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 미국에 있는 대통령의 둘째 아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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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대통령 관저.
백영기가 민정 수석 유선진, 김필중과 함께 정수명 관련 뉴스를 보고 있다.
“나 저럴 줄 알았어. 정수명 저 새끼 부총리 시켜줬을 때부터 난 저 새끼 저래 될 줄 알았다니까. 콜록콜록”
백영기가 기침을 하자 유선진이 얼른 크리넥스 한 장을 뽑아서 갖다 바친다.
“쿠웨액~ 퉤!”
가래침을 크리넥스에 뱉어 휙 던지자, 유선진이 내야 플라이 받듯 얼른 받았고 옆에 서 있던 김필중이 인계받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김필중 이번에도 수고했네. 내가 당신한테 빚이 많아.”
“아닙니다. 빚이라니요. 각하를 위하는 일이 곧 국가를 위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후후 그렇지. 다 국가를 위한 일이지. 정수명이 저 놈 설쳐대는 통에 내가 영(令)이 안 살아. 대통령 영이 안 살면 국가가 제대로 돌아가겠어? 정수명 저 자식 지지자들이 좀 극성이야? 하도 칭얼대길래 부총리 시켜줘 놨더니 어찌 기어오르는지. 잘했어. 김필중.”
김필중이 화색을 감추지 못한다.
“아 참, 거··· 이번 사건 실무 검사 이름이 뭐지?”
“최용구 검사라고 아마 각하께서 기억하실 겁니다.”
“최용구? 첨 듣는데? 내가 안다고?”
백영기가 기억을 더듬는 거 같더니,
“아··· 누군지 알겠어. 거 미국까지 가서 이재훈이 처리하고 온 그··· 독고다이 무대뽀?”
“맞습니다.”
“야~ 정수명이 일당을 뿌리 뽑는 거는 무대뽀로만 밀어붙여서는 안 될 일인데? 노련하고 수싸움도 잘해야 했을 텐데.”
“그동안 그 친구 많이 컸습니다. 완급 조절이 능합니다.”
“완급 조절! 맞아, 그게 중요하지. 수원 지검에는 참 인물이 많단 말이야. 최용구라는 친구, 여기 데려다가 써봐야겠어. 어떻게 생각해? 민정.”
백영기가 유선진에게 물었다.
“아직 부장 검사도 안 된 초짜라 청와대 근무는 시기상조인 거 같습니다. 각하.”
김필중 라인을 청와대에 들이지 않으려고 견제구를 날리는 유선진.
“김필중도 그래 생각하나?”
아랫것들은 싸움을 붙여야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백영기.
“네, 각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직은 때가 아닌 거 같습니다.”
불쾌해도 불리할 땐 싸움을 피할 줄 아는 김필중.
백영기는 김필중의 이런 완급 조절이 항상 마음에 든다.
저 늙은 유선진을 내치고 나면 다음 자리는 꼭 김필중을 꽂으리라 생각한다.
“그럼 다들 수고했어. 다음에 또 한 번 자리 마련해 보자고.”
“네 각하, 편히 쉬십시오.”
김필중과 유선진이 인사를 하고 나오려는데, 백영기가 유선진을 급하게 불러 세운다.
“아 참, 민정. 거 일전에 내가 이야기한 거 말이요. 미국에 있는 우리 둘째.”
“예. 각하”
“잘 챙겨주쇼. 못난 아들놈이라 누가 꼭 챙겨줘야 돼. 허허허”
“염려 마십시오. 신경 쓰고 있습니다. 각하.”
백영기의 스타일 상 저 대화가 그냥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김필중은 직감으로 안다.
유선진에게 말하는 거 같지만 사실 김필중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유선진만 들어야 하는 말이라면 반드시 따로 불러서 했을 것이다.
대통령의 둘째 아들.
김필중은 이 말을 두뇌 깊숙한 곳에 새겨 넣었다.
***
굴지의 대기업 은하 테크론의 선행기술팀 팀장 심덕환 전무.
공장동과 오피스 빌딩이 빼곡히 들어선 사업장 후문을 통해 자기 차를 몰고 퇴근 중이다.
지금 시간 밤 11시 40분. 오늘은 그래도 날을 넘기지 않았으니 이른 퇴근에 속한다.
“뒷 트렁크 좀 열어주시겠습니까?”
후문에 설치된 보안 초소에서 보안 요원이 나와 차를 세우고 말했다.
“트렁크를 열라고?”
심덕환은 느닷없는 보안 요원의 요구에 좀 황당했다.
사업장 밖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 들어와야 하는 직원들은 입구에서 일일이 보안 점검을 받아야 하지만, 사업장 안까지 그냥 차로 들어오는 임원은 차 안에서 얼굴 확인만 하고 보통 그냥 통과한다.
그런데 트렁크를 열라니. 그것도 자정이 다 돼서 퇴근하는 임원에게.
“특별 보안점검 기간입니다. 열어주시기 바랍니다.”
“턱별 보안? 참 내···”
심덕환은 투덜거리면서 트렁크를 열었다.
“전무님. 이 서류는 뭔가요?”
보안 요원이 트렁크에서 서류 뭉치를 꺼내 운전석 쪽으로 가져와 물었다.
“이거? 내가 요즘 하는 프로젝트 문선데···”
복잡한 기술 문서. 보안 요원이 내용을 짐작이나 할 수 있겠나?
“이거 갖고 나가시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보안 요원의 이 말에 심덕환의 인상이 심하게 구겨졌다.
“이거 맨날 가지고 다니는 거야. 집이라고 일 안 하나? 빨리 줘. 집에 가게.”
바로 반말에 언성도 높였다. 왜? 임원이니까.
“전무님, 이건 저희들이 보관하겠습니다.”
“뭐라고?”
“내일 보안팀으로 출석하셔서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뭐? 내일? 보안팀?”
내일은 토요일이라도 어차피 출근할 계획이라 문제될 거 없지만, 보안팀으로 출석하라니. 이 무슨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이 인간이 보자 보자 하니까.”
심덕환이 보안 요원을 째려보면서 차에서 내렸다.
“이 봐. 당신 이름...”
명찰에 눈을 가까이 갖다 대고 이름을 확인한 심덕환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박대출? 이름은 좋네. 이봐, 박대출 씨. 당신 위에 임원이 누구야? 밤늦게 일하다가 퇴근하는 임원을 붙잡고 이래도 돼? 당신 임원이 그렇게 하라고 시켰어? 엉?”
심덕환은 잠시 말을 끊고 시계를 봤는데, 막 자정이 넘었다. 보안 점검당하느라 20분 넘게 허비한 거다. 더 열이 받았다.
“이 시간에 꼭 이래야 돼? 임원한테 뭐하는 행패질이야? 엉?”
퇴근하는 직원 한두 명이 흘끗흘끗 쳐다본다. 그중엔 직속 부하도 있다.
‘전무씩이나 돼가지고 보안 점검당하느라 이러고 있다니. 가오 죽네, 죽어.’
심덕환의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
“야! 나 선행기술팀장 심덕환 전무야. 그거 당장 내놔!”
“안됩니다. 내일 아침에 찾아가십시오.”
심덕환은 다가서서 서류를 뺏으려 했는데, 박대출은 서류를 등 뒤로 숨긴 채 꿈쩍도 안 한다.
“무슨 일입니까?”
다른 보안 요원이 심덕환 뒤에 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키가 2미터는 족히 돼 보였다. 그 사람을 쳐다보기 위해 심덕환은 고개를 30도 정도 위로 꺾어야 했다.
“아! 나 선행기술팀 팀장 심덕환 전문데요. 이 사람이 말이죠···”
박대출한테 한 것과는 달리 이 사람에게는 바로 높임말이다. 역시 덩치는 크고 봐야 한다.
하지만, 2미터 남자는 심덕환은 무시하고 지나쳤다.
뻘쭘해진 심덕환.
“거기요? 내 말 좀 들어보세··· 엇?”
심덕환은 다시 말을 걸어보려 했지만, 2미터 남자는 박대출을 데리고 초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심덕환도 들어가려고 문고리를 잡고 조금 열었는데, 그걸 본 박대출이 얼른 뛰어와 문을 쾅 닫고 잠가버렸다.
“야! 뭐야? 문 안 열어?”
잠긴 문을 잡고 흔들었지만, 소용없는 일.
초소 안의 둘은 소리 지르는 심덕환을 한 번 돌아보지도 않고, 심덕환의 트렁크에 있었던 문서를 넘겨 보면서 대화를 주고받는다. 2미터 남자는 어딘가에 전화도 건다.
‘뭐야? 어디다 전화를...’
이제서야 심덕환은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통화를 끝낸 후, 2미터 남자가 초소에서 나왔다.
“전무님. 우리 요원이 안내해 드린 대로, 내일 오전 8시까지 보안팀으로 출석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서류는 증거물로 압수합니다.”
“뭐요? 8시? 압수?”
지금 시간이 자정을 넘었는데 8시까지 오라니. 거기다 압수까지. 하지만, 그건 항의할 꺼리도 안 된다는 걸 심덕환은 바로 깨달았다.
박대출이 심덕환의 차문을 열고 들어가 차도 내부 수색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야! 너 뭐 하는 거야?”
소리 질러봐야 소용없다. 박대출은 글러브 박스, 시트 백 포켓, 콘솔 박스, 썬바이저 등, 조그만 물건 하나라도 넣을 수 있는 곳은 모조리 열어 손전등을 비추면서 샅샅이 수색했다.
심덕환은 머리털이 쭈뼛 섰다.
수색을 끝낸 박대출은 심덕환의 노트북 가방과 콘솔 박스에서 꺼낸 USB 드라이브 두 개, 트렁크 안에 있었던 1 테라바이트 외장하드 한 개를 들고 나왔다.
심덕환은 당황했고, 2미터 남자는 정색을 하고 말한다.
“전무님. 이 가방과 전자 기기도 모두 압수하겠습니다. 내일 보안팀에서 해명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아침 8시입니다. 그럼.”
2미터 남자는 경례를 붙였지만, 심덕환은 박대출이 초소 안으로 갖고 들어간 자신의 가방과 USB 드라이브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거··· 실화야?’
***
“검사님, 은하 테크론 기술유출 사건 참고인 조사 끝냈습니다.”
정화용이 내 옆에 와 앉았다.
“참고인 조사요? 무슨···.”
“세 명이나 했는데···.”
정화용이 입을 삐죽한다. 참고인 조사한다고 몇 번을 말했는데 그걸 기억 못 하나. 입을 삐죽하는 정화용을 보고, 나는 멋쩍게 씩 웃어줬다.
사실 이번에 맡은 ‘은하 테크론 고위 임원 기술 유출 사건’은 영 재미가 없다.
이건 전형적인 대기업 내부 임원 단속용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건은 특별히 수사할 것도 없다. 그냥 답이 정해져 있다. 조직에서 문제 일으킨 사람을 회사가 일벌백계로 처벌하는데 검찰이 도와주는 격이다.
정화용도 그걸 알기에, 최대한 재밌게 해서 나의 관심도를 올려보려고 애쓴다.
“첫 번째 참고인은 심덕환 직속 부하직원인데요~ 어휴~ 엄청 당했었나 봐요. 이러더라구요. 잘 보세요. 흠흠.”
정화용은 눈꺼풀에 힘을 빼고 좀비 같은 얼굴을 만들었다. 목소리도 축 늘어뜨린다.
“심덕환 전무... 일에 미친... 사람을... 사람이 아닌··· 기계로 보는... 주말도 휴일도 없이... 월화수목금금금인 사람... 하루 5시간 잠 자보는 게 소원이에요. 아함(하품)”
“풉!”
“저 연기 잘하죠?”
“네, 잘하시네요. 다음은요?”
“그다음 사람은 반대로 완전 흥분해서는...”
정화용이 벌떡 일어나더니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면서 소리친다.
“심덕환. 비열한 인간. 팀 운영 경비를 지가 다 처먹고, 팀원한테는 삼겹살 1인분도 아까워하는 인간. 그 인간 깜방 들어가면 회사에 떡 돌릴 겁니다.”
“하하하. 그 다음은요?”
“은하 테크론 인사팀 부장인데요. 심덕환은 회사에서 아예 내놓은 사람이었다는군요.”
“내놓았다?”
“네. 은하 테크론 임원이 현직에 있으면서 헤드헌터 하고 접촉하는 법은 없대요. 적어도 겉으로 드러나게는 안 한대요. 회사 눈치를 살피는 거죠. 그런데 심덕환은 링크드인에 떡 하니 자기 프로필 올려놓고 중국에서 온 헤드헌터 하고 대놓고 인터뷰도 했대요.”
난 정화용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은하 테크론의 사업보고서를 다트(Dart: 금융감독원 공시 정보 사이트)에서 다운 받아 읽고 있었다. 아무리 재미없는 사건이지만, 계장이 저렇게 애쓰는데 나도 아는 척을 좀 해야 할 테니까.
“그래서 그 고위 임원, 중국 갈려고 기술 유출을 시도했었나 보군요. 아주 나쁜 사람이네요 그 사람··· 어··· 엇?”
“검사님, 볼 것도 없어요. 그냥 영장 치시죠”
“···”
“검사님?”
갑자기 노트북 화면에 눈을 박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나.
정화용은 어리둥절이다. 얼굴을 내게 가까이 들이밀면서 한 번 더 물어본다.
“검사님? 영장 칠까요?”
“···”
정화용은 허리춤에 손을 얹고 기가 찬다는 듯 피식 한 번 웃더니, 목소리 데시벨을 많이 올려 다시 나를 불렀다.
“검. 사. 님. 최용구 검사님~~”
“아, 계장님. 예?”
“영장 칠까냐고 여쭸습니다. 충분히 칠만한...”
“계장님.”
“네?”
나는 여전히 노트북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을 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출장을 가야 할 거 같습니다. 이 사건 관련해서 조사할 게 있어서요.”
“네? 추... 출장. 그것도 새··· 샌프란···”
정화용이 놀라든 말든 멍하게 서있든 말든 난 열심히 노트북 화면을 스크롤했다.
내가 다트에서 발견한 건 은하 테크론이 최근 체결한 기술 라이센스 계약이었다.
계약 상대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에어터치(AirTouch)’라는 스타트업 회사.
이 회사는 내가 이재훈일 때 미국에서 만든 회사다.
실소유주 이름은 제프리(Jeffrey) 백. 한국 이름 백승환.
대통령 백영기의 둘째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