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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인 검사에 빙의했다-23화 (23/70)

〈 23화 〉 사람 하나 골로 보낼 땐 확실히 보내야지. 어중간하면 안돼.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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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총무 비서관 전태기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에어터치 사를 수차례 방문하면서 비행기 운임, 호텔 숙박비 등 체재 비용을 전액 은하 테크론에서 지원받은 사실이 조사 결과 드러났습니다.”

“에어터치에 갔는데 비용 지원을 은하 테크론에서 해?”

나와 김필중은 박정철을 문 앞에 세워놓고, 마치 박정철은 없는 사람인듯 둘이서 대화를 주고받았다.

“네, 뿐만 아니라, 전태기는 에어터치 사가 소재한 캘리포니아 멘로 파크만이 아니라 로스앤젤레스, 스프링 팜스, 라스 베가스 등을 돌아다니면서 은하 테크론으로부터 골프, 고가의 식사 접대, 향응 등을 수차례 제공받은 걸로 드러났습니다. 이는 공직자 윤리를 심히 훼손하는 명백한 뇌물 수수로 보인다는 점이 보고서의 주요 내용입니다.”

“뭐? 청와대 공직자라는 자가 미국까지 가서 그런 접대를 받아?”

김필중 연기 빨 산다. 내가 준 문서를 정말로 처음 보는 거 같다.

“그렇습니다. 차장님.”

“알았어. 전태기 그자, 민정 수석께서도 낌새가 이상하다고 내부 감찰반에 감찰을 시켜 놓으셨다 하시더라고.”

게다가 민정 수석 내부 감찰반은 애드립이다.

“최 검사 수고했어. 민정 수석께 이거 갖다 드리면 좋아하시겠네. 청와대 자체 감찰 자료하고 이걸 크로스 체크하면 애큐러시(Accuracy)는 더 높아질 테니까 말이야.”

박정철이 슬그머니 돌아섰다. 얼굴빛이 갑자기 새까만 흙빛으로 변했다.

‘이거 뭐야? 많이 꼬인 거 같은데? 전태기... 전태기 그 새끼가 뭐 어쨌다고? 그리고 민정 수석이 뭘 지시했다고?’

난 돌아서는 박정철을 느꼈지만 무시하고, 결정타로 더 큰 한 방을 날렸다.

“그리고 차장님, 방금 전 박정철 씨가 차장님 질문에 대답하면서 에어터치 사에 은하 테크론이 기술 유출에 대한 배상으로 지급하는 돈은 대통령 둘째 아들에게 가는 게 맞다고 진술했습니다. 뇌물 공여라는 점을 자백한 것으로 보아 지금 긴급 체포해도 되겠습니까?”

“뭐··· 뭐라고요? 이··· 이 무슨···.”

결정타의 효과는 확실했다.

박정철은 내가 앉아 있는 소파까지 거의 뛰어오다시피 해서 왔다.

“이··· 이보시오. 최··· 최··· 최 검사. 아니 최··· 최용구 검사님. 이거 이러는 거 아니지요. 정식으로 조사하지 않고 여기서 한 말을 가지고 이러시면 곤란하죠···.”

내가 거들떠보지도 않자, 박정철은 이철규를 돌아보면서 SOS를 친다.

“이··· 이 부장. 뭐라고 말 좀 해봐. 응? 이··· 이건 아니잖아? 응?”

이철규가 여기에 대답할 리가 있나. 고개를 더 숙이면서 외면할 뿐 아무 말 없다.

김필중이 씩 웃으면서 화룡점정을 찍는다.

“그래. 긴급 체포해.”

“뭐··· 뭐라고요? 기··· 긴급 뭐···?”

“네, 차장님.”

난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김필중 책상 위의 인터폰을 들었는데, 박정철이 내 팔을 붙잡고 늘어진다.

“최··· 최 검사님. 잠깐··· 잠깐만요. 우리··· 우리··· 이성적으로 이야기합시다. 네? 아··· 아까 내가 좀··· 이 입이 보살이지··· 내가··· 시··· 실수했어요. 미안해요. 미안··· 응?”

그러더니 무릎을 털썩 꿇는다.

“나··· 나 정말 체포되면 안 돼··· 살려주세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상황에서는 내가 들어와 있는 최용구의 성정과 나의 본능이 완전히 일치했다.

최용구의 뇌와 나의 영혼이 마음속으로 동시에 말하고 있었다.

‘지~ 랄하고 자빠졌네.’

난 무릎 꿇은 박정철에게 단 1초도 시선을 주지 않고 인터폰에 대고 말했다. 단호하고 짧게.

“차장 검사실로 수사관 둘 보내. 뇌물 공여 용의자 긴급 체포.”

인터폰을 내려놓자 박정철은 무릎 꿇고 앉은 채 멍하게 허공만 쳐다보고 있다.

체포를 위해 수사관들이 차장 검사실까지 오는데 걸리는 시간 약 5분.

난 그 5분 동안 이 박정철이를 더 확실하게 보내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용구의 뇌도 그렇게 내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차장님, 전태기 청와대 총무 비서관도 소환 조사하겠습니다. 공직자 윤리법 및 형법 제129조에서 정한 수뢰죄에 해당합니다. 허가해주십시오.”

소파에 앉은 김필중이 나를 씩 올려다보더니,

“그거 뭐 허가고 뭐고 할 거 없어. 나 좀 있다가 청와대 올라가서 유선진 민정 수석을 만날 거니까 모두 보고 드리면 수석께서 더 강력하게 그렇게 하라고 하실 일이야. 전태기 같은 그런 자식은 조사하고 자시고 하기 전에 우선 짤라놓고 혼줄을 내야 돼. 청와대 있다고 완장질 하는 놈들은 대통령님을 위해서라도 엄벌해야 돼. 여기 박정철하고 전태기 둘 다 깜방에 처넣어놓고 보자고 하실 거야. 민정 수석께서도.”

“흑흑··· 으···”

신음소리까지 내는 박정철.

내 팔에 애걸하듯 매달려도 보고 무릎까지 꿇었는데 아무것도 얻어낸 게 없다. 아마 울고 싶을 것이다. 방금 전에 ‘큰 집’ 운운하면서 큰소리쳤던 자신의 혓바닥을 뽑고 싶을 것이다.

동정심? 측은지심? 그런 거 없다. 오히려 난 내친김에 하나 더 하고 싶어 졌다.

사람 하나 골로 보낼 때는 어중간한 거 싫다. 확실하게 보낸다. 최용구에게서 흡수한 용의자 심문법 중 하나다.

흑흑 거리는 박정철 앞에 일부러 한 발짝 더 다가가서 말했다.

“차장님, 제가 보기에는 은하 그룹 회장 비서실장인 김상덕 부회장이 이번 사건의 몸통이 아닐까 싶습니다.”

“네? 어... 그... 그건···”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고개를 홱 드는 박정철. 난 당연 개무시다. 말을 계속한다.

“아까 차장님께서 김상덕 부회장이 시킨 일이냐고 질문하셨을 때 박정철 씨가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습니다. 김상덕 부회장도 소환 조사가 필요해 보입니다. 허가해주십시오.”

“헉··· 기··· 김상덕 부회장···”

이번엔 박정철이 무릎 꿇은 채로 내가 기어와 내 다리에 매달린다.

“정말··· 소··· 소환은 안됩니다··· 제발···.”

내 다리에 이렇게 매달려 소환은 안 된다고 하면서 정작 박정철 자신의 단독 플레이였는지 김상덕 부회장의 지시였는지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왜 말하지 않을까.

난 박정철에게는 이제 더 물어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완전히 무너져버린 박정철에게서는 더 캐낼 것도 없다. 이제 내 관심 밖이다.

김필중도 마찬가지다. 어린애처럼 매달리는 박정철을 보고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그래. 김상덕 부회장. 소환 조사해. 불러놓고 조져봐. 담당 검사가 알아서 하는 거지. 그런 거 나한테 일일이 허락받고 그럴 거 없어. 결과만 보고해. 오케?”

“네 알겠습니다. 차장님.”

김필중이 손목시계를 보면서 소파에서 벌떡 일어선다.

“자, 그럼 난 지금 청와대로 올라가서 민정 수석 만나 뵙고 올 테니···”

김필중이 캐비넷으로 가서 자켓을 꺼내 입고 넥타이를 추스르면서 문으로 향한다.

“네, 잘 다녀오십시오.”

나도 김필중을 따라나섰다.

문을 열고 나가려다 김필중이 멈칫 서더니, 아직 소파 옆에 무릎 꿇고 있는 박정철을 돌아보고 한마디 툭 던진다.

“박정철 씨. 아까 나보고 이 수원 시골에서 차장 검사까지만 하고 그만둘 건가 어쩐가 하셨죠? 내 앞날을 그렇게 걱정해주셔서 고맙소. 내 그 말 잊지 않지. 후후.”

김필중은 노란색 대봉투를 든 손으로 경례를 틱 붙이면서 차장 검사실을 나갔다.

따라 나가던 나도 한마디 했다.

“박정철 씨, 아까 나보고 독고다이라서 승진 같은 거 신경 안 쓰고 산다고 하셨죠? 나 김상덕 부회장한테 우리 박정철 씨 승진에 대해서 한 번 물어보죠. 난 내 승진은 별로 신경 안 쓰지만 남의 승진은 되게 신경 쓰거든. 후후”

***

청와대 민정 수석실.

김필중과 민정 수석 유선진이 소파에 마주 보고 앉아있다.

“그러니까 이게 전부 은하 테크론 박정철이라는 사람과 우리 쪽 전태기 총무 비서관이 꾸민 일이라 이겁니까?”

유선진이 물었다.

하지만 이건 묻는 게 아니라 사실 유선진 자신은 여기 관여한 바 없다고 결론을 내리자는 압력이다.

“네, 그렇습니다.”

“헛 참, 이런 일이 있었던 걸 내가 모르고 있었다니···”

유선진은 혀를 끌끌 차면서 혼잣말을 했다.

하지만 이것도 혼잣말이 아닌 ‘나는 전혀 몰랐다’라고 강하게 주장하는 거다.

‘민정 수석님은 모르고 계셨다는 걸로, 아랫것들이 과잉 충성으로 한 짓으로 처리하지요.’

김필중은 속으로 웃었다.

“그래, 전태기 비서관 비위 사실도 적발했다고요?”

“네. 미국 현지 에어터치 사 운영하는 걸 돕는다는 핑계로 캘리포니아를 자주 드나들면서 은하 테크론 측으로부터 접대, 향응, 고가 물품 등을 제공받았다고 합니다. 제가 드린 보고서에 상세히 적혀있습니다.”

유선진이 김필중이 건넨 노란색 대봉투 속의 자료를 꺼내 대충 훑어본다.

“헛참. 미국을 그렇게 자주 들락거렸다는데도 난 까맣게 모르고 있었네. 도대체 비서실장은 자기 밑에 총무 비서관은 어떻게 관리하는 거야? 우리 민정 수석실에 비서관이 그런 짓을 했으면 1초도 안 걸려서 내가 알았을 텐데. 나 참···.”

김필중은 또 한 번 속으로 웃었다.

‘이런 식으로 못을 박는단 말이죠? 후후’

“각하 임기 후반기로 접어드니까 청와대 안 내부 기강이 이렇게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하는군. 착잡하구만. 내 이 건은 비서실장님께 보고 드리고 바로 조치를 하도록 하죠.”

“네··· 그리고 은하 테크론 기술 유출 건은···”

“그건 없던 일로 만들어줘. 검찰에서 처리할 수 있잖아?”

슬쩍 반말이다. 그런 거까지 물어보나라는 짜증이 섞인 반응. 김필중은 바로 눈치를 깠다.

“네, 안 그래도 기술 유출 건은 무혐의에 불기소 처리로 하겠다고 수석님께 보고를 드리려던 참입니다. 이런 사건을 기소하면 언론에 오르내릴 것이고, 그러면 분명히 백승환 씨 이름도 노출될 겁니다. 사전에 차단하는 게 낫습니다.”

“잘했어요. 우리 김필중 차장 덕분에 큰 우환 거리를 사전에 예방했네요.”

다시 존댓말이다. 마음에 든다는 뜻이다.

“별말씀을요.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아, 그럼 이건 이렇게 정리하고. 난 다음 스케줄이 있어서.”

유선진이 손목시계를 보면서 일어나려 했는데, 김필중이 먼저 벌떡 일어났다.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석님.”

상체를 90도로 숙이면서 인사했다.

“아, 참. 김필중 차장. 거 수원 지검에 차장 검사할 사람 한 명 추천해줘요. 나중에라도.”

차장 검사를 앞에 놓고 차장 검사할 사람을 추천하라니. 이 무슨 말인가. 눈치 빠른 김필중도 얼른 의미를 캐치하지 못했다.

어리둥절해하는 김필중을 향해 씩 웃으면서 유선진이 말한다.

“김필중 차장은 이번 인사에서 검사장 승진할 거니까, 그 자리 채울 사람 필요하잖아.”

유선진이 김필중의 어깨를 툭 치면서 말했다.

“아!”

“수원 지검 맡아서 잘 이끌어줘요. 김필중 차장.”

“네, 감사합니다.”

다시 상체를 90도로 숙여 인사하는 김필중의 얼굴에 미소가 잔뜩 고였다.

무릇 인사란, 인사권자가 원하는 걸 착착 잘하기만 한다고 되는 건 아니다. 인사권자의 약점도 잡고 있어야 한다.

이번 사건, 유선진이 자신은 몰랐고 관여한 바 없다고 두 번 씩이나 말을 했지만, 그걸 김필중이 곧이곧대로 믿을 거라고는 유선진 자신도 생각하지 않는다.

믿지 않는다면 믿게 만들어야 한다.

어떻게?

김필중의 입에 승진을 넣어주는 거보다 더 확실한 건 없다. 무릇 공무원이란 승진으로 먹고사는 특이한 종족이기 때문이다.

김필중이 드디어 검사장이 된다.

검사의 별, 검사장.

청와대 경내를 걸어서 나오는 동안 김필중의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이 모든 게 최용구 그 독고다이가 일을 잘 만들어준 덕분이다.

최용구 그놈··· 쓸만하다.

제법 괜찮게 한다.

계속 옆에 놓고 유용하게 써먹야 할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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