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를 죽인 검사에 빙의했다-28화 (28/70)

〈 28화 〉 압수 수색이란 이렇게 하는 거야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은하 테크론 본사 수원 사업장.

월요일 아침 출근 시간.

보안 요원 십여 명이 쭉 늘어서서, 출근하는 직원 한 명 한 명의 보안 검색을 하고 있다.

가방을 열어 USB나 외장 하드가 있으면 압수하고, 스마트폰 카메라 렌즈엔 ‘촬영 불가’ 스티커를 일일이 붙이고, 사원증 없이 들어가는 사람은 없나 매의 눈으로 감시한다.

9시 5분경.

하루 일과 중 가장 바쁜 시간이 끝났다.

보안 요원들은 모두 두세 평 남짓한 경비 초소 안에 앉아 잠깐의 한가함을 즐기고 있다.

“우리 회사는 탄력근무제 안 하나? 출근 시간이 너무 바빠.”

정문조 조장인 허민수가 스트레칭을 하면서 말했다.

“그러게 말이에요. 조장님이 건의 좀 해주세요. 우리도 아침에 늦잠 좀 자게요.”

조원들이 볼멘소리를 한다.

“어? 저거 뭐지?”

스트레칭을 하느라 상체를 창문 쪽으로 돌린 허민수가 창문 너머로 수상한 걸 발견했다.

15인승 검은색 대형 밴(Van) 하나가 사업장 정문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돌진해오고 있다.

‘바아~~ 앙~’

헤드라이트를 하이빔으로 켰고, 창문에 썬팅을 진하게 해서 내부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앗! 눈 부셔. 뭐야 저거? 야, 빨리 나가. 저거 저거 막아, 어서!”

허민수가 부하 요원들에게 소리를 질러댔고, 초소 안에서 퍽 퍼져있던 요원들도 벌떡벌떡 일어나 장비를 챙긴다. 비상 상황이다.

‘끼이익~’

어느새 검은색 밴은 아스팔트에 긴 스키드 마크를 그리면서 초소 앞에 급정거했다.

‘두르륵~ 두르륵~’

밴의 뒷좌석 양쪽 문이 열리면서,

‘탁탁 탁탁 탁탁’

건장한 남자 열 명이 우루루 내린다. 모두 검은색 선글라스를 썼고, 그중 대여섯 명은 경찰 진압봉까지 들었다.

“뭐야? 이 씨바, 이것들 뭐냐고?”

초소에서 먼저 튀어나온 허민수가 제일 먼저 제압당해 초소 바깥 벽에 밀어붙여졌다.

“억! 으··· 야! 씨~바 이거 뭐야? 다들 뭐해? 이 새끼들 어떻게 해봐. 빨리···”

초소 벽에 오른쪽 뺨이 짓이겨지듯 바짝 붙여진 허민수가 아직 초소에 있는 부하 요원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늦었다.

밴에서 내린 남자들이 초소 출입문 앞에 딱 버티고 서서 보안 요원들이 못 나오게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야? 비켜, 비키라고”

“야잇 씨바 니들 뭐야? 안 비켜? 엉?”

초소 출입문 앞에서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지는 사이, 밴에서 내린 다른 남자 두 명이 정문에 설치돼 있는 철제 빔 바리케이드를 치운다.

“씨바 뭐 하는 거야? 그··· 그거 제자리에 안 둬? 엉? 이거, 이거 놓으라고. 어서!~”

허민수를 초소 벽에 밀어붙이고 있는 남자는 밴에서 내린 남자들 중 덩치가 가장 크다. 허민수도 작은 체구는 아니고 유도 유단자인데도 벽에 붙여져 옴짝달싹을 못 한다.

다른 보안 요원들도 초소 밖으로 나오려고 몸싸움을 벌였지만 역부족이다. 숫자에서 밀렸고, 기습에 당했다. 한 명도 나오지 못했다.

“니들 뭐하는 새끼들이야? 엉?”

질문을 하는 허민수는 이미 늦었다는 걸 깨달았다.

‘바아앙~~ 바아앙~~~’

정문에 설치된 바리케이드가 치워짐과 동시에, 또 다른 검은색 밴 두 대가 쏜살같이 정문을 통과해 사업장 안으로 들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상황 종료.

허민수를 벽에 밀어붙이고 있던 남자가 허민수를 풀어주면서 썬글라스를 벗었다.

“씨바. 뭐야 너? 엉?”

허민수가 남자의 멱살을 잡으려는 순간,

“수원 지방 검찰청입니다. 압수 수색입니다.”

멱살을 잡으려던 허민수의 손이 허공에서 딱 멈췄다.

***

‘끼이익~, 끼이익~’

선발대의 정문 초소 제압 덕에 아무런 방해 없이 은하 테크론 사업장으로 진입한 검은색 밴 두 대는 브레이크 패드 긁히는 소리를 요란하게 내면서 사무동 빌딩 앞에 차례로 멈춰 섰다.

‘덜컥, 덜컥’

“빨리 내려, 빨리. 1조는 바로 진입하고, 2조는 장비 날라. 빨리빨리 움직여!”

5층짜리 빌딩인 사무동엔 인사, 재무, 구매, 기획 등 경영 지원 기능이 집중돼 있는데, 그중 압수 수색의 타겟인 재무팀은 3층에 있다.

밴에서 내린 수사관 1조는 3층으로 쏟아져 들어갔고, 나머지는 접이식 박스와 카트 등을 밴에서 내려 들고 들어갔다.

‘끼이익~’

정문에서 보안요원들을 상대하던 3조도 도착해 2조를 따라 사무동으로 밀려들어갔다.

***

“검찰 압수 수색입니다. 모두 일어서요. 책상에서 손 떼요. 당장! 일어나서 벽에 붙어 서!”

재무팀 사무실로 밀려들어온 검찰 수사관들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터졌다.

이제 막 출근해 피씨를 켜고 업무를 시작하려던 직원들이 모두 겁에 질려 자리에서 벌떡 벌떡 일어났다.

“전부 벽에 붙어서요. 아~ 진짜. 거기! 거기 뭐 하는 거야? 일어나라잖아. 피씨에서 손 안 떼? 벽에 붙으라잖아. 쌰앙!”

엉거주춤 일어나는 척하면서 피씨를 조작하던 남자 직원 한 명을 수사관이 발견하고 잽싸게 뛰어가 책상에서 밀쳐냈다. 수사관은 남자 직원을 죽일 듯이 노려본다.

“아··· 저··· 전 그냥 피씨를 끌려고···”

“벽에 붙어요. 어서! 밖으로 나가든가.”

수사관은 남자 직원을 무지막지하게 벽 쪽으로 밀어붙였다. 남자 직원은 겁에 질려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쿠당탕 쿠당탕, 스르륵 스르륵, 찌익 찌익’

캐비넷을 거칠게 열어젖히는 소리, 캐비넷 안에 있는 서류철을 꺼내 박스에 던져 넣는 소리, 책상 위에 있는 물건을 빗자루로 먼지 쓸듯 쓸어 담는 소리···.

벽에 붙어 선 여직원 중엔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엉엉 우는 사람도 있고, 남자 직원들 중엔 한두 번 큰소리로 항의해 보기도 했지만 수사관들에게 금방 제압당했다.

“이 사무실 안에 있는 것들. 중요하지 않은 건 하나도 없어. 메모지 하나, 포스트잇 하나, 껌종이 하나, 특히 전자기기는 손톱만 한 거라도 전부 다 박스에 쓸어담아. 빨랑빨랑 움직엿!”

압수 수색을 지휘하고 있는 남자는 딱 벌어진 어깨에 키가 190cm 정도 된다.

누가 봐도 베테랑 검찰 수사관 각이 나오는데, 간결하고 단호한 지시를 여기저기 내리면서, 자신은 ‘재무팀 전무 안봉진’ 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는 집무실로 직행했다.

190cm 남자는 100분의 1초도 두리번거리거나 헤매지 않았다. 여기 오기 전에 이미 사무실 내부 구조와 중요 임원 위치를 머릿속에 정확히 넣어뒀기 때문이다.

안봉진 전무실 문을 확 열어젖혔다.

“뭐야?”

안봉진이 소리쳤다.

엉겁결에 소리는 지르고 봤지만, 문을 열어젖힌 190cm 수사관을 보자마자 금방 깨갱이다.

안봉진은 검찰 압수 수색을 한두 번 겪어본 게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예고 없이 들이닥친 건 처음이다.

보통은 압수 수색 오기 며칠 전에 비공식적 루트를 통해 연락이 온다.

그러면 회사는 곧바로 ‘보안 강조 특별 기간’을 선포하고 전사적으로 업무 전폐, 일제히 ‘작업’에 들어간다.

‘작업’은 총 4단계로 이루어진다.

1단계: On Line 클린업.

전 직원의 PC에 있는 하드디스크를 모두 떼서 새 걸로 교체하고, 노트북은 통째로 바꾼다.

떼낸 하드디스크와 노트북은 물류 창고 컨테이너에 다른 제품들과 섞어 쌓아 둔다.

하드디스크에 있는 작성 중이던 문서는 어떻게 하냐는 직원들 불만은 아랑곳없다. 각자 알아서 사내 전산망 메일로 쏘아 놓고 거기서 하든가, 상사한테 깨지든가 알아서 하라고 한다.

개인용 외장 하드나 USB를 가지고 들어와서 작업하는 건 어차피 회사 보안 규정상 불가능이다. 그건 평소에도 정문에서 발견 즉시 압수되는 사내 반입 금지 물품이기 때문이다.

2단계: Off Line 대청소.

이미 프린트돼서 캐비넷이나 서랍 안에 보관 중인 문서들 중에 ‘회장’, ‘부회장’, ‘VIP’, ‘그룹’, ‘비서실’, ‘은성표’, ‘A(은성표를 가리키는 은하 그룹 내 암호)’, ‘은병진’, ‘BJ(은병진의 이름 이니셜)’, ‘삼청동(은성표 자택)’, ’청와대’, ‘BH’ 같은 단어가 단 한 자라도 들어가 있는 문서는 모두 폐기하라는 지시가 내려간다.

말미는 딱 하루다. 하루가 지나면 직원들은 해당 문서를 가득 담은 대형 검정 비닐백 수십 개를 빌딩 앞에 내놓게 되고, 대형 트럭 몇 대가 들어와 비닐백을 싣고 쓰레기 소각장으로 간다.

3단계: 리허설

보안 요원과 회장 비서실 직원들이 아침부터 사무실에 들이닥쳐 검찰 압수 수색 리허설을 한다.

직원들을 벽에 붙여 세우거나 바깥으로 쫓아내고 PC를 켜서 검색하고, 캐비넷과 서랍 속 문서들도 모두 꺼내 전수 조사한다. 1, 2단계에서 폐기 지시했던 내용이 있는 문서 파일이나 인쇄된 문서가 단 하나라도 나오면 해당 직원은 물론이고 부서장, 팀장까지 인사 조치다.

4단계: 바리케이드

검찰 압수 수색의 실제 상황이 닥치면, 우선 보안 요원들이 정문에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검찰의 압수 수색 차량을 막는다.

바리케이드는 항상 쳐져있는 것이므로 일상적인 차량 통제나 보안 검색인 것처럼 위장하고 시간을 질질 끈다.

그동안 사무실 빌딩에서는 1, 2, 3단계 작업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놓친 게 없는지 최종 점검에 들어간다. 인사팀장이 직접 사무실 곳곳을 돌면서 점검을 독려한다.

모든 사무실에서 ‘OK’ 보고가 올라오면, 정문 보안 요원에게 ‘통과’ 사인이 나가고 검찰 압수 수색팀이 그제서야 텅 빈 사무실에 진입한다.

이렇게 하는 압수 수색이니 수사에 도움 될 게 껌딱지 하나라도 나올 리 없다.

은하 그룹 압수 수색은 이래서 늘 허탕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허탕’을 미리 공모 또는 준비하고 들어가 ‘허탕’을 치는 거였다.

“아니, 도대체 이거··· 뭐하는 짓이냐니까··· 요.”

안봉진은 그래도 190 cm 수사관 앞에서 소리 한 번 질러보려고 했다가 실패했다. 어느새 가슴이 벌렁거리고 손까지 벌벌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드디스크, 노트북, 전자 기기들은 미리 따로 모아 둔 데가 있을 거야. 그것부터 찾아! 사무실 빌딩에는 없어. 물류창고 컨테이너를 뒤져.”

안봉진 앞에 딱 서서 190cm 수사관이 소리쳤다.

말의 내용은 수사관들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눈은 안봉진을 빤히 쳐다보면서 한다. 안봉진은 얼굴이 노래졌다.

이때, 분주하게 움직이는 수사관들 사이로 저벅저벅 걸어오는 사람이 있다.

190cm 수사관은 고개를 살짝 숙이면서 물러났고, 남자는 안봉진 앞에 딱 서더니 종이 한 장을 안봉진 코앞에 들이밀면서 말했다.

“수원 지검 조사부 검사 최용구입니다. 압수 수색 영장입니다. 은하 테크론 재무팀장 안봉진 전무님이시죠? 여기 책상과 캐비넷, 노트북, 전무님 개인용 업무용 핸드폰 모두 압수 수색 대상입니다. 비켜주시죠. 전무님 책상과 캐비넷은 제가 직접 보겠습니다.”

말은 내가 직접 본다고 했지만, 실제로 움직인 건 어느샌가 슬그머니 나타난 정화용이다.

안봉진 책상 위의 노트북을 챙기고, 책상 서랍과 캐비넷을 열어 문서를 모두 박스에 담았다. 다른 수사관들도 안봉진의 집무실로 속속 들어와서 압색에 동참했다.

이때 누군가가 허겁지겁 안봉진 집무실로 뛰어들어온다. 사무동 빌딩 5층엔 인사팀이 있고 인사팀의 주인은 박정철 전무다. 검찰의 압수 수색 소식을 듣고 3층 재무팀으로 쏜살같이 내려왔다.

“이게 다 무슨 짓이야? 검찰에 어떤 새낀데 나한테 미리 말도 없이··· 이··· 래도···”

‘미리 말도 없이’라는 박정철의 말이 증명하듯, 검찰 압수 수색은 언제나 박정철을 통해 미리 통지돼 왔었다.

그런데 자기가 모르는 압수 수색이 왔다고 하니 ‘어떤 새끼’가 미리 통지도 없이 왔냐고 호통치러 왔다가 말문이 막혀버렸다.

말문이 막힌 이유는 단 하나,

내 얼굴을 봤기 때문이다.

“오랜만입니다. 박정철 전무. 아직 그 자리 지키고 계시는군요.”

“어··· 오··· 랜만···.”

난 박정철을 향해 씩 한 번 웃어주고는, 고개를 다시 안봉진에게 돌리고 말했다.

“안봉진 전무님은 압수 수색이 진행되는 동안, 저와 같이 청으로 가주셔야겠습니다. 따로 소환 절차를 밟아야 하지만, 어차피 오실 거라면 시간 끌 필요 없지 않겠습니까?”

“네? 처... 청이요? 거... 검찰청요?”

안봉진은 문득 ‘제이슨 본’이 나오는 영화 생각이 났다. 지금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딱 그거 같았다.

지금 앞에 서 있는 저 최용구라는 검사는 안봉진에게 맷 데이먼 같아 보였다. 생긴 게 닮았다는 게 아니고, 여차하면 주먹이나 무르팍을 면상으로 날릴 거 같다는 점에서 그랬다.

“네. 가··· 가... 가겠습니다. 거··· 검사님.”

아랫도리가 조금 축축하다. 오줌을 좀 지린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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