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를 죽인 검사에 빙의했다-36화 (36/70)

〈 36화 〉 역시 부동산은 급매물이지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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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리리리~’

아직 아침 7시도 안 된 시간에 내 전화벨이 울렸다.

민석이는 아직 자고 있고, 아내는 벌써 일어나서 부엌에서 아침 준비를 하고 있다.

요즘 아내, 엄밀히 말해 최용구의 아내는 자상한 성격으로 돌아온 남편 덕분에 나날이 행복감 속에 살고 있다. 좋았던 신혼 때로 돌아온 것 같다고까지 말한다. 그래서인지 얼굴 피부가 더 뽀얗게 됐고 싱글 생글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이 시간에 누가 전화를?”

폰 스크린에 뜬 번호를 보니 모르는 번호다. 보통 이런 전화는 받지 않는 편인데, 민석이가 깰까 봐 침실을 나오면서 얼른 받았다.

“여보세요”

전화를 귀에 대고 베란다로 걸어가는데, 부엌에서 아침 준비를 하던 아내가 나를 보고 생긋이 웃어준다. 나도 손으로 허공 키스를 날렸다. 닭살 돋는 짓이지만 요즘은 집에 오면 아내에게 이것보다 더 한 짓도 한다.

— ‘전화 안 받으실 줄 알았는데 받으시는군요.’

걸걸한 가래 낀 목소리.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인데 잠이 덜 깨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누구신지요?”

— ‘허허 그 새 내 목소리를 잊으셨나요? 실망이군요. 최용구 검사님.’

이제야 기억났다. 은하 테크론 인사팀장 박정철.

“웬일이십니까? 전무님께서. 검새한테 전화를 다 주시고.”

— ‘제가 검사님께 전화를 드리는 이유가 별 거 있겠습니까?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은병진 부회장 구속 건에 대한 거라면 만날 생각 없습니다.”

— ‘후후, 그 건은 이미 지나간 일인데, 내가 그런 걸로 검사 나리를 만나서 뭘 하겠습니까? 나 이래 봬도 미래지향적이 사람입니다. 검사님과 나, 우리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대한민국 최강 기업 은하 테크론의 인사팀장을 너무 아래로 보시는 거 아닙니까?’

갤갤거리는 가래 낀 목소리로 지껄이는 거들먹거리는 말 더 듣기 싫었다.

“어디서 언제 보실까요?’

— ‘지금 보시죠. 집 앞에 와 있습니다.’

베란다 아래를 보니 주차장에 검은색 제네시스 승용차 한 대가 서있었다. 윈드실드 너머로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남자가 박정철이다.

“풉, 3류 스파이 영화를 많이 보신 모양이군요. 이런 상황을 연출하시다니. 좀 많이 유치합니다. 전무님.”

난 전화를 끊고 최대한 시간을 끌어 천천히 내려갔다.

아내가 차려주는 아침까지 다 먹고, 아직 자고 있는 민석이 볼에 뽀뽀도 잊지 않았다. 아내에게는 오랜만에 모닝 딥키스를 해줬고.

박정철의 차에는 일부러 뒷좌석 문을 열고 들어가 앉았다.

“왜 이렇게 늦게 오는 겁니까? 전화한 게 언젠데. 거의 한 시간을 기다렸어요.”

차를 타자마자 박정철이 신경질을 있는 대로 내면서 쏘아붙였다.

그럼 내가 지가 오란다고 버선발로 뛰어올 줄 알았나?

“사랑하는 아내가 차려주는 밥은 먹고 와야죠. 하루에 겨우 한 번 얻어먹는 제대로 된 식사인데 그것도 못 먹으면 안 되죠. 아, 전무님은 식사는 하셨습니까?”

“흥! 검사님 부부 금슬이 좋으신 모양이군요. 의외군요.”

“부부 금슬이야 남자 하기 나름 아니겠습니까? 제가 그걸 좀 잘합니다. 후후”

“흠···”

“그래 무슨 일이신지요? 꼭두새벽부터. 저 출근 시간이 다 돼가는데.”

“안 그래도 출근 시간 전에 만나서 말하려고 이렇게 일찍 온 건데 늦게 내려오는 바람에···”

“뭐 그럼 이 차로 절 데려다주시면 되겠군요. 가면서 이야기 들으면 되죠.”

“뭣, 뭐라구요?”

“가시죠. 검찰청 가는 길은 아시죠? 네비 찍으시죠. 이 정도 차면 음성으로 다 되지 않나?”

난 뒷좌석에서 다리를 척 꼬면서 말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파는 법이지. 난 목 안 마르고 아내가 차려준 아침도 먹고 와서 배도 부른데 지가 어쩔 거야.

“끙···”

대한민국 최강 기업 전무가 졸지에 일개 검새 나부랭이의 운전기사가 돼버리는 순간이다.

“그래, 이렇게 꼭두새벽부터 남의 집 앞에까지 오셔서 하시고 싶은 말이 뭡니까?”

박정철이 룸미러로 나를 흘끗 본다.

난 일부러 박정철이 룸미러에 잘 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앉았다. 무릎 위에 얹은 다리를 얹고 앉은 거만 떠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극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음··· 꼭 앉아있는 폼이 재벌 회장 같군.”

박정철이 혼잣말을 나한테도 다 들리게끔 큰소리로 했다.

후후, 맞는 말이다. 사실 나 죽기 전에는 재벌 회장처럼 하고 다녔던 사람이니까.

“검사님.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이번 사건··· 이쯤에서 끝내시는 게 좋을 겁니다.”

“오~ 협박하시는?”

“협박으로 들리십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근데 검사님은 노후 대책 있으십니까?”

“헐··· 천하의 은하 테크론 인사팀 전무님께서 저 같은 조무래기 검새의 노후 설계까지 하십니까? 혹시 테크론이 보험 사업도 하나요?”

“나나 검사님이나 조직에서 시키는 대로 하고 사는 사람들 아닙니까? 근데 그 조직이 검사님을 평생 보살펴 줄 것도 아니고 중년 이후에··· 부부 금슬도 좋으시다고 하셨는데, 그 좋은 부부 사이 늙어서도 계속 좋으시려면 돈이 있으셔야 할 텐데. 빤한 검사 봉급에 모아 놓은 돈도 없을 거고 우리 은하 그룹하고 이렇게 척 지면 나중에 노후에 어떡하려고 이러는 겁니까? 대한민국 땅에서 은하 그룹이 싫어하는 변호사한테 누가 사건을 준답니까? 이혼 소송이나 부동산 중개나 하면서 사시렵니까?”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구요. 하고 싶은 말이 그겁니까? 나 노후 걱정?”

“이 사건 이쯤에서 접으시죠. 은병진 부회장 횡령 기소만 하는 걸로 해주시고 더 확대는 맙시다. 은성표 회장님께서도 이 정도로 끝낸다면 더 이상의 확전은 안 하겠다는 의사이십니다.”

“풉! 그렇게 안 하면요?”

“우리 은하 그룹의 능력을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큰 거 한 방 이미 준비하고 있고 방아쇠만 당기면 됩니다. 검사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윗선을 겨누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럼 그 방아쇠 땡기면 되지. 나한테 왜 이러는 겁니까?”

“우리 회장님께서 최용구 검사 같은 조무래··· 아니 실무 검사들은 건들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계셔서 그렇지, 마음만 바뀐다면 얼마든지 검사님도 날릴 수 있습니다.”

“뭐 그러시든지요.”

“흐유~ 참··· 이대로 쭉 가시겠다는 겁니까?”

“네, 이대로 쭉 가시면 검찰청이구요. 저기 내려주시면 됩니다.”

이때, 박정철에게 전화가 오면서 차량 내부 디스플레이에 이름이 떴다.

‘부회장님’

순간 룸미러로 나를 흘끗 보는데,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전화를 지금 당장 받아야 하는데 내가 뒤에 앉아있으니 그럴 수도 없고···.

“빨리 받으셔야 될 거 같은데요? 후후. 나는 그냥 여기 내려서 걸어가죠.”

박정철이 급하게 전화를 ‘폰 통화’로 돌리면서 폰을 들었다.

“거 운전 중 핸즈 프리로 안 하고 통화하면 걸립니다. 더군다나 검사 앞에서”

“이거 나원참.”

급하게 차를 세웠고 나는 내렸는데, 박정철은 전화를 받느라 나를 볼 겨를도 없다.

“전무님 고맙습니다. 검사한테 출근 차량도 제공해주시고.”

전화기 너머 김상덕에게 들리라고 일부러 큰소리로 말했다.

박정철이 인상을 쓰면서 폰 마이크 부분을 손으로 얼른 가린다.

요즘 폰 마이크 성능이 얼마나 좋은데 그걸 손으로 가린다고 안 들리겠나. 전자 회사 임원이 그런 것도 모르나.

“네? 부회장님. 그게 무슨 말씀··· 네?”

차 문을 닫기 전에 들리는 이 정도 말만 들어도 폰 너머로 김상덕이 무슨 쌩소리를 지껄이고 있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후후, 라스베가스에 출장 보냈던 정화용이 오늘 돌아온다 했던가?

내가 시킨 대로 일을 꽤 잘 한 모양이다.

***

“뭐야? 오민하 실장하고 김상덕이가 이웃사촌? 그것도 미국에서?”

출근하자마자 난 김필중에게로 갔고 그간 조사한 내용을 모두 보고했다.

“네. 서로 이 사실을 알고 있는지는 아직 확인 못했습니다. 하지만 확인하려 한다 해도 어차피 둘 다 부인할 거니까 의미는 없을 거 같습니다.”

“그러니까 뭐야, 전태기 그 새끼가 오민하 실장 부동산 심부름을 하러 라스베가스를 들락거렸다는 거야?”

“그렇습니다. 우리 예상대로 도박 매춘과는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 뭐 일은 더 큰 일이긴 합니다만.”

“씨바, 그니까 오민하 실장 이 영감탱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은하 그룹이 각하 둘째 아들한테 큰돈 보내려고 할 때 거기에 올라타서 지는 라스베가스에 딴 주머니 차고 돈 빼돌렸다는 거야? 그것도 부동산을?”

“네”

“총 몇 채야? 가격은 얼마야?”

“다섯 채고 현재 시가는 총 오백만 불 정도입니다. 한화로 60억입니다.”

“유··· 육십억? 개~~~ 새끼. 세상에 믿을 새끼가 정말 한 새끼도 없네.”

후후, 세상에 믿을 새끼 없는 거 이제 알았나? 김필중.

“지검장님, 오늘 아침에 박정철이 저한테 와서 은하 그룹이 큰 거 한방을 준비하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하면서 타겟은 최고 윗선이라고 했습니다.”

“뭐? 그 개~새ㄲ 쿨럭쿨럭”

너무 소리를 질러대는 바람에 사래가 든 모양이다.

“큰 거 한방에 최고 윗선이라면 오민하 실장일 텐데 아마 이거였던 거 같습니다.”

“만약 그거였다면 박정철이 그 새끼는 전태기한테 들었겠지. 둘이 친구라며?”

“그렇습니다.”

“음···”

김필중이 뭔가 깊이 생각하는 듯하더니 나를 홱 올려다보면서 묻는다.

“근데 최용구 니는 이거 어떻게 알았어?”

실눈을 가늘게 뜬다.

“라스베가스에는 제가 아는 사람들이 좀 있습니다. 교포들로요.”

“뭐? 교포?”

“이재훈 죽이러 갔을 때 몇 명 알아뒀던 사람들이죠.”

후후, 이렇게 애매하게 말해줘야 김필중 니 마음속에 의심이 계속 커질 것이다. 의심을 계속 키워라. 그 의심에 니가 잡아먹힐 때까지.

“그··· 그래··· 알았어. 나가봐.”

내 시선을 피하면서 말을 더듬는 김필중을 남겨두고 지검장실을 나왔다.

나오면서 한 번 돌아봤는데 김필중은 또 담배를 꺼내 물고 있었다.

짜식 또 쫄았군.

***

“야! 이 박정철 병신 같은 놈. 누가 너보고 라스베가스에 있는 부동산을 까라 그랬어? 엉?”

김상덕이 박정철을 불러놓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댄다.

“네? 아니... 지난 주말에 분명히 보고 드렸던 내용입니다, 부회장님. 적의 변방이 아니라 중심부를 까야한다고 하셨고, 조무래기는 무시하고 제일 윗선을 때려야 한다고 하셔서”

“이··· 이 자식이 지금 나한테 개기는 거야?”

“네? 아니 개기다니요. 억울합니다. 분명히 지난주에 제가 오민하 비서실장의 부동산을 까겠다고 말씀드렸었고, 그때는 저한테 잘했다고 칭찬까지··· 헉”

재떨이가 날아왔다.

‘쨍그랑’

잽싸게 피해서 맞지는 않았지만, 머리가 깨질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박정철 머리 대신 뒤에 있던 진열장의 유리가 박살이 났다.

“내 말에 토 달지 이 새꺄! 오민하 부동산 비리 까는 거 당장 홀드해!”

“네? 홀드... 아···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박정철은 더 있다가는 정말로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부회장실을 뛰어서 도망쳐 나왔다.

***

내 방으로 돌아온 나는 다시 캐쉬 넥서스(Cash Nexus)에 접속했다. 채팅 상대는 당연히 그레이엄이다.

— ‘하이, 그레이엄. 좋은 껀수가 하나 생겼어.’

— ‘엉? 그래? 뭔데? 혹시 그 부동산이야?’

— ‘하하 눈치 빠른데? 맞아. 니가 뽑아줬던 리스트에 있는 주택들 중에서 10개가 조만간 급매물로 나올 거야. 늦어도 1주일 내에. 더 빨리 나올 수도 있고. 가격은 최소 시가보다 20% 싸게? 많게는 반 값에라도 나올 수 있어. 슈퍼 퀵 세일(Super Quick Sale)이거든. 그 10개 주택 리스트는 방금 전에 첨부로 쏘았어.’

— ‘와우~ 20%도 많은데 반값씩이나? 10개 중에 몇 개가 내 꺼야?’

— ‘너 다섯 개, 나 다섯 개 하면 되지 않을까? 공평하게.’

— ‘하하 그게 공평한 거야? 나한테 횡재지. 오케이. 그렇게 하지. 대신 모든 복잡한 행정 작업은 다 내가 할 테니 스티브 너는 맘 놓고 계셔.’

— ‘땡큐. 앗참. 내 꺼 다섯 개 중에 한 개는 심덕환한테 줘. 내가 줬다고 말하지 말고. 회사에서 주는 보너스라고 하면서.’

— ‘심덕환? 오~ 그래 그렇게 할께.’

— ‘그럼 안녕~’

채팅창을 닫은 뒤, 난 헤드레스트에 머리를 기대고 천장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역시 부동산은 급매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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