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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인 검사에 빙의했다-34화 (34/70)

〈 34화 〉 어떻게 죽였는지 궁금해? 후후, 상세히 설명해주지.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뭐야? 병진이가 구속이 돼?”

은성표 회장이 집 마당에서 지팡이를 짚고 서서 소리쳤다. 옆에는 김상덕 부회장이 머리를 조아리고 서있다.

“구속 영장이 청구됐고 오늘 영장 실질심사가···.”

“흥! 그건 통과되겠지. 망할 놈의 자식들.”

은성표가 짚고 있던 지팡이로 애꿎은 잔디를 푹푹 찔러댔다.

“송구합니다. 제가 미처 손을 쓰지 못했습니다. 상대가 워낙에 빨리 움직여서···.”

“그쪽은 누구야? 마도 잡고 흔드는 놈이.”

“수원 지검에···”

“또 김필중이야? 백영기의 호위 무사라는 그 거제도 촌놈 새끼?”

“네.”

“섬에서 온 호로자식. 주는 돈은 잘만 받아 챙기더니. 그 자식이 우리한테 뜯어간 돈이 도대체 얼마야?”

“김필중도 김필중이지만, 그 밑에 있는 담당 검사라는 놈이 아주 꼴통이라고 합니다.”

“담당 검사? 풉! 그런 젖내 나는 애송이 새끼까지 우리가 신경 쓸 거 없어.”

“네. 회장님”

“내가 시킨 건 어떻게 됐어? 박정철이 그 자식은 왜 안 움직여? 이럴 때 요긴하게 써먹을라고 안 짜르고 둔 건데. 일은 하고는 있는 거야?”

“네. 움직이고 있습니다. 단지··· 저쪽에서 예상보다 빨리 움직여서. 그런데 회장님···”

김상덕이 목소리를 낮추면서 은성표에게 한 발 더 다가섰다. 은성표도 귀를 김상덕에게 조금 가까이 갖다 대 준다.

“지난번에 지시하신 인신공격은 박정철이가 전문이라 맡겨뒀습니다만···.”

“그런데?”

“혹시··· 그것도 같이 터뜨려도 되겠습니까?”

“그것?”

은성표가 김상덕을 힐끗 쳐다보더니 고개를 홱 돌린다.

“그건 안돼. 아직 때가 멀었어.”

“아··· 하지만, 지금 사태가 워낙 위중해서 말입니다.”

“위중하다 해도 그건 안 돼. 우리보다 훨씬 큰 걸 쥐고 있는 ND그룹이 가만히 있는데, 우리가 급하다고 나선다고 그게 되겠나? 괜히 쓸만한 카드 하나만 낭비하는 게 돼. 우리가 아무리 흔들어도 ND가 난 모르요 해버리면 그땐 우린 정말로 퇴로가 없어지게 돼. 백영기 그 자식, 그거 밝혀질까 봐 사람까지 죽인 놈이야. 거 죽은 놈 이름이 뭐랬지?”

“이재훈이라고···”

“그래 참 똑똑한 녀석이었는데. 내가 데리고 쓰고 싶을 만큼.”

“그럼 언제···”

“ND도 움직이려고 할 때가 반드시 올 거야.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했어. 때가 되면 터뜨릴 수 있을 거야.”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병진이가 횡령죄로 들어간댔지? 감옥엔 얼마나 있어야 되는 거야?”

“판사들한테 약을 많이 쳐놓겠습니다. 2심에서는 나올 수 있게.”

“법원도 법원이지만, 언론 놈들을 잘 조져. 언론 그 바닥에 돈 안 돈지 오래됐어. XX일보고 OO방송국이고 돈 없어 죽으려고 하잖아. 이럴 때 몇 푼 쥐어주면 빌빌 기게 돼있어. 병진이 뉴스가 아예 안 나가게 만들어야 돼. 한두 달만 지나면 사건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게 만들란 말이야. 이놈의 세상, 판사라는 놈들도 개돼지 대중 눈치 안 보면 안 되게 돼버렸잖아? 개돼지 대중들이 잊어버려야 법원도 우리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지.”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움직이겠습니다.”

“박정철이도 더 속도 내라고 해.”

김상덕은 삼청동에서 나와 바로 박정철에게 전화를 했다. 이번에도 김상덕은 걷고 있고, 자가용은 초저속으로 김상덕을 따라오고 있다.

— ‘네 부회장님.’

“기집년 가슴 만지고 있을 시간 있나? 지금?”

— ‘아, 아닙니다. 부회장님. 지금 열심히 일 하고···’

“저쪽은 광속으로 움직이는데 너는 지금 경운기야. 더 빨리 움직여.”

— ‘네, 부회장님. 최대한 빨리 하겠습니···’

“기집년 가슴이나 주무르라고 니 살려준 줄 알아? 기집년 가슴이 아니라 검찰 놈 가슴을 도려내오란 말이야. 엉?”

김상덕은 박정철 대답을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었다.

차에 타면서 기사에게 말했다.

“판교로 가자. 오늘은 에밀리 봉긋한 가슴이나 주물러야겠어.”

***

김필중은 차에서 내려 검사장 실로 걸어가는 동안에도 이재훈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재훈이 살아있다? 최용구가 매수됐다?

이재훈이 노리는 건 뭘까?

돈?

최용구를 통해 수사 정보를 빼내 돈 버는 데 써먹었을까?

돈이라면 부모도 버릴 정도로 돈에 환장한 놈이었으니 그럴 수 있겠다.

아니면 각하를 노리나?

지를 죽이라고 지시한 사람이니 복수를 노릴 수도 있겠다.

이재훈이 최용구를 통해 내게도 복수하려 하겠군. 나도 죽이려 할까?

김필중은 검사장실로 들어서자마자 비서에게 소리쳤다.

“최용구 들어오라고 해. 지금 당장! 송대기 부장도 같이.”

***

“잘 다녀오셨습니까? 청와대에서는 별 말 없으셨죠?”

송대기가 머리를 조아리면서 인사했다.

나도 인사를 했는데, 나를 보는 김필중의 눈빛이 평소와 달랐다.

상대의 미세한 감정 변화까지도 예리하게 읽어내는 최용구의 감각이 김필중의 눈빛이 평소와 다르다고 내게 알려주고 있었다.

뭘까? 저 눈빛은.

“자, 다들 앉지.”

언제나처럼 상석 소파의 김필중 옆으로 오른쪽에 나, 왼쪽에 송대기가 앉았다.

“은하 테크론 조졌다며?”

김필중이 송대기를 보면서 물었다. 중간 간부를 건너뛰고 실무자와 직접 거래하는 김필중의 평소 스타일대로라면 나를 보고 물었어야 할 질문이다.

“네, 지검장님. 여기 독고다이 최용구가 군사 작전하듯이 밀어붙였습니다. 허허허”

“독고다이? 최용구 이제 열녀라며? 별명 바꿨다고 하지 않았어?”

김필중이 나에게 농담을 던지면서도 나를 똑바로 보지 못 한다. 어색하다. 기분 좋아서 던지는 농담이 아니라, 속에 든 불편함을 감추려고 던지는 농담이다.

“송 부장, 그날 최용구 이 자식한테 또 글라스로 소주 먹였다매?”

“네. 하지만 뭐 이번엔 좀 약하게 했습니다.”

“약하게? 몇 잔 줬는데? 두 잔?”

“에이, 술을 어떻게 짝수로 마십니까? 홀수로 마셔야지. 석 잔 줬습니다.”

“미친 곰 새끼. 여전하구만. 술이 홀수고 짝수고가 무슨 상관이야? 그래도 많이 봐줬네. 다섯 잔이 기본 아니었나?”

“열녀 최용구가 죽어서 한 맺힐까 봐 무서워서 적당히 했습니다. 하하하”

송대기가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너털웃음을 쏟아냈다.

송대기는 김필중이 청와대 회동에서 ‘재벌 개혁’ 미션을 받은 이후, 이철규를 짜르고 조사부 부장으로 전격 임명했다.

송대기는 전임 이철규와는 달리 스폰서가 없고, 은하 그룹은 물론이고 어떤 재벌 그룹과도 엮이지 않은 ‘청정’ 부장 검사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최용구 이 놈한테 소주 글라스로 먹이면서 열녀 타령을 한 덕분에 권성훈이한테 있던 사건을 최용구 이 놈한테 슬그머니 넘길 수 있었습니다. 안 그랬으면 벌써 정보가 은하 쪽으로 새 나가서 은병진 구속이든 압색이든 꿈도 못 꿨을 겁니다. 하하하.”

송대기는 자신이 내게 한 ‘위장 작전’이 성공했다는 게 꽤나 자랑스러웠는지 연신 너털웃음을 털어냈다.

하지만 난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김필중의 어색한 눈빛이 계속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권성훈이? 그 새끼한테 은하 그룹 사건이 가 있었어?”

김필중은 계속 송대기만 쳐다보고 대화를 주고받는다.

“네, 지검장님. 전임 이철규 부장이 그렇게 해 놓고 있었습니다.”

“이철규 그 자식 아예 은하 그룹 관련 사건은 하나도 진행할 생각이 없었던 거지. 박정철이하고나 어울리고 다녔으니. 망할 자식. 그 자식 옷 벗고 지금 뭐한데?”

“글쎄요. 나간 뒤에는 통 연락을 안 해봐서.”

“뭐, 송 부장, 이철규 그 새끼하고 여기 있을 때도 별로 친하지도 않았잖아. 여기 있을 때도 아니었는데 나간 다음에야 뭐. 그냥 모르는 사이지.”

“하하, 그렇긴 합니다.”

“흥! 이철규 그 새끼, 은하에서 챙겨주겠지. 박정철이는 아직 있나?”

이때 내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소외된 기분을 깨고 싶었다.

“제가 압색 하러 갔을 때 봤습니다. 계속 인사팀장으로 있었습니다.”

“아직 있어? 은성표 노인네 배짱 좋네. 대통령한테 그렇게 당해놓고도 인사팀장으로 그냥 두고 있다니. 한 번 해보자는 뜻이겠지. 그건 그렇고··· 어이 최용구.”

이 방에 들어오고 처음으로 김필중이 나를 똑바로 쳐다본다.

“은병진이··· 구속··· 영장 쳤나?”

나를 보고 말을 하긴 하는데 살짝 더듬는다. 늑대 김필중이 말을 더듬다니.

“네. 일단 회사 자금을 유용해 미국 호텔을 개인 목적으로 매수한 혐의를 잡아서 업무상 횡령 혐의로 영장 청구했습니다.”

“미국 호텔 매수? 횡령? 그거 말고는 없었어?”

“동남아 쪽으로 수상한 자금 흐름이 일부 포착됩니다만···.”

여기서 김필중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걸 최용구의 감각이 잡아냈다.

“그건 더 파면 VIP께도 연결되는 거라, 정무적 판단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 수사가 VIP께 누가 되는 방향으로 튀어서는 안 될 거 같다는 생각입니다.”

대통령을 생각해 수사를 조절한다는 내 말을 듣자, 김필중이 나를 보는 눈빛이 서서히 안정되는 거 같다. 김필중이 소파 등받이에 상체를 턱 기댄다.

“그래. 뭐 일단 은하는 겁은 줘놨고. 이제 저쪽에서 어떻게 나오는지 보고 다음 스텝을 정하자고. 수고했어. 최용구. 아, 그리고 송 부장.”

“음··· 예. 지검장님”

형사부에 있으면서 사건 수사에 ‘정무적 판단’ 따위 눈곱만큼도 넣어보지 않고 살았던 송대기다. ‘VIP’네 ‘정무적 판단’이네 했던 나와 김필중의 대화가 좀 불편했던 눈치다.

입을 앙 다물고 있다가 김필중의 부름에 1~2초 정도 늦게 대답했다.

“이번 사건은 쥐새끼가 얼씬 못하게 하는 게 중요해.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쥐새끼야. 정수명이 쥐새끼 짓 했던 장창선이도, 은하 테크론 쥐새끼 짓 했던 이철규도 나 그래서 날려버린 거야. 쥐새끼들, 특히 은하 그룹 쥐새끼들 잡아내는 게 송 부장 미션의 80프로야. 알았어?”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송대기는 원래 하던 대로 우렁차게 대답을 했지만, 난 뭔가 께름칙했다. 왜 갑자기 다 끝난 ‘쥐새끼’ 드립을 저렇게 장황하게 늘어놓는 건지···.

“그럼 나가 봐”

송대기와 내가 일어서려는데,

“최용구는 좀 남고.”

“네?”

잠시 쭈뼛거리고 섰던 송대기는 인사를 하고 나갔고 나는 다시 소파에 앉았다.

“거··· 딴 게 아니고”

김필중 답지 않게 뜸을 들인다.

“거··· 전태기 말이야. 청와대··· 비서관 했던 놈.”

말을 더듬는 걸로 봐서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아니다.

“지난번에 거··· 니가 비위 보고서 만든 거 내가 뭐 일이 좀 있어서 다시 봤는데···”

계속 내 얼굴을 피하면서 말하고 있다.

“지 딸을 LA에 유학을 보내 놓고 있다는 전태기 자식이 라스베가스에도 자주 갔다고 돼 있더만. 라스베가스, 라스베가스 말이야.”

김필중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본다.

내가 죽었던 곳, 라스베가스를 힘줘 말하면서 내 표정에서 뭔가 읽어내려고 한다.

이제 알았다.

김필중의 어색했던 눈빛과 송대기에게 장황하게 ‘쥐새끼’ 타령을 다시 한 이유.

김필중이 나를, 아니 최용구를 의심하고 있다.

‘최용구 너, 라스베가스에서 이재훈 정말 죽인 거 맞아?’

‘최용구 니, 이재훈 지령받는 쥐새끼 아냐?’

후후, 평생 의심으로 살았던 놈, 김필중. 그 의심을 내가 피할 이유 없다. 바로 찔러 들어갔다.

“라스베가스에서 있었던 일이 궁금하십니까?”

“응? 아··· 유선진 수석이 거··· 이재훈이가 어떻게 됐었는지를 궁금해해.”

유선진, 청와대 회동에서도 나를 보는 눈초리가 심상치 않긴 했었다. 그거였군.

“지검장님께서도 궁금하시구요.”

“어? 어 나야 뭐··· 독고다이 니를 의심하는 건 아니고···.”

피식 웃었다. ‘의심’이라는 말은 내가 꺼내지도 않았는데 먼저 자진 납세하는 김필중.

그래 설명해주지. 내가 죽어갔던 상황을 상세하게. 들어봐라, 이 새끼야.

“기온이 50도 정도 됐었죠. 네바다 사막 한복판이었으니까요. 머리에 천을 뒤집어씌우고 손을 묶어서 던져놓고 나왔죠. 차 안에서 멀리 이재훈이를 봤는데 몇 번 꿈틀대더니 바로 멈추더군요. 그 기온에 얼마나 버틸 수 있었겠습니까? 게다가 머리에 천주머니까지 뒤집어썼으니. 가만히 있어도 숨 쉬기 힘들었을 텐데. 후후. 숨이 바로 막혔을 겁니다.”

“아··· 그··· 그랬겠군.”

“그뿐입니까? 전갈에 독사가 버글거리는 곳이었는데. 아마 이재훈이 그놈, 숨 막혀 말라죽기 전에 전갈이나 독사한테 사타구니를 뜯겨 먼저 죽었을 겁니다.”

“저··· 전갈? 독사?”

김필중이 저렇게 겁에 질린 표정은 처음 본다.

말하는 나도 전갈과 독사 몇 마리가 내 사타구니 사이로 배 위로 스믈거리면서 올라오던 느낌이 되살아나 소름이 끼쳤다.

난 김필중을 향해 씩 웃어주면서 말했다.

“언젠가 한 번 가보고 싶긴 합니다. 라스베가스 말구요, 네바다 사막. 저한텐 아주 특별한 곳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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