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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인 검사에 빙의했다-32화 (32/70)

〈 32화 〉 나에게 딜을 걸어오시겠다? 한 번 들어나보자고.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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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할 수 있겠냐고?

이건 ‘너 같은 아랫것들이 나 같은 윗분들이 하시는 고귀하고 복잡다단한 일을 이해할 수 있겠어?’ 라는 말이다.

이건 또 ‘설사 이해한다 한들 너 같은 조무래기 검사 아랫것이 우리 윗분들에게 감히 할 수 있는 일이 한 가지라도 있겠어?’ 라는 말이기도 하다.

난 세상을 다 가진 듯 거들먹거리는 재벌 3세의 오만함에 사정없이 칼질을 해주고 싶었다.

“해보시죠. 은병진 씨. 내가 감당 못 할 이야긴지 아닌지 들어봐야 알죠.”

“후후후, 그럴까요?”

“아, 그전에···”

난 깊숙이 기댔던 의자 등받이에서 상체를 일으켜 똑바로 앉았다.

그리곤 말했다.

“우선 저 변호사인지 뭔지 하는 시끄러운 것부터 치우고 봅시다.”

나도 기선 제압용으로 날린 멘트였다.

“뭐, 뭐요? 아니 이 사람이 정말 보자 보자 하니까···”

발끈한 진성우가 내게 달려들려고 했지만, 은병진이 왼손을 들더니 나가라는 신호를 준다.

“아니··· 부회장님.”

별 수 없다. 주인이 나가라는데 나가야지.

마침 정화용이 들어와 진성우를 데리고 나갔다.

진성우가 나가자마자, 난 밖에서도 들리는 마이크와 CCTV를 껐다.

이제 조사실에는 완전히 은병진과 나 둘만이다.

“엄청 듣고 싶은 모양이군요. 마이크, CCTV까지 다 끄시는 걸 보니.”

은병진이 오른쪽 입꼬리를 씩 올리면서 말했다.

“그걸 원하시는 것 같아서. 나 비록 검사스럽게 검새로 살지만 눈치는 빠릅니다.”

“후후”

“말씀해보시죠. 내가 감당 못 할 말이 뭔지.”

은병진은 내 눈을 빤히 쳐다보면서 잠시 뜸을 들이더니,

“근데 검사님, 그전에 저랑 딜(Deal)을 하나 붙으셔야겠습니다.”

“딜요?”

불쾌한 기색을 내보였다. 피의자가 검사한테 먼저 딜을 제안하는 법은 없다. 재벌 집에서 오냐오냐하면서 큰 티가 이런 데서 드러난달까.

“아, 불쾌하셨나 보군요. 하지만 검사님이 감당 못 하실 일이라는 건 후후, 어떤 대단한 분의 비밀일 수 있는데 그걸 제가 검사님께 공짜로 드릴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역시 대한민국 최고의 상인 은성표를 애비로 둔 재벌 3세 답다.

“들어나 봅시다. 어떤 딜을 생각하시는지.”

“검사님. 대통령이 재벌 개혁, 뭐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 은하 그룹을 조지라고 검사님께 명령을 하셨다면 나 하나는 어떤 죄명으로든 잡아넣으셔야 하겠죠. 이해합니다.”

음··· 상황 파악은 제대로 하고 있군.

“그래서요?”

“아까 검사님이 우리 은하 그룹의 해외 비자금 말씀을 하셨는데요, 특히 동남아 쪽이 의심된다고. 근데 그건 안 건드리시는 게 좋습니다. 건드린다 해도 아무것도 안 나올 거고, 나온다고 해도 기소는 엄두도 못 내실 겁니다.”

“내가 감당 못 할 거라는 게 이거요?”

“네. 왜냐하면 우리 회사 비자금은 대통령과 통하거든요. 후후.”

“대통령 꺼다?”

“그렇습니다. 대통령께서 검사님을 앞장 세워 재벌 개혁 드라이브를 거시다가 대통령 본인의 비리가 드러나면 그건··· 후후, 대통령께서 아무리 개혁 마인드가 출중하신 분이라고 해도 본인의 목을 자르는 일을 ‘개혁’이라면서 검사님께 하라고는 안 할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요? 딜이라는 게 뭡니까?”

“저를 횡령죄로 넣으시려고 하는 것··· 좋습니다. 넣으셔야죠. 뭐 횡령한 거 맞으니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검사님. 횡령죄라는 게 금액에 따라 짤 없이 형이 정해지는 거 아닙니까?”

“후후, 그래서··· 몇 개 빼 달라는 말입니까? 횡령 액수를 줄여달라. 징역 한 2~3년 정도 되게 맞춰달라. 그 정도면 뭐 한 두세 달 감옥 살게 될 거고, 당신들 은하 그룹은 법원에도 뿌려 놓은 거 많을 테니 판사들이 알아서 집유로 풀어줄 거고. 이 말입니까?”

“하하, 그렇습니다. 검사님. 잘 알아들으시는군요.”

“그런데 이게 어떻게 딜이 되죠? 은하 그룹 비자금 중에 대통령과 관련된 건 내가 안 건드리면 그만이고, 대통령 비자금 하고는 별개로 은병진 씨는 횡령죄 만땅으로 때리면 그만이지. 그 둘이 어떻게 연결이 됩니까? 왜 내가 은병진 씨 횡령 액수를 줄여줘야 하는 거죠?”

“후후, 검사님. 대통령의 더 큰 비밀을 알려드릴 테니까요. ND 그룹과 얽힌 더 큰 비밀요.”

ND 그룹은 은하 그룹과 쌍벽을 이루는 대한민국 최대 그룹이다. 이 회사 법률팀 부사장이 백영기의 맏아들 백승철이기도 하고.

“검사님 같은 직업을 가지신 분들께는 자신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권력자의 약점을 안다는 것. 그거 대단히 큰 어드밴티지가 아닐까요?”

은병진, 이 자 눈만 꿈뻑꿈뻑하길래 얼치기인 줄 알았더니 제법 딜을 걸어올 줄 안다. 아버지 은성표의 DNA를 조금은 물려받은 게 있는 거 같다.

“검사님은 저를 횡령죄로 기소만 하셔도 대통령이 내린 ‘재벌 개혁’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시는 거죠. 나도 두세 달 감옥 살고 나오면 면피가 되는 거고. 대통령도 재벌 개혁 드라이브했다는 국민적 명분을 가지실 수 있고. 모두가 윈윈 하는 것이죠. 다만, 검사님은 거기에 더해서 대통령의 비밀을 보너스로 알게 되는 거니 검사님이 얻는 게 가장 많은 딜이죠.”

“좋습니다. 한 번 들어보죠. 얼마나 대단한 비밀인지.”

“딜 하시는 겁니까?”’

“계약서라도 쓸까요? 싸인이라도 할까요? 인감도장 갖고 와요?”

“하하, 그건 아닙니다. 그럼 딜 됐다고 생각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횡령죄는 시애틀의 해밀턴 엔터프라이즈 하나로만 퉁쳐주시시는 걸로. 후후후.”

확인까지 하는 꼼꼼함. 난 대답 대신 빨리 말하라는 뜻으로 오른손 검지를 위로 휘휘 저었다.

“ND 그룹은 세계 곳곳 조세 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많이 운영하는 걸로 유명합니다. 주가 조작, 매출 부풀리기, 분식 회계 등을 통해 마련된 돈은 모두 이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안전한 미국으로 들어갑니다.”

“그래서요?”

“왜 미국인지 아세요? 지금 OECD 국가들 중에 미국은 최고의 자금 은닉처지요. 왜냐하면 미국은 어떤 나라가 요청해도 자국에 있는 금융 정보를 다른 나라에 줄 의무가 없거든요. 스위스요? 후후, 그건 옛날 말이고. 몇 년 전에 OECD 국가들은 모두 금융 정보 제공 조약에 서명했어요. 스위스도 이젠 다른 나라 정부가 요청하면 금융 정보를 제공해야 돼요. 근데 미국만 그 조약에 서명 안 했어요. 아까 검사님 그러셨죠? 나라도 힘이 쎄고 봐야 한다고요. 맞습니다. 미국은 힘이 세니까 그런 조약 서명 안 해도 미국이 달라고 하면 어느 나라 금융기관이든 안 줄 수가 없거든요. 그런데 왜 굳이 서명합니까? 지금도 필요하면 받을 거 다 받고 있는데 왜 굳이 그런 조약에 서명해서 다른 나라에 주기까지 해야 되냐, 이거죠. 후후, 그 덕에 우리 같은 사람들이 미국의 힘을 이용할 수 있지요.”

은병진은 열을 내서 설명 했지만 난 전혀 흥미롭지 않았다. 아니 이게 뭐가 비밀스럽고 대단하다는 말인지.

“어떠십니까? 지금까지 들으신 내용이···”

“뭐가 어떻다는 겁니까?

“검사님. 대단한 이야기 아닙니까? 구미가 당기지 않습니까?”

“풉! 이게 뭐가 대단하고 구미가 당겨요? 전혀요. 침 한 방울 입에 안 맺힙니다. 딜이 성립이 안 되겠네요. 이 정도를 가지고는.”

“아니 이게 왜 전혀 구미가 안 당기죠?”

“이것 보세요. 은병진 씨. 이건 그냥 음모론자들이 하는 이야기 수준이잖습니까? 아무런 구체적인 팩트도 근거도 없지 않습니까? 이런 걸 가지고 검사와 딜을 건다? 장난합니까?”

“아! 구체적인 것··· 네 알려드리지요. 백영기 대통령과 ND 그룹이 가장 많이 활용하는 페이퍼 컴퍼니가 어디 있는지 알려드리죠. 후후”

은병진은 다시 대단한 이야기보따리를 열어줄 요량으로 싱긋이 웃었지만, 난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이제 내가 저 은병진을 놀라게 해 줄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레이시아 말하는 겁니까?”

“네?”

놀라긴 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은병진은 설마 하는 눈치였다.

“라부안(Labuan) 섬 말이죠? 말레이시아의 조세 회피처.”

“아니··· 그걸 어떻게···.”

이젠 설마가 아니라 진짜다. 난 은병진의 저 놀라는 얼굴에서 끝을 보고 싶었다.

“그 라부안 섬에 있는 페이퍼 컴퍼니의 이름도 다 아는데, 알려드려요?”

“뭐··· 뭐라고요? 그걸 검사님이 어떻게?”

“내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는 중요하지 않고, 우선 들어보세요. 페이퍼 컴퍼니 이릉은 “에마스(Emas), 페라크(Perak), 강사(Gangsa). 말레이어로 금, 은, 동이라는 뜻.”

후후, 은병진의 입이 헤벌레 벌어졌다.

“내용도 대충 브리핑해드려요?”

“네?”

“에마스는 ND 케미칼 주가조작과 연관된 페이퍼 컴퍼니죠. 한국과 말레이시아 현지에서 주가 조작을 통해 마련된 돈은 이 에마스라는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세탁됐고 지금은 미국 네바다주 레노(Reno)에 있죠. 물론 명의는 대통령 백영기 명의로. 아까 은병진 씨가 상세하게 설명해준 대로 미국은 절대 다른 나라 정부에게 자국 금융 기관의 계좌를 까주지 않으니까. 특히나 네바다주 레노는 은행 소득에 대한 이자에 소득세도 안 내니까.”

“헉···”

“다음은 페라크. 이 회사는 ND 그룹의 또 다른 계열사인 ND 코퍼레이션과 연관된 페이퍼 컴퍼니. 인도네시아 팜오일 농장 투자에서 땡긴 돈을 세탁했죠. 역시 돈은 미국 레노에.”

잠시 쉬어줬다. 은병진에게 숨 쉴틈은 줘야 하니까.

“다음은 강사. 이 회사는 ND 벤처캐피탈이 투자한 태양광 패널 회사의 돈을 세탁하는 데 썼죠. 근데 이 돈은 특이하게도 미국이 아니라 싱가포르에 아직 있죠. 그 이유는 이곳에 호텔이 죽여주는 게 있거든. 대통령이 좋아할 만한.”

“아니 이거··· 검사님이 어떻게? 은하 테크론 압수수색에서 나왔을 리가 없는데.”

후후 당연하다. ND 그룹 비자금 관련 내용이 은하 테크론의 압수 수색에서 나왔을 리가.

검사 최용구도 알았을 리 없다.

그는 아무 내용도 모르고 그냥 나를 죽이러 왔던 거니까.

나 이재훈은 몰랐을 리 없다.

에마스 페라크 강사···.

이 모든 건 다 내가 만들어서 운용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저 세 회사와 얽힌 백영기와 ND그룹의 비자금 흐름을 안다는 이유로 내가 네바다 사막에서 말라죽었기 때문이다.

“은병진 씨. 이거 어떡하죠? 보니까 내가 알고 있는 게 은병진 씨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고 구체적이네. 쯧쯧, 은병진 씨, 기껏 이런 걸 가지고 비밀 운운하면서 나한테 딜을 건 거요? 딜은 깨졌고. 은병진 씨, 그냥 횡령죄 만땅으로 갑시다.”

은병진 얼굴색이 하얗게 질렸다.

“은병진 씨, 아무리 당신은 고귀하신 재벌가 도련님이시고, 나는 검사스럽게 사는 검새라지만 나를 너무 쫄로 본 거 아뇨? 사람 함부로 쫄로 보고 그러면 안 되는 겁니다. 여하튼 구속 영장은 오늘 칠 테니 집에 가서 기다리고 계쇼. 난 그럼 이만 바빠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조사실 문으로 돌아섰다.

내가 문으로 걸어가는 동안, 은병진이 뭔가 깊이 생각하는 듯하더니 날 큰소리로 불렀다.

“자··· 잠깐만요. 검사님. 다른 것··· 다른 것이 있습니다. 이건 정말··· 엽기적인 겁니다.”

난 천천히 은병진 쪽으로 돌아섰다.

“뭡니까? 또?”

“배··· 백영기 대통령은 자신의 비자금 내용을 안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였습니다. 이건 공공연한 비밀인데요, 우··· 우리 재벌가 사람들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그 사람··· 그 죽은 사람은··· 미국 월가에서 날리던 금융인이었는데 이 페이퍼 컴퍼니와 미국 레노에 금융계좌 만드는 일을 전부 다 했다고 해요. 한 마디로 이 모든 일의 마스터마인드인 셈이죠. 그런데 이 모든 게 셋업이 끝나니까 백영기 대통령이 그 사람을 죽여버렸대요. 입을 막으려구요. 아! 구체적인 거 원하신댔죠? 그 금융인 이름. 이름이··· 아··· 잠깐만요. 생각이 갑자기 안···”

“이재훈.”

“헉”

“후후 은병진 씨, 뭘 그리 놀라셔요? 좋습니다. 여기까지 왔으면 갈 데까지 간 건데··· 이제 내가 당신한테 진짜 대단한 비밀 하나를 알려주지.”

“네···네?”

난 저벅저벅 걸어가 테이블에 두 손을 탁 놓고, 거의 코가 닿을 듯 가깝게 은병진에게 내 얼굴을 갖다 댔다. 은병진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한동안 그러고 있다가 서서히 입을 열었다.

“이재훈 죽인 사람···”

“···”

“바로 나야.”

‘쿠당당’

내 짧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은병진은 의자에 앉은 채로 뒤로 벌러덩 나자빠졌다.

“후후”

자빠져 있는 은병진을 뒤로하고 조사실 문으로 향하면서 말했다.

“당신 횡령죄 만땅이야.”

조사실 문을 쾅 닫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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