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아직도 니가 나하고 동급이라고 생각해?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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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무슨 소리야?”
은성표와 김상덕의 기자 회견을 보고 있던 백영기가 유선진을 돌아보면서 물었다.
“은성표 회장까지 나와서 저러는 걸 보면 우리 공격에 무릎을 꿇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그래? 뭔가 찝찝하지 않아? 이거 내가 이긴 거 맞아?”
백영기가 인상을 팍 쓰면서 말했다.
“어떤··· 걱정이 드시는지요?”
“아니··· 민정, 저게 저렇게 되면 이제 우리가 더 이상 은성표 저 영감을 공격할 명분이 없어지잖나. 자진해서 지배구조 개혁하겠다는데.”
“그··· 렇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긴 거···”
“아··· 답답하네. 민정 한 번 생각··· 콜록콜록”
말하느라고 열을 내니 또 가래기침이 올라왔다.
“쿠웨액~~ 퉷”
여느 때와 똑같이 크리넥스를 잽싸게 뽑아서 갖다 바치는 유선진.
그걸 받아서 가래침을 뱉어 유선진에게 던지는 백영기.
백영기는 한 바탕 가래기침을 더 해서 유선진에게 던지고 싶은데 나오지를 않는다.
“내 말은··· 저게 저렇게 되면 여론의 화살이 어디로 향하겠냐 이 말이요.”
“네? 여론이라면··· 각하께서 승리하셔서 국정의 동력을 확보하시는 걸로···”
“아~ 답답하네. 이제 은하도 저렇게 하니 ND도 해야 된다. 지배구조 개혁해라. 야당이고 언론이고 들고일어날 거 아냐? 내 말 알아듣나? 민정?”
“아, 그건 걱정하시 마십시오.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
“혹여나 ND그룹 쪽으로 불똥이 튀어서 수사를 하거나 할 일이 생기더라도··· 검찰을 잘 다독거려서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각별히··· 응? 각별히 민정이 신경 써요. 검찰은 그래도 민정만큼 확실히 쥐고 있는 사람이 없잖아?”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저건 또 무슨 말이요? 김상덕이가 나와서 씨부리는 말.”
“김상덕이요? 아··· 뭐 별 거 있겠습니까? 제가 듣기로 저쪽에서 그걸 기획하고 주도한 인물이 김상덕이었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다 끝난 일인데 저렇게 자수까지 할 건 없잖아?”
“음··· 제가 한 번 더 알아보겠습니다.”
“알아볼 건 없고··· 그 사건 누가 했었지?”
“김필중···”
“아니, 김필중 밑에 말이야. 최용구지?”
“네. 맞습니다.”
“그럼 김상덕이 출석해도 최용구가 맡는 거지?”
“그렇습니다.”
“그럼 뭐 알아서 하겠지. 최용구 그 친구 믿을만하잖아.”
“아··· 네. 믿을··· 만 합니다.”
유선진의 대답이 한 박자 늦게 나왔다.
백영기 얼굴에 썩소가 올라왔다.
‘유선진 이 늙은 놈. 이제 애송이 최용구까지 경계를 하나?’
***
H-TV에 하대석 앵커가 나왔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H-TV 8시 뉴습니다. 오늘은 ND 그룹 소식부터 전해드리겠습니다. 은하 그룹 은성표 회장의 경영권 세습 포기 선언 이후, ND 그룹에 대해서도 지배구조 개혁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는데요. 관련 소식 경제부 송선미 기자와 함께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송 기자.”
“네, 송선미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움직임이 ND 그룹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ND 그룹의 여러 부적절한 행위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시민단체들과 연대해 ND 그룹을 상대로 제기하는 고소 고발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고소 고발 건이요?”
“네, ND 그룹이 해외 계열사를 이용해 비자금을 빼돌린 후, 총수 일가의 지배권 강화을 위해 쓰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는 고발 건부터, 실제로 이런 총수 일가의 행위 때문에 자신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고소 건까지 다양합니다.”
“음··· 이건 ND 그룹으로서도 그냥··· 이렇게 말하는 게 적절한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냥 뭉개고 지나가기에는 부담이 있겠군요.”
“네 맞습니다. 그런데 부담이 있는 건 검찰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지금 ND 그룹에 대한 고소 고발은 서울 중앙지검으로 집중되고 있는데요, 은하 그룹의 이른바 ‘항복 선언’을 이끌어낸 지검은 수원 지검입니다. 서울 중앙지검으로서는 부담이 안 될 수 없는 형편입니다.”
“아, 수원 지검은 해냈는데, 서울 중앙 지검은 뭐하냐는 지적이 있다는 말이군요.”
“네, 그렇습니다. 서울 중앙 지검은 수원 지검보다 인력이나 자원에서 월등한데, 만약 ND 그룹에 대한 고소 고발 건에 대해서 수원 지검만큼의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여론의 비난의 화살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
수원지검 검사장실.
“검사장님 계시나?”
검사장실 문을 확 열어젖히면서 송대기가 황급히 들어와 비서에게 물었다.
비서가 깜짝 놀라면서 벌떡 일어났다.
“아! 부장님. 검사장님 이제 막 출근하셨습니다.”
송대기는 비서의 말을 끝까지 들으려 하지도 않고 바로 김필중의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무슨 일이야?”
비서에게 말하는 송대기의 목소리가 워낙 컸던 탓에 김필중은 안에서 다 듣고 있었다. 송대기는 급하게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뭐야? 어디 불났어? 아침부터 왜 이래?”
비서의 말대로 이제 막 출근한 김필중은 양복 상의를 벗어 옷장에 넣고 있다.
김필중은 허겁지겁 방으로 들어온 송대기를 의아한 눈으로 보고 물었다. 평소 이러는 송대기가 아니라 내심 불길하다.
“ND 케미칼 본사가 털렸습니다. 검사장님.”
“뭐? 뭔 소리야?”
“압수 수색 중이랍니다. 해외 법인 비자금 조성 혐의랍니다.”
“압수 수색? 해외 비자금? 누구 맘대로?”
“중앙 지검입니다.”
김필중은 방금 전에 양복 상의를 집어넣은 옷장 문을 쾅 소리 나게 닫았다.
“중앙 지검에 누구?"
물으면서도 누구인지 거의 확신에 가까운 짐작이 들었다. 그놈이 아니길 바라고 물은 거다.
“한재민이랍니다.”
김필중이 책상을 주먹으로 쾅 내리쳤다.
“그··· 싸가지 없는 새끼가··· 기어이···”
ND 케미칼은 본사가 화성에 있어서 수원 지검 관할이다. 뿐만 아니라, ND 케미칼 해외 비자금은 대통령 백영기와 연결돼있다.
수사를 해서도 안 되고, 한다 해도 당연히 ‘호위 무사’ 김필중이 맡아야 될 사건이다.
그런데 통보 한 줄 없이 서울 중앙 지검이 ND 케미칼 본사를 털어버렸다. 김필중이 손을 쓰기 전에 미리 선수를 강하게 쳐버린 거다.
“더 자세히 말해봐. 지금 털고 있다고?”
“네. 도저히 손 쓸 겨를도 없이 기습적으로 밀고 들어왔다고 합니다.”
“기습적이라고? 지난번 최용구가 은하 테크론을 털 때처럼 말이야?”
“네. 맞습니다.”
“수원 지검이 하면 중앙 지검도 한다 이걸 보여주는 건가? 최용구가 하면 한재민이 지도 할 수 있다 이건가?”
“그런 거 같습니다.”
“한재민이··· 이 쥐새끼!”
김필중은 지난번 친구인 현성식 부장 판사가 했던 말이 기억이 났다. 한재민이 대통령의 뒤를 캐고 다닌다고 했던 말.
“알았어. 나가 봐”
송대기를 내보내고 김필중은 인터폰을 눌렀다.
“민정 수석실 대.”
조금 있다가 외실에 있는 비서가 인터폰을 통해 말했다.
— ‘검사장님, 민정 수석실입니다. 1번입니다.’
1번을 눌렀다. 민정 수석 유선진이 연결됐다.
”수석님, 김필중입니다. 제가 꼭 수석님을 봬야 할 일이 생겨서 급하게 연락드렸습니다.”
— ‘어, 김필중 검사장이 날 꼭 봐야 할 일이 생겼다고 하면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야겠지? 근데 내가 요즘 시간을 내기가 영···.’
“만나 뵙고 긴히 드릴 말씀이라서요. 20분이면 됩니다.”
— ‘긴히 할 이야기다? 음... 그럼 오늘내일은 도저히 안 되고... 모레 오후 안 될까?’
“괜찮습니다.”
— ‘그럼 정확한 시간은 비서가 알려줄 거요.’
“네, 감사합니다. 그럼 모레 뵙겠···’
‘딸깍’
상대가 말을 다 끝맺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리는 건 상대를 찍어 누를 때 쓰는 유선진의 전술이다.
“흥! 개~새끼. 아직도 이런 전술을 쓰다니.”
혼자 중얼거리면서, 김필중은 서랍 속 깊숙이 넣어뒀던 서류철 하나를 꺼냈다. 현성식과 대화를 나눈 이후, 한재민의 백그라운드를 조사해 모아놓은 서류들이다.
유선진을 만나면 이걸 들이밀 생각이다.
“유선진, 이걸 보고 어떻게 나오나 한 번 보자. 개~새끼”
***
“ND 케미칼 사건은 이렇게 밀어붙이면 안 됩니다. 수석님.”
김필중과 유선진이 청와대에서 만났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유선진은 김필중이 정말 웃겼다.
아무리 ‘검찰의 별’ 검사장이라지만, 수원의 지검장 밖에 안 되는 자가 민정 수석의 직접 지휘를 받아서 움직이는 서울 중앙 지검의 수사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하다니.
“그건 중앙지검장을 만나서 지검장끼리 할 말이지. 나한테 이럴 게 아니지.”
유선진은 일부러 김필중에게 보이라고 피식 웃었다.
‘김필중 니가 아직도 나하고 동급이라고 생각하나?’
유선진은 지금 청와대를 완전 장악했다. 한때는 ‘좌 선진 우 필중’이라고 둘이 패키지로 불렸지만 이제 김필중 따위는 ‘끕’이 다르다.
“수석님, ND 케미칼의 해외 자금을 조사하다 보면 자연스레 각하가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시지 않습니까?”
“허헛 참, ND 케미칼 압색 한 걸 가지고 그러는 모양인데, 은하 테크론도 압색 했었잖아? 그래서 각하가 위험했나? 여론이 이럴 때는 화끈하게 한 번 보여줘야 되는 거고, 그 담에 어물쩍 넘어가는 거지. 담당 검사 똑똑한 친구야. 그 정도도 조절 못 할 사람 아냐.”
“한재민 말입니까?”
“그래, 김 지검장도 알잖아? 그 친구 중앙지검 에이스야.”
“그 친구 이재훈과 연관된 친굽니다. 각하가 위험하다는 말씀은 그래서 드린 겁니다.”
“뭐? 이재훈?”
김필중은 가지고 온 서류철을 유선진에게 내밀었다.
“이거 뭐요?”
서류철을 보고 유선진의 눈이 씰룩했다. 미간을 찌푸린다.
“일전에 수석님께서 이재훈 프락치가 우리 검찰 내부에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마침 법원 쪽에서 들리는 소문이 한재민이 각하의 뒤를 캐고 다닌다고 해서 제가 한재민의 백그라운드를 조사해봤습니다.”
“각하의 뒤를 캐?”
유선진이 서류철을 신경질적으로 열어 읽어본다.
“보시다시피, 이재훈과 한재민은 미국 보스턴에서 출생해 필라델피아 와튼 스쿨에서 같이 공부하면서 형 동생 하면서 자란 사이입니다. 한재민은 검사 임용 후에도 이재훈과 같이 하버드 로스쿨에서 공부했습니다.”
유선진은 순간 뒷목이 뻣뻣해졌다.
‘이재훈 끄나풀’ 어쩌고는 유선진이 김필중과 최용구를 이간질하려고 띄운 거였는데, 도리어 김필중이 그걸 역이용해서 자신의 수족인 중앙지검의 에이스를 잘라내겠다고 한다.
역시 김필중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이것 보쇼, 김 검사장!”
우선 목소리부터 높여 놓고 본다.
“난 당신 밑에 있는 최용구가 이재훈을 안 죽였을 가능성에 대해서 말했어요. 근데 이재훈이 살아서 한재민 뒤에 있다? 아니 그러면 최용구가 이재훈을 안 죽였다는 거고, 그럼 이재훈 끄나풀은 최용구라는 말 아뇨? 혹시 둘 다라는 말이요? 이재훈 쥐새끼가?”
“최용구가 이재훈을 죽인 건 맞는 거 같습니다.”
“뭐? 지금 이게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야? 한재민이 이재훈 끄나풀이라며? 근데 이재훈이 죽은 건 맞다니?”
“한재민은 죽은 이재훈의 복수를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겁니다.”
“이봐! 김필중. 어떻게 아무 증거도 없이 이 따위···”
유선진이 김필중이 준 서류철을 들고 흔든다.
“학교 같이 나왔다는 자료만 가지고 검사를 끄나풀이라고 단정해? 그럼 나는? 나 목포에서 고등학교 나와서 서울대 나왔어. 그럼 나 김대중 끄나풀에 김영삼 쥐새끼야? 어떻게 이런 걸 가지고 사람을 모함을 해? 딴 사람도 아니고 말이야, 검사장 씩이나 돼가지고.”
유선진의 목소리 데시벨이 더 올라갔다.
“수석님, 지난번 은하 테크론 사건 때도 한재민은 은하 테크론과 로지텍의 합병에 대해서 사건 시작 훨씬 전부터 이미 내사를 하고 있었다는 정보도 있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그건···”
“그건 내가 시켜서 한 거야.”
흥분한 유선진이 김필중의 말을 짜르고 들어왔다.
하지만 오히려 말이 짤린 김필중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올라왔다.
‘이렇게 실토하시는군. 은하 테크론 기술 유출 사건의 배후는 유선진 당신이라는 것. 알았어. 한재민 끄나풀 놀이는 이쯤에서 그만하지. 내가 원하는 건 얻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