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 이래도 먹고 저래도 먹는 꽃놀이패. 이래도 뜯기고 저래도 뜯기는 외통수패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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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님 부르셨습니까?”
차장 검사실에 들어온 이철규는 김필중에게 인사를 하면서도 곁눈질로 나를 째려본다.
직속상관인 자기를 건너뛰고 차장 검사와 직거래하는 내가 미웠을 테지.
상명하복 확실한 검사 조직에서 잔뼈가 굵은 김필중이니 이걸 눈치 못 챘을 리 없다.
“저 독고다이 최용구는 내가 오라고 불렀어. 물어볼 게 있어서.”
“아, 예.”
고개를 또 한 번 조아리는 이철규. 이번엔 나를 째려보지 않는다.
“이철규 당신은 이쪽으로 앉아.”
김필중이 자기 오른쪽 소파를 가리키면서 앉으라고 한다.
난 김필중 왼쪽 편에 앉아 있으니 상석에 앉은 김필중을 중심으로 이철규와 내가 마주 보고 앉은 꼴이 됐다.
이것도 이철규는 기분 나쁘다. 자신과 내가 같은 급이라는 이야기니까.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차장님.”
질문을 하는 이철규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는 게 느껴졌다.
내가 최용구의 몸에 들어온 이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최용구만의 특별한 능력이 있다. 바로 상대방의 미세한 감정 변화를 정확하게 잡아내는 감각이다. 덕분에 나도 그런 능력을 갖게 됐다. 흥! 최용구. 나를 죽인 놈이긴 하지만 이런 건 그냥 고마울 따름이다.
“왜 불렀을 거 같애?”
김필중의 대답. 무섭다. 이철규가 바짝 긴장하는 게 보인다.
김필중은 현역 수사 검사 시절 늑대로 통했다. 용의자를 앞에 앉혀놓고 조사를 시작도 하기 전에 늑대 같은 눈빛으로 먼저 조져버린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지금 김필중의 눈빛을 보니 늑대라는 별명이 이해가 됐다.
“무슨··· 말씀이신지··· 전 잘···”
“여기 독고다이 최용구가 와 있고 이철규 당신을 불렀어. 그럼 무슨 사건 때문에 불렀겠어? 부장 검사씩이나 돼가지고 이런 건 말 안 해줘도 감이 팍 와야 되는 거 아냐?”
“아! 심덕환··· 은하 테크론··· 기술 유출 사건 말씀이십니까?”
“기술 유출? 흥! 지~랄하네.”
김필중의 갑작스러운 ‘지랄’ 드립. 이철규의 말문이 턱 막힌다.
“이철규 부장 당신, 은하 테크론 기술 유출인지 뭔지 하는 이 사건 말이야, 은하 그룹이 은성표 아들 은병진한테 경영권 상속하는 지배 구조 개편을 앞두고 미국에 있는 대통령 둘째 아들 백승환한테 돈 갖다 바칠려고 처음부터 조작한 거라는 거···.”
여기까지 듣고 이철규의 얼굴이 하얗게 됐다.
“알았어? 몰랐어?”
“아···그··· 그게···”
“은하 테크론 자식들이 이런 장난치는 거··· 당신! 알았어, 몰랐어?”
김필중 목소리 데시벨이 뒤로 갈수록 확 높아졌다.
김필중 목소리 데시벨이 높아지는 것에 정확히 반비례해서 이철규의 대답하는 소리는 기어들어간다.
“저··· 저는 저··· 정말··· 모··· 몰랐···”
“몰랐어? 헛! 몰랐다면 당신 정말 무능한 거지. 여기 애송이 최용구도 아는 걸 부장 검사씩이나 돼가지고 몰랐다면 말이야. 내가 당신 같은 무능한 검사··· 데리고 있어야겠어?”
“······”
“알았다? 풉! 알았다면 당신은 정말 부패한 거지. 당신 처남 박정철하고 짜고 은하 테크론의 뒤를 봐준 거니까 말이야. 내가 당신 같은 부패한 검사··· 데리고 있어야겠어?”
초장부터 아예 말문을 막아버리는 김필중의 저 화법. 이철규는 뼈도 못 추리겠다.
“이철규 너, 박정철이 지금 연락되지? 그 인간 지금 당장 들어오라 그래. 당장!”
“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는 이철규를 향해 김필중이 더 큰소리를 친다.
“네? 라니. 이 시키가 지금 제정신이야? 니는 내가 꼭 두 번 말해야 움직여? 박정철이, 니 처남. 은하 테크론 인사팀장. 그 인간!”
김필중이 검지 손가락을 뻗어 소파 앞 탁자를 콕콕 찍는 시늉을 한다.
“바로 여기! 내 앞에! 지금 당장! 갖다 놓으라고. 박정철 그 새끼 내 앞에 탁 갖다 놓으란 말이야. 10분 준다. 날아서 오든가 순간 이동을 하든가 10분 안에 딱 여기 갖다 놔. 박정철 그 새끼 내가 오늘 아주 조져버리겠어.”
“네! 차.. 차장님. 지금 당장 부··· 부르겠습니다.”
당황한 건지 공포에 떠는 건지 얼굴이 벌게진 이철규는 부들부들 떨면서 폰을 꺼내 바깥으로 나가려 하는데···.
“야! 어딜 나가? 왜 밖으로 나가? 여기서 해! 사람 새끼 하나 갖다 놓는 건데 왜 밖에 나가서 전화질이야? 그냥 여기서 전화 때려서 기어 오라고만 하면 되는 거 아냐?”
손목시계 보는 시늉을 하더니 이철규를 노려보면서 한마디 더 한다.
“1분 지났다~. 이제 9분 남았어.”
“아, 예. 차장님.”
이철규는 얼마나 떠는지 번호도 제대로 누르지 못한다. 폰을 떨어뜨리지 않는 것만 해도 용하다 싶다.
김필중이 소리 지른 지 꼭 20분이 지난 뒤, 박정철이 도착했다.
“앉아요.”
방에 들어오는 박정철을 보고 김필중이 인사도 없이 짧게 말했다.
박정철은 김필중 오른쪽 소파의 이철규 옆 자리에 앉았다. 앉으면서 이철규에게 눈빛으로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이철규는 박정철을 외면한다. 지금 그런 눈빛 대화 주고받을 때가 아니다.
“내가 급하게 오라고 한 이유··· 알죠? 박정철 전무.”
“글쎄요, 모르겠습니다. 왜 오라고 하셨는지.”
“여기 이철규 부장하고 최용구 검사 같이 앉아 있는 거 보고도 모르겠어요?”
“아, 그 심덕환 기술 유출 사건 때문입니까?”
“기~술 유~출? 풉! 지~ 랄하고 자빠졌네.”
김필중의 ‘지랄’ 드립이 또 한 번 터졌다. 아까 이철규한테 했던 거보다 성조가 더 구성지고 쎄다. 박정철의 인상이 순간 팍 구겨졌다.
“김필중 차장님. 허참. 아니, 사람을 급히 오라고 불러놓고 아무 설명도 없이 갑자기 이렇게 막말을 하시니 제가 좀 당황스럽습니다. 이유라도 좀 상세히 설명해주셔야죠.”
박정철도 그 업계에서는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사냥개로 통하는 사람이다. 만만치 않다.
“에어터치에 돈 주게 돼있는 계약. 그거 박 전무 작품입니까?”
김필중이 박정철을 노려보면서 물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아~ 그 기술 라이센스 계약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거야 당연히 우리 쪽 기술 전략팀에서 한 거죠. 저는 인사팀입니다. 차장님.”
박정철이 싱긋이 웃으면서 받아넘긴다.
“라~이센스? 풉! 지~랄하고 자빠졌네. 다 알고 묻는 건데 장난합니까? 박 전무?”
“말씀이 좀 지나치시네요. 김 차장님”
역시 사냥개다.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이번 사건, 기술 유출로 몰아가서 배상금 주는 걸로 위장해서 대통령 둘째 아들 백승환한테 돈 갖다 바치게 돼있는 거··· 우리 검찰이 모를 줄 압니까? 한번 더 묻겠습니다. 이번에도 이상하게 대답하면 가만 안 있습니다. 자, 이거 박정철 전무 작품입니까?”
박정철의 눈매도 매섭게 변해갔다. 김필중을 노려볼 뿐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아니면 김상덕 부회장이 시킨 겁니까? 이거 다?”
김필중이 또 물었지만 박정철은 김필중을 계속 노려보기만 할 뿐 아무 대답하지 않았다.
김필중이 종이 두 장을 박정철 앞에 틱 던졌다. 내가 아까 팩스로 받아 들고 온 종이다.
“이거 보고 무슨 생각이 듭니까? 박정철 씨.”
이번엔 김필중이 ‘전무’를 붙이지 않고 ‘씨’라고 했다. 취조 모드로 들어갔다는 뜻이다.
“이 문서, 엑소더스라는 미국의 행동주의 펀드가 법무부에 사건 조회 요청 해온 겁니다.”
“엑소더스요? 그놈들이라면 어젠가 그젠가 공개서한을 보내서 우리 회사 분할 계획에 반대하겠다고 했던 놈들인데···”
박정철이 종이를 집어 읽으려고 했는데,
“됐어요. 그거 읽고 있을 시간 없고··· 어이 최용구. 당신이 말로 설명해.”
김필중이 나를 보고 고개를 오른쪽으로 까닥했다.
“네, 알겠습니다. 박정철 전무님. 제가 간단히 설명드리겠습니다.”
박정철이 나를 힐끗 꼬나본다. 그러든 말든 난 계속 말을 이어갔다.
“엑소더스 펀드는 주주 자격으로, 은하 테크론과 에어터치 사이에 체결된 기술 유출 시 최소 3천만 불에서 최대 5천만 불까지의 배상 조건이 있는 계약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그런데요?”
“대한민국 사법당국에 의해 기술 유출이 사실로 확정되고, 계약대로 은하 테크론이 에어터치에 거액의 배상을 하게 된다면, 이는 주주 가치에 심대한 타격을 주는 것이므로, 엑소더스 펀드가 미국 내 은하 테크론 주주를 대표하여 은하 테크론을 상대로 클라스 액션(Class Action: 주주 대표 소송)에 들어갈 거라는 점을 우리 법무부에 알리고, 현재 수사 진행 상황을 업데이트해 달라는 내용입니다.”
“뭐요? 크... 클라스 액션?”
나를 꼬나보던 박정철의 얼굴에서 순간 ‘앗차’하는 표정이 읽혔다.
후후, 지금 은하 그룹은 이래도 뜯기고 저래도 뜯기는 외통수에 걸렸다는 사실,
다르게 말해 내가 Cash Nexus 회원들과 같이 만든 엑소더스 펀드는 이래도 먹고 저래도 먹는 꽃놀이 패를 쥐고 있다는 사실을 박정철이 이제서야 깨달은 거다.
원래 한국 자본 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은 은성표 같은 재벌 총수 일가가 추진하는 일에 딱히 반대할 이유가 없다.
외국인 투자자에게 한국 주식이란, 그저 미국 달러 가치의 움직임에 따라 필요에 따라 머물렀다가 돈 필요할 때 빼가는 현금인출기 이상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 다시 말해 원화 가치가 오르면 외국인들은 달러로 된 자산을 팔아서 한국 주식에 넣어뒀다가, 달러가 상승할 기미가 보이면 한국 주식을 팔고 달러로 된 자산을 산다. 이러면 환으로도 벌고 주식으로도 번다.
이렇기 때문에 원래 외국인 투자자들은 은성표 같은 한국의 재벌이 상속을 누구에게 어떻게 하든, 이사회 구성을 총수 수족으로만 채우든 말든, 배당을 얼마를 하든, 회사 돈으로 투기를 해서 날려먹든 말든 별 관심이 없다.
그저 회사 주가가 환율보다 덜 요동치게만 만들어주면 되고, 돈 빼고 싶을 때 제때 뺄 수 있게 유동성만 유지해주면 된다.
지금까지 은성표 일가는 그걸 잘 해왔고, 따라서 외국인 투자자들도 은성표 일가가 하는 일에 딱히 우호적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은하 그룹이 이번에 은하 테크론 분할 및 은하 로지텍과의 합병 계획을 낸 것도 외국인 주주들이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별문제 없이 찬성할 거라고 봤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대통령 아들에게 돈을 보내는 대가로 국민 연금의 찬성까지 보장받아놨으니 자신감이 충만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내가 만든 엑소더스 펀드가 클라스 액션, 즉 주주들을 대표해서 소송을 하겠다고 했다.
기술 유출이 확정돼서 에어터치에 배상금을 지불하면 주주 가치가 훼손된 것이니 그만큼을 주주들에게도 지급하라는 내용이다. 외국인 주주들 입장에서는 이 주주 대표 소송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가만히 있어도 돈 버는 거니까.
반대로 은하 테크론이 주주 대표 소송이 무서워 기술 유출 고발을 철회하면, 에어터치에 배상금 지불이 안 되고 백영기 대통령 둘째 아들은 닭 쫓던 개가 된다.
대통령 아들을 닭 쫓던 개로 만들었으니 10% 지분이 있는 국민 연금은 은하 테크론 분할 계획에 반대로 돌아설 것이고, 지분 20% 밖에 안 되는 총수 일가는 외국인 주주들에게서 더 많은 지지를 얻기 위해 배당을 인상하거나 자사주 매입/소각을 해서 주가를 올리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돼도 엑소더스를 비롯한 외국인 주주는 돈을 번다.
엑소더스에게는 이래도 먹고 저래도 먹는 꽃놀이패.
은하 그룹에게는 이래도 뜯기고 저래도 뜯기는 외통수패.
나 이재훈이 만들었다.
은하 테크론의 사냥개 박정철이 그걸 이제 깨달은 거다.
하기사 은하 테크론 같은 대기업의 전무 정도 되려면 이 정도는 이 시점에서 깨달아 주는 것이 맞다.
대기업 전무.
그거 아무리 그래도 고스톱 쳐서 다는 건 아닐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