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를 죽인 검사에 빙의했다-26화 (26/70)

〈 26화 〉 입으론 외국인 단타 핫머니를 욕하고, 손으론 욕망에 불을 지른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심덕환이 수원 지검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넥타이에 감색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었다.

심덕환이 온다는 소식을 어떻게 입수했는지, 지검 청사 정문 근처에서 서성이던 조준호가 심덕환을 발견하자 옆에 착 달라붙었다.

“은하 테크론의 심덕환 전무님, 아, 심덕환 전(前) 전무님이시죠? 반갑습니다. 전무님. 잠시 같이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뉘신지요?”

심덕환이 조준호를 아래위로 훑으면서 물었다.

“저 모르세요? 아~ 이거 섭섭한데요? 저 늘봄 신문의 조준호, 조준호 기자입니다. 우선 전무님 무혐의 처분받으신 거 축하드립니다. 하하하. 전무님 무혐의 받으시는데 저 조준호도 제대로 한 몫한 거 알고 계시죠?”

“그러신가요? 고맙습니다. 전 그럼 바빠서.”

심덕환은 짧게 인사하고, 몸을 홱 돌려 가던 길을 재촉했다.

“어? 아니 잠깐, 잠깐만요. 심덕환 전무님? 저 좀 보세요. 이렇게 그냥 가시면 어떡합니까?”

“왜 자꾸 이러지죠? 제게 무슨 용건이 있으십니까?”

심덕환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왜 자꾸 이러냐니··· 아니 우리 심덕환 전무님, 은하 그룹과 검찰의 더러운 유착에 당하신 거 아닌가요? 재벌과 검찰의 유착, 이런 건 그냥 넘어가면 안 되잖아요? 인터뷰 하나 해주시죠. 우리 사회가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국민을 위해서 한 마디 해주셔야죠. 그동안 은하 그룹에 부당하게 당하셨던 거라든가, 은하 그룹 내부 사정도 아시는 거 다 좀 폭로 해주시고. 아 그리고 검찰에서 수사받으시면서 강압 수사받으셨던 거라든가, 우리 사회에서 반드시 근절돼야할 적···”

“실례하겠습니다.”

심덕환은 다시 몸을 홱 돌려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엔 더 빠른 걸음이다.

“아니, 이 보세요. 심덕환 전무님! 심덕환 씨~”

조준호가 몇 발자국 따라붙으면서 불렀지만, 심덕환은 이번엔 멈추지 않았다.

다급한 마음에 조준호 목소리가 더 커졌다.

“그냥 가시면 어떡합니까? 우리 공동체의 정의를 위해서 저 포악한 재벌과 검찰의 유착, 음모 폭로하셔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 것에 대한 책임감 조금도 안 느끼십니까? 예?”

소리쳐 봐야 소용없다.

심덕환은 종종걸음으로 검찰청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뭐~야? 하여튼 공돌이 새끼들은 어쩔 수가 없어. 사회 의식, 역사 의식이라고는 개미 눈곱만큼도 없는 인간들. 머리가 아예 텅~ 비었다니까. 에~잇 재수 없어. 에잇 퉷!”

조준호는 눈앞으로 흘러내린 긴 머리를 위로 쓱 쓸어 올리면서 돌아섰다.

***

“아니 저 엑소더스 펀드인지 뭔지 하는 놈들, 한 달도 안 돼서 세상에 두 배나 벌어간다는 게 이게 이게 말이 됩니까? 검사님?”

아까부터 정화용은 PC 모니터에 뜬 엑소더스 펀드 관련 뉴스만 골라가며 보고 있다. 얼마나 흥분을 했는지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얼굴이 벌게졌다.

“이 외국인 단타꾼들 이거 어째야 됩니까? 우리 이런 놈들때문에 IMF도 당했던 거 아닙니까? 그런데 또 이런 핫머니들이 설친다는 말입니까? 이런 놈들 아예 우리 시장에 못 들어오게 막아야 되는 거 아닙니까?”

후후, 정화용이 저렇게 흥분하는 걸 보니 좀 후회가 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정화용한테도 은하 테크론 주식을 사라고 하고, 매도 시점도 알려줄 걸 그랬나 보다.

대신 맞장구를 쳐주기로 한다. 말하는 데 돈 안 드니까.

“맞습니다. 계장님. 이윤을 위해서라면 지옥에라도 뛰어들 저 외국인 단타꾼 핫머니들은 국제 자본 시장에서 완전히 퇴출해야 됩니다. 각국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토빈세 같은 걸 강화하든지 해야지 원~”

정화용보다 더 목소리를 높여줬다.

이렇게 말하면서 속으로 어찌나 웃었던지. 뭐 이 말을 한 건 내가 아니라 내가 들어와 있는 최용구가 한 걸로 치자.

어쨌든 미국에 있는 내 계좌, 정화용의 표현을 빌리자면 내 ‘외국인 단타꾼 핫머니’ 계좌는 이번 일로 또 천만 불 가까이 잔고가 늘었다.

Cash Nexus에서 엑소더스 펀드에 함께 했던 ‘외국인 단타꾼’들은 채팅창에서 난리가 났다.

— ‘스티브, 이번 건도 역시 환타스틱 했어. 굿잡이야.’

— ‘역시 한국은 쉽게 돈 벌 수 있는 껀수가 널린 것 같애.’

— ‘스티브 또 껀수 생기면 알려줘. 스티브가 가는 곳엔 다 따라갈 거니까.’

난 입으로는 ‘외국인 단타꾼 핫머니’를 향한 정화용의 분노(?)에 맞장구를 쳐주면서, 손가락으로는 ‘외국인 단타꾼 핫머니’들의 욕망에 불을 질렀다.

— ‘조만간 또 큰 건 하나 생길 거 같으니까. 현금이나 두둑이 준비해놓고 기다리라고.’

어제 청와대에서 맺었던 백영기와 나의 약속, 은하 그룹의 지배 구조를 ‘개혁’하겠다 했던 약속은 또한번 어김없이 저 ‘외국인 단타꾼 핫머니’들에게 큰 돈벌이 기회를 제공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때,

내 검사실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가 들어왔다.

“최용구 검사님 계십니까?”

“누구··· 시죠? 엇? 다... 당신은···”

정화용이 검사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란다.

“안녕하십니까? 심덕환입니다.”

“아, 어서 오십시오. 전무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심덕환을 반갑게 맞았다.

엥? 정화용의 눈이 동그래졌다.

“안 그래도 미국 돌아가기 전에 검사님께 인사드리고 가려고 했었는데 이렇게 친히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검사님.”

친히 불렀다고? 정화용 눈이 더 크게 동그래졌다.

“무슨 말씀을요. 제가 뵙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와 주셔서 제가 감사하지요. 전무님, 이쪽으로 오시죠.”

나는 심덕환을 검사실 내실로 안내했다. 소파에 마주 보고 앉았다.

“전무님, 미국으로 돌아가신다구요?”

“네, 그렇게 됐습니다.”

“어렵게 결정내리셔서 오신 한국이었는데··· 잘 되셨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다 지난 일이니까요. 무혐의 처리되고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더 할까 알아는 봤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제 직장을 구하기가 어렵더군요. 검사님 덕분에 기술 유출범이라는 혐의는 벗었지만, 대한민국에서 은하 그룹하고 척을 지고는 직장을 구할 수가 없겠더군요. 다들 저를 피하기 바쁘더군요. 더군다나 언론에서 저를 아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놔서. 같이 일했던 동료들로부터 공격도 많이 받았고···.”

아마 신문 방송보다도 동료들로부터 받은 공격이 가장 마음 아팠을 것이다.

난 마음이 씁쓸했다.

“미국에서 일할 직장은 잡았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아! 그래요? 잘 됐네요.”

“엔지니어는 아니구요.”

“그럼, 어떤 일이신지···.”

“벤처 캐피탈입니다.”

“아. 그래요? 혹시 회사 이름이?”

난 다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 물었다.

청와대에서 백영기를 만나고 돌아온 날, 난 Cash Nexus에 접속해 엑소더스 펀드의 대표 역할을 잘 해낸 그레이엄을 채팅에 불러냈다.

— ‘하이, 그레이엄. 인터뷰 봤어. 말 잘하던데. 국회의원 출마해도 되겠어. 후후’

— ‘다 JP Morgan에 있을 때 스티브 너한테 배운 거지. 넌 아직도 내 스승이야.”

— ‘스승은 무슨. 이번 일 멋지게 해냈어. 최고야.’

— ‘다 스티브 너 코치 덕분이라니까. 여튼 고마워. 근데 지금 한국에 있나?’

— ‘그건 비밀이고. 후후, 지구상 어딘가에 있겠지. 알려고 하지 마.’

— ‘워렌 버핏처럼 은둔의 현인이 되기로 하셨나? 후후후.’

— ‘나 근데 그레이엄한테 개인적으로 부탁할 게 하나 있어.’

— ‘부탁? 스티브의 부탁이라면야 이 그레이엄이 안 들어줄 수 없지. 뭔데?’

— ‘이번에 은하 테크론에서 기술 유출범이라고 몰았던 사람 말이야.’

— ‘오~ 알지. 심덕환. 인텔의 에이스 중의 에이스였던 엔지니어 아냐?’

— ‘맞아. 그런데 혹시 그 사람을 엑소더스 펀드에서 채용할 수 있겠어? 물론 심덕환 본인이 원한다면.’

— ‘채용? 당연히 OK지. 그런 에이스 엔지니어는 억만금을 줘서라도 모셔가야지. 금융도 기술을 잘 알수록 기회를 빨리 캐취할 수 있으니까. 땡큐. 역시 스티브 너는 최고야.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

— ‘오케이, 고마워.’

내가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 리 없는 심덕환은 조금 쑥스러워하면서 대답했다.

“이번··· 은하 테크론 분할 합병 계획에 제동을 걸었던··· 엑소더스 펀드라구요. 거기에서 저에게 잡 오퍼를 주더라구요. 그래서 가겠다고 했습니다.”

“아~~ 그래요? 잘 됐네요. 가시면 하시는 일은 어떤 일이신가요?”

“벤처 캐피탈이니까 주로 스타트업 발굴하고 인큐베이팅하고 그런 일이겠죠. 금융은 잘 모르지만, 더군다나 밸류에이션은 생소하긴 한데요. 맨날 누가 나를 밸류에이션 하는 것만 봤지, 제가 해보지는 않아서··· 열심히 배워보겠습니다.”

“워낙 뛰어나시니까 금방 적응하실 겁니다. 정말 잘 됐습니다.”

진심 그렇게 생각했다. 꼭 성공할 거다. 아니, 성공해야 한다. 심덕환 당신 같은 사람은.

“검사님, 제가 이번 일 겪으면서 느낀 게 참 많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엔지니어말고는 생각을 해본 적 없이 컸어요. 성인이 돼서도 오로지 기술만 들입다 팠죠. 그런데 이번에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구나라는 걸 절감했습니다. 기술만 알았지 너무 세상을 몰랐던 거죠. 기술도 결국 세상과 사람과 연결된 건데··· 그런 걸··· 모르고 기술만 파서는 안 되겠···”

심덕환은 잠시 목이 메는 거 같았다. 말을 잇지 못했다.

“잘하셨습니다. 새로운 도전이시네요. 전무님께는.”

“네. 맞습니다. 나이 50 다 돼서 새로운 일 하는 거라 좀 무섭기도 하지만··· 뭐··· 조국에 와서 깜방에도 갈 뻔했는데 이까짓 일 못하겠나 생각하고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응원하겠습니다. 전무님.”

“감사합니다. 저··· 검사님··· 제 혐의를 벗겨주셔서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 흑.”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난 그가 진정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렸다.

“저 그럼 가보겠습니다. 검사님 바쁘신데 시간을 뺏었습니다.”

“아닙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볍게 악수하고 검사실을 나가려던 심덕환이 뭔가 생각이 난 듯 멈춰 섰다.

“아참, 검사님.”

“네 말씀하세요.”

심덕환이 싱긋이 웃는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거 있잖습니까? 프로톤 메일로 조준호 기자한테 메일 보내시고 계정 폭파하는 거··· 결국 다 들통납니다. 너무 자주 써먹지 마세요.”

“네? 아··· 네. 하하하.”

야~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난 멋쩍게 머리를 긁으면서 웃었다. 과연 실리콘 밸리를 주름잡았던 심덕환이다 싶다.

“앞으로 그런 일 또 필요하시면 저에게 연락주세요. 제가 쉽게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내게 내민 명함 한 장.

다른 건 없고 이메일 어드레스 하나만 달랑 적혀있었다.

“이쪽으로 연락주십시오. 검사님만 아시는 주소입니다. 아무도 몰라요.”

다시 씩 웃는 심덕환. 나도 같이 웃어줬다.

나는 검사실을 나가 복도를 걸어 나가는 심덕환의 등을 한동안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월화수목금금금’ 기술만 파느라 앞으로 굽은 엔지니어의 등.

억만금을 저버리고 조국을 위해 일하고 싶다면서 돌아왔던 심덕환의 등.

그가 등 돌려 다시 미국으로 간다.

나는 심덕환의 저 등이 다시는 조국을 향해 돌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