시한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다.
“그래요? 아무래도 수원이 낫지. 중앙지검은 서울에 있다고 어찌 뻣뻣하게 나오는지. 이번에 압수수색하고는 바로 나를 소환할 것처럼 분위기를 만드는데, 미국에 있으면서 회사의 100년지 대계를 고민하고 있는 내가 그거 얼마나 귀찮았겠소? 백 부사장.”
“소환 같은 그런 일 절대 없을 겁니다. 부회장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검찰 놈 들은 전부 내 손아귀에 있다. 대통령 큰아들로서 자신감이 넘친다.
“난 우리 백승철 부사장이 있으니 항상 든든합니다. 이렇게 든든하게 받쳐주니 내가 회사 경영하기가 어찌나 편한지 말도 못 해요. 허허허. 앗 참 우리 언제 수원지검 검사장··· 거 이름이 뭐랬죠?”
“김필중 검사장입니다.”
“아, 그래요. 그 분하고 식사 자리 한 번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사실 아직 확정은 아닙니다만, 거기 지검장이 조만간 민정 수석으로 승진하게 될 겁니다. 승진하면 그때 승진 축하도 할 겸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민정 수석요? 김필중 지검장이요?”
원종태 눈이 동그래졌다. 지검장 정도 상대하는 것과 대한민국의 모든 사정 기관을 총괄하는 민정 수석을 상대하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 지금 있는 유선진 수석은···”
백승철이 스마트폰에 뉴스 하나를 띄워 원종태에게 내밀었다. 원종태가 이게 뭔가 싶어 받아 들었다.
스마트 폰 화면에 뜬 기사 제목은,
‘은하 게이트 - 유선진 민정 수석이 배후’
“아~~ 이런 일이? 하하하, 우리 빨리 봐야겠네요. 백 부사장 승진 축하도 같이 겸합시다.”
“네, 빠른 시일 내에 자리 만들겠습니다.”
이 말을 하면서 백승철은 어느새 김필중의 전화번호를 폰에 불러내고 있었다.
***
‘휘익~ 퍽’
청와대 대통령 관저. 백영기가 조간신문을 보다가 벽에 집어던졌다.
“밖에 누구 없어?”
총무 비서관이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네, 각하.”
“민정 불러! 어서. 실장, 실장도. 당장!”
총무 비서관이 나가다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조간신문으로 눈을 돌렸다. 얼른 가서 주워 들려고 하는데···.
“그냥 둬.”
엇, 뜨거라. 비서관은 얼른 문을 닫고 나갔다.
백영기가 집어던진 신문의 1면 탑은 이랬다.
‘은하 게이트 - 유선진 민정 수석이 배후.’
유선진이 부랴부랴 뛰어들어왔다. 뭣 때문에 불려 들어왔는지 유선진은 안다. 뛰어왔는데도 이미 얼굴색이 하얗다.
“이리 와.”
백영기가 가까이 불렀다.
“네, 각하.”
바로 옆에까지 왔는데,
“저거 주워와.”
아까 벽에 집어던진 조간신문을 턱으로 가리켰다.
“네, 각하”
아까 들어왔던 문쪽으로 다시 뛰어가서 조간신문을 주워오는 유선진.
“쿠에엑~ 퉷”
백영기가 크리넥스를 뽑아서 가래침을 뱉었다.
조간신문을 주워오던 유선진이 평소 하던 대로 달려와 가래침 뱉어낸 크리넥스를 받아내려 했지만, 백영기는 유선진이 받을 수 있게 위로 던지지 않고 그냥 바닥에 내동댕이 쳤다.
“콜록콜록, 에잇 이놈의 가래침은 왜 자꾸··· 쿠에엑~ 퉷”
가래침 크리넥스 한 장 더.
“퉷퉷”
또 한 장 더.
유선진은 바닥에 떨어진 크리넥스 덩이 세 개를 주섬주섬 줍는다.
“쿠웨···”
젠장, 가래침을 더 뱉고 싶었는데 이제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제가 면목이 없습니다. 각하.”
손에 가래침 크리넥스 덩이를 가득 든 유선진이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다.
“이게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엉?”
마침 비서실장 황상철이 뛰어들어왔다.
“각하, 부르셨습니까?”
백영기와 유선진은 황상철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지금 백영기 눈에 황상철 따위가 들어오지 않는다. 일단 유선진부터 조져놓고 볼 일이다.
황상철도 분위기 파악 끝났다. 문 옆에 딱 정자세로 섰다. 괜히 지금 가까이 가면 유선진 손에 들려있는 더러운 가래침 크리넥스나 받아 안게 생겼기 때문이다.
“각하, 저는 억울합니다.”
“흠흠··· 이 놈의 가래침은··· 흠흠”
“각하···”
“억울하겠지. 하지만 나만큼 억울하겠어? 졸지에 재벌 팔 비틀어서 아들놈 손에 돈 쥐어주려 한 파렴치한 대통령이 되게 생겼는데.”
“각하,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졌습니다.”
“죽을죄까지는 아니지. 난 그저 정권의 안위가 걱정될 뿐이야.”
“···”
“이 놈의 언론 기레기 시키덜 벌써 이름도 지었더만. 은하 게이트? 게이트라니. 난 그런 말이 언론 놈들이 만들어 퍼뜨린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아주 드러워. 내가 닉슨이야? 탄핵 피하려고 중간에 물러간 닉슨 같은 놈 임기 중에 있었던 게 게이트 아냐? 그런 재수 없는 일이 왜 내 임기 중에 있어야 하냔 말이야.”
유선진은 더 이상 자리를 보전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너무너무 아까웠다. 이제 겨우 청와대 비서실장을 말 잘 듣는 후배로 앉혀놓고 청와대 조직을 완전히 장악했는데···. 얼마 누려보지도 못 하고 이렇게 짤려나가게 되다니.
백영기도 유선진의 그 속을 모를 리 없지만 그건 백영기 알 바 아니고.
“민정. 억울하더라도··· 정권을 위해서··· 아니 국가를 위해서 결단을 내려주시게. 자발적으로 사의를 표명하고 나가는 걸로 해주겠네. 경질은 아닌 걸로.”
백영기는 멀찍이 문 앞에 서 있는 황상철을 이제야 아는 척을 한다.
“황 실장, 생각은 어때?”
황상철의 의견을 듣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문 앞에 서있으니 유선진 나가게 문을 열어주라는 명령이다.
유선진이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홱 들었다.
까마득한 후배 황상철의 입에서 자신의 처분에 대한 말이 한 마디라도 나오는 걸 듣고 있을 수 없었다.
목소리를 평소보다 훨씬 높여 황상철의 대답을 막고 말했다.
“각하! 제 사의를 받아주십시오. 어리석은 제가 각하 임기 후반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가시는데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되려고 뼈를 갈고 뇌를 바닥에 바르는 심정으로 목숨을 바칠까 했습니다만, 저의 능력이 여기까지였나 봅니다. 각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유선진은 백영기를 향해 큰절을 올리고 돌아서 나갔다.
문 옆에 서있는 황상철에게는 0.1초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
“황 실장, 이리 와.”
황상철이 백영기 옆으로 쏜살같이 뛰어갔다.
백영기는 이미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늠름하다.
“각하, 민정 수석 후임은 생각해 두신 게 있으십니까?”
황상철은 앓던 이가 빠진 느낌이었다. 그동안 비서실장 아닌 비서실장으로 있으면서 유선진 눈치 보고 살았던 시간이 이제 끝났기 때문이다. 이제 자기 사람을 민정 수석에 박아놓고 청와대를 주물러보려 한다.
“후임?”
“네, 민정 수석 자리는 각하께서도 아시다시피 단 1초라도 비워두면 안 되는 자리입니다. 제 의견으로는 후임으로 지금 서울 중앙 지검에 있는 김···”
“됐어. 내가 언제 당신 의견 물었어? 민정 수석 후임은 김필중. 그 친구로 해. 끝!”
유선진 다음은 김필중?
똥차나 쓰레기차나.
황상철의 얼굴이 싹 굳었다.
***
“H-TV 뉴스 속봅니다. 청와대는 은하 그룹 기술 유출 사건 배후 의혹을 받고 있는 유선진 민정 수석이 제출한 사표를 전격 수리하고, 후임에 김필중 현 수원지검장을 임명하다고 발표했습니다.”
난 검사실 내실에 앉아 뉴스를 보면서 웃고 있었다.
백영기의 제갈량 유선진을 날렸다.
이제 호위 무사 김필중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