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 대통령 아들한테 가는 돈을 니들이 어쩔 건데?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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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 테크론의 이 모든 계획은 두 달 전에 시작됐다.
인사팀장 박정철과 청와대 총무 비서관 전태기가 서울 모처 일식집에서 만났다.
“오~ 전태기 비서관, 오랜만이여. 높은 자리 올라가시더니 얼굴이 좋네.”
“박정철 전무도 좋네.”
박정철과 전태기는 서울대 법대 91학번 동기지만, 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지는 않았다.
대학 시절 전태기는 열혈 운동권이었고, 박정철은 1학년 때부터 고시원에 둥지를 틀고 사법 고시 준비에만 열심이었다. 둘은 활동 영역이 겹치는 데가 전혀 없었다.
둘의 유일한 공통점이라고 하면 둘 다 법대 출신이면서도 법조계 직업에는 인연이 없었다는 점이다.
전태기는 졸업 후에도 운동권 단체에 있다가 일찌감치 정치권에 발을 들였고, 박정철은 시험 운이 없었는지 머리가 딸렸는지 고시에 떨어지기만 하다가 그냥 회사에 취직을 했다.
그러니 둘은 졸업 후에도 볼 일이 없었다.
법대 동창회? 둘은 그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법대 동창회라는 게 결국 성공한 변호사 검사 판사들의 동호회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전 비서관, 요즘 청와대 돌아가는 건 어때? 많이 바쁘지?”
박정철이 바로 일 이야기를 시작했다. 수십 년 가까이 얼굴도 한 번 안 보고 살던 사이에 갑자기 살가운 척하는 건 어색하기 때문이다.
“청와대 총무 비서관이라는 자리가 VIP 주변에 생기는 온갖 잡일이 처리하는 거니까. 항상 정신이 없지. 뭐 어쩌겠어? 그게 내 일인데.”
역시 비즈니스 이야기를 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친구? 우정? 그런 거 귀찮고 불편하다.
“정권 후반기로 들어가니까 VIP께서 아무래도 퇴임 이후 생각이 많으시겠지. 어르신 머릿속에 생각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우리 청와대 아랫것들 몸은 죽어나는 거지.”
“퇴임 이후? VIP는 별 걱정 없으시잖아. 가진 재산도 많으시고··· 재임 중에 뭐 특별히 꼬투리 잡힐 만한 일도 없···”
꼬투리 잡힐 게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박정철이 어떻게 아나. 끝을 얼버무렸다.
“더구나 후계자로 키우던 정수명도 저 모양이 돼버렸으니, 퇴임 이후가 더 불안하신 거지.”
전태기가 정수명 이야기를 하면서 혀를 끌끌 찼다. 정수명 이야기를 들으니 박정철도 속이 쓰렸다. 그동안 갖다 바친 게 얼만데. 본전 생각에 잘 마시던 술맛도 썼다.
“VIP의 가장 큰 고민은 아들이야.”
“아들? 잘 나가잖아. 그 회사 문제없는데.”
박정철이 말하는 ‘그 회사’ 란 국내 최대 회사 자리를 놓고, 은하 그룹과 자웅을 겨루는 ND 그룹을 말한다.
“에이~ 그건 첫째 아들 말이고. 그 친구는 너무 잘 나가서 문제지. 요즘 ND 그룹도 잘 나가잖아. 은하 그룹 임원이 들으면 기분 나쁘시려나? 경쟁사인데. 후후”
“에이, 무슨···. 첫째 아들 이름이 백승철이던가?”
“맞아. 백승철 그 친구는 이번에 ND 그룹 법률팀 부사장으로 승진도 할 거라던데? 거의 확정이래. 발표만 남았지. 나이도 이제 겨우 40인데 벌써 대기업 부사장이라니. 아 참, 우리 박 전무도 부사장 될 때 됐지?””
‘부사장’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박정철은 속이 쓰렸다.
누구는 나이 40에 부사장이라는데, 박정철은 내일모레 오십을 바라보는데 아직 전무.
대기업 전무만 해도 가질 만큼 가진 것인데도, 어디 사람 마음이 그런가. 가지면 더 갖고 싶어 지는 법. 부사장 승진을 위해서는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응, 나도 곧 되겠지.”
친구 앞에서는 언제나 잘 나가는 척, 쎈 척해야 된다.
“그럼 VIP께서 고민이라는 아들은 둘째 아들 말하는 거야?”
“어, 둘째 백승환.”
“거 지난 대선 때 병역 기피 목적으로 국적 버렸다고 문제 됐던 그 아들? 미국 이름이 제프리 백이던가?”
“그래 맞아. 그 친구. ND 그룹의 백승철 씨하고는 한 살 차인데 어찌 다른지. 내년이면 나이 40인데 여태 직장 생활 한 번 변변히 해 본 적 없거든.”
“아이고, VIP께서 걱정이 많으시겠네.”
“VIP께서 퇴임하시기 전에 둘째 아들한테 뭔가 만들어주시려고 하는 거 같긴 한데···.”
전태기의 이 말에 박정철의 눈이 반짝했다. 오늘 이 자리를 만든 이유. 별로 친하지도 않은 대학 친구를 불러내 어색하게 친한 척을 해가며 술잔을 주고받는 이유가 이거기 때문이다.
“아니, VIP 돈 많으시잖아. 하나 툭 떼주시면 되는 거 아냐?”
박정철이 넘겨짚어봤다.
“그렇지 않아도 하나 해주려고 하셨었지. 너 참 이재훈이라고 알지?”
“이재훈? 거··· 들어는 봤지. 근데 그 사람 어떻게 됐지? 갑자기 소식이 잠잠··· 아···”
박정철이 말을 끊었다. 전태기가 손으로 목을 자르는 시늉을 했기 때문이다.
“둘째 아들 백승환이가 왜 서울에서 공대를 나왔잖아? 그래서 뭐 기술 회사 같은 거를 만들어서 CEO 같은 거 하고 싶어 했었어.”
“그래?”
“그런데 뭐··· 본인이 기술이 있어야지. 그런데 이재훈이라는 그 인간이 실리콘 밸리에서 스타트업 회사에 투자하고 인큐베이팅하는 거 하고 있었대. 그래서 괜찮은 회사 하나를 잡아서 거기에 돈을 좀 태우고 백승환이가 CEO로 갔었지. VIP 막 대통령 되셨을 때 일이야.”
“아~~”
“그런데 그게 뭐 스타트업이라는 것도 CEO가 기본적으로 실력이 있어야 엔지니어들이 따르면서 뭔가 만들어내고 성장하고 하는 거지. 영 비실비실한가 봐. 근데 VIP께서 민정 수석한테 둘째 아들 좀 챙겨달라고 계속 보채시는 모양이야. 헛참”
“민정 수석한테? 유선진 수석?”
“응. 유선진 그 양반도 장난 아니잖아. 밑에 사람 볶아대는 거. 그래서 내가 요즘 많이 고달파. 난 사실 그 양반 직속도 아닌데 쩝. 아니, 유선진 그 양반도 참 생각 없지. 자꾸 나보고 VIP 둘째 아들 도울 수 있는 방법 생각해내라고 쪼아대는 거야. 아니 지금까지 운동판에서 데모만 하고 살았던 내가 그런 걸 뭐 아는 게 있겠어. 답답해.”
여기까지 듣는데 박정철 눈빛이 반짝반짝한다.
“근데, 우리 VIP야 그렇다 치고, 은하 그룹 그쪽도 만만치 않잖아. 지금 은성표 회장 나이가 몇이야? 80이 넘었지? 얼마 전에 보니까 골골하던데.”
전태기의 이 말에 박정철이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전태기 이 새끼가 청와대에 있다고 간이 배 밖에 나왔나. 감히 회장님을 가리켜 ‘나이’? 연세라고 해야지. 그리고 뭐? ‘골골하던데’라니. 회장님이 니 친구야?’
전태기는 박정철이 인상 쓰는 걸 보니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다.
‘야! 박정철. 기분 나쁘냐? 나 일부러 그런 거야. 너는 내 주인인 대통령한테 이렇게 말할 수 없지? 근데 난 니 주인 회장한테 이렇게 할 수 있어. 그러니까 내가 니 위에 있는 거야. 흐흐흐’
박정철은 전태기의 속을 알지만, 참고 넘어간다. 지금은 비즈니스에 집중해야 할 때.
“그래서 말인데, 전 비서관. 우리 껀수 하나 만들어보는 게 어때?”
“껀수? 무슨 껀수?”
“우리 은하 그룹도 지배구조 개편을 앞두고 있잖아. 전 비서관도 알겠지만···”
“그래? 난 모르는데.”
그런 하찮은 일을 내가 왜 알아야 되는데라는 표정. 박정철은 또 한 번 참는다.
“너도 대통령 가려운 곳 긁어서 인정받고, 나도 우리 회장 걱정거리 덜어줘서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 동기 좋다는 게 뭐냐? 우리 한 번 서로 도와서 일해보는 거, 어때?”
박정철은 처음으로 전태기를 ‘너’라고 불렀다. 친근감을 주기 위해서다.
“뭘 어떻게 하자는 건데?”
“VIP 둘째 아들 회사, 우리가 좀 돕는 거지. 아~ 주 합법적이고 팬시한 방법으로.”
“합법? 팬시?”
어리둥절해하는 전태기에게 박정철의 설명을 이어갔다.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듣는 전태기는 중간중간에 못 알아듣는 부분도 있었지만, 어쨌든 대체로 다 알아들었다.
“박 전무 머리 좋네. 그런데 희생양은 누구를 할 건데?”
“희생양? 후후. 그거야 뭐, 내가 인사팀장이잖아. 회사 직원이고 임원이고 신상명세는 물론이고 뒤에 누가 있는지 다 내 손바닥 위에 있는데 뭐. 제일 만만한 놈 하나 골라서 확!”
박정철이 올가미를 뒤집어씌우는 시늉을 하고는 씩 웃었다.
전태기도 웃으면서 엄지 척. 참치 한 점을 입에 넣고는 씹으면서 묻는다.
“그래서, 그다음은? 우리는 뭘 해주면 돼?”
세상사 기브 앤 테이크. 공짜가 어딨나.
“우리 회사가 조만간 분할 계획이 있어. 그걸 회장 아들인 은병진 부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로지텍과 합칠 건데, 그걸 주총에서 쉽게 통과될 수 있게···”
“국민 연금?”
“빙고. 국민 연금 우리 회사 지분이 10프로나 되거든.”
이렇게 해서 진행된 일, 일사천리였는데 최종 목적지에 와서 막혀버린 거다.
게다가 박정철은 검찰청에까지 갑자기 불려 와 늑대 김필중을 상대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박정철 씨, 나 여기 수원지검 차장 검사입니다. 내 이야기 많이 들으셨겠지만, 나 같은 질문 두 번 하는 거 무척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대답하세요. 이 사건. 기술 유출이라고 포장된 이 사건. 우리 검찰은 경영권 세습을 원활히 하기 위해 대통령 아들에게 뇌물을 공여하려고 한 사건이라고 정의합니다. 박정철 씨는 이 정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필중의 질문을 받고 가만히 있던 박정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씩 웃는다.
소파 등받이에 상체를 턱 기대더니 다리를 꼬더니 고개를 양쪽으로 씩씩 돌리기까지 한다.
그리고는 김필중 쪽으로 눈을 흘겨뜨고 쏘아보면서···
“네, 맞습니다. 차장 검사 나리. 그거 밝혀내셨다고 지금 나를 이렇게 갑자기 불러내서 겁박하시는 겁니까? 네네 대통령 아들한테 돈 줄려고 했습니다. 그래서요? 뭐 어쩌라구요?”
양손을 옆으로 크게 벌리면서 어깨를 위로 씰룩하는 박정철.
갑작스러운 박정철의 태도 변화에 안절부절못하는 건 이철규다. 박정철을 돌아보고 팔을 잡으면서 말한다.
“이봐. 박 전무··· 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엉?”
하지만 박정철은 이철규의 손을 툭 쳐내고는 김필중에게 한마디 더 한다.
“잘 모르시나 본데, 이걸 뭐 나 혼자 좋아서 했겠어요? 손바닥도 맞붙어야 소리가 나는 거 아니겠어요?”
박정철이 손바닥을 짝짝 부딪히며 소리를 냈다.
“저~기 큰집에 한 번 문의해보시죠. 근데 김필중 차장 검사님은 목숨줄이 두세 개는 되시나 봅니다? 아까 뭐라고 하셨어요? 뇌물이라 하셨어요? 허허허. 말씀을 그리 함부로 하셔도 되나요? 아, 그 말씀 그대로 저~기 큰집에 가서 김필중 차장 검사님 목숨줄 쥐고 있는 높으신 양반한테 한번 해보십시오. 그분께서 어떻게 나오시나 한 번 보세요. 후후후.”
김필중은 박정철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듣고 있다. 박정철은 아랑곳하지 않고 시작한 말의 끝을 본다. 목소리 톤이 더 높아졌다.
“대통령께서 가장 아끼시는 둘째 아드님 백승환한테 가는 돈을 내가 혼자서 마련하려고 이 지랄을 했겠습니까? 그것도 저~기 큰집에 가서 문의하시든 하시고. 아이고··· 순진들 하셔라. 아니 여기 검사들께서 그 돈을 뭘 어떻게 하시려고 이러시는 겁니까? 예?”
한껏 기세 등등해진 박정철.
“그럼 차장 검사님. 하실 말씀 다 하셨으면 나는 이제 가도 되죠?”
박정철이 소파에서 일어서면서 말했다. 윗도리에 묻은 것도 없는데 툭툭 터는 시늉을 한다.
마치 거울을 보고 있는 듯, 정면을 보고 넥타이를 매만지면서 혼잣말로, 하지만 모두가 들리는 데시벨로 중얼거렸다.
“김필중 차장은 수원 촌구석 지검에서 차장까지만 딱 하고 옷 벗으시려나 보네. 후후.”
턱을 위로 올린 채로 눈을 밑으로 내리 깔아 나를 보면서는,
“거~기 최용구 검사? 독고다이라면서요? 흥 그럼 뭐 승진에 관심이 없겠네. 후후.”
옆에 앉은 이철규에게도 한 마디.
“이철규 부장, 참 고생이 많겠어. 이런 분들을 아래 위로 모시고 살아서 말이야. 쯧쯧.”
박정철은 검사실 문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 걸어가는 자세가 개선장군 같다.
이때쯤이면 내가 나설 타이밍.
난 박정철이 문에 거의 다 다다랐을 때쯤, 김필중을 보고 큰소리로 말했다.
“차장님, 이건 지난번 차장님께서 지시하신 청와대 전태기 총무 비서관 비위 사실 보고서입니다. 좀 있다가 청와대 민정 수석께 올라가실 때 바로 보고 드릴 수 있도록 정리했습니다.”
난 노란색 대봉투를 김필중에게 건네면서 말했다. ‘전태기’를 말할 때 조금 더 힘을 줬다. 겉으로는 박정철이 나가든 말든 아무 신경도 안 쓴다는 자세를 유지하면서.
‘뭐? 전태기? 비위 사실? 민정 수석한테 보고해?’
문 앞에 거의 다 와서 문고리까지 잡았던 박정철이 턱 멈춰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