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 놈이 잃고 있는 돈은 내 계좌에 차곡차곡...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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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회사라 그런지 뉴스도 안 뜨네. 도대체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주가가 떨어졌지?”
정화용은 폰 스크린에 눈을 박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혼잣말이었지만 목소리가 꽤 컸다.
H-TV 특종 보도가 나온 뒤, 정수명은 미국 주식을 볼 겨를이 없었다.
사흘 전 윤선경과 함께 집무실에서 확인했던 게 마지막이었는데, 그때까지는 주가가 약보합세이었고 ‘건강한 조정’ 정도였는데···. 지금은 폭락이라니.
정수명은 정화용의 스마트 폰에 떠 있을 미국 주식 소식이 알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정수명도 이 바닥에서 굴러먹은 지 수십 년.
‘검사 새끼들. 지금 저 유리창 뒤에서 다 보고 있겠지. 저 촐싹대는 놈이 저렇게 떠들면 내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려고 하는 거겠지. 내가 거기 넘어갈 줄 아나.’
정수명은 최대한 무관심 무표정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무조건 딱 잡아떼야 한다. 특히 미국 주식은 그래야 한다. 잡아떼면 검찰 놈들도 찾아낼 방법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 돈 넣어놓은 거 아닌가.
살인은 천우민, 금융과 아이티 쪽은 성갑수에게 뒤집어씌우고 나오면 된다.
정치적 타격을 조금 받게 되겠지만, 어차피 대중이라는 개돼지들은 건망증이 심하잖나. 늘봄 신문이 신문 이름처럼 늘~ ‘정수명 대통령 만들기’를 위한 기사 도배를 해주면 지지율은 금방 회복된다.
하지만, 미국 주식에 넣어둔 돈은 이야기가 완전히 다르다.
누구한테 뒤집어씌운다고 되살아날 수도 없고 늘봄 신문이 떠든다고 회복하는 게 아니다.
그건 말 그대로 허공으로 날아가버리는 거다.
도대체 얼마나 빠졌길래 ‘폭락’이라고까지 말하는 걸까.
정수명은 궁금해서 오금이 저릴 지경이었다.
***
조사실 바깥에서 정화용과 정수명을 관찰하던 나는 30분쯤 뒤 다시 들어갔다.
“장관님, 실례했습니다.”
짧게 인사하고 테이블 앞에 앉았다.
정수명은 인사를 받지도, 어디 갔다 왔냐고 묻지도 않는다. 머릿 속엔 온통 주식··· 마리화나 주식 뿐이다.
“어디까지 했더라?”
나는 일부러 천천히 사건 파일을 뒤적였는데, 정화용은 아직도 스마트 폰으로 폰질 중이다.
나는 짜증 섞인 표정으로 정화용을 돌아봤다.
“정 계장. 뭐해요? 조사실에서?”
“네? 저··· 그냥···.”
“폰이나 보려면 나가요. 집에서 해요 폰질은. 여기서 뭐 하는 겁니까?”
“네. 죄송합니다.”
정화용은 폰을 주섬주섬 주머니에 넣으면서 조사실을 나간다.
정수명은 나가는 정화용 뒤통수를 보고 피식 웃었는데, 정화용이 나가면서 한 말 때문에 금세 표정이 굳어버렸다.
“역시 손절매는 빠를수록 좋아. 지금 팔아봐야 반토막도 못 건지잖아.”
정화용이 나가자, 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다.
“요즘 저 사람이 주식에 푹 빠져서. 어휴~”
난 정수명을 보고 씩 웃어줬다. 정수명도 멋쩍게 웃긴 했지만, 속이 타들어간다. 반토막도 못 건진다니.
“정 부총리님께서는 주식 안 하시죠?”
이건 유도신문. 정수명 정도 되는 고단수가 넘어갈 리 없다.
“주식요? 허허. 공직자로 살면서 그런 거 할 돈이 있나요. 있다고 해도 하면 안 되죠.”
“그렇죠? 공직자가 저러면 안 되는데··· 방금 나간 저 정화용 계장은 미국 주식에 돈 넣었다가 왕창 날려먹었답니다. 미국 주식은 무섭더군요. 하한가도 없다면서요?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하니까 하루에 3~40퍼센트도 예사더군요.”
“허허, 그래요? 난 전혀 관심이 없어서.”
“정 계장이 투자한 주식이 글쎄 스타트업이랍니다. 아직 매출도 제대로 안 나오는···”
스타트업이라는 말에 정수명 표정이 더 확 굳었다.
난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참고 한방 더 확실하게 날려보기로 했다.
“참나 기가 차서. 마리화나로 음료수 만드는 회사랍니다. 세상에 공직자라는 사람이 국민이 낸 세금으로 월급 받아서 그런 회사 주식을 사도 되는 겁니까?”
“헉.”
정수명이 결국 참지 못하고 신음소리를 내고 말았다.
“아 왜 그러십니까? 부총리님. 아··· 부총리님께서 생각하셔도 참 기가 차죠?”
“아 그··· 그렇군요. 참··· 나···”
“그 회사 이름도 참 기묘하더군요.”
“회사이름요?”
정수명이 너무너무 듣고 싶은 말을 듣고 싶어 안달인 어린애 같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역시 돈 앞에서는 정치 9단 10단도 어쩔 수가 없다.
“기껏 마리화나로 음료수 만들어 팔면서 회사 이름은 어찌 거창하던지.”
정수명 숨 넘어간다. 그런데 그걸 보고 있는 난 어찌 재밌던지.
“얼터너티브 에너지 파워랍니다. 얼터너티브, 하하 웃기지 않습니까? 부총리님?”
정수명은 내 입에서 나온 회사 이름을 듣자 얼굴이 하얘졌다. 숨도 잘 못 쉬는 거 같다.
나는 싱긋이 웃었다.
내가 Cash Nexus 투자 정보란에 공지를 올린 이후, AEP 주가는 내 예상대로 처음엔 약보합으로 있다가, 한국 TV에서 정수명 관련 뉴스가 나오자마자 폭락하기 시작했다.
하락하는 주가는 공매도를 부르고 매물은 매물을 부르고···.
결국 AEP 주가는 현재 30불.
내가 AEP를 공매도를 쳤을 때 주가가 100불이었으니 단 사흘만에 매일 30%씩 떨어진 셈이다.
달리 말하면, 지금 정수명이 잃고 있는 돈은 내 미국 계좌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부총리님. 주식 이야기는 여담이었구요.”
여담이라고 말했지만 여담이었을 리 없다. 시작하기도 전에 상대의 정신줄을 놓게 만들어놓는 심문법. 최용구의 기억에서 흡수한 건데 정수명의 정신이 아직도 멍한 걸 보니 최용구 자식, 심문 기술 하나만큼은 고수였다고 인정한다.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테이블 위에 문서를 차곡차곡 정렬해 놓은 뒤, 정수명을 빤히 쳐다보면서 묻는다.
“부총리님, 이거 한 번 설명해 보시겠습니까?”
정수명은 물 한 모금을 마시더니, 내가 놓은 문서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게 다 뭡니까?”
“성갑수 대표가 제출한 자료입니다. 성 대표와 장관님 사이의 거래··· 성 대표는 이걸 거래라고 부르더군요. 저는 이런 걸 뇌물 수수, 특혜 제공이라고 부릅니다만.”
“··· 서··· 성갑수가···”
정수명의 금테 안경 너머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는 게 보였다.
‘덜컥’
조사실 문이 열리면서 정화용이 들어왔다. 일본식 직사각형 나무 식판을 들고 있다.
“아! 장관님, 시장하시죠? 식사 왔습니다.”
지금 몇 신데 식사 타령? 정수명은 어리둥절했다.
정화용이 정수명 앞에 식판을 살포시 놓고 나갔다.
나무 식판 위에 있는 것은 흑미밥, 갈치조림, 미역국. 어디서 많이 보던 음식 조합이다.
정수명은 식판을 멍하니 내려다본다.
그 꼴을 보고 내가 천천히 말했다.
“천우민 교수가 그러더군요. 장관님은 양념이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는 갈치조림을 좋아하신다고. 이 맑고 정갈한 미역국도 잘 드신다고. ‘미역국은 이렇게 정갈해야죠. 세상도 이렇게 정갈하면 좋을 텐데 말이죠’ 라고 말씀하시면서.”
정수명이 고개를 들었다.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본다.
나라고 질 수 없다. 같이 노려본다. 그리고는 한마디 툭 던졌다.
“그 정갈한 세상을 위해··· 살인 교사를 하셨습니까? 부총리님?”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H-TV 뉴스 특봅니다.”
앵커가 다소 상기된 목소리로 뉴스를 전한다.
“정수명 사회 부총리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됐습니다. 정수명 부총리는 범죄단체로부터 100억 원에 달하는 뇌물 수수와 파타야 20대 청년 살인 교사 등의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서울 중앙지법에 나가 있는 취재 기자 연결합니다. 서한무 기자.”
“네, 서한뭅니다.”
“정수명 부총리, 이제 전 부총리라고 해야겠군요. 오늘 청와대가 정수명 전 부총리를 경질했으니까요. 정수명 전 부총리에 대한 구속 영장이 발부됐다구요?”
“네, 그렇습니다. 서울 중앙 지방법원 영장전담판사인 김석범 부장판사가 심리를 맡았는데, 재판부는 범죄의 많은 부분에 대해 소명이 됐다면서, 피의자의 지위, 범죄의 중대성을 고려했고,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증거 인멸의 염려도 있었다고 영장 발부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렇군요. 정 전 부총리 쪽에서는 상당히 격앙된 반응을 내놓은 걸로 아는데요.”
“네, 정 전 부총리의 측근인 윤선경 씨는 정수명에 대한 사법 살인 시도이며 공정하지 못한 공권력의 만행이라면서, 이후 재판 과정에서 반드시 진실이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수고했어. 최용구. 또 한 건 했네.”
수원지검 차장 검사실.
김필중과 내가 창문 밖을 보면서 나란히 서있다.
“차장님께서 도와주신 덕택입니다.”
“풉! 독고다이 시키, 이제 그런 느끼한 인사치레도 할 줄 아나?”
창문 밖으로는 수원 지검 청사 정문이 보인다.
정문 앞에는 정수명의 지지자들이 백 명쯤 모여 시위를 하고 있다.
“정수명을 석방하라~”
“정치 검찰 자폭하라!”
시위대를 내려다보던 김필중이 내게 말한다.
“그동안 정수명이가 돈을 얼마나 뿌려댔으면 저 쉬키들 저러고 있으까. 니 오늘 출근하다가 한 방 맞았다매? 저 쉬키들한테.”
출근길에 시위대가 던진 계란을 한 대 맞았다.
“괜찮습니다.”
“니도 이제 표적이 된 거야. 인육 먹은 악마 새끼들보다 더 질기고 고약한 것들이 저 열성 지지자라는 년놈들이야.”
“그렇겠죠.”
“기레기들은 더해. 늘봄 신문? 아예 도배를 했더만. 정수명 죽이기 표적 수사라고. 지들 주인인 정수명을 잡아 처넣은 것도 모자라서 밥 벌어다 주는 스타 글쟁이 천우민이까지 처넣었으니 얼마나 발악을 해대겠어? 우째 이놈의 나라는 신문 하나 볼 게 없어. 응? 좆도.”
“···”
“거 천우민이라는 교수 시키가 지가 죽였다고 자백했다매?”
“네.”
“맞아? 그 먹물이 죽인 거?”
“맞다고도 할 수 있고 아니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만... 학자로서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거 같습니다.”
“진짜는 누구야? 성갑수야?”
“김진수의 숨통을 끊은 건 성갑수인 걸로 짐작되지만... 천우민도 홍성수도 살인범이 아니라고 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김진수를 때리거나 방치했으니까요.”
“중국 비트코인 서버 해킹은 그냥 덮기로 했나?”
“네. 그건 까면 중국 정부가 개입될 거니까요. 중국하고는 되도록 접촉이 없는 게...”
“잘했어. 쓸데없이 판 키울 필요 없지. 그럼 성갑수는 뭐야? 살인 모의? 뇌물 공여?”
“네.”
“정수명이 미국 계좌는? 그거는 못 까지? 미국 늠들 안 까주잖아?”
“하지만 이미 주가가 폭락해서 계좌는 깡통이 됐을 겁니다.”
'그리고 그 돈은 모두 내 계좌에 들어와 있어' 라고 말하고 싶었다.
“잘됐네. 정부가 못 하는 일, 시장이라도 해줘야지.”
김필중이 맞는 말을 한다. 법과 정의는 피해 갈 수 있어도 돈만큼은 빼도 박도 못 하게 만들어야 한다.
김필중은 잠시 말을 멈추고, 창문 밖 시위대를 물끄러미 보더니 말을 이었다.
“최용구 니, 다시 말하지만, 니 이제 조심해야 돼. 정수명 측근 중에 윤선경이라고 알지? 보통내기가 아냐. 한번 앙심을 품으면 서릿발도 울고 갈 년이야.”
“명심하겠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니 당분간 조사부로 가 있어. 정치적으로 엮일 일 없는 경제 사건들로 배당할 테니까 그거나 봐. 경제 공부도 하고... 경제통 돼 보는 거지 뭐. 아! 최용구 니 그러고 보니까 초창기에 경제 사건도 했었지?”
“네, 맞습니다.”
“여하튼 그동안 수고했어.”
김필중이 내 어깨를 툭 치면서 씩 웃었다. 나도 인사를 하고 나왔다.
내 방에 들어서자 정화용이 벌떡 일어났다.
“저··· 검사님”
정화용이 눈짓으로 소파에 앉아있는 사람을 가리켰다.
김홍철. 죽은 김진수의 아버지다.
“아버님, 오셨습니까? 그동안 안부 인사도 못 드렸었네요. 죄송합니다.”
김홍철 앞 소파에 앉으면서 말했다.
“검사님. 한 번 뵈어야 할 것 같아서... 인사라도 드리려구요.”
“잘 오셨습니다. 아버님.”
정화용이 어느새 종이컵에 커피 두 잔을 가져와 둘 사이에 놓았다.
“최용구 검사님.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제가 더...”
“우리 진수···”
“···”
“우리 진수... 그 녀석... 하고 싶은 게 많은 아이였습니다.”
둘은 식어가는 커피만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