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를 죽인 검사에 빙의했다-33화 (33/70)

〈 33화 〉 니놈이 날 속여?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야, 전 비서관. 도대체 니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 거냐? 유선진 수석 그 사람 너무 하는 거 아니냐? 아니 유 수석이 막 쪼아댔었다며? 대통령 아들한테 돈 보낼 방법 알아내라고. 너는 정말 열과 성을 다해서 일 한 죄 밖에 더 있냐?”

박정철이 소고기 안심을 직접 구우면서 말했다. 육즙이 사르르 올라오는 안심 한 점을 전태기의 앞접시 위에 놓아준다.

“이거 먹어라. 먹기 딱 좋게 익었다.”

“어. 고맙다.”

“어휴~ 태기 니나 나 박정철이나 아랫것들은 서럽다.”

박정철이 슬쩍 ‘전 비서관’ 대신 이름을 불러봤다. 술도 몇 잔 들어갔겠다, 비싼 안심으로 목구멍에 고기 기름도 칠해졌겠다, 타이밍이 됐다 싶었다.

“아랫것의 비애지. 근데 박 전무 너는 자리 유지한 거 보면, 사기업 쪽이 우리 쪽보다 훨씬 아랫것들한테 너그러운 거 같아.”

전태기는 ‘박 전무’라고 불렀다. 아직 타이밍이 덜 익었다. 서로의 처지에 대한 동료 의식 형성이 덜 됐다는 뜻이다.

박정철은 잘 구워진 고기 한 점을 전태기 앞에 더 놓아주고는 일부러 더 열을 냈다.

“뭐? 너그러워?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나 김상덕 부회장한테 쪼인트 까이고, 귀싸대기 얻어 맞고, 6개월 정직에 책상도 뺐어. 나, 이제 사무실도 없어. 월급도 안 나와. 진짜야!”

“정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 전태기를 보면서 박정철이 속으로 씩 웃었다.

‘빙신, 그걸 믿냐? 내가 마지막에 ‘진짜야’라고 했잖아? 그건 거짓말이라는 말이야. 순진한 운동권 새끼. 이러니까 유선진 그 여우한테 당했지.’

“근데 태기 너 이제 정말 어떻게 되는 거냐?”

박정철이 또 한 번 이름으로 불러봤다.

“잠잠해지면 지방 공기업 노는 자리 하나 꽂아준대. 흐유~ 내가 그런 거 하나 먹겠다고 이 바닥에서 그 고생했나 싶다.”

“그래 말이다. 태기야. 너 고생 많이 했는데···”

“정철아!”

드디어 전태기가 이름으로 불렀다. 박정철은 전태기가 하는 말의 내용은 하나도 관심이 없다. 오로지 ‘정철아’라고 이름 부른 것에만 꽂혔다.

“그래 태기야!”

“내가 이 바닥에서만 구른 지 얼추 30년이다, 30년. 후배놈들 중에는 금배지 벌써 세 번째 다는 놈도 있는데 나는 이게 뭐냐?”

됐다. 이제 7부 능선은 넘었다. 슬슬 시작해본다.

“근데 태기야. 이런 말 해도 될지··· 그냥 친구로서··· 하는 말인데···.”

“야, 정철아, 친구끼리 못 할 말이 어딨냐?”

술 몇 잔 고기 몇 점에 둘은 벌써 수십 년 동고동락해온 둘도 없는 친구가 돼버렸다.

“그래 나 태기 너의 친구로서 말하는데··· 야! 거 금배지 그거 꼭 달아야 되냐? 그것보다 야, 우리 회사 와서 금배지들 상대하는 일 해도 되지 않냐?”

전태기가 술이 확 깨는 거 같다. 눈을 아까보다 더 동그랗게 뜨면서 묻는다.

“너네 회사? 은하 테크론?”

“응. 우리 회사. 은하 테크론.”

“내가?”

“응. 너.”

“나 같은 사람이 너네 회사에서 무슨 일을?”

“야, 무슨 소리야? 너 같은 사람이 정말 필요하지. 우리 회사처럼 공장 많이 짓고 사람 죽도록 써야 되는 회사는 정부 규제 때문에 바람 잘 날이 없어. 땅 형질 변경해야지, 물 끌어와야지, 전기 안 끊기게 해야지, 으휴~ 요즘은 거 노동자 쉬키들···”

박정철은 말하다가 ‘앗차’ 싶었다. 전태기가 과거 노동 운동을 했었다는 게 기억났기 때문이다. 잠시 말을 끊고 전태기의 눈치를 살폈다.

“어, 미안 미안, 거 노조도 요즘은 좀 심하게 할 때는 하니까. 여하튼 대관 업무가 절대~ 절대 중요하거든. 너 금배지들 많이 알고 청와대에도 있어 봤고··· 딱이지.”

“내가 가면 뭐로 가는데?”

뭐? 박정철은 비위가 살짝 상했다.

‘이 자식이 직급을 따져? 씨바, 내가 아직 전문데 내 위로는 안 되잖아.’

비위는 비위, 비즈니스는 비즈니스. 박정철은 꾹 참고 대답했다.

“전무급이겠지. 실력 발휘해주면 부사장도 바로 되지.”

“그래?”

“야, 생각 있냐? 니가 생각 있다고 하면 나 바로 김상덕 부회장한테 말해주께.”

“너 정직 상태라며? 쪼인트 깠다며?”

“정직이니까 너 같은 인재를 어서 유치해서 점수 따야지. 그래야 정직 풀리지.”

박정철은 자기가 생각해도 애드립을 정말 잘 치는 거 같다.

“그럼 정철이 너 신세 좀 져도 될까?”

“되고 말고. 야 기분 좋다. 우리 이제 한 회사 식구 되는 거냐?”

“그렇게 되면 좋겠다. 친구야!”

“나도 꼭 그렇게 되면 좋겠다. 친구야!”

“고맙다. 친구야!”

친구야 타령을 하면서 박정철은 어느새 전태기 옆 자리로 옮겼다. 둘은 같이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고, 박정철은 전태기에게 어깨동무까지 했다.

“유선진 개~새끼. 내 친구 태기를 내쫓아? 30년 넘게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고생만 한 내 친구 태기. 솔까 내 친구 태기가 고생할 때 유선진 그 새끼는 뭐했어? 태기야 난 너한테 항상 부끄럽고 미안하다. 진심이다.”

“니가 왜 부끄럽냐? 정말 부끄러워해야 할 인간은 유선진 그 새끼지. 내가 고생할 때 그 새끼 뭐했는 줄 아냐? 나 같은 민주 투사들 잡으러 다니고 깜방에 처넣고 그랬어.”

“유선진 나쁜 새끼”

“흥! 유선진만 그랬냐? 오민하 비서실장은 더 하지. 그 새끼는 아예 국정원이었잖아.”

“맞아. 그런 놈들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권력을 잡고 흔들다니··· 흐유~”

“정철아, 알지? 내 딸··· LA에 유학하고 있거든.”

“아~ 그래?”

“그래서 미국에 갈 일이 있었는데··· 물론 너네 회사 도움을 많이 받긴 했지. 근데 사실 나 내 딸도 딸이지만 오민하 비서실장 심부름도 했었어. 어떤 때는 내 딸보다 오 실장 시킨 일 하느라고 더 오래 미국에 있기도 했었고.”

걸려들었다. 박정철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오민하 실장, 솔직히 라스베가스에 볼 일이 많았거든. 내가 LA 간다고 할 때마다 심부름을 시켰었어. LA에서 라스베가스는 비행기로 한 시간이면 가니까.”

“라스베가스에 오민하 실장이 뭐 볼 일이 있는데?”

“뭐겠냐? 한국에서 잘 나가는 사람이면 누구나··· 야야, 그만 말하자. 이건 말하면 안 돼.”

‘말하면 안 돼’ 라고 했지만 박정철 같은 프로에게는 이미 다 말한 거나 다름없다. 박정철 머릿속엔 이미 스토리가 쫙 그려졌다.

박정철은 전태기의 어깨에 걸었던 어깨동무를 슬그머니 풀었다.

“여기요~ 계산요.”

“어? 벌써 가려고?”

“갈 데가 좀 있어서.’

박정철은 전태기를 돌아보지도 않고 냉랭하게 대답했다.

‘이제 더 들을 것도 없으니 집에나 가야지. 아니다. 역삼동에 가서 코맹맹이 소리하는 유정이 엉덩이나 주물러야겠다.’

***

“검사장 승진 축하합니다.”

민정 수석 유선진이 김필중을 청와대 집무실로 불렀다.

“감사합니다. 보살펴 주신 덕분입니다.”

소파에 앉으면서도 김필중은 긴장을 풀 수 없다. 무슨 일로 민정 수석이 친히 부르는 건지 감이 안 잡히기 때문이다.

“수원 지검은 원래 있던 데니까 익숙할 거고... 그동안 워낙 잘 해왔었니까 하던 대로만 하면 되지 뭐. 수원 지검은 나 믿어. 허허허.”

김필중에게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서 말하는 유선진은 검사 7년 선배다.

검찰 총장만 빼고 요직이란 요직은 두루 섭렵한 끝에, 민정 수석에 앉았다.

총장을 못 해본 게 가장 애석하다고 사석에서는 늘 말을 하지만, 지금은 그 총장을 부리는 자리에 있으니 아쉬울 거 없다.

“그 믿음 실망시키지 않도록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천하의 김필중도 유선진 앞에서는 깍듯하다. 비록 지금은 백영기의 신뢰를 놓고 경쟁하는 사이가 됐지만, 한 때 둘은 백영기의 왼쪽은 호위 무사 김필중, 오른쪽엔 제갈량 유선진이라 불렸었다. 둘의 호흡은 절정이었고 백영기를 청와대로 입성시킨 특등 공신이었다.

김필중은 그때의 기억과 정으로 아직도 유선진을 깍듯하게 대한다.

“내가 오늘 우리 김 검사장을 부른 이유는...”

유선진은 옆에 앉은 김필중을 보지 않고 자신의 앞만 응시하면서 말하고 있다.

“지난번 은하 테크론 사건 말이에요. 아, 그거 아주 깔끔하게 잘 처리됐고, VIP께서도 흡족해하셨어요. 큰일 날뻔했었다고.”

칭찬이긴 하지만 다 지나간 이야기를 지금 와서 집무실에까지 불러서 다시 꺼내는 이유가 김필중은 의아했다. 뭔가 심상찮은 게 있음에 틀림없다 싶다.

“근데 말이야. 그 사건 뒤에 누가 있었던 게 아닌지··· 내가 좀 의심이 들어서 하는 말이야.”

“뒤요? 의심요?”

“음··· 그냥 내 감(感) 일뿐이긴 한데···”

유선진의 감(感).

지금은 늙었지만 한 때 유선진의 저 감은 검찰 조직 전체를 들었다 놨다 했었다. 아무런 물증 없이도 유선진은 감만으로 밀어붙였고 사건의 실타래는 거짓말처럼 유선진의 감대로 술술 풀어지곤 했었다.

김필중은 자기도 모르게 무릎 위에 올려둔 주먹을 꽉 쥐었다. 침을 두 번 꼴깍 삼켰다.

유선진이 김필중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고개만 돌리고 말은 하지 않는다. 한동안 김필중의 눈을 빤히 쳐다보기만 한다.

얼마 동안 그러고 있다가 하는 말,

“이재훈”

“네?”

무슨 말인지 김필중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지.

“지··· 지금··· 수석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저는 잘···.”

“그 사건 말이야. 수사 검사가 최용구라고 했지?”

반말이다. 자신의 의심에 믿음이 있다는 뜻이다. 김필중은 무릎 위에 준 주먹에 더 힘이 강하게 들어갔다.

“그 최용구 검사가 이재훈을 처리했다고 했었나? 그때?”

“네, 맞습니다.”

“어디서?”

“어··· 라스베가스 현지에서···”

“현지에 최용구 검사가 날아가서 이재훈을 처리했다?”

“네.”

“확인했나?”

“네?”

“이재훈 죽은 거 확인했냐고?”

마치 검사 유선진이 조사실에 피의자 김필중을 취조하는 것 같은 분위기다.

“화··· 확인을 제가 할 수 없···”

“그랬겠지. 라스베가스 현지까지 어떻게 가서 확인을 하나? 그냥 최용구가 와서 죽였다고 하니 죽었다고 알고 있었던 게지. 당신이나 나나. 안 그런가?”

“그··· 렇긴 합니다만···”

“난 이재훈 그 친구 한 번도 본 적도 없지만··· 김 검사장은 본 적 있나?”

“에, 저는 한두 번···”

“그래, 난 각하께 말만 전해 들었었는데··· 그 이재훈이라는 친구, 금융 시장만 밝은 게 아니라 법률 쪽도 활용을 잘했었다고 하더만. 그런데 이번 엑소더스 펀드도 그랬잖나. 주총 표대결을 선언하면서 미국에서는 주주 대표 소송을 걸고.”

“음···”

“특히 이재훈 그 친구가 말이야, 이래도 뜯기고 저래도 돈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외통수를 기가 막히게 잘 만들어냈다고 하더구만. 근데 이번 은하 테크론이 딱 그랬잖나. 결국 그 천하의 은하 테크론도 그 외통수에 걸려서 각하 아드님께 돈도 못 드리고 자기들 회사 분할 계획도 철회하고 말았잖나.”

“그런데 수석님. 미국에는 이재훈 말고도 그런 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하지. 그런데 말이야. 일전에 각하께서 나한테 갑자기 물으셨어. 그 엑소더스 펀드가 뭐하는 놈들이냐고. 내가 누군가? 각하께서 말씀하시면 수백수천 미터 땅 밑이라도 디립다 파는 사람 아닌가. 뭐 별로 나오는 게 없긴 했어. 그런데 말이야, 한 가지 딱!”

‘딱’에서 김필중의 가슴이 철렁했다.

“집히는 게 있더란 말이야.”

“뭡니까? 그게?”

“대표라는 놈. 그레이엄 슈타인버그. 그놈의 뒤를 파봤지.”

“그런데요?”

“그놈이 알고 보니 이재훈이하고 뉴욕에서 같은 회사에 근무했었더라고. JP Morgan 말이야. 이재훈이가 그놈 사수였다더군.”

“음···”

“그리고 말야, 심덕환이라고 기술 유출범으로 몰렸던 사람 있잖나?”

“예.”

“최용구가 처음부터 구속 수사도 반대했었다지?”

“그렇습니다.”

“이번에 엑소더스 펀드에 취직을 했다던데 알고 있었나?”

“아, 몰랐습니다. 수석님. 그런 일이···”

“그냥 내 추측이네만···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잖은가? 이재훈이가 그날 자기를 죽이러 온 최용구를 오히려 돈으로 매수했다면? 이재훈 그 친구말이야, 돈 많았었잖아? 수백만 불, 아니 수천만 불, 최용구 그 친구 검사 생활하면서 평생 한 번 못 만져볼 돈을 내놓고 매수하려 했다면 최용구 그 친구 안 넘어갔겠나? 보니까 최용구 그 친구 처갓집도 별 볼 일 없고, 손에 쥔 게 없는 친구더구만.”

“수석님. 검증해보겠습니다.”

“그래요. 뭐 늙은이의 노파심일 수도 있고, 요즘은 워낙 희한한 일들이 많이 생기니까··· 아! 벌써 시간이.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나 각하 모시고 가야 할 곳도 있어서.”

유선진이 손목시계를 보면서 일어나려 하자, 김필중이 먼저 벌떡 일어났다.

“나중에 또 보죠.”

유선진이 이미 차렷 자세로 각을 잡고 있는 김필중에게 악수를 청했고, 김필중은 90도로 고개를 숙이면서 유선진이 내민 손의 끄트머리를 살짝 잡았다가 놓았다.

등 돌려 걸어가는 유선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청와대를 나와 수원으로 가는 차를 타면서 김필중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유선진 여우 같은 놈.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이간질을 해?”

눈을 감고 머리를 헤드레스트에 기댔다.

차가 한 시간쯤 달려 수원 톨게이트를 지날 때쯤 김필중은 눈을 떴다.

그리곤 하는 말.

“최용구··· 니놈이 날 속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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