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를 죽인 검사에 빙의했다-19화 (19/70)

〈 19화 〉 검사, 검은 머리 외국인이 되기로 하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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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V 8시 뉴스. 하대석 앵커가 나왔다.

“은하 테크론의 고위 임원이 자신이 개발 중이던 차세대 AI 기술을 중국으로 넘기려다 적발된 사건, 시청자 여러분 기억하실 겁니다. 그런데 이 사건이 조작됐을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이 의혹을 단독으로 보도한 늘봄 신문 조준호 기자, 스튜디오에 나와 있습니다.”

화면이 하대석과 조준호의 투샷으로 바뀌었다.

“안녕하십니까? 조준호 기자.”

“네, 안녕하세요? 하대석 앵커님. 오랜만이네요. 그동안 좀 격조했었죠?”

조준호는 하대석과 꽤 친한 듯 싱글벙글 웃으면서 편하게 한다.

“그런가요?”

하지만, 하대석은 테이블 위 대본을 내려다보면서 건조하게 받았다.

“앵커님께서 저를 자주 안 불러주시잖아요. 저는 H-TV 좋아하는데, 앵커님은 우리 늘봄 신문 별로 안 좋아하시나 봐요. 흐흐흐.”

조준호가 앞으로 흘러내린 머리를 뒤로 넘기면서 말했다.

“사건 이야기하시죠. 우선 누가 조작했다는 겁니까?”

하대석이 조준호의 너스레를 짜르고 물었다.

“당연히 은하 테크론이죠. 검찰도 한 몫했을 거구요.”

“조작한 이유가 뭡니까?”

“이유는 두 가진데요, 첫 번째는 사내 기강을 잡으려고 시범 케이스로 사건을 만든 거죠.”

“사내 기강과 기술 유출 조작. 언뜻 연결이 잘 안 됩니다.”

하대석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물었다.

“요즘 중국 기업들, 한국 엔지니어 스카우트 열기 엄청나잖아요. 그니까 은하 테크론은 회사 엔지니어들 단속하는 거죠. 옮길 생각 하지 마라. 기술 유출로 고발하겠다. 겁주는 거죠. 이번 사건에 문제가 된 임원도 중국 헤드헌터와 접촉했다잖아요? 사측의 주장이지만요.”

“네, 알겠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인력 유출 단속용이고, 두 번째는 뭡니까?”

“두 번째는 아직 제 개인적인 추정입니다만... 최고 권력층과의 거래입니다.”

“권력층과 거래요?”

“네. 은하 테크론이 이번에 유출됐다고 주장하는 기술, 그 기술이 유출되면 은하 테크론이 제3의 어떤 회사에게 거액을 배상토록 한 계약이 있다는 사실을 제가 알아냈습니다.”

“그게 권력층과 무슨 상관이 있나요?”

“배상금을 받게 돼있는 그 제3의 회사가 바로 최고 권력층과 연결돼 있는 게 아닌가...”

“조준호 기자가 추정하신다는 거죠?”

“네. 합리적 의심이죠. 검찰이 이 사건 수사를 어떻게 진행해나가는지를 봐가면서 저도 더 심층 취재를 해 나갈 계획입니다.”

최고 권력층이라고 군불만 떼놓고 추정이고 더 취재하겠다고? 하대석은 어이없다는 눈치를 조준호에게 준다. 그래도 조준호는 계속 싱글벙글.

“네. 조준호 기자의 말... 그러니까 추정을 정리하면···”

“합리적 의심이라니까요.”

“네네. 합리적 의심에 의한 추정을 정리하자면, 은하 테크론이 최고 권력층 누군가에게 돈을 주기 위해, 권력층 누군가가 관련이 있는 회사와 기술 유출 시 배상금을 지불토록 한다는 계약을 미리 맺어놓고, 기술 유출 사건을 조작했다. 이 말씀이죠?”

“예에~ 그렇습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큰일인데요? 은하 테크론의 주주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 같습니다. 특히 외국인 주주들이요.”

“맞습니다. 그래서 제가 조심스럽긴 합니다만, 정의는 지켜야 하는 거니까요.”

“검찰 쪽은 뭐라 하던가요? 취재해보셨습니까?”

“담당 검사에게 인터뷰 요청을 수차례 했었는데, 전혀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여기서 검찰 특히 사건 담당 검사··· 뭐 제가 실명을 여기 밝힐 수는 없지만요···”

여기서 조준호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담당 검사는 지금이라도 취재 요청에 응해서, 국민의 알 권리에 부응해주시고 검찰은 재벌과 권력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법 정의를 위해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국민들 앞에 증명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 의혹, 조준호 기자가 제보받은 거라면서요?”

“네, 어떤 분이 저에게 메일로 제보를 해주셨어요. 참 정의로운 분이죠. 요즘도 이런 분이 계시다는 사실에서 제가 희망을 얻습니다. 마음이 조금 놓입니다.”

조준호가 가슴에 손을 얹고 감동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제보자가 자기 신분은 밝히셨나요?”

“아닙니다. 그분께서 메일에 이런 말을 쓰셨어요. 이 메일은 제보를 위해 만든 계정이다. 수신 확인이 되면 바로 계정을 탈퇴할 거다.”

“아! 정말로 계정이 없어졌나요?”

하대석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고, 화면이 조준호 원샷으로 바뀌었다.

“네, 제가 메일을 받자마자 바로 답신을 시도했는데, 이미 계정은 삭제된 상태였습니다. 혹시나 하고 봤는데 IP 추적도 불가능한 메일 계정을 쓰고 있었습니다. 은하 그룹의 보복이 두려워서 그러셨던 거라고 생각됩니다.”

조준호가 말을 하면서 자신을 비추는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와 있는 걸 곁눈질로 봤다.

지금은 자신의 원샷이라는 걸 알아차리자마자, 조준호는 자신을 비추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보고 영상 편지 보내듯 말을 시작했다.

“이 자리를 빌려 제보 주신 분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보자님, 걱정 마십시오. 우선 너무 고맙다는 말씀 전해드리고 싶고요. 제보자님 같은 분이 계셔서 이 사회가 조금이나마 깨끗해진다는 거··· 다 죽어가는 정의가 그나마 불씨를 살리고 있단 거··· 그리고 제가··· 이 조준호가 제보자님의 정의로운 제보를 바탕으로 더 열심히 취재해서···”

조준호를 비추던 카메라의 빨간불이 꺼졌다. 당황한 조준호는 말을 멈춰야 했다. 화면은 다시 하대석과 조준호의 투샷이 됐다.

“조준호 기자. 오늘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어··· 네··· ”

화면이 하대석 앵커 원샷으로 바뀌면서 조준호는 사라졌다.

***

“검사님~ 안녕하십니까?”

출근하는 나에게 조준호가 다가서서 말을 건다. 벌써 두 번째다. 나는 이번에도 조준호의 인사를 받지 않았지만 지난번처럼 발걸음을 빨리 재촉하지는 않았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는지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검사님, 신문 보셨죠? 제가 나온 H-TV 인터뷰도요.”

“······”

“저하고 이야기 좀 하시죠, 검사님. 그거 조작된 거 맞죠?”

어느새 다른 기자들도 서너 명 달라붙었다. 하지만 조준호가 한두 명 째려보자 아무도 조준호보다 앞서지 못 하고 질문도 못한다.

“검사님, 계속 이렇게 취재 불응하실 겁니까? 국민의 알 권리는 안중에 없습니까?”

나는 계속 무응답. 조준호를 한 번 돌아보지도 않았다.

“최용구 검사님! 기술 유출했다는 의심을 받는 선량한 심덕환 전무는 직장도 잃고, 지금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어요. 그 고통, 검사님은 십 분의 일, 아니 백만분의 일이라도 공감하십니까? 예? 검사님은 공감 능력이라는 게 있기나 한 겁니까? 예?”

내가 계속해서 아무 대답이 없자, 조준호는 슬슬 열이 올랐다.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

“심덕환 전무, 구속할 겁니까? 국민의 검찰이라는 사람들이 재벌과 결탁해서 무고한 시민을 그렇게 괴롭혀도 됩니까? 대한민국 검찰,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검찰입니까?”

내가 검찰청 현관문에 다다르자, 조준호는 더는 따라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고 문 앞에 섰다.

대신 오른손 주먹을 불끈 쥐고 데모하듯 구호를 외쳤다.

“재벌 검찰 물러나라! 누구를 위한 검찰인가! 물러나라! 물러나라!”

조준호가 구호를 다 외치고 돌아서자, 아까 따라붙었던 다른 기자들이 조준호의 얼굴을 쳐다보고 서있었다.

조준호는 그들을 쭉 훑어보더니 앞으로 흘러내린 머리를 뒤로 휙 젖히면서 말했다.

“두고 봐. 이 검찰 새끼들. 나 조준호가 가만 안 둘 거야.”

***

청사로 들어온 나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같이 탄 후배 검사 두 명이 인사는 했는데, 영 어색한 분위기다. 나를 흘끗 훔쳐보기만 할 뿐 말을 걸지 못한다.

후배 검사 둘이 먼저 내렸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 후 혼자가 됐을 때...

“큭···”

아까부터 참았던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하하”

호탕하게 웃어 젖히고는 큰소리로 중얼거렸다.

“정의의 사도 조준호. 영상편지 잘 봤어. 나한테 고마워할 필요까지는 없는데··· 하하하.”

***

“일이 이렇게 됐으니, 심덕환 구속은 힘들겠어, 이 부장”

김필중이 이철규를 불러서 이야기하고 있다.

“도대체 저 늘봄 신문 조준호한테 제보한 놈은 누구야? 은하 쪽 내부 고발인가?”

“음··· 그게···”

이철규의 의심이 향하는 곳은 회사 내부 고발이 아니라 최용구다.

“하여튼 일이 이렇게 되는 바람에 최용구 그 친구만 곤란하게 됐어.”

이철규의 속을 훤히 다 아는 김필중이다. 이철규의 의심에 바로 찬물을 끼얹었다.

“네···”

의심은 가지만 악감정이 있어서 가는 의심일 뿐, 합리적이지는 않다. 최용구가 지 모가지에 스스로 못을 박는 짓을 할 리가 없잖은가.

“늘봄 신문 그 자식들··· 잘 알지? 정수명하고 거의 한 몸인 거.”

“네. 압니다.”

“정수명 구속했을 때부터 최용구를 노리고 있었어. 최용구가 당한 거야. 조준호 그 시키는 정수명하고도 연관이 큰 놈이거든.”

이철규도 조준호라고 하면 이가 갈린다. 은하 그룹이 조준호한테 당한 게 많기 때문이다.

“꼭 구속을 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일단은 기소에 집중하자고.”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이철규가 인사를 하고 나간 뒤, 김필중은 의자를 돌려 창문을 내다보면서 앉았다.

싱긋이 웃는다.

정치인에 줄을 댔던 장창선은 날려버렸고, 재벌과 결탁한 이철규는 이렇게 지그시 밟았다.

저 둘은 모두 김필중이 검사장이 되고 나면, 권력과 돈으로 김필중에게 도전할 놈들이다. 김필중은 저 둘을 독고다이 최용구를 이용해서 자기 손에 피 한 방울 안 묻히고 처리했다.

“후후, 최용구 독고다이 시키. 머리를 쓰랬더니, 제대로 썼어. 후후후.”

오늘은 미세먼지도 없어서 창밖 경치가 아주 좋다.

***

“은하 그룹이 회사 분할 및 합병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H-TV 하대석 앵커가 소식을 전한다.

“경제부 송선미 기자 나와 있습니다. 상세한 내용 전해주시죠.”

“네, 은하 테크론이 오늘 이사회를 열고 클라우드 웹서비스 부문과 투자/소프트웨어 부문으로 회사를 분할하기로 의결했습니다. 클라우드 웹서비스 부문은 신규 법인으로 분할 독립하고, 투자와 소프트웨어 개발은 기존 은하 테크론에 남아 존속하는 형태입니다.”

“분할한 뒤에 합병 계획도 있다면서요?”

“네, 이번 분할로 독립하는 클라우드 웹서비스 신규 법인은 은하 그룹의 다른 계열사인 은하 로지텍과 합병키로 했습니다.”

“은하 로지텍이란 회사는 어떤 회사입니까?”

“은하 그룹의 후계자죠, 은병진 부회장이 지분 29.8%를 보유하고 있는 회사입니다.”

“그러니까 이번 분할 합병은 은하 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의 일환이라고 봐야겠군요. 향후 일정은 어떻게 됩니까?”

“은하 테크론과 은하 로지텍의 이사회가 이 같은 내용의 분할과 합병 계획을 의결했고, 앞으로 주주총회의 승인 절차가 남아있습니다.”

“주주 총회 승인이라면 각 회사의 주주 구성이 중요하겠군요.”

“그렇습니다. 은하 테크론은 현재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은하 모바일이 12%, 은성표 회장을 비롯한 특수관계인이 총 8%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총수 우호지분이 20% 정도인 셈인데요, 외국인 주주가 약 48%, 국민연금이 10%가량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외국인 주주가 48%나 됩니까? 주총에서 이들의 찬성을 얻어내는 게 관건이겠군요.”

“하지만 회사 측은 외국인 주주는 대부분 총수 일가와 경영진에 우호적이기 때문에 주총에서 승인을 받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

난 검사실 내실에 혼자 앉아 이 뉴스를 노트북으로 보고 있다. 노트북에 연결된 외부 모니터에는 Cash Nexus에 접속된 구글 크롬이 떠있다.

Cash Nexus 내부 메신저에는 커뮤니티 회원들이 보내는 은하 테크론 합병 관련 메시지가 빠르게 올라오고 있었다.

— ‘합병 비율이 적정한 건가? 총수 일가에 너무 유리한 거 아닌가?’

— ‘주주들이 집단 소송에 들어가야 함.’

— ‘합병에 반대 의견 분명히 함. 소송이 진행되면 참여할 것임’

— ‘한국 기업들의 지배구조는 너무 후진적임. 이건 응징해야 함.’

— ‘스티브, 액션에 들어가야 할 거 같은데··· 같이 할 건가?’

난 메시지들을 쭉 훑어본 후, 몇 자 적어 넣었다.

— ‘좋아, 시작해보자구.’

‘SEND’ 버튼에 커서를 놓고 엔터키를 탁 쳤다.

그리곤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외국인 주주들이 총수 일가에 우호적이다? 주총 승인이 쉬울 거다? 후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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