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를 죽인 검사에 빙의했다-38화 (38/70)

〈 38화 〉 중앙지검의 에이스 검사? 재벌 장학생이야.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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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훈이 벌떡 일어나 바깥 사무실이 보이는 내실 창문의 블라인드를 친다. 그리고는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나에게 더 바짝 다가앉는다.

“너 한재민이 알지? 서울 중앙지검 금조부에 있는 내 동기 새끼.”

‘금조부’란 금융조세 조사부의 약자.

주식, 탈세, 횡령 등 금융 범죄를 전담하는 곳으로 공안, 특수에 이어 요즘 검찰에서 뜨고 있는 부서.

“그 분 이름은 많이 들어봤죠. 중앙지검 에이스 검사잖아요?”

“에이스? 지랄하네. 그 새끼가 무슨 에이스냐? 에이스는··· 무슨 중간 계투도 안 되는 놈. 패전 처리나 될려나?”

“······”

“여하튼, 이 은하 그룹 사건이 원래 그 새끼 꺼였어. 금조부가 뭐하는 데냐? 재벌들 까라고 만들어놓은 데잖아. 근데 그 금조부에 있는 한재민이 새끼가 이걸 우리 쪽으로 넘긴 거야. 너 아까 한재민이가 뭐? 에이스? 지랄, 에이스라는 놈이 사건을 넘기냐?”

“그건 그렇네요. 근데 왜 넘긴 겁니까?”

“은하 테크론 본사가 수원에 있어서 우리 지검 소관이라나? 갖다 붙이기는 개~ 새끼. 그 새끼 은하에서 받아 처먹은 게 많아서 그래. 그 새끼 원래 유~명한 은하 그룹 장학생이거든.”

“장학생요?”

“새~끼 모른 척 하기는. 한재민이 그 새끼 연수원 때부터 이마에 ‘은하 그룹 장학생’이라고 붙이고 다녔어. 그 새끼 지금 중앙지검 금조부에 있는 것도 은하 그룹 장학생이라서···”

권성훈이 신나게 말을 이어가다가 갑자기 말을 멈췄다. ‘은하 그룹 장학생’ 부분에서 내 얼굴에 미소가 살짝 스쳤기 때문이다.

“아이~ 씨바!”

권성훈이 갑자기 고개를 옆으로 홱 돌리면서 헛웃음을 쳤다.

“아~ 놔~ 진짜~”

벌떡 일어서서 두 손을 허리춤에 붙이더니 홱 돌아섰다. 끓어오르는 분을 힘겹게 삭이고 있다는 듯,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심호흡을 두세 번 한다.

그리고는 다시 홱 돌아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삿대질을 한다.

“야잇 새꺄! 니네들 내 뒤에서 뭐라고 수군거리는지 다 알아. 근데 난 억울해. 난 그냥 와이프가 ND 그룹에서 잘 나가는 거뿐이야. 한재민이하고는 완전 다르다고. 스폰서 검사? 야! 내 스폰서가 누군지 아냐? 와이프야, 와이프. 그니까 나는 생계형, 아니다, 가족형 그래, 가족형 스폰서고. 한재민이 그 새끼는 완전 권력 지향형에 정경 유착형 스폰서란 말이야. 니들이 욕하는 정치 검사, 재벌 검사는 내가 아니고 한재민. 바로 한재민 그 새끼라고옷!”

이렇게 떠들어놓고도 권성훈은 분이 덜 풀리는 듯 한숨을 푹푹 쉬고 씨발 씨발 하면서 주변을 돌아다닌다. 난 뭐 그냥 기가 찰 따름이다.

“선배님. 아니, 제가 뭐랬다고 갑자기 이러세요?”

“웃었잖아, 이 새끼야.”

“네?”

“내가 한재민이 새끼가 장학생이라고 할 때 너 이 새끼 웃었잖아?”

“아··· 아 잘못했어요. 제가 사죄드리겠습니다. 죄송해요. 앉으세요. 앉아서 말씀하세요.”

내가 일어나서 손을 잡고 진정시키자 소파에 털썩 앉는다. 앉자마자 언제 그랬었냐는 듯 목소리를 싹 낮춘다.

“여하튼 난 아니라고 새꺄~. ND 그룹 장학생, 택도 없다고 인마. 엉?”

“알았어요. 예. 장학생 아니세요. 하던 얘기나 계속···”

“어디까지 했냐?”

“한재민···”

“아, 그래. 여하튼 한재민 그 새끼 은하 그룹 장학생인데··· 사건을 우리 쪽에 넘기고는 은하 그룹 김상덕 부회장한테 보고까지 했어.”

“네? 에이... 설마요. 그래도 검사가 재벌 그룹 비서실에 보고까지.”

“아~ 새~끼. 겨울에 눈 내리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넌 새끼야, 이래서 안 된다는 거야. 세상이 새끼 니 생각처럼 그렇게 에프엠대로 교과서대로 착착 돌아가는 거 같냐? 순진한 새~끼”

기가 찬다. 키도 크고 눈도 크고 코도 높고 얼굴도 뽀얀, 누가 봐도 고급스러운 미남형인 권성훈인데, 입만 열면 ‘새끼’ 연발이다. 도대체 문장 하나에 ‘새끼’가 몇 번이나 들어간 거야?

게다가 나보고 순진하다니. 내가 최용구 몸속에 들어와 있는 것만 아니면 이 눈 크고 얼굴 하얀 검사 놈한테 세상의 진짜 모습이 어떤지 일장 연설을 하루 종일이라도 해줄 수 있을 텐데.

“한재민이 새~끼 지 윗선에 떼를 막 쓴 거야. 지는 이 사건 못하겠으니 우리 쪽에 밀어버리자고. 윗선 새끼들도 은하 그룹 눈치 보이니까 그러자고 한 거고. 요즘 중앙 지검은 한재민 그 새끼 세상이래. 한재민이 그 새끼 위에 강민철 부장 말이야. 너 알지? 강 부장.”

“네, 알죠.”

“요즘 강민철 부장, 죽을라 그러잖아. 한재민이 그 새끼가 아예 지를 건너뛰고 지검장하고 직거래를 한대. 아! 그건 최 프로 너도 그렇구나? 김필중 검사장 하고? 흐흐흐”

나도 아까 권성훈이 했던 것처럼 벌떡 일어나 한숨 몇 번 쉬고 삿대질하면서 ‘난 아니거든요?’라고 하려다가 참았다. 연기력이 권성훈만 못할 거 같았기 때문이다.

“이 사건 말이야, 최 프로가 멋지게 해 주길 바래. 그래서 세상을 다 지 발가락 아래로 보는 한재민이 같은 나쁜 놈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줘야 돼. 이거, 정말 내 진심이야.”

권성훈이 가슴에 손을 얹고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웅변하듯 말했다.

“나 비록 니들한테 ND 그룹 스폰서 검사니 오해도 받고 있지만, 나 연수원 나올 때 말이야, 연봉 수억 보장해준다는 삐가뻔쩍한 로펌 제안 다 뿌리치고 검사를 선택한 사람이야. 왜 그랬겠어? 이 땅에 법과 정의를 바로 세우는데 조그마한 보탬이라도 되겠다는 일념, 그거뿐이었어. 돈과 권력에 영혼을 파는 한재민이 새끼 하고는 시작부터 달랐다고. 이 땅의 정의가 한재민이 같은 새끼 때문에 풍전등화인데 수수방관할 수 있어? 누군가는 나서야지. 안 그래?”

주먹을 불끈 쥔다.

“직접 하지 그러셨어요.”

찬물 촥~.

“머? 아이~ 새끼 진짜. 난 하고 싶었지~ 근데 검사장님이 나를 못 믿겠다는데 어떡하냐? 아~ 억울해. 증말.”

우는 시늉까지 한다. 그리고는 다시 주먹을 불끈 쥔다.

“최 프로. 잘 들어. 이번 사건의 본질은 한재민과 은하 그룹의 커넥션, 이거야. 다른 건 다 잔챙이야. 본질, 본질을 찔러야 돼. 언더스투드?”

“근데 아까 한재민 선배가 은하 그룹에 보고를 했다는 거···”

“증거 있냐고?”

권성훈이 씩 웃는다.

“네. 증거요.”

“있지. 한재민이 새끼가 꼼짝 못 할 스모킹 건.”

“스모킹 건요? 주세요.”

“싫어. 이 새꺄”

“네?”

기가 찬다. 검사가 증거를 안 주겠다니.

“내가 바본 줄 알아? 너도 나 백 프로 안 믿잖아. 나도 마찬가지거든. 스모킹 건이라고 줬는데 그걸로 니가 내 뒤통수를 칠지 어떻게 알아?”

“풉, 기가 차서. 알겠습니다. 잘해보겠습니다.”

“그래, 그럼 할 이야기 다 했다. 오늘은 딱 여기까지. 최 프로~ 잘해. 응? 후후후”

권성훈이 일어나면서 말했다. 나도 같이 일어나 내실 문을 열어주면서 인사한다.

“고맙습니다. 멀리 안 나가겠습니다.”

“새~끼. 멀리 나와야지. 선배가 나가는데. 싸가지 없는 새끼.”

권성훈이 내실에서 나가니 박수미가 벌떡 일어났다. 정화용은 일어나지 않고 못마땅한 표정으로 고개만 까딱한다.

“어~ 늘씬한 언니. 예의도 바르네. 이름이 뭐지?”

“저··· 박수미라고 합니다.”

“오~ 수미 씨. 그래, 우리 자주 인사하고 지내자고. 언제 시간 되면 밥이라도. 내가 살게.”

눈을 찡긋. 하얀 얼굴과 큰 키에 말쑥한 이목구비. 어디 하나 빠지는 데 없는 권성훈이 저러니 박수미도 얼굴이 발개진다.

‘쯧쯧··· 여하튼 여자들이란···’

정화용의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더 커졌다.

***

한재민.

어딘가에서 들어본 적 있는 이름···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했다.

최용구 몸속에 들어온 지 꽤 되긴 됐나 보다.

이제 이런 건 내 기억에 입력된 이름인지, 최용구의 뇌에서 나온 기억인지 헷갈린다.

이프로스(e-Pros)에 접속해 거기에 뜬 사진을 봤는데 증명사진만 봐서는 내가 아는 사람인지 아닌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뭐라고? 한재민을 만나보겠다고?”

송대기가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네. 은하 그룹 사건 최초로 인지해서 시작했던 사람이라고 해서 만나보···”

“야! 너 그 새끼 어떤 놈이지 알기나 해?”

성질 급한 송대기다. 사람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법이 없다.

“서울 중앙지검의 에이스라고는 들었습···.”

“에이스? 지랄하네.”

또 중간에 말을 짤렸다.

“일은 잘하지. 저~~엉말 잘하지. 근데 일만 잘하면 뭐하냐? 싸가지가 똥강아지 새끼 부랄 쪼가리보다 작은데. 그 자식 못써.”

서울 중앙 지검의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형사부 땅개 검사 송대기의 자격지심일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싸가지 없는 능력자··· 왠지 이 말을 들으니 한재민이라는 사람, 더 매력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새끼 만나서 뭐하게? 사건 물어보면 뭐 답이나 제대로 해 줄 거 같애? 은하 그룹 사건 우리 쪽에 넘긴 거 보면 그 새끼도 뭐 보나 마나 스폰지지. 돈만 쫙쫙 빨아 댕기는 스폰지.”

송대기의 저 스폰지 타령. 스폰서 검사를 비하해 말하는 그만의 표현이고, 그가 스폰서 검사라면 치를 떤다는 건 지난번 회식 때 소주 글라스 석 잔 들이키면서 충분히 인지했다.

하지만 난 한재민이라는 사람이 송대기가 말하는 ‘스폰지’든, 권성훈이 말하는 ‘은하 그룹 장학생’이든 1도 관심이 없다.

내 관심은 오로지 이 한재민이라는 자가 은하 그룹과 연결된 백영기의 비자금, 더 나아가 ND 그룹과의 관계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느냐였다. 또 알고 있다면 이 한재민이라는 자도 백영기의 충성파냐 아니냐였다.

“난 그 새끼 싸가지도 싸가지지만, 꼴에 미국 물 좀 먹었다고 말할 때마다 영어 틱틱 섞어 쓰는 게 영 밥맛이야. 참 그러고 보니 최용구 니도 나처럼 된장 마늘만 먹고 산 놈이지? 그럼 니도 한재민이 입에서 나오는 소리 말 첫마디만 딱 들어도 밥맛 떨어질 거다. 혓바닥이 완전 빠다야 빠다.”

“미국 유학파요?”

“아, 유학은 아니고 귀국파구나. 교포였는데 귀국했대.”

“네? 교포?”

이 말을 들으니, 한재민이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기시감이 최용구의 것이 아니라 내 기억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유학파래요?”

“어느 학교냐고?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하버드는 아니고··· 난 들어본 적도 없는 학굔데 되게 좋은 학교라고 사람들은 수근거리더만. 난 뭐 그런데 관심이가 일체 없으니까.”

“그러시군요. 여튼 뭐 갔다 오겠습···”

“아··· 기억났다.”

또 말을 중간에 잘랐다.

하지만 이번엔 나도 솔깃했다.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답이 나올 거 같았기 때문이다.

“와튼 스쿨. 경영학으로 이름 높다고 하던데? 넌 아냐? 그 학교?”

내가 아냐고? 그 학교에서만 학부에서 박사까지 거의 10년을 굴렀는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인사만 꾸뻑하고 부장 검사실을 나왔다.

더 말해봐야 중간에 짤리기만 할 거고 빨리 내 궁금증이나 해결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

서초동 서울 중앙 지검 청사.

내가 만약 죽지 않고 살았다면, 백영기의 해외 비자금 조성 총 설계자 혐의를 받는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했을 것이다.

중앙 지검의 에이스 검사라는 금융조세 조사부 한재민.

역시 내가 죽지 않았더라면 사건은 이 에이스 검사에게 배당됐을 것이고, 난 검사 후배로서가 아니라 피의자로서 한재민과 만났을 수도 있었을 거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한재민이라고 합니다.”

검은색의 동그란 뿔테 안경. 크지 않지만 똘망똘망한 눈. 눈썹까지 가지런하게 일자로 내린 앞머리. 살 없이 갸름한 얼굴. 가만히 있어도 눈웃음을 치고 있는 듯한 인상.

내 직감이 틀리지 않았다.

한재민.

최용구가 아니라 내 기억 속에 있던 이름이 맞았다.

한재민과 함께 보냈던 시절이 유튜브 비디오가 연속 재생되듯 눈앞에 쭉 흘러갔다.

내가 와튼 스쿨에서 박사 과정에 있던 시절, 이제 막 대학에 들어왔던 풋풋했던 한재민.

— ‘재훈이 형, 나 그냥 반말해도 되지?’

— ‘안돼, 임마. 니하고 내가 나이 차이가 얼만데 반말을 해?’

— ‘피~ 하면 어쩔 건데? 근데 사람들이 나보고 이재훈 껌딱지래. 맨날 형만 따라다닌다고.’

— ‘껌딱지? 하하하.’

— ‘껌딱지니까 반말해도 되지? 헤헤헤’

며칠 밤을 새우며 논문을 준비하는 내게 몸 생각하라면서 홍삼을 내놓았던 한재민.

여기서 이렇게 만나다니.

나는 죽었는데···.

너는 변함없이 그대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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