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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인 검사에 빙의했다-27화 (27/70)

〈 27화 〉 돈 많고 빽 있는 놈들 눈치 보여 못한 사건들 다 넘겨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야! 최용구. 너 이리 와.”

조사부 부장이 바뀌었다. 은하 테크론 사건 이후 이철규가 옷을 벗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신임 부장 송대기 환영 회식 중.

난 송대기 앞에 와 앉았다.

송대기는 벽에 등을 기대고 오른쪽 무릎은 올리고 그 위에 팔을 턱 걸치고 앉아 있다.

앞에 와서 앉는 나를 째려보면서 툭 내뱉는 말.

“야! 누가 니 보고 편하게 앉으랬어?”

“네?”

“꿇어앉아, 이 새끼야!”

송대기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터졌다. 좌중은 일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고, 난 얼른 무릎을 꿇었다.

“저기 글라스 갖고 와.”

폭탄주 담그는 맥주잔이 내 앞에 놓였다.

송대기는 소주병 두 개를 양손에 들고 소주를 맥주잔에 찰찰 넘치게 따랐다.

“마셔!”

난 바로 들이켰다. 소주가 세 모금쯤 넘어가자 알코올 냄새가 역했다.

다 마신 잔을 내려놓자마자, 송대기는 다시 소주병을 양손에 들고 콸콸 따랐다.

“마셔!”

음식점에 있는 다른 손님들도 이 광경을 지켜본다. 재밌다는 듯 웃고 있는 사람, 저 사람 저러다가 죽겠다며 걱정하는 사람. 몇 잔까지 갈지 내기하자는 사람.

다 마셨다.

송대기는 또 콸콸 따른다.

“마셔!”

또 다 마셨다. 금방이라도 소주가 입으로 터져 나올 거 같았지만 참았다.

세 번째 잔을 내려놓자, 송대기가 썩소를 날리면서 말한다.

“독고다이 새끼. 술도 잘 처먹네.”

송대기.

형사 3 부장이었고 걸걸하고 굵은 목소리에 시커먼 사각형 얼굴로 용의자를 조진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은 흑곰.

전 강력부장 장창선과는 사시 동기고, 전임 조사부장 이철규보다는 1년 선배다. 차장 검사 승진을 해야 하는 고참 부장인 셈이다.

김필중이 평소 ‘땅개’라 부르는 형사부에서만 굴렀을 뿐, 특수나 공안 같은 소위 잘 나가는 ‘인지부서’에서는 한 번도 근무해 본 적 없다.

보직운이 없었을 수도 있고, 타고난 직선적 성격 탓에 윗사람들 비위를 잘 못 맞춰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래도 불평보다는 자부심이 더 크다. 검사의 숙명이라고 말한다.

스폰서 없이 박봉에 시달리면서, 스폰서 빵빵한 동기들 틈새에서 혼자 힘으로 여기까지 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래서 ‘송대기야말로 진짜 검사’라면서 따르는 후배 검사도 많다.

물론 그 후배 검사들도 다 ‘인지 부서’ 복 없이 형사부에서만 돌고 도는 ‘땅개’들이긴 하고, 어쩌다 줄을 잡아 ‘인지 부서’로 가게 되면 언제 봤냐는 듯 송대기를 걷어차긴 했지만.

“야, 독고다이. 니 조선시대 열녀문이라고 알지?”

흑곰 송대기가 갑자기 웬 열녀문 타령?

“네, 압니다.”

“열녀가 왜 독수공방 했는 줄 알아? 죽은 남편 그리워서? 남자 맛을 몰라서? 풉! 지 남편 잡아 묵은 팔자 쎈 년, 암만 반반한 계집이라도 그 쎈 팔자에 걸려들어봐, 좆 대가리 잘못 굴렸다가 모가지 날아가는 거야. 그거 아니까 아무도 못 건드리는 거고, 그 과부 바늘로 허벅지 쿡쿡 찔러가면서 독수공방 하는 거야. 그게 열녀야, 알아?”

이 무슨 뜬금없는 소리? 나는 피식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무슨 소린가 싶지? 야! 최용구. 너 그 열녀처럼 부장 잡아먹은 놈이야.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장창선에 이철규까지. 니는 팔자가 쎄도 보통 쎈 놈이 아니다 이 말이야. 니 지금 별명이 독고다이지? 이제 그거 그만하고 오늘부터 니 별명은 열녀다, 열녀. 알았어?”

송대기가 좌중을 향해 소리친다.

“다들 들었지? 오늘 이 최용구 시키 별명은 독고다이가 아니라 열녀다, 열녀. 지 부장 둘이나 잡아먹은 팔자 쎈 놈 열녀 최용구. 앞으로 다들 이렇게 부르는 거다. 알았어?”

열녀 최용구. 단어 조합만으로는 폭소가 터져 나와야 되는데 아무도 웃지 않는다.

“이 쉬키들 봐라. 부장이 말하는데 대답을 안 해? 열녀 최용구. 이렇게 부르란 말이야. 복창해. 열녀 최용구~”

“열녀 최용구”

“잘한다. 야, 열녀 최용구. 니 스폰지 김필중 검사장 됐다고 니도 어깨 힘 들어가나? 엉?”

송대기는 평소 스폰서를 ‘스폰지’라며 비꼬아 말한다. 직속상관인 검사장 김필중마저도 경칭을 생략하고 이름만 부르는 호기도 부려본다.

“그렇···지 않습···니···다.”

말을 하는 중간중간에 트림인지 오바이트인지가 올라오는 것을 꾹꾹 누르고 대답했다.

“니 스폰지 김필중 믿고 나한테도 까불어 볼래? 부장 두 명 날렸으니까, 나도 날리고 삼세번 채워볼래? 한 번 보자고. 어떻게 되나. 니가 먼저 옷 벗나, 내가 먼저 벗나 해보자고.”

난 짧은 대답이라도 입 밖으로 내려했다간 말보다 소주가 먼저 튀어나올 거 같았다.

“야~ 다들 대가리 쳐들고 내 말 들어. 니들 지금 하고 있는 사건 중에 골치 아프고 안 풀리는 것들, 해봤자 티도 안 나고 시간만 까먹는 것들, 특히 돈 많고 빽 좋은 놈들 눈치 보여서 진행 못하고 있던 것들. 그거 전부 쓸어다가 김필중 검사장님을 스폰지로 모시고 사는 이 열녀 최용구한테 재배당한다. 다들 알아먹었어?”

다들 쥐 죽은 듯 조용~.

“이 새끼들이 아까부터 부장이 말하는데 왜 대답을 안 해? 알아 들었냐고? 엉?”

“네, 부장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일제히 큰소리로 대답했다.

부하들의 복종에 흡족한지 씩 웃으면서 다시 나에게 시선을 꽂는다.

“야! 열녀! 잘 들어. 나 송대기가 제일 싫어하는 놈이 어떤 놈인지 아나? 스폰지 믿고 까부는 놈. 치졸하게 뒤에서 때리는 놈이야. 최용구 넌 이 두 개에 다 걸려.”

“······”

“너 마누라한테 가서 말해. 당분간 남편 얼굴 볼 생각하지 말라고. 당장 내일부터 너는 내가 재배당하는 사건들로 죽어나는 거야. 그거 제때 해결 못하고 질질 끌 거니까 근무 평정은 하위 1%로 빌빌 기게 될 거고.”

“······”

“자~ 난 너를 이런 식으로 조질 거다. 넌 날 어떻게 조질 건데? 열녀 최용구.”

할 말이 없어서 못 하는 게 아니다. 지금 입을 열었다간 부장 앞 밥상에 소주와 토사물이 넘쳐나게 될 거 같기 때문에 입 다물고 있는 거다.

“풉! 꺼져, 이 새꺄!”

송대기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난 벌떡 일어나 입을 움켜 싸고 바로 화장실로 향했다. 움직였더니 위장 속의 술이 더 심하게 출렁거렸다.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돌아오니, 회식 자리는 다시 화기애애해졌다.

난 송대기에게서 가장 먼 쪽 구석에 자리 잡고 앉았다.

다들 힐끔힐끔 나를 훔쳐보기만 할 뿐, 아무도 옆에 와서 말을 걸지 않았다.

‘잘 됐다. 골치 아픈 사건들 이번 기회에 저 독고다이한테 다 넘기자. 흐흐흐.’

‘저 독고다이 새끼 근무 평정 빵점 나오면 그럼 다음 인사이동 때 저 새끼는 전라도 벽지 아니면 강원도 산골이겠군. 수도권 경쟁자 하나 날렸다. 후후.’

대충 이런 생각을 눈빛으로 주고받겠지.

“은하 그룹은 그게 뭐냐? 왜 처음부터 분할이니 합병이니 발표를 해서는. 바보 같은 놈들.”

그중에서 유독 목소리를 키우는 사람이 있었다.

권성훈.

최용구의 연수원 3년 선배지만, 사시에 늦게 붙어서 나이는 훨씬 더 많다.

“역시 은하는 ND한테 안 돼. 비슷한 거 같지만, 수준이 떨어진다니까.”

권성훈이 ND 그룹의 스폰서 검사라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런데도 대놓고 ND 그룹을 칭찬하는 말을 한다. 그만큼 ND 그룹이 세다는 방증이다.

“그러게요. ND는 이런 일에 실수가 없잖아요.”

옆에 한두 명이 붙어서 권성훈의 말에 맞장구를 친다. 이렇게 맞장구치는 이유는 뻔하다. 자기도 ND 그룹에 말 좀 잘해달라는 거다.

난 아까 일을 보고 왔는데도 다시 속이 니글거렸다. 술 때문이 아니라 저 검사들의 대화 때문이었다. 검사란 자식들이···.

“우웩~”

손으로 입을 가리고 헛구역질을 했다. 뒤틀린 위장 때문인지 정신이 혼미해졌다.

희미해진 시야에 멀리 앉은 송대기가 보였다.

나를 보고 씩 웃고 있는 거 같았다.

***

“이거 너무 한 거 아닙니까? 검사님?”

정화용이 산더미 같은 사건 파일을 캐비닛에 넣다가 힘들어 못하겠다면서 울상을 지었다.

송대기가 회식 자리에서 장담한 대로 온갖 구질구질한 사건들이 나에게 재배당됐다.

오늘 하루 쏟아진 것만도 수십 건이 넘는다. 캐비닛 다섯 개를 다 채우고도 모자란다. 일부는 그냥 바닥에 쌓아두기로 했는데 때문에 사람 지나다닐 틈도 없어졌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계장님이 고생이시네요.”

서류를 같이 정리하던 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정화용도 멋쩍게 웃었다. 죄송하다니, 세상에 계장한테 이렇게 말하는 검사가 대한민국에 또 있을까 싶다. 사람이 순식간에 저렇게 변하다니. 희한한 일이다.

“저야 좀 힘들고 말면 그만이지만. 검사님은 이러다가···”

이 바닥에서 오래 구른 정화용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일의 의미를 잘 안다.

바뀐 부장한테 밉보여서 일명 ‘깡치’라 불리는 복잡하고 힘든 사건을 무더기로 배당받아서 찍혀 나가는 검사 여럿 봤다.

검사는 사건 처리 건수, 미제 건수 등으로 근무 통계가 집계되는데, 이런 ‘깡치’ 사건을 무더기로 배당받으면 당연 근무 통계가 불량해진다. 그러면 인사 평정 불량은 물론이고, 감사 지적을 받을 수도 있고, 급기야 검사 적격심사에서 탈락하기도 한다. 검사로서 종 치는 거다.

‘벌 배당’이라 불리는, 부장 검사들이 평검사 군기 잡는 전통적인 수법이다.

“출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일 더미를 안겨서 어떡해요? 박수미 씨한테 미안하네요.”

박수미는 내 방에 신규 배속된 실무관 여직원이다.

“어머, 아니에요. 검사님. 무슨 말씀을요.”

서류 더미를 덥석 들어 캐비넷에 넣는 솜씨가 웬만한 남자보다 칠칠맞고 시원시원하다. 얼굴은 작고 가냘프게 보이는데 일하는 건 정반대다.

“어휴~ 검사님, 박수미 씨 일하는 거 보세요. 저보다 낫다니깐요. 허허허.”

정화용은 박수미가 첫눈에 딱 맘에 들었다. 싱글벙글이다. 이쁘고 일도 잘하니 뭐···.

‘덜컥’

검사실 문이 열리면서 여직원 한 명이 쇼핑 카트에 서류 더미를 가득 넣고 들어왔고, 그 뒤를 따라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건들건들 싱글벙글하면서 누가 들어왔는데 검사 권성훈. 어제 회식 자리에서 은하 그룹이 어쩌네 ND 그룹 더 낫네 운운했던 최용구의 선배다.

“어~이~ 열녀. 사건 또 가져왔어.”

권성훈이 이미 쌓여있는 서류 더미를 쭉 훑어보더니,

“우와~~ 이게 오늘 다 재배당된 사건 더미야? 우하하하. 캬~ 이거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나도 이만큼 더 가져왔는데.”

같이 들어온 여직원이 밀고 들어온 카트 속의 서류 더미를 손으로 툭툭 치면서 말했다.

“나 이 권성훈은 말이야. 부장 검사님의 지시는 백 프로, 아니 백이십 프로 이행하는 충성도 극강의 검사거든. 어제 부장님께서 뭐라 그러셨어?”

권성훈이 어깨에 힘을 잔뜩 넣고 턱을 잡아당겨 얼굴을 송대기처럼 만들어서 말한다.

“돈 많고 빽 있는 놈들 눈치 보여서 진행 못한 사건들··· 모조리 쓸어다가 열녀 최용구한테 넘겨. 알아들었어? 흐흐흐 이렇게 말씀하셨잖···.”

‘퍽’

누군가가 뒤통수를 후려갈겨서,

“뭐야?”

권성훈이 홱 돌아봤는데···.

“헉. 부··· 부장님.”

송대기다.

“충성도 극강이라는 놈이 니 부장 흉내질이나 내고 자빠졌어? 쉬키가 죽을라고.”

“아··· 저··· 하하하, 부장님 그게 아니고 부장님의 스타일을 제 몸에 완전히, 백 프로 체화하기 위해서 연습을 좀 하고···헤헤헤”

“시끄러. 후배 방에 와서 노닥거릴 시간 있어? 한가해? 너도 골치 아픈 사건 덩어리로 재배당해줘?”

“아, 아닙니다. 부장님. 저 바쁩니다. 그럼··· 이만···.”

권성훈이 도망치듯 방을 나간 뒤, 송대기는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철을 보고 씩 웃는다.

“이거 다 이번에 새로 배당된 사건 서류철인가? 많긴 많네. 후후후”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다가, 방금 전 권성훈이 카트에 담아가지고 온 서류철 더미를 뒤적뒤적하더니 그중 하나를 틱 뽑아서 내게 건넨다.

“이거부터 해.”

방을 나가는 송대기 뒤통수에 대고 정화용이 인상을 쓴다.

“나 원, 혹에다 혹을 더 붙여주고 가는군. 나 참 더러워서 아 놔~”

투덜거리는 정화용을 그냥 두고, 난 송대기가 건네고 간 사건 파일을 봤다.

사건 파일 제목은···

‘은하 그룹 역외 펀드를 통한 비자금 조성 및 분식 회계의 건’

난 혼자 작게 중얼거렸다.

“후후, 전쟁이 시작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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