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 재벌 비서실장에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이거 월척이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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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그 자식, 저한테 돈을 주겠다고도 했습니다. 지 재산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더 줄 수도 있다고, 그러니 제발 죽이지만 말아달라고, 살려만 달라고 저한테 매달리더군요. 어린애처럼 질질 짜면서.”
아, 그때의 그 말 못 할 모멸감. 온몸에 소름이 돋고 머리털이 쭈뼛 서는 느낌이 들었다.
“그··· 그래서··· 뭐랬나?”
뭐라고 말했었냐고? 그래 하는 김에 다 하자.
지금만큼은 정말 완벽하게 최용구가 돼주자.
최용구 자식이 나를 죽일 때의 목소리와 표정, 몸짓을 최대한 재현해주자.
난 마치 지금 김필중이 그때의 나 이재훈인 듯 김필중의 죽일 듯이 노려보면서 말했다.
“이재훈! 니가 지금 나 최용구한테 돈을 주면서 목숨을 구걸하고 있는 이 순간! 이 순간이 바로 니가 가진 돈은 아무짝에도 쓸 모 없는 물건이라는 증거야. 권력을 가진 나에게 돈을 가진 니가 굽신거리고 있잖아? 넌 지금 권력이 돈보다 훨씬 강하다는 걸 증명하고 있다고. 그걸 보면서 내가 너의 그 약해빠진 돈을 받아야겠어? 후후, 난 너의 그 돈보다 훨씬 강한 권력, 권력을 가질 거야!”
살기 등등한 내 눈빛에 천하의 김필중도 질리는 듯 뒤로 흠칫 물러섰다.
“···라고 말해줬습니다.”
“음···”
김필중이 안 피던 담배를 찾아 꺼내 문다.
새끼, 쫄았다는 뜻이다.
난 여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더 이상은 의미 없다.
김필중 머릿속에 의심이 한 번 들어앉아버린 이상, 그건 결코 없어지지 않을 거다.
더군다나 난 그 의심 없애보겠다고 애쓸 필요도 없다.
의심이란 원래 하는 쪽이 갑이 될 수밖에 없는 게임이다. 아니라고 증명하려는 쪽은 그러면 그럴수록 수세에 몰리고, 의심하는 쪽은 더 큰 칼을 쥐게 되는 그런 게임이다.
난 김필중의 그 따위 의심 게임에 끌려 들어갈 생각이 없다.
오히려 난 김필중이 혼자 의심을 키워가면서 그 의심에 더욱 집착하게 만들 생각이다. 집착은 언제나 사람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김필중도 어차피 내 복수 버킷 리스트에 있는 인간에 불과하다. 지가 키운 의심에 지가 질식해 판단이 흐려지면 내가 김필중을 처리하는 것도 더 쉬워질 것이다.
“지검장님, 아까 전태기가 라스베가스에 간 이유가 이상하다고 하셨습니까?”
쫄아 있는 김필중을 위해 난 주제를 바꿔주기로 했다.
“어? 어, 그··· 그래. 그놈이 거기 갈 이유가 없거든. 그래도 학교 때 운동권 탑 중의 탑으로 꼽혔던 놈인데 도박을 좋아할 리는 없잖아. 여자도 그렇고. 물론 뭐 중이 고기 맛을 알면 백정보다 더 하다고 요즘 운동권 놈들 하는 짓 보면 꼭 못할 것도 없지만 말이야. 그래도 좀 이상하긴 해. 최용구 니 생각은 어떻노?”
후후, 주제 바꿔주길 잘했다.
김필중 자식,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양 얼굴이 확 펴지면서 주접까지 떨어대는 꼴이라니.
“네, 지검장님. 제가 한번 검증해보겠습니다. 저도 그 비위 보고서 작성할 때 거기까지는 파보지 않았습니다.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결과 보고 드리겠습니다.”
“어, 그··· 그래. 뭐 천천히 해도 돼··· 고.”
“그럼 더 하실 말씀 없으시면 전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나오는 와중에도, 김필중은 아직 참혹하고 모멸스러웠던 내 죽음 이야기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듯 멍을 때리고 있었다.
***
내 방에 돌아오니 정화용이 평소 하던 대로 벌떡 일어나 나를 맞는다.
“지검장님께서 무슨 말씀이라도···”
하지만 난 정화용에게 친절함을 보일 감정 상황이 아니었다.
‘쾅’
아무런 대답 없이 내실로 문을 쾅 닫고 들어갔다.
“아이고, 깜짝이야. 검사님 왜 저러시지?”
한때는 매일 저런 모습이었던 최용구 검사가 어느 날 갑자기 나이스 하게 바뀌더니 오늘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정화용은 내가 들어간 내실 창문을 흘끗흘끗 보면서 불길한 표정으로 슬그머니 앉았다.
***
내실에 돌아온 뒤에도 난 정신을 가다듬는데 조금 시간이 필요했다.
죽은 뒤에까지도 느껴야 되는 모멸감이라니.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 이런다고 내 모멸감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네바다 사막 어딘가에서 뒹굴고 있을 내 뼈다귀에 살과 근육이 다시 붙어 살아날 일 없다.
일이나 하자.
“LA에 딸 유학 보내 놓고 있는 전태기가 라스베가스는 왜 갔을까?”
김필중이 내게 한 말.
김필중이 라스베가스를 끄집어내서 내 속을 떠보려고 한 말이었지만, 내가 다시 생각해봐도 좀 이상했다.
전태기의 비위 보고서를 다시 들춰봤다.
전태기는 LA에 갈 때마다 굳이 시간을 내서 꼭 라스베가스를 갔었고, 심지어 딸이 있는 LA에는 안 가도 라스베가스는 간 걸로 나온다.
게다가 라스베가스에 가면 묵었던 호텔도 똑같았다.
JW 메리엇 라스베가스.
호텔 주소를 찾아서 구글 맵에 넣어봤다.
호텔이 어딨는지를 확인하자마자,
“엇! 앗차!”
나도 모르게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내가 왜 이걸 놓쳤지?”
라스베가스는 도박과 환락의 도시로 유명하지만, 도시 전체가 그런 것은 아니다.
라스베가스의 관문인 맥카란 국제공항에서 시작해 북쪽으로 쭉 뻗은 약 7Km 길이의 대로를 ‘더 스트립(The Strip)’이라고 부르는데, 이 ‘더 스트립’이 5성급 초호화 호텔과 카지노가 밀집해있는 도박과 환락의 중심지다.
우리가 보통 라스베가스에 관광을 간다고 하면 여기 ‘더 스트립’에 간다는 뜻이다.
하지만 같은 라스베가스 안이라도 ‘더 스트립’을 벗어나면 학교도 있고 시청도 있고 시장도 있는 평범하고 조용한 주택가가 펼쳐진다. 특히 라스베가스가 있는 네바다주는 재산세가 낮고 주 소득세가 없다 보니 은퇴한 부자 백인들이 많이 모여 산다.
전태기가 라스베가스를 갈 때마다 머물렀던 JW 메리엇 라스베가스 호텔은 바로 이런 주택가 지역 중의 하나인 섬머린(Summerlin)에 있는 호텔이었다.
전태기가 숙박료 때문에 관광지인 ‘더 스트립’을 피해서 교외 주택가인 섬머린에 머물렀을 리는 없다.
벨라지오나 시저스 팰리스 같은 ‘더 스트립’의 5성급 호텔들은 숙박료가 싸다. 싼 숙박료 대신 카지노로 돈을 버는 비즈니스 모델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어떨 때는 섬머린 같은 교외 주택가 지역에 있는 등급 낮은 호텔이 '더 스트립'의 5성급 호텔보다 숙박료가 비싸기도 하다.
더군다나 전태기는 비용의 대부분을 은하 테크론에 부담을 시켰으니, 더더욱 호텔 숙박료를 아끼려고 이 교외 주택가 호텔에 머물렀을 리는 없다.
전태기가 라스베가스를 간 이유는 LA에 있는 딸 때문이 아니라, 분명 다른 목적이 있었다.
난 바로 구글 크롬을 열고 캐쉬 넥서스(Cash Nexus)에 다시 접속했다.
채팅창에서 그레이엄을 찾았다.
— ‘헤이~ 스티브. 잘 있었어?’
내가 접속하면 바로바로 찾아오는 충성스러운 그레이엄이다.
— ‘어, 그레이엄. 요즘 어때?’
— ‘덕분에 잘 지내고 있지. 스티브 덕분에 돈도 많이 벌어놨고. 후후. 또 껀수 없나··· 스티브의 호출만 기다리고 있었지.’
— ‘하하 그랬었군. 어 참, 심덕환은 잘 지내나?’
— ‘심덕환? 말도 마라. 이 사람 잠을 안 잔다. 투자 하나 해볼까 하고 스타트업 회사 하나 분석하라고 줬더니 어찌 딥(Deep)하게 파는지.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밸류에이션은 벌써 나보다 훨씬 잘해.’
— ‘후후. 원래 그렇게 일하는 사람이니까. 잘 됐네. 그런데 나 사실 부탁할 게 하나 있는데.’
— ‘부탁? 뭐든. 스티브 너의 부탁이라면 뭐든 들어줘야지. 뭔데?’
— ‘네바다 주에 있는 섬머린(Summerlin) 알지? 라스베가스 교외 지역’
— ‘섬머린? 참나, 거기를 내가 모르겠어? 지난 주말에도 갔다 왔었어. 골프장 죽여주잖아. 더 스트립에서 갬블링 하고 섬머린에서 골프 치고. 요즘 섬머린 거기 부동산 엄청 핫한 거 알지? 집 값이 1년 새 얼마나 올랐다더라?’
— ‘맞아. 나도 거기 부동산에 좀 관심이 가서 말이야.’
구라를 좀 쳤다.
— ‘그래? 스티브가 부동산까지 넘본단 말이지? 좋아, 좋아. 찍어놓은 집이라도 있어?’
— ‘어, 몇 군데 찍어놓긴 했는데, 투자하기 전에 좀 알아볼 게 있어서··· 혹시 그 지역에 한국인이 소유한 주택 리스트를 혹시 구할 수 있을까?’
내가 관심 있는 건 주택이 아니라 사람이었지만 주택 리스트를 물었다. 앞 뒤 바꾸면 되니까.
— ‘한국인 소유 주택? 돈과 관련된 거라면 여기 캐쉬 넥서스(Cash Nexus)에 없는 게 어딨냐? 여기 회원 중에 모기지 채권 딜링 하는 친구들 많잖아? 그쪽으로 찔러보면 바로 나올 거야. 모기지 회사 데이터베이스 까 보면 되니까. 불법이긴 하지만, 여기서 우리끼리는 안 되는 거 없잖아. 내가 요즘 한가하니까 쭉 훑어보고 나오는 대로 바로 쏘아주지.’
— ‘오케이, 땡큐.’
채팅창을 닫고 한 시간쯤 기다렸을까.
내 프로톤 메일 계정으로 바로 보안 메일이 날아왔다.
— ‘스티브, 일단 집주인 이름을 보고 한국 사람처럼 보이는 주택은 다 긁었어. 엑셀 파일로 첨부했으니 열어봐.’
첨부된 엑셀 파일을 열었다.
“헐··· 졸라 많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역시 한국 사람은 부동산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거 같다. 그 멀고 뜨거운 네바다 주 섬머린까지 가서 이렇게 주택을 사제끼다니.
트랙패드로 슬슬 스크롤하다가 흥미로운 이름 두 개를 발견했다.
“하하하, 그러면 그렇지. 내 예감이 정확했군. 많이도 잡수셨어. 도대체 이게 몇 개야?”
엑셀 시트에서 세어본 주택 개수는 한 명당 다섯 채씩 총 열 채.
주소까지 적혀있었다.
미국의 주택 거래 사이트 질로우(Zillow)에 접속해 주소를 입력하니 주택 내부 외부 사진과 정보가 쫙 떴다.
각각 건물 면적만 3천에서 4천 스퀘어 피트, 한국 평수로 80~ 100평이 넘었고, 가격은 대략 한 채당 백만 불 언저리.
“후후, 좋은 걸로만 잡수셨네. 이게 다 합치면 얼마야?”
질로우에 떠있는 예상 거래가만 합쳐도 대충 천만 불. 하지만 요즘 핫한 부동산 시장 상황을 고려해보면 실제로 거래되는 가격은 예상 거래가보다 더 높을 거니까 한화로 약 120억 가까운 돈이다.
“이거 월척인데? 후후후”
난 엑셀 시트를 프린트 걸고 내실을 나갔다.
“정 계장님?”
“네, 검사님”
정화용이 아까 문을 쾅 닫고 들어갔던 나를 봤던 터라 바짝 쫄았다. 벌떡 일어섰다.
“정 계장님, 미국 라스베가스 가 보신 적 있으세요?”
“네? 라... 라스··· 베가스요?”
라스베가스 때문에 놀란 것도 있지만, 다시 나이스 버전의 최용구로 금방 돌아온 게 더 놀란 모양이었다.
“네. 라스베가스요. 계장님 거기 출장 좀 갔다 오셔야겠어요.”
“네? 추··· 추··· 출장요? 제··· 제가요?”
검찰청 수사계장으로 살면서 해외 출장을 간다는 건, 하늘에 있는 별을 수백 개 따는 것보다도 어려운 일일 거다. 게다가 출장지도 라스베가스라니.
정화용이 입을 다물지 못한다.
“저··· 저··· 거기 가서 뭘 합니까?”
난 프린트돼 나온 A4 용지를 정화용에게 건네면서 말했다.
“여기에 인쇄된 주소지 집으로 가셔서, 초인종 누르고 사람 나오면 대한민국 검찰청에서 왔다 신분증, 꼭 제대로 보여주시고, 집 바깥 안쪽 사진 막 찍으시고, 이것저것 아무거나 막 물어보시고 그러고 오시면 됩니다.”
“예? 아무거나요? 아니, 그리고 저··· 영어가 안 되는데···.”
“영어요? 필요 없을 겁니다. 대부분 한국 사람들이 살고 있을 거고. 만에 하나 미국 사람이라 해도 그냥 아엠 프람 사우스 코리아. 프로시큐터 오피스. 오케이? 이러면서 사진 찍고. 막 그러고 오시면 됩니다. 아, 나오실 때 쏘리는 하시고요. 후후.”
멍하게 듣고만 있는 정화용의 표정이 웃겼다.
“아 그리고 주의할 점은 한국 검찰에서 왔다는 건 반드시 알리셔야 된다는 겁니다. 되도록이면 소문이 그 동네에 팍팍 나게끔 하셔야 한다는 겁니다.”
“소··· 소문이 나게끔요?”
“네. 그게 제일 중요합니다.”
“아··· 알겠습니다. 검사님.”
출장이라는 말에 얼떨떨했다가 소문내고 오라는 말에 어리둥절인 정화용의 어깨를 툭 한 번 쳐주고 웃어줬다.
웃음이 나온 이유는 정화용이 그렇게 하고 오면 앞으로 벌어질 재미난 일들이 벌써부터 비디오처럼 눈앞에 쫙 펼쳐져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엑셀 시트에서 발견한 주택 소유주 두 명의 영어 이름은,
하나는
Sangdeok Kim
김상덕. 은하그룹 회장 비서실장.
다른 하나는
Minha Oh
오민하. 대한민국 대통령 비서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