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 바짝 물이 올랐을 때 최대한 써먹어야지.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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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 여러분, 다음 뉴스는 은하 테크론 소식입니다. 경제부 송선미 기자 스튜디오에 나와있습니다. 송 기자, 요즘 은하 테크론 뉴스가 연일 시장에서 핫한데요. 은하 테크론이 회사 분할 계획을 발표한 게 어제, 그러니까 하루도 안 지났는데 벌써부터 큰 암초에 부딪혔다구요?”
앵커 하대석과 송선미 기자가 투샷으로 잡혔다.
“네, 그렇습니다. 미국에 소재하고 있는 엑소더스 펀드라는 행동 주의 펀드가 공개서한을 통해 은하 테크론 분할 및 은하 로지텍과의 합병 계획에 반대 의사를 밝히면서 주주 총회에서 표대결을 선언하고 나섰습니다.”
“엑소더스 펀드라는 곳은 이름도 참 특이하고 생소한데 업계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하대석 앵커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물었다.
“네, 그래서 시장 상황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에게 문의를 해봤는데요, 문의를 받은 전문가들도 모두 처음 듣는 펀드라고 했습니다. 다만, 이런 종류의 펀드, 즉 어떤 이슈가 생길 때마다 집단행동을 위해 결성됐다가 이슈가 사라지면 청산하는 펀드를 이른바 숏텀 액티비스트 펀드 또는 단기 행동주의 펀드라고 하는데요, 이런 종류의 행동주의 펀드는 해외 자본 시장에서는 워낙 많이 새로 생겼다가 없어졌다 하는지라 이 엑소더스라는 이름의 펀드가 갑자기 나선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라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렇군요. 시장에 이슈가 생겼을 때 치고 빠지는 행동주의 펀드라는 말씀이신데··· 그런데 아무리 그런 펀드라 해도 이름이 좀 특이하긴 특이하군요. 엑소더스라면···”
“네, 대탈출이라는 의미입니다.”
“후후, 대탈출 펀드라. 특이합니다. 어쨌든 은하 테크론에 대한 외국 자본의 공격이 시작된 건데··· 이 펀드가 보유하고 있는 은하 테크론 지분은 얼마나 됩니까? 주주 총회에서 표대결을 선언할 정도면··· 꽤 되는 모양이죠?”
“오늘 공개서한을 내면서 지분 공시도 같이 했는데요. 오늘 공시 기준 총 7.12%입니다. 하지만 지분은 주총 때까지 계속 더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합니다.”
“7.12%요? 오~ 꽤 되는군요. 거기다 앞으로 계속 더 늘려갈 계획이다? 그럼 표대결이 충분히 가능하겠군요. 현재 은하 테크론의 지분 구성이 어떻게 됩니까? 이른바 은성표 총수 일가에 우호적인 지분은 얼마입니까?”
“네, 총수 일가에 우호적인 지분은 핵심 계열사인 은하 모바일 12%, 은성표 회장을 비롯한 특수관계인 총 8%를 합쳐서 20%에 불과합니다. 외국인 지분율은 48% 정도인데 이 엑소더스 펀드가 적극적으로 반대 활동을 벌인다면 은하 테크론의 분할 안이 주총에서 통과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시장의 대체적인 반응입니다.”
“그렇군요. 여기에 국민 연금도 지분이 꽤 되죠?”
“10%입니다.”
“음··· 그럼 국민 연금의 선택이 은하 테크론에게는 중요하겠군요.”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 여기까지 듣죠. 경제부 송선미 기자였습니다.”
***
뉴스를 같이 보고 있던 정화용이 머리를 긁적긁적 긁으면서 묻는다.
“검사님. 펀드 이름 참 거시기하네요. 웬 엑소더스죠? 펀드가 대탈출을 하나 보죠?”
“그러게요. 이름 참 이상하게··· 지었네요.”
나는 모르는 척 대답했지만, 씩 웃음이 나왔다. 내가 지은 이름이기 때문이다.
내가 죽기 전에 미국에서 만들었던 회사 이름이 제네시스, 즉 창세기다. 구약성서에서 창세기 다음에 나오는 건 출애굽기, 엑소더스다. 그래서 이번에 Cash Nexus의 회원들과 같이 펀드를 만들면서 이름을 엑소더스로 지었다. 창세기 다음은 출애굽기니까.
이 펀드에서 내 미국 이름 ‘스티브 리’가 노출될 일은 없다. 사모 펀드에 참여하는 사람의 신원정보가 밝혀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검사님, 와~ 이 은하 테크론 주가 오르는 거 좀 보세요. 상승률이 29%에요. 엇! 상한가 찍었다. 와~~ 어제도 이만큼 올랐었는데.”
후후 그렇다. 은하 테크론이 주가가 치솟고 있다.
분할 계획이 발표됐을 때 지배 구조 개편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20%가량, 엑소더스 펀드의 공시 이후에는 주총 대결 예상 때문에 오늘 상한가다. 이 뉴스가 끝나는 날까지 주가는 계속 이렇게 오를 것이고, 내 계좌 잔고도 그만큼 늘어날 거다.
“어휴~ 이럴 줄 알았으면 은하 테크론 주식이나 좀 사둘 걸 그랬나 봐요. 지금이라도 들어가야 하나··· 쩝, 맨날 이렇게 뒷북을 치니 원···”
지금 들어가도 늦지 않다는 말을 해주려다가 말았다. 들어가는 건 좋은데 나오는 타이밍을 정화용이 잡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알려줄 수도 없고. 후후.
“그런데 검사님, 엑소더스 펀드는 지분이 7퍼센트를 넘는다면··· 우와~ 언제 그렇게 사 모았대요? 여하튼 이 정도 되면 주총 표대결이 치열해지겠네요.”
“주총까지 안 갈 수도 있겠죠.”
나는 또 씩 웃으면서 대답했다. 웃는 나를 보고 정화용이 갸우뚱한다.
“그나저나 주총 대결 가면 국민연금의 몸값이 치솟겠네요. 지분이 10% 정도니까··· 거기는 어떻게 나올까요? 뭐 당연 찬성이겠죠?”
“글쎄요, 그건 은하 그룹 하기 나름이겠죠.”
나는 또 씩 웃으면서 답했다.
정화용이 또 갸우뚱한다. 머리를 더 세게 긁어댄다.
은하 그룹이 계속해서 심덕환이 기술 유출한 게 맞다고 밀어붙이면 은하 테크론은 에어터치의 백영기 아들에게 배상금 명분으로 3천만 불을 보내게 될 것이고, 그러면 국민연금은 테크론 분할 안에 찬성할 것이다.
반대로 은하 그룹이 엑소더스의 집단 소송을 두려워해서 심덕환 기술 유출 고발을 철회하면 백영기 아들은 돈을 못 받게 되고, 그러면 국민연금이 테크론 분할 안에 찬성할 이유가 없어진다는 뜻으로 한 이야기였다.
머리를 연신 갸우뚱하는 정화용에게 설명을 해줄까 하다가 말았다. 마침 내 책상 반대편에 있는 팩스 머신에서 팩스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웬 팩스?”
두 장 짜리 A4 용지가 프린트돼 나왔고 정화용이 가서 들고 온다.
“뭡니까?”
“법무부에서 왔네요. 근데··· 이게 다 영어로 된··· 엇, 이건···”
정화용이 팩스를 얼른 나에게 건넸다.
“검사님, 법무부가 우리한테 재전송한 건데, 최초 발신이 엑소더스 펀드입니다.”
“엑소더스에서 보낸 거라고요?”
난 내용을 확인한 후, 또 씩 웃었다. 정화용은 또 갸우뚱.
나는 책상 서랍을 열어 준비해둔 노란색 대봉투를 꺼냈다. 제법 두툼하다. 정화용이 내 손의 대봉투를 보고 눈이 동그래져서 또 갸우뚱. 오늘 정화용은 갸우뚱 투성이다.
“검사님 그 대봉투는 또 뭔가요?”
“계장님, 저 차장님한테 갑니다.”
“아니 검사님, 그 대봉투는 뭐냐니깐요? 글고 차장님한테는 갑자기 또 왜···”
나는 갸우뚱 연속인 정화용에게 대봉투를 든 손으로 경례를 틱 붙이고는 검사실을 나갔다.
***
“그러니까 최용구 니 말은 심덕환의 기술 유출 사건과 이번 은하 테크론의 회사 분할 건이 서로 연결돼있다··· 이 말이야?”
김필중이 꽤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 말했다.
“네, 차장님. 그리고 이 두 사건의 연결고리가 지금 미국에 있는 백영기 대통령님의 둘째 아들 백승환 씨입니다.”
날 죽인 백영기 놈 이름 석 자 뒤에 ‘님’ 자를 붙여 주자니 밸이 심하게 꼬였다.
“그러니까 최용구 니 말은, 은하 테크론이 미국에 있는 대통령 둘째 아들 백승환한테 돈을 주려고, 미리 에어터치라는 회사와 기술 유출되면 배상하는 계약을 맺어놓고 심덕환을 기술 유출범으로 모는 계획을 꾸몄다··· 이거네?”
“그렇습니다. 상식적으로 기술 유출 시 배상하는 계약이 맺어진 상태에서는 기술 유출이 실제로 있었다 해도 회사는 그 사실을 숨기려 했을 텐데, 은하 테크론은 정반대로 기술 유출 사건을 띄우기 바빴고 인사 담당 임원까지 담당 검사인 저한테 와서 심덕환을 빨리 기술 유출 혐의로 구속하라고 했습니다. 말이 안 됩니다.”
“그랬었지. 박정철이가 니한테 왔었다고 했지. 이철규랑 같이.”
“맞습니다.”
“그럼 이건 그 박정철이 작품인가? 단독?”
“음··· 그게···”
“왜 뭐 다른 거 짚이는 거 있어?”
난 내 서랍에서 꺼냈던 노란색 대봉투를 김필중에게 건넸다.
“뭐야 이건?”
김필중이 노란색 대봉투를 열고 그 속에 자료들을 꺼냈다.
자료는 은하 테크론이 전태기 청와대 총무 비서관에게 샌프란시스코, 팔로알토, 로스앤젤레스, 라스베가스 등지에서 제공한 향응, 접대 내역이다. 전태기는 내가 에어터치를 방문했을 때 본, 백승환과 같이 있었던 인물이다.
“음··· 이거··· 어떻게 준비한 거야?”
김필중이 자료를 다 보고 다시 봉투에 넣으면서 내게 물었다. 표정이 자못 심각하다.
“지난번 스탠포드 대학교에 심덕환의 후배를 만나러 출장을 갔을 때, 그 후배라는 사람이 소개해서 에어터치 사를 방문했었습니다.”
난 슬쩍 거짓말을 섞어서 말했다.
“그래? 에어터치에 갔었어?”
“네, 그런데 거기서 백승환 씨와 전태기 씨가 같이 있는 걸 봤습니다.”
“음··· 그래서 전태기 뒷조사를 해본 거구만. 그런데 역시나 이런 비위 사실이 있었고.”
“맞습니다. 차장님. 그리고 또 하나, 이 전태기는 은하 테크론의 인사 팀장인 박정철 전무와 서울대학교 법학과 91학번 동기입니다.”
“그래? 둘이 그렇게 연결됐을 수 있겠구만. 가만··· 박정철이는 또 이철규하고 친척···.”
“맞습니다. 셋이 연결이 됩니다.”
내가 김필중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확신에 찬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다.
“음··· 그럼 최용구 니는 이번 사건이 은하 테크론 단독이 아니라 청와대가 연루됐을 수 있다고 보는 건가? 우리 검찰에도 뒤 봐주는 새끼가 있는데 이철규가 그 새끼고.”
“그렇습니다. 차장님.”
김필중은 지난번 청와대 회동에서 백영기 대통령이 관저를 나오는 민정 수석 유선진을 붙잡고 했던 말이 기억났다.
— ‘내 둘째 아들 잘 좀 부탁하요.’
청와대 총무 비서관인 전태기가 이 사건에 연루됐다면 몸통은 유선진이라는 말이다.
청와대 공식 직제상 총무 비서관은 민정 수석실 소속이 아니지만, 어디 그곳이 공식 직제 상으로만 움직이는 곳이던가. 게다가 민정 수석이면 청와대 내 최고 끗빨. 유선진은 전태기 정도는 충분히 컨트롤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김필중은 최용구가 참 이쁜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검사장 승진을 눈앞에 둔 김필중 정도 되면 밑이나 위나 모두 적이나 다름없다.
차기 대권 유력 주자인 정수명에 줄을 댔고 밑에서 치고 올라오던 장창선을 잘라버리고, 물려받은 재산 많다고 밑에서 거들먹대던 이철규를 지그시 밟게 만들어주더니, 이번엔 위에서 자신을 내리누르고 있는 유선진을 공격할 꺼리를 갖다 주고 있으니 말이다.
‘후훗, 최용구 이놈 갈수록 쓸만해지는군. 바짝 물이 올랐을 때 최대한 써먹어야겠어.’
김필중은 얼굴에 올라오는 기분 좋은 웃음을 참으면서 말했다.
“좋아. 최용구. 지금 당장 이철규 그 시키 불러.”
“네, 알겠습니다.”
내가 이철규 방에 전화를 걸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잠깐, 이 자료···.”
“네?”
김필중이 내가 줬던 노란색 대봉투를 다시 건네면서 말한다.
“이거는 일단 니가 갖고 있다가 내가 신호를 주면 그때 나한테 건네줘.”
“네?”
“이철규 부르고 상황 봐서 박정철이도 부를 생각이야. 그때 써먹을 거니까. 내가 신호를 주면 그때 줘. 오케?”
김필중이 눈을 찡긋한다.
“아, 알겠습니다.”
난 바로 무슨 뜻인지 알아먹었다.
“후후, 오늘 이 사건 쫑 내야겠어.”
김필중이 나를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만족스러운 웃음.
김필중의 목소리 톤도 평소와 달리 아주 맑고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