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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인 검사에 빙의했다-18화 (18/70)

〈 18화 〉 머리를 쓰라고 머리를! 그거 장식 아니잖아.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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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철규! 니는 부장 검사 씩이나 돼가지고, 니 밑에 검사 하나 제대로 컨트롤 못 하냐? 최용구? 어디서 굴러먹던 꼴통이냐? 저거?”

검찰 청사를 나서면서 박정철이 이철규한테 쏘아붙였다. 정화용이 말한 대로다. 둘은 사적인 자리에서는 바로 이 새끼 저 새끼다.

“최용구 저 새끼, 독고다이야. 유명해, 검찰 내부에서도.”

이철규가 인상을 팍 쓰면서 대답했다.

“독고다이? 그럼 저 자식 뒈져도 혼자 뒈지겠네. 장렬하게.”

“하룻강아지 세상 무서운 줄을 모르는 거지. 캬~아악 퉷!”

이철규가 길바닥에 가래침을 장렬하게 뱉었다. 마침 지나가던 젊은 여자 두 명이 재수 없다는 시선을 쏘았지만 상관 안 한다. 어디서 부장 검사를 노려봐? 못난 년들이.

“야, 철규야. 이번 사건, 잘 처리해야 돼. 심덕환 그 자식 꼭 구속해야 돼. 이거 어떤 사건인지 알지? 나 승진이 걸렸어. 부사장 승진.”

“걱정 마. 근데 심덕환 그 공돌이 자식은 너한테 어쩌다가 걸려든 거야?”

“흥! 내가 누구냐? 한 번 물면 안 놓는 사냥개 박정철 아니냐?”

“내 듣기로는 심덕환 그 인간, 미국에서 잘 나갔었다며?”

“자식이 말을 해도... 미국에서 잘 나가던 놈은 나한테 걸리면 안 되냐?”

“야~ 그런 뜻이 아니고···”

이철규가 웃으면서 박정철의 어깨를 툭 쳤다. 박정철이 눈을 씩 흘기고는 말한다.

“미국에서 온 놈이니까, 낚아채서 보내버리기 오히려 더 쉬운 거지. 지가 미국서 펄펄 날았으면 뭐해? 여기는 우리 판이야. 지가 유대인이나 백인 정도 되면 우리도 맘대로 못하지만. 미국에서 암만 잘 나갔어봐야 뭐해? 머리 검고 한국말하는 한국 놈인데.”

“회사 안에 스폰서 하나 없는 거야?”

“스폰서는 개뿔. 완전 혼자야. 뒤 봐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그러니까 내가 물었지. 내가 앞뒤 안 보고 아무나 무는 똥강아지인 줄 아냐?”

“그건 그렇지.”

“역시 공돌이 새끼는 공돌이 새끼야.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지가 미국서 잘 나갔었으니까 여기서도 일만 열심히만 하면 회사 안에서 자동으로 힘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거 같아. 일은 정말 엄청 열심히 해. 순진한 새끼. 여기가 어떤 덴데. 캬악~ 퉷!”

박정철은 아까 이철규보다 더 장렬하게 가래침을 뱉었다.

“우리 사냥개 박정철 님의 표적이 되셨으니 그놈 앞날도 먹구름이 쫙~~”

“후후, 그렇지. 뒤 봐주는 사람 하나 없으니 깔끔하잖아, 뒤끝도 없고.”

“심덕환이나 최용구나 둘 다 독고다이네. 근데 그 인간 실력은 꽤 있나 봐?”

마침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가 지나간다. 이철규가 다리를 힐끗 보면서 말했다.

“실력은 무슨 개뿔. 야 솔까 공돌이 실력이 무슨 실력이냐? 백정 고기 잡는 것도 실력이냐? 백정이 잡은 고기로 멋지게 상 차려서 쎅시한 기집애까지 붙여서 윗분 드시기 좋게 척 갖다 바치는 게 그게 실력이지. 안 그러냐?”

“맞다. 최용구 그 자식도 똑같아. 인육 먹은 조폭 때려잡은 걸 실력이라고 착각해.”

“흥. 세상 돌아가는 법칙을 모르는 하룻강아지 새끼. 근데 어쩌다가 그런 꼴통 새끼가 니 밑에 굴러들어 와서 박혔냐? 이철규 부장 검사 꼬이네 꼬여.”

“야야야~ 그 새끼 이야기 그만하고 밥이나 맛있는 거 먹자. 뭐 사줄래?”

“지랄. 내가 왜 사냐?”

박정철이 눈을 흘긴다.

“참내. 대한민국에서 검사가 밥 사는 거 봤냐?”

이철규가 박정철의 옆구리를 쿡 찌르면서 갈빗집으로 쑥 들어갔다.

“야, 이철규, 이거 먹으면 김영란법 위반이야. 3만 원 넘어.”

“지랄, 내가 그 법 담당이다. 누가 나를 잡아넣어? 여기 갈비 죽여준다. 먹자.”

이철규가 들어서자, 식당 주인이 맨발로 뛰어나와 맞았다.

둘은 가장 안쪽 방에 자리해 앉았다. 최용구의 심장을 뜯는 기분으로 갈비를 뜯어먹으리라.

***

심덕환이 나와 검찰청 조사실에서 마주 앉았다.

검찰과 은하 그룹의 두 독고다이.

“믿어달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하지만 기술 안 빼돌렸습니다.”

심덕환이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한국에는 왜 오셨습니까? 미국에서 좋으셨다고 들었는데.”

“그게 이 사건하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냥 궁금해서요.”

“검사님은 왜 검사로 일하십니까? 그거 하고 똑같을 겁니다.”

“무슨 말씀···”

“나는 나라를 위해서 일합니다. 그뿐입니다. 검사님도 그렇지 않습니까? 공무원이시니까.”

난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

“심덕환 구속 영장을 안 치겠다니, 그게 도대체 무슨 개소리야?”

이철규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터졌다.

검찰청 바깥에서는 몰라도 안에서는 웬만해선 큰소리를 내지 않는 이철규다. 더군다나 여기는 김필중 차장 앞이다.

“영장을 안 치겠다는 게 아니라···”

“지금 안 치면 안 치겠다는 거나 다름없지. 증거 인멸 다 하고, 공모자 하고 입 다 맞춰놓은 다음에 영장 칠래? 출금도 안 했다며? 해외로 도망가면 잡으러 다닐 거야? 세계 방방곡곡?”

이철규는 삿대질까지 했다.

“혐의가 아직 충분히 소명되지 않았고···”

“혐의가 소명이 안 돼? 야! 니가 영장 판사야? 그게 검사가 할 소리야? 그 딴 소리 하고 싶으면 판사로 갈아타!”

이철규가 나를 모처럼 세게 몰아붙이는 모습을 김필중은 소파에 깊숙이 몸을 파묻고 앉아 보고만 있다. 다리를 척 꼬고 앉은 모양새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거만하다.

난 김필중에게서 뭔가를 얻을 게 없다는 걸 바로 깨달았다.

저런 거만한 자세로 앉아있을 때는 아랫것들이 싸우는 모습을 맘껏 즐기시겠다는 거고, 싸움 결과는 니들이 알아서 가지고 오라는 메시지다.

난 이철규를 향해 바로 공격 모드로 전환했다.

“근데 부장님, 은하 테크론의 박정철 전무를 제 방에 왜 데리고 오셨습니까? 수사하는 검사의 방에 고발인을 부장 검사가 대동하고 들어오는 거··· 엄연한 규정 위반 아닙니까?”

김필중이 씩 웃는다.

“뭐··· 뭐라고? 이 자식이···”

이철규는 내 말을 듣고 흥분하는 거 같지만, 김필중의 눈치를 살피느라 더 정신이 없다. 나에게 반격할 여유가 없다는 말이다. 난 더 몰아붙이기로 했다.

“부장님과 박정철 전무는 특수 관계이신 걸로 압니다. 처남 매부 관계시라고. 대학 동기시기도 하고. 그런 사람을 사건 담당 검사인 제 방에 데리고 들어오시는 건 무슨 경우입니까? 게다가 박정철 그 양반은 저에게 구속 빨리 안 시키냐고 압박까지 했습니다.”

이철규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내가 이렇게 바로 치고 들어올 줄은 몰랐을 거다.

“그... 그건 고발인이 수사에 도... 도움 줄 게 있는지... 물어볼...”

“도움이요? 무슨 도움 말입니까? 압박도 도움입니까? 박 전무가 제 방에 와서 처음 한 말도 왜 구속 수사 안 하냐, 부장님도 지금 저에게 왜 구속 수사 안 하냐. 두 명의 말이 똑같습니다. 이거 우연입니까?”

결정타. 이철규의 얼굴이 순식간에 벌게졌다.

“뭐? 이 씨양놈의 자식이··· 어디서···”

욕을 한다는 건 밑천이 다 드러났다는 뜻. 난 이쯤에서 그만하기로 한다.

“그만들 해. 지금 뭐 하는 거야? 내 방에 싸움하러 왔어?”

김필중과 끼어 들어왔다.

이철규는 바로 고개를 팍 숙였고, 나도 고쳐앉기는 했지만 속으로는 웃었다. 김필중은 타이밍을 나만큼 기가 막히게 잘 잡는다.

김필중이 이철규를 흘겨보면서 말한다.

“박정철 데리고 갔었어? 그 양반 나도 알지. 그 인간 아직도 청에 드나드나 보지?”

“아, 저··· 그게··· 이번 사건이 자기 담당이라고··· 회사 인사팀장이니까요.”

“그래도 박정철은 만나더라도 밖에서 만나든지 해야지. 안 그래?”

김필중의 목소리가 여느 때보다 낮고 부드럽다. 이건 조만간 누군가에게 더 강력한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뜻이다.

“밖에서 보는 것보다는 안에서 보는 게 오히려 더 떳떳하다고 박 전무가 그래서··· 차장님, 알겠습니다. 제 불찰입니다. 주의시키고 저 또한 주의하겠습니다.”

이철규가 바짝 엎드리는 모양새를 보이자마자, 김필중은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 데시벨을 급격히 올린다.

“야! 최용구. 이 독고다이 시키. 니는 싸가지가 없는 거야? 눈치빨이 없는 거야? 철딱서니가 없는 거야? 뭐야? 니 지금 내 앞에서 니 직속상관 부장 처갓집 이야기를 꺼내? 그래, 니 부장 손위 처남이 은하 테크론 인사팀장 박정철이야. 그거 나도 다 알아. 처갓집 돈 많다는 이야기도 하지 그래? 그것도 나 다 아는데. 처갓집이 은하 그룹하고 특수 관계라는 거 그것도 나한테 까발리지 그래? 그것도 나 이미 다 알고 있어. 그래서 니가 지금 내 앞에서 주장하고 싶은 게 뭐야? 니네 부장 이철규는 은하 테크론 기술 유출 사건 수사에서 객관적일 수 없다. 아니 이미 개인적인 연줄에 영향받아서 수사에 압박을 가했다. 그러니 손 떼게 해 달라, 이거야?”

김필중의 갑작스런 공격에 난 고개를 푹 숙였지만, 터져 나오는 웃음을 꾹 참아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철규의 얼굴이 아까 나한테 공격받았을 때보다 더 찌그러졌다.

“야! 최용구. 니 말이야! 니 직속상관인 장창선 부장 잡아먹은 지 얼마나 됐어? 니 부장 잡아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잡아먹으려고 해? 왜 장창선 하나로 부족해? 여기 이 이철규도 은하 그룹하고 짝짜꿍 했다, 수사에 압박 넣었다, 쥐새끼나 다름없다고 떠들어서 잡아먹고 싶어?”

이철규의 얼굴이 벌게짐을 넘어 새하얘졌다.

“알아 들었으면 다들 나가봐!”

김필중이 의자를 창문 쪽으로 홱 돌려 앉았다.

이철규와 나는 김필중의 뒤통수에 대고 인사하고 돌아섰다.

이철규가 앞장서서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어이, 최용구.”

김필중이 갑자가 불렀고 이철규는 이미 반쯤 나간 상태, 나는 아직 안에 멈춰 섰다.

김필중은 시선을 창문 밖에 둔 채 검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탁탁 치면서 말했다.

“이 머리를 써, 머리를. 그거 장식 아니잖아.”

검사실을 나와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는 동안 이철규는 나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심덕환 구속 치려고 들어갔다가 섬뜩한 경고만 들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나도 내 방으로 오는 동안 이철규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그가 자기 방에 들어갈 때 가볍게 눈인사만 했다.

***

“검사님, 어떻게 됐습니까? 심덕환 구속 영장은··· 칠까요?”

검사실로 들어서는 나를 보고 정화용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물었다.

“아뇨. 홀드 하세요.”

홀드라고 했지만 지금 안 치면 아예 안 친다는 말과 같다.

난 정화용을 뒤로하고 내실로 들어가 바로 세 가지 일을 시작했다.

첫 번째는 익명 제보 메일 보내기.

우선 난 아이폰에서 프로톤 메일(Proton Mail) 앱을 열었다. 내용은 당연히 모두 암호화되고 IP주소도 자동으로 삭제된다는 메일 앱. 미국 정부의 정보 제공 요청에도 응하지 않는다는 스위스에 서버를 두고 있다는 최강 보안 메일 앱.

수신자는 늘봄 신문 조준호 기자.

“후후, 조준호 씨, 당신이 그때 날 자주 볼 거라고 했었지? 근데 내가 먼저 연락하게 됐네. 정의의 사도, 당신 힘을 좀 빌려야겠어.”

짧게 가명으로 메일을 써서 조준호에게 보냈다. 보낸 뒤엔 바로 계정 폭파.

두 번째는 지난번 정수명 때처럼 Cash Nexus에 접속해 투자 정보 공지.

— ‘투자 정보: 코리아의 은하 테크론 회사 분할 후 은하 로지텍과 합병 계획 있으나, 합병 비율 산정에서 기존 주주의 가치를 심대하게 훼손할 가능성 높음. 액션 할 경우 매력적인 투자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됨. 본 회원은 금일부터 은하 테크론 지분 투자 진행 예정.

세 번째는 미국에 있는 내 계좌, 즉 스티브 리 명의로 된 금융계좌에 접속.

지난번 정수명의 AEP 주식 공매도 덕분에 자그마치 천만 불이 들어왔다. 난 그 돈으로 Cash Nexus 투자 정보란에 공지한 대로 은하 테크론 주식 분할 매수에 들어갔다.

일을 모두 끝내는데 걸린 시간 총 1시간.

난 의자에 상체와 머리를 기대고 천장을 보면서 혼자서 중얼거렸다.

“김필중 차장, 나보고 머리를 쓰라고 했어? 후후. 그래 기가 막히게 써드렸어. 한 번 보시라고 내가 머리 쓴 결과를. 자, 그 결과를 보고 재벌, 검찰, 청와대의 높으신 양반이 어떻게 나오나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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