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 검찰-청와대-재벌의 커넥션 AND 처남-매부-친구 사이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우리 회사 사건 수사하시는 데 도움 될 게 없나 물어보기도 할 겸, 담당 검사님 얼굴도 한 번 뵐 겸, 겸사겸사 들렀습니다. 최용구 검사님.”
박정철은 목구멍에 뭐가 걸린 듯, 말을 할 때마다 갤갤갤 떨리는 소리가 났다.
“수사는 문제없고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나는 기분이 언짢았다.
아무리 고발인이라 해도 사건 수사하는 검사 방에 불쑥 들어와서 이런 식으로 말한다는 건 수사 청탁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것도 담당 검사의 상급자 부장 검사를 대동하고 왔으니 청탁이 아니라 압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수사가 잘 진행되고 있는데··· 피의자 심덕환이 아직 구속 영장 청구가 안 됐다고 하더군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검사님?”
이 말을 하는 박정철의 말투와 눈매가 아까 인사할 때와는 달랐다. 빚쟁이 돈 받으러 온 거 같았다.
‘이 새끼, 뭐야?’
옆을 보니 정화용도 표정이 안 좋다. 박정철의 말투는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다.
“은하 테크론 인사팀 전무라고 하셨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럼 이 사건에 대해 고발인 신분이신가요?”
“그렇습니다.”
박정철의 말투와 눈매는 변함이 없다.
“이거 초면에 이런 말씀부터 드려 죄송합니다만, 고발인이 사건 담당 검사에게 피고발인의 구속 여부를 항의하고 싶었다면, 여기 와서 말씀하실 게 아니라 검찰청 밖에서 피켓 들고 ‘구속 수사하라’고 데모하시면 됩니다. 많이들 그렇게 하고 있고, 대한민국은 집회 시위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 국가입니다.”
나도 똑같이 박정철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뭐요?”
박정철이 더 험하게 인상을 쓰면서 같이 온 이철규를 항의하듯 돌아본다.
“아~ 그거야 뭐, 최 검사가 방금 전에 출장을 다녀와서 시간이 없었던 거야. 이 친구가 워낙 신중한 친구라서··· 허허허.”
분위기가 싸해진 걸 감지한 이철규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최 검사, 영장 칠 거지?”
이철규가 내 어깨 위에 손을 턱 얹고 물었는데, 난 오히려 이철규를 노려봤다.
‘부장이라는 자가 이게 뭐하는 짓인가? 고발인 앞에서 ‘영장 칠 거지’ 라니.’
이철규는 내 시선에 움찔한다.
‘최용구 이 독고다이 새끼, 감히 부장인 나를 째려봐? 그것도 박정철 앞에서?’
이철규는 내가 자기 부서에 배치됐을 때 김필중에게 강하게 반발했었다.
“차장님, 저 최용구 독고다이 새끼 못 받습니다. 저런 놈을 어떻게 데리고 일 합니까?”
이철규는 특수통이다. 다시 말해, 김필중의 직속 라인. 지금까지 웬만해선 김필중의 지시에 이렇게 반발하는 법이 없었다.
“왜 못 받아? 최용구가 쓸 모가 있는 놈인지 아닌지, 테스트해 보려고 그러는 거야.”
“어디에 쓸 모가 있겠습니까? 지 혼자 휘젓고 다니는 독고다이 새낀데요.”
“이 부장, 진정하고 지금 상황을 잘 봐. 정권 후반기야. 벌써 공안 애들 설쳐대기 시작했어. 우리 특수 쪽에도 뭔가 무기가 있어야 될 거 아냐.”
공안과 특수. 검찰의 양대 축. 이 두 세력의 싸움은 김필중의 검사장 승진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김필중이 검사장 승진을 해야 된다. 그래야 이철규도 차장 검사 승진을 노려볼 수 있다.
“차장님 생각이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이철규가 고개를 푹 숙이면서 대답했다.
“그래 한 번 받아서 써봐. 최용구 지난번에 정수명이 처넣을 때 보니까 잘해. 뭣보다 최용구 그 친구 각하께서 좋게 보신다고.”
대통령이 좋게 본다는 말에 이철규도 더 이상 시비 걸지 못했다. 대통령이 관심 가지는 사람이 자기 밑에 있다면 덤으로 자신도 대통령의 관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철규는 내 어깨를 다시 툭툭 치면서 너스레를 떤다.
“하하하, 최용구, 우리 나가서 밥이나 같이 먹지. 박정철 전무가 사고 싶다는데 3만 원어치만 사라고 해. 김영란 법 한도 안에서.”
“전 구내식당에서 먹겠습니다. 출장 갔다 오느라 일이 밀려서요.”
‘이 독고다이 새끼. 부장이 나가자면 나가는 거지.’
이철규가 입을 앙 다물고 돌아섰다.
“나갑시다. 박 전무.”
박정철도 이철규를 따라 돌아섰다.
그때,
“잠깐만요. 박정철 전무님. 물어볼 게 있습니다. 수사 관련해서요.”
“나한테요?”
박정철이 불쾌한 표정을 지으면서 멈춰 서더니 나 쪽으로 고개만 홱 돌렸다.
“은하 테크론 기술 전략팀에 수사 상 필요해서 자료 요구를 했었는데 제대로 오지 않은 거 같습니다.”
“그래요? 어떤 건가요?”
심드렁하게 대답하는 박정철. ‘그건 니 사정이고 내가 알 바 아니고’ 라는 투다.
“에어터치라는 회사 아시죠? 테크론 하고 AI 관련 기술 라이센스 계약 체결하셨던데.”
‘에어터치’라는 말에 박정철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확 굳었다가 펴지더니, 슬그머니 나를 돌아보면서 말한다. 말을 살짝 더듬는다.
“아, 에··· 에어터치요? 그··· 글쎄요. 내가 기술자가 아니라서 뭐··· 자세히는 모르지마는, 거··· 시··· 심덕환이가 유출한 기술이 아마 응, 그래 아마도 그 회사와 관련이 있을 겁니다.”
“알아보니까 에어터치와 은하 테크론이 체결한 계약이 두 개였더군요. 그런데 우리한테는 하나만 오고 나머지는 안 왔어요.”
“그··· 그래요? 아마 시··· 실무자들이 이런 일은 처음이라 실수로 빠뜨렸나 보네요. 내가 회사 돌아가면 한 번 확인해보고 처리하라고 하죠. 됐죠?”
박정철이 더 이상 묻지 말라는 듯 재빨리 돌아서서 나가려 한다.
하지만 난 그냥 나가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계약 내용은 이미 다 알고는 있습니다. 기술 유출 사실이 법적으로 확정되면 배상금으로 최소 3천만 불을 에어터치에 지급하게 돼 있더군요. 우리 돈으로 3백억이 넘는 꽤 큰돈인데... 물론 은하 테크론 입장에서는 큰돈이 아닐 수도 있겠죠. 그 정도 돈은 누구한테든 그냥 줄 수도 있으려나요?”
나가려던 박정철이 그 자리에 딱 멈춰 섰다. 얼굴은 다시 확 굳었다. 이번엔 아까처럼 빨리 펴지지 않았다.
“계약서 사본 부탁드리겠습니다. 두 분 식사 맛있게 하시구요.”
나는 인사를 꾸벅했다.
박정철과 이철규를 어정쩡하게 걸어 나갔고, 정화용이 재빨리 문을 탁 닫고 돌아섰다.
“계장님, 아까 하던 거 계속하시죠. 어디까지 했더라? 아, 그룹이 은병진이 소유하고 있는 은하 로지텍에 테크론 주식을 몰아주려 한다고, 일감 몰아주듯이. 그게 어떻게 가능해요? 일감이야 몰라도 지분을 어떻게···”
“검사님. 이 은하 그룹 지배구조 어쩌고 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네? 더 중요한 거요?”
말하는 정화용의 표정이 심상찮다.
창문 너머로 박정철과 이철규가 멀리 갔는지를 한 번 확인하고는 내 옆에 슬그머니 앉는다.
“검사님. 아까 왔다 갔던 박정철이라는 사람 누군지 모르세요?”
“은하 테크론 인사팀 전무라면서요?”
“아~ 참. 그런 거 말고요. 다른 건 정말 그것밖에 모르세요?”
“다른 거라뇨?”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반문하는 나를 보고 정화용이 조금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검사님, 우리 청에서 저 사람 모르는 사람 몇 명 안 될 거예요. 우리 청에 어~~ 엄청 자주 드나드는 사람이라서··· 뭐 검사님은 독고다이··· 아! 죄송합니다. 그게 저···.”
“하하, 괜찮아요. 사람들이 저 그렇게 부르는 거 압니다.”
난 정화용의 어깨를 툭 치면서 웃어줬다. 뭐 정말로 상관없다. 어차피 최용구의 별명이지 내 별명은 아니니까.
“근데 박정철이라는 사람이 뭐 어떻다는 겁니까?”
“저 사람 공식 직함은 은하 테크론 인사팀장이라지만 사실은 은하 그룹의 검찰청 전담 임원이에요.”
“전담 임원?”
“우리 청만이 아니라 서울의 웬만한 지검, 심지어 대검에까지 들락거리죠. 막강 은하 그룹의 검찰청 전담 임원이니까요.”
난 모르는 일이었다. 최용구의 기억에도 없는 걸 보니 최용구는 정말 정화용 말대로 이런 건 신경 안 쓰고 산 모양이다.
“그런데 아무리 전무가 높은 직급이라고 해도 그건 회사 안에서야 그런 거지, 뭐 대단한 게 있다고 검찰청을 제 집 드나들듯이 드나드는 거죠?”
“제 집이나 마찬가지죠.”
“네?”
“우선 이철규 부장하고 절친에 친척이거든요.”
“절친인데 친척?”
“이철규 부장 사모님이 박정철 전무 동생이에요.”
그랬구나.
이철규 부장은 수원 지검 안에서 재산 랭킹 1등인 사람, 아니 검찰 전체를 통틀어서도 그럴지 모른다. 가진 현금만 백억이 넘는 걸로 알려져 있다. 더 될 수도 있고.
모두 처갓집에서 상속받은 거다. 갑부였던 장인이 죽으면서 아들과 딸에게 똑같이 나눠서 줬다고 했다.
그러니까 저 박정철 전무는 이철규 부장과 재산을 나눠 가진 사람이라는 말이다.
“저 두 사람, 아까는 우리가 보고 있으니까 서로 존대했지만, 지금 밥 먹으러 가면서는 이 새끼 저 새끼 주고받을 거예요.”
“처남 매부 지간인데 이 새끼 저 새끼면 좀 이상하···”
“왜냐하면요 저 둘은 그리고 대학 동기래요. 서울대 법대 91학번.”
“법대 동기?”
“네. 학교 동기에 친척이기까지. 이 사건이 조사부로 배당된 것도 박정철 전무가 힘써서 그렇게 된 거라는 말이 파다했어요. 검사님이야 그런 거 귀 닫고 사시는···”
“독고다이라 몰랐던 거죠. 후후후.”
“아! 네. 헤헤헤.”
이철규와 박정철. 여기에 청와대 비서관 명단에 있었던 전태기 비서관. 미국 에어터치에서 대통령 둘째 아들 제프리 백에게 연신 굽신거리고 있었던 사람. 이 사람도 서울대 법대 91학번이라고 했다.
검찰, 재벌, 청와대에 각각 자리 잡은 서울대 법대 91학번 동기 셋이 은하 테크론 사건을 중심에 놓고 엮여 있다.
“검사님, 그럼 아까 하다 만 은하 그룹 지배구조 설명 다시 하겠습니다.”
“아, 네 그러시죠.”
정화용이 다시 마커를 들고 말을 시작한다.
“우선 은하 테크론을 쪼갭니다. 어려운 말로 인적 분할이라고 하는 건데··· 그다음엔 쪼개서 새로 생긴 회사하고 은병진이 가진 로지텍을 합칩니다.”
“쪼개서 합쳐요? 그건 왜 하는 거죠?”
“아 그래야 은병진이 들고 있는 로지텍의 주식 가치가 올라가니까요.”
쓴웃음이 나왔다. 이런 후진적인 자본주의가 어딨나? 아니 회사가 가치를 올리려면 사업을 잘할 생각을 해야지 저게 뭔가?
“근데 아까 제가 설명드린 대로 은하 그룹은 은하 텔레콤이 은하 테크론 주식을 많이 가지고 있거든요? 아까 순환 출자 설명했던 거 기억하시죠?”
아까 박정철이 들어오는 바람에 화이트보드에 열심히 그렸던 걸 지워버렸다.
“네 기억합니다. 테크론이 모바일을 모바일이 텔레콤을 텔레콤이 테크론을. 맞죠?”
정화용이 씨익 웃는다.
“역시 머리 좋으신 우리 검사님”
어깨 한 번 으쓱해줬다.
이래 봬도 죽어서 최용구 몸에 들어오기 전에는 월스트리트에서 ‘금융 천재’로 통했었다는. 물론 월스트리트에는 이런 복잡한 순환출자 같은 거 알 필요도 없었지만.
“근데 검사님, 은병진이 들고 있는 로지텍은 테크론을 쪼개서 생긴 새 회사하고 합쳤으니까 이전보다는 가치가 올라갔을 거고, 남아있는 테크론, 즉 은하 텔레콤이 주식을 들고 있는 회사는 가치가 떨어졌겠죠.”
“아! 그러니까 가치가 올라간 은병진의 주식하고 가치가 떨어진 텔레콤이 들고 있는 주식을 맞바꾸겠군요. 주식 스와프. 그러면 은병진한테 은하 테크론 주식이 생기는 거고.”
“빙고! 역시 검사님 스마트하시네요.”
또 한 번 으쓱. 이 정도쯤이야.
“근데 검사님. 여기까지 들으면 별 거 아닌 거 같지만, 회사 쪼개고 합치고, 주식 주고받는 과정에서 야로··· 야로가 어~~ 엄청 생기는 겁니다.”
“야로라면···”
“우선 테크론을 쪼개서 생긴 신설 법인하고 은병진이 들고 있는 로지텍이 합병할 때 합병 비율을 얼마로 할 거냐. 여기서 문제가 생기죠.”
“은병진이 들고 있는 로지텍은 비싸게 쳐주고, 테크론에서 떨어져 나온 회사는 싸게 치려고 할 거고. 새로 떨어져 나온 회사는 비상장이니까 가치는 정하기 나름이고.”
“맞습니다. 검사님. 근데 이거뿐입니까? 합병하고 난 뒤에 은하 텔레콤이 들고 있는 테크론 주식하고 합병한 회사 주식하고 교환할 때도···”
“테크론 주식 가격은 누르고 로지텍 주가는 올리고.”
“또 빙고. 하나를 말하면 열을 아시네요. 검사님. 하하하.”
기분 좋게 활짝 웃는 정화용을 보면서 나도 웃어줬지만 마음은 아주 무거워졌다.
기술 유출이 확정되면 거액의 배상금을 챙기는 대통령의 둘째 아들.
이를 통해 회사 주가를 하락시켜 경영권 승계를 굳히게 되는 재벌 총수 아들.
이걸 받치고 있는 검찰 - 청와대 - 재벌의 서울대 법대 91학번 커넥션.
그리고 뭣보다···
이들을 위해 누명을 뒤집어써야 하는... 일 밖에 모르는 엔지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