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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인 검사에 빙의했다-37화 (37/70)

〈 37화 〉 여하튼 봉급 받고 사는 놈들은 믿으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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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덕이···”

은성표 회장이 김상덕을 이름으로 부르는 건 거의 10년 만이다. 항상 ‘김 부회장’이었다.

“네, 회장님.”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김상덕은 지금 이름으로 불리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안다.

“자네가 내 옆에 온 게 20년이 넘었지? 우리 은하 그룹에 온 건 40년이 넘었고.”

“···”

“내가 자네한테 섭섭하게 했었나?”

“회··· 회장님···”

“내가 준 돈으로는 부족했었나?”

“그··· 그게 아니라···”

“들어보니 그거 다 합쳐도 꼴랑 60억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하던데, 집 다섯 채에 60억이면 서울보다 훨씬 싸잖나. 뭐 여기서 집을 여러 채 사면 세금이 무거우니 그랬을 수 있겠지. 어쨌든 나하고 상덕이 사이가 짧게는 20년이고 길게 보면 40년인데··· 60억··· 훗, 그 정도야 상덕이 자네가 필요하다 했으면 난 그냥 줄 수도 있었는데 말이야.”

“자··· 잘못했습니다. 회장님···”

김상덕이 소파에서 내려와 바닥에 무릎을 털썩 꿇었다.

“잘못하긴, 무슨. 그게 상덕이 자네 잘못이겠나. 나이가 든 탓이지. 사람이 나이가 들면 쓸데없는 욕심이 더 많이 생기는 법이지. 후후후, 세월이 덧없이 흐른 탓이지. 자네 탓 말게.”

“흑··· 흑흑흑”

김상덕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지만, 은성표는 김상덕을 본체만체 소파에서 일어나 골프 퍼팅 연습기로 걸어갔다.

‘틱~’

퍼팅 연습을 하는 은성표를 한참을 보고 있던 김상덕이 큰절을 올렸다.

“회장님, 부디 건강하십시오.”

“오호~ 오늘은 퍼팅이 잘 들어가는구먼. 필드로 나가볼 때가 됐나? 허허허.”

은성표에게 김상덕은 이미 이 방에 없는 사람이다.

김상덕은 그대로 일어나 방을 나갔다.

김상덕이 나가자마자,

“개 놈의 자식!”

은성 표는 퍼터를 바닥에 내동댕이 치고는, 아까 앉았던 소파로 돌아와 앉았다.

“버러지 같은 새끼. 이래서 봉급 받고 사는 인간들은 한 놈도 믿으면 안 된다 했던 거야. 내가 그걸 잊어버리다니. 으··· 나도 늙었군, 늙었어.”

소파 옆에 있는 인터폰을 누른다.

“들어오라고 해.”

지시를 받고 들어온 사람은 박정철이다.

“회장님, 테크론 인사팀 전무 박정철입니다.”

머리가 바닥에 닿을 만큼 숙여 인사한 박정철은 은성표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를 못 한다.

은성표도 박정철을 가까이 오라고 할 생각이 없다. 멀찍이 세워두고 말한다.

“박정철. 자네 이름 몇 번 들어봤어.”

“네··· 회장님.”

“김상덕이 그거 알아낸 놈이 검찰 놈이라는 게 사실이야?”

“네, 그렇습니다. 회장님”

“요즘 찰이 많이 똘똘해졌구만. 옛날엔 입에 넣어줘도 못 처먹는 놈들이었는데, 이제는 지들이 찾아다니면서 처먹고 다닌다? 엄청난 발전이네.”

“···”

“그래 그 검사 놈은 뭐하던 놈이야?”

“강력부에 주로 있었던 자인데···”

“강력부? 깡패 양아치나 잡던 놈이었단 말이야? 이름이 뭐야?”

“최용구라고 합니다.”

“최용구라, 한 번 구슬려는 봤어?”

“그게··· 완전 꼴통··· 아 죄송합니다. 앞뒤가 꽉꽉 막힌···”

“돈이 안 통하는 놈이라··· 그런 놈 있지. 그런 놈은 와인이나 다른 어떤 걸 갖다 안겨도 소용이 없지. 약점을 만들어서 옭아 매기 전에는 우리 편 만들 수 없지. 약점은 있나?”

“약점··· 찾아보겠습니다.”

“아니야, 됐어. 내가 직접 한 번 보지. 데리고 와.”

“네? 여··· 여기로 말입니까?”

“그래, 여기. 내 앞에 딱 갖다 놔. 지금은 저렇게 날 뛰어도 어떤 속으로 저러는지. 내가 직접 그놈 눈을 들여다봐야겠어.”

“아···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리고 김상덕이 말이야. 라스베가스 말고 더 있을 거야. 그런 거 꼬불치는 놈이 60억? 흥! 그런 푼돈이나 먹겠다고 거기까지 가서 그랬을 리 없어. 더 파헤쳐서 가지고 와.”

“알겠습니다.”

“회장인 내가 자네한테 주는 첫 번째 미션이야. 실수 없도록 해. 나가봐!”

회장님으로부터 동시에 미션을 두 개씩이나 받았다. 박정철이 스피링 튕기듯 튀어서 방을 나갔다.

박정철의 뒷모습을 보면서 은성표가 중얼거렸다.

“나가는 꼬라지 하고는. 저 자식도 어쩔 수 없는 머슴 종자군. 저 놈도 믿을 수 없어. 이 일만 정리되면 저 놈도 끝이야.”

***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H-TV 뉴스 속봅니다. 청와대가 오늘 대통령 비서실장을 교체한다고 전격 발표했습니다. 오민하 비서실장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직무 수행이 어렵다고 대통령에게 직접 사의를 표했다고 하는데요, 후임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고 조만간 인사추천위원회를 열어 인선 작업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

“오민하 그 영감탱이가 그런 짓을 하고 있을 줄은··· 개~새끼.”

백영기가 유선진을 옆에 앉혀놓고 씩씩대고 있다.

“그래도 야당하고 언론 놈들이 알기 전에 빨리 처리했으니 다행입니다. 각하”

“전부 팔았대?”

“네. 각하”

“땡처리 했겠구만.”

“손해 보고 팔았다 합니다.”

“손해를 봤든 깡통을 찼든 그건 내가 알 바 아니고, 오민하 그 영감탱이 다시는 내 근처에 얼씬도 못 하게 만들어. 어떻게 지 주인 아들 일 하는 데 얹혀서 지 주머니 불릴 생각을 해?”

이 말을 하면서 백영기가 유선진을 흘끗 째려본다. 너도 그럴거지? 아니, 이미 많이 챙겨놨지? 라는 뜻이다.

눈치를 챈 유선진이 슬그머니 주제를 바꾼다.

“각하, 비서실장 후임 인사를 서두르셔야 할 거 같습니다.”

“임자가 하면 안 돼?”

“아, 저는 적절치 않습니다. 각하”

“왜?”

백영기가 미간을 찌푸리면서 물었다.

“그럼 민정 수석도 후임을 정해야 합니다. 지금은 인사를 최소화하시면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넘어가시는 게 좋습니다. 인사가 많아지면 야당과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고 시끄러워집니다.”

“그래? 그 말도 일리가 있네.”

백영기는 이번 기회에 유선진을 비서실장으로 올리면서 김필중을 민정 수석으로 놓고 싶어서 던진 말이었다.

유선진도 백영기의 속마음을 모를 리 없다. 그래서 더더욱 지금 민정 수석을 내놓을 수 없다.

김필중에 대한 경쟁심 때문만은 아니다.

검찰 내부의 두 개 실세 라인인 공안과 특수, 두 라인 중 공안 라인의 대장은 유선진이고 특수 라인의 선두 주자는 김필중이다. 지금 민정 수석을 김필중에게 넘기면 자기만 쳐다보고 있는 공안 라인 후배들 볼 낯이 없다.

“황상철로 하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황상철? 그게 누구야?”

“지금 인천지검 지검장으로 있는 친구인데 공안통입니다.”

“공안통?”

정치 9단으로 불리던 백영기, 라인에 예민하다. 유선진이 자기 휘하인 공안 라인으로 청와대를 채우려 한다는 걸 대번에 눈치챘다.

하지만 유선진 눈치도 9단 급이다. 바로 찌르고 들어간다.

“각하 걱정하시는 게 뭔지 잘 압니다. 저도 공안 쪽인데 비서실장도 공안 쪽을 두면 밸런스가 깨지지 않느냐는 것 아니십니까?”

“응? 어··· 그런 것만은 아니고···.”

“각하, 정권 후반기이고 선거가 다가온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검찰 공안을 더 강하게 쥐시면 쥐실수록 정국 주도권을 더 세게 쥐실 수 있습니다.”

“음··· 그렇겠군.”

백영기는 짧은 순간에도 수십 가지 경우의 수를 계산해봤다.

청와대를 유선진 라인으로 채우는 게 굳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싶다.

큰 선거가 코 앞이다. 국회의원, 지자체장들이 공천이야 계파 싸움이야 치고받기 시작할 것이고, 차기 주자 자리를 놓고 줄 서기와 헐뜯기가 본격화될 거다. 정치판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정권 재창출을 위한 ‘정치 공학’이 절박할 때는 오히려 청와대를 하나의 라인으로 꾸려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어느 선거보다 치열한 선거를 치르고 이 자리에 올라온 백영기다. 정권 후반으로 갈수록 선거와 정치 사범을 다루는 공안을 틀어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보다 잘 안다.

공안통 비서실장에 공안 라인 수장 민정 수석.

그림이 좋다.

“좋은 생각이야. 민정 말대로 하자고. 황상철 비서실장. 이름도 좋네.”

“그럼 그렇게 추진하겠습니다. 각하.”

고개를 숙이는 유선진의 입꼬리가 쓰윽 올라갔다.

***

“똑똑똑, 들어가도 돼?”

권성훈이 내 방에 왔다.

내가 ‘은하 그룹 비자금 사건’에 대해 물어볼 게 있다 했는데, 웬일인지 권성훈이 직접 설명해 준다면서 내 방으로 왔다.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다.

그런데 왔으면 평소처럼 문을 덜컥 열고 들어오면 될 걸, 어울리지 않게 입으로 ‘똑똑똑’ 은 뭔지. 문 옆에 앉은 정화용이 못마땅하다는 눈초리를 권성훈에게 쏘았다.

“네, 어서 오십시오.”

내가 책상에서 일어나 소파로 나왔다.

“오~ 독고다이 최 프로께서 친히 나에게 컨설팅을 요청하신다는 건 무슨 뜻? 정말 은하 그룹을 저승으로 보내시기로 작정을 하셨다는 말씀? 후후 맞아?”

권성훈이 소파에 앉으면서 물었다.

권성훈은 줄곧 나를 ‘최 프로’라고 부른다. 영어로 검사를 뜻하는 ‘프로시큐터(Prosecutor)’의 앞부분만 딴 거고, 검사들이 서로를 부를 때 이렇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권성훈이 특히 이걸 즐겨 쓴다.

“선배님이 하기 싫어서 넘기신 사건인데 열심히 해야죠.”

“이 새끼가 감정을 담아도 그렇게 촌스럽게 담냐? 독고다이 아! 이제 열녀던가? 흐흐흐.”

그런데 권성훈의 관심은 사건에 있는 것 같지가 않다. 소파에 앉은 이후로 줄곧 소파 옆 책상에 앉은 박수미를 흘끗거리면서 보더니, 좀 있다가는 아예 시선 고정이다.

“여보세요~. 거기 언니. 검사님이 오셨는데, 물 한 잔 대접 안 해?”

하늘 같은 검사님 말씀. 박수미는 긴장한 얼굴로 벌떡 일어났고, 권성훈은 바로 상체를 살짝 뒤로 젖히면서 박수미의 몸을 아래 위로 쓰윽 훑어본다.

“오~ 좋은데?”

윙크를 찡긋.

박수미 옆에 앉아 있던 정화용이 그걸 보고 박수미의 팔을 끌어 자리에 앉혔다.

“박수미 씨는 하던 일 계속 해. 차는 내가 가져다주면 돼.”

“어? 정 계장이 가는 거야? 야~ 여긴 남녀평등 구역이네. 선진적이야? 응? 흐흐흐. 근데 거기 언니? 이름이 뭐야? 처음 보는데··· 언제 왔어?”

“선배님, 일 이야기하시죠.”

내가 정색을 했지만, 권성훈은 아랑곳없다. 박수미 얼굴과 몸만 이리저리 살펴볼 뿐이다.

“일? 나도 하고 싶지. 근데 나는 입이 마르면 일 이야기가 안 나오거든. 흐흐흐.”

이때, 정화용이 박수미를 향한 권성훈의 시선을 몸으로 가리면서 커피를 앞에 놓았다.

“이거 뭐야? 자판기 커피? 촌스럽게 이런 거밖에 없어?”

“촌스럽고 싶지 않으면 요 앞 스벅 가시든가요”

정화용이 쏘아붙였다.

“뭐··· 뭐야? 아니 이게 어디서···”

권성훈이 정화용을 째려보면서 한바탕 하려고 했는데, 정화용이 어느새 자기 책상 서랍 속에서 초콜릿 몇 개를 갖다 줬다.

내가 지난번 샌프란시스코 출장 갔다 오면서 선물로 사 온 기라델리 초콜릿이다.

“이거 뭐야? 기라델리? 정 계장, 이런 걸 숨겨 놓고 있었어?”

초콜렛을 보고 금방 수그러드는 권성훈. 한 마디 더 한다.

“저~기 언니, 쎅시한 언니. 이런 거 좋아할 거 같은데, 같이 와서 좀 먹지? 응?”

도저히 못 봐주겠다. 참다 못 한 내가 벌떡 일어났다.

“선배님, 안에 들어가서 말씀하시죠.”

“왜? 난 여기가 좋은데~?”

권성훈이 박수미에게 윙크를 찍 하면서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내실로 들어가 문을 열고 섰다.

“에이~ 짜식. 그냥 여기서 하지. 이쁜 언니~ 그럼 나중에 봐~”

권성훈이 내실로 따라 들어왔고, 나는 기다리고 있다가 내실 문을 쾅 닫았다.

“깜짝이야. 문 좀 살살 닫아. 그래, 최 프로, 뭐가 그리 궁금하십니까요?”

“사건 자체보다는··· 이 사건과 얽힌 주변 상황에 대해서요.”

“뭐? 주변 상황? 야~ 독고다이 최용구, 열녀 되시더니 많이 발전했네.”

“뭐가요?”

“내가 평소 우리 최 프로에게 아쉬웠던 게 딱 바로 그거였거든. 사건보다는 사건을 둘러싼 주변 상황을 먼저 캐취 하는 넓은 시야. 근데 최 프로가 이제 철 좀 드시는구먼. 후후후”

“제가 듣기로 이 은하 그룹 사건은 서울 중앙 지검에서 최초로 인지해서 시작했다고 하던데.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알고 계십니까?”

“그렇지. 그게 중요하지. 시작부터 말해주지. 그 창대한 시작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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