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 내가 이거 까면 감당할 수 있겠어?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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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 테크론 본사 압수 수색을 했다고? 하하하”
백영기가 박장대소를 한다.
“네, 각하. 완전히 허를 찔렀다고 합니다. 재무팀을 털었는데 거기 팀장인 전무 놈은 아예 오줌을 질질 쌌다고 합니다.”
유선진이 옆에서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오줌을? 그럴만하지. 그 놈들 언제 그런 거 당해본 적이 있었겠나. 안 그런가?”
“맞습니다. 게다가 은성표 은병진 부자를 출금을 치고 은병진은 소환했다 합니다.”
“출금에 소환? 하하하. 전직 대통령님들의 말씀은 하나도 틀린 게 없어. 개혁의 칼날은 모름지기 전광석화처럼 휘둘러야 된다고 하시지 않으셨나? 안 그런가?”
“맞습니다. 각하”
“흥! 은성표 노친네 그거 노망을 한 거지. 아니 촌동네 아파트 계약을 했다 깨도 계약 깬 놈이 한 푼이라도 물어주는 판에, 지들이 돈 주겠다고 떠들다가 말아놓고··· 대통령인 나한테 저 재벌 놈이 이래도 되는 거야? 안 그런가?”
현금 다발을 몇 십억이라도 내놓을 거라고 기대하고 간 걸음이었다. 그런데 빈 손으로 돌아온 걸 생각하면 지금도 분통이 터진다.
백영기는 지금 눈앞에 은성표가 보이는 듯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떤다.
“해외 법인에 이야기해서 승환이를 보살피겠다고? 생활비 대겠다는 거야? 차 사주고 월세 내주겠다, 이거야? 허허. 기가 차서. 누구를 갓 상경한 촌놈 새끼로 아나. 안 그런가?”
말 중간중간에 항상 상대의 동의를 묻는 백영기의 습관.
유선진은 그게 가끔은 귀찮을 때도 있지만, 자신의 충성심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준다고 생각하면 고맙기도 하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이번에 제대로 혼쭐을 내셔야 합니다.”
하는 김에 ‘딸랑딸랑’의 게이지를 최대치로 높여보기로 한다.
“각하의 이번 재벌 개혁 드라이브는 모든 전직 대통령들을 뛰어넘어 대한민국 역사에 가장 찬란하게 남는 개혁이 될 것입니다.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역사까지 들먹였으니 이 정도면 게이지 최대치겠지? 눈치를 살핀다.
“그래. 역사! 어떤 이는 청사(靑史)라고도 했지. 푸른 강처럼 역사는 흐른다고 해서 그렇게 불렀다지. 나 이 백영기는 꼭 저 재벌들을 때려잡아 푸르른 사람으로 역사에 기록되고 싶네.”
“반드시 그리 되실 것입니다. 각하”
딸랑이가 통했다. 유선진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런데 말이야. 민정.”
“네. 각하”
“거 전태기라는 놈. 테크론에서 돈 먹었다는 놈. 그놈 어떻게 했어?”
“아, 각하, 검찰에서 확보한 비위 사실들이 있었습니다. 미국 드나들면서 은하 쪽에서 금품 향응을 제법 많이 수수했더군요. 제가 검찰에 이야기해서 그거 덮어주는 대신 입 다물게 했습니다. 사법 처리까지 하면 언론에 알려질 수도 있고 그럼 괜히 각하께 폐를 끼칠 수 있고 해서 조용히 물러나는 것으로 처리했습니다.”
“검찰이 잘 알아듣던가?”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래도 민정이 검찰만큼은 확실히 쥐고 있구먼. 좋아 좋아. 근데 전태기 그 자식은 뭘 얼마나 처먹은 거야?"
“아, 그게··· 전 비서관이 딸을 엘에이에 유학을 보내 놓고 있었나 봅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을 갈 때마다 LA에 들러서 딸과 함께 지냈는데 그 비용을 은하 테크론 측에 다 지불하게 했다 합니다.”
“딸을 유학을 보내? LA에? 청와대 비서관 해가지고 그럴만한 돈이 돼? 뭐 공부하는데?”
“아트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트? 예술을 한단 말이야? 아니 그 자식 대학 졸업하고 운동권 정치판에서만 굴렀던 놈이잖아? 국회의원도 한 번 떨어지고. 근데 무슨 돈이 있어서?”
“···”
“예술 공부는 미국 백인들도 돈 무서워서 못 시키는 공분데, 그걸 운동권 정치판만 전전하던 놈이 딸년을 미국에 보내서 그 공부를 시킨다고? 이게 말이 돼? 안 그런가?”
“맞습니다. 각하.”
“학교 때 머리띠 두르고 구호 외치고 다녔던 놈들이 더 하다니까. 지 손으로 돈 한 푼 벌어본 적 없이 데모만 해대던 딸을 LA에 유학을 보내? 세상이 어떻게 될려고 이러느지 원··· 쯧쯧. 콜록콜록”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였더니 가래 기침이 나온다.
“쿠웨엑~ 퉷”
가래침을 크리넥스에 뱉어 휙 던지자 유선진이 얼른 받았다. 쓰레기통이 멀이 있어서 버리러 가지를 못하고 그냥 쥐고 있기로 했다. 가래침이 크리넥스에서 배어 나와 손에 묻었다. 개의치 않는다. 이 정도쯤이야.
“그리고 이번에 난장판 만든 미국 펀드 놈들은 어떤 놈들인지 조사 좀 해봤어?”
“대표가 제이피 모건에서 20년 가까이 펀드 매니저로 근무했던 적이 있다는데···.”
“이름이 뭐야? 대표 새끼.”
유선진이 얼른 생각이 나지 않는 듯 수첩을 꺼내서 찾아본다. 백영기가 그 모습을 한심한 듯 꼬나보고 있다.
“그레이엄이라고···”
“뭐? 그레이엄? 노랑머리야?”
“네”
“완전? 코쟁이란 말이지?”
“그렇습니다.”
“성이 뭐야?”
“아, 성은···”
또 수첩을 뒤져보는 유선진. 또 한심한 듯 꼬나보는 백영기.
“슈타인버그라고···”
“슈타인버그? 그럼··· 유태인이잖아?”
성만 듣고 유태인인지 어떻게 알지? 의아해하는 유선진을 다시 한심한 듯 내려다보던 백영기가 혀를 끌끌 찬다.
“원래 무슨 무슨 버그, 베르그, 슈타인 이런 거 붙는 이름은 다 유태인이야.”
“아··· 그렇군요.”
“헛참. 미국 놈에 노랑머리 코쟁이에 유태인까지면 완전 언터쳐블이네. 미국 놈이라도 검은 머리면 어떻게 해보려고 했더니만··· 옛날에 이재훈이 처리하듯이···”
자기가 말해놓고도 뜨끔했는지 유선진의 눈치를 얼른 살핀다. 유선진은 일부러 못 들은 척 딴청을 피워준다.
“이번 그 전격 작전도 최용구 그 친구 작품인가?”
“네 그렇습니다. 각하.”
“그 친구 일 잘하네. 후후후. 임자가 그 친구 격려 많이 해주고.”
“네. 각하”
“내가 주더라고 하면서 거 봉투도 좀 전해주고. 검사 봉급 빤할 텐데···.”
“제가 적당히 챙겨주겠습니다.”
“최용구 위에는 여전히 김필중이지? 이번에 검사장 승진시켰다며?”
“네, 각하.”
“든든해. 김필중이. 내 호위 무사라고 불릴 만 해. 안 그런가?”
이 질문에는 유선진이 바로 ‘Yes’라고 대답하지 못했다. 조금 우물거리다가 ‘맞다’는 대답이 나왔다.
김필중 말만 나오면 경계심을 감추지 못하는 유선진.
백영기는 아랫것들 이러는 거 보는 게 재밌다. 권력질은 이 맛에 하는 거다.
그 치열했던 대통령 선거 때 김필중은 호위 무사, 유선진은 제갈량이라고 불렸었다.
집권 초반기엔 칼보다는 머리, 패기보다는 노련함이 필요하다 싶어 김필중은 현장에 두고 유선진을 옆에 들였었다.
이제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갈수록 칼과 패기가 더 필요하다 싶어 진다.
더군다나 나이 든 유선진은 답답할 때가 많다.
아까 펀드 대표 이름 하나 바로 생각이 안 나 수첩을 들추는 걸 봐라.
언젠간 이 늙은 제갈량은 내치고 패기 넘치는 김필중과 최용구를 옆에 들였으면 한다.
그나저나··· 최용구.
최강 은하 그룹을 그렇게 전격 작전으로 칠 생각을 했다니.
갈수록 마음에 든다.
***
“은병진 씨. 지금 은하 그룹 부회장이시죠?”
은병진이 소환돼 왔다. 변호사 진성우가 은병진 옆에 바짝 붙어 앉아 있다.
“네, 그렇습니다.”
질문은 은병진한테 했는데 대답은 진성우가 했다.
“직함은 부회장인데 직책은 뭡니까? 하시는 일 말이에요.”
“이 사건과 상관없는 질문입니다. 검사님.”
이번에도 진성우가 말했다. 은병진은 눈만 꿈뻑꿈뻑.
“하시는 일은 없이 직함만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부회장이시다··· 권한은 엄청난데 책임은 하나도 안 진다··· 이 말인가요?”
진성우가 발끈한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부회장님께서는 그룹의 미래 전략을 고민하고 신수종 사업을 발굴하는데 밤잠을 못 이루고 계십니다. 뭘 알고 말씀하세요.”
진성우가 제법 언성을 높였지만, 나는 진성우 쪽으로는 눈동자든 얼굴이든 단 1도도 돌리지 않았다. 내 상대는 은병진이지 진성우가 아니니까.
“글로벌 전자회사 은하 테크론의 신수종 사업이라···”
난 서류를 몇 장 슥슥 넘기다가,
“호텔?”
은병진에게 고개를 홱 돌리면서 물었다. 움찔한다.
다시 서류 한 장 넘기고는,
“리조트? 신수종 사업인가요? 이거 다?”
“부회장님. 대답 안 하셔도 됩니다.”
또 진성우가 말했다. 은병진은 묵묵부답.
“은병진 씨, 미국 시애틀에 있는 해밀턴 엔터프라이즈라는 회사의 대표시죠? 미국 이름은 조나단 실버. 이미 구속된 안봉진 전무가 그렇다고 했으니 부인해봐야 소용없고. 맞죠?”
“네, 그렇습니다.”
또 진성우의 대답.
“근데 해밀턴 엔터프라이즈 이거 하나가 아냐. 호텔 리조트 하는 회사들이 어이구~ LA, 샌디에이고, 팜스프링스, 샌프란시스코, 라스베가스 하나씩 다 있어. 이 회사들도 모두 은병진 씨가 실소유주죠? 물론 조나단 실버라는 미국 이름으로.”
“네, 모두 사실···.”
또 진성우가 대답하려 했는데, 난 중간에 짤라버렸다.
“이 회사들 자본금 조달 방식도 모두 똑같더군요.”
“자본금은 모두 은하 테크론 미주 본사로부터 대출받은 거라고 말씀드립니다.”
또 진성우의 대답. 난 무시.
“다들 이익이 많이 나더군요. 이 이익에 대해서 미국 정부에 세금은 꼬박꼬박 내고 계시죠?”
“이 사건과 무관합니다.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부회장님.”
난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혼잣말처럼 말하길,
“사건과 무관하다? 대답 안 해도 된다? 씨바, 그럼 사건과 유관한 건 대답했나? 뭘 묻든 눈만 꿈뻑꿈뻑. 꿀을 얼마나 처먹었길래 이렇게 벙어리야?”
혼잣말을 이렇게 큰소리로 하나?
진성우가 놀란다. 은병진도 눈동자가 떨렸다. 이런 욕지거리를 어디서 들어봤겠나. 아버지 은성표한테서 들어 먹은 거 빼고.
“은병진 씨, 내가 뭘 묻든 무슨 말을 하든 아무 대답 안 할 거라 이거지? 그럼 뭐 나도 내 꼴린 대로 씨부려도 되겠군.”
“아니. 검사님 지금 뭐하시···”
진성우의 항의. 하지만 이것도 당연히 무시.
“미국 국세청이 무섭긴 무서운가 봐. 은병진 씨가 실소유주로 있는 이 회사들 미국에 법인세는 꼬박꼬박 냈네. 씨바, 나라도 힘 쎄고 볼 일이야. 대한민국, 이 불쌍한 약소국은 지 나라에 사는 재벌이고 조폭들도 어찌 만만하게 보는지 원. 아~ 좆도 더러워서.”
“이것 보세요. 검사님. 말조심하세요.”
참다못한 진성우가 벌떡 일어나 소리 질렀다.
그러든가 말든가 난 무시하고 은병진 앞에 턱을 탁 괴면서 말을 이었다.
“이봐요. 은병진 씨, 내 말에 대답을 하든 말든 나 혼자 떠들 테니 듣든가 말든가. 입 닫았다고 귓구멍까지 막힌 건 아닐 테니 들리기는 하겠지.”
“이봐요. 검사!”
진성우가 얼굴이 벌겋게 됐다. 난 아랑곳 않는다.
“은병진 씨, 당신이 여기 앉아있는 진짜 이유 모르지? 후후, 그건 말이야, 당신 애비가···”
“이봐! 최용구 검사! 당신 도대체 어디서 굴러먹던 개뼈다귀야? 당신 위에 부장 검사가 누구야? 세상에 조사받는 민간인의 가족을 들먹이며 모욕까지 하···”
진성우 목소리 데시벨이 최고치로 올라갔다. 삿대질까지 한다.
그러든 말든 난 쳐다보지도 않는다.
“당신 애비가 나라님의 둘째 아들을 닭 쫓던 개로 만들어버렸어. 그래서 나라님이 열 받으셨어. 열 받으신 나라님께서 이 막말하는 검새한테 명령하신 게 있어. 뭔지 아나? 재벌 개혁! 이게 무슨 말일까? 후후, 당신 애비부터 당신까지 몽땅 벌 주라는 말이야.”
난 들고 온 서류 더미 하나를 은병진 앞에 탁 놓았다.
“자~ 은병진 씨, 이거 이번 압수 수색에서 나온 거야. 미국 호텔 리조트는 사고파는 거 돈 흐름이 탁탁 보이지. 더 파볼 것도 없었어. 회삿돈 빼서 호텔 사서 직원들 몰아서 매출 올려서 그거 또 삥땅 치고. 근데 말이야, 거기서 돈 빼먹어야 봐야 얼마나 빼먹겠어? 끽해봐야 직원들 출장비 뻥튀기해서 수백억. 솔직히 그게 돈인가?”
은병진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본다. 뭔가 반응이 생기는 거 같다.
“근데 여기 압수 수색에서 나온 것들 중에 말이야. 자금 흐름이, 특히 동남아 쪽으로 간 것들이 수상한 것들이 많더란 말이지. 규모도 호텔? 리조트? 비교도 안돼. 열 받은 나라님의 재벌 개혁 특명을 띤 이 검새 나리 입맛을 돋우는 거 아니었겠어?”
“부회장님, 이 검사 말 듣지 마십시오. 협박입니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최 검사, 우리는 수사에 협조할 수 없어. 부회장님 나가시죠.”
진성우가 은병진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런데,
은병진이 잡힌 팔을 뿌리치더니 내가 놓은 서류 더미 맨 윗 장을 집어서 본다.
진성우가 놀란 기색.
은병진이 한 장을 더 집어 쭉 훑어보더니 나를 보고 씩 웃는다.
뭔가 지금부터 재밌는 상황이 벌어질 거 같다는 느낌이 왔다.
나도 은병진에게 미소를 보내면서 등받이에 등을 척 기대고 은병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거··· 내가 말하면···”
은병진이 입을 열었다. 이 방에 들어온 후 처음이다.
“검사님···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