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 주식이 원수지. 돈 앞에 장사가 있나.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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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명이 검찰청 포토라인에 섰다.
“먼저,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습니다. 저를 향한 이런 종류의 음해··· 처음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모두 이겨냈습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겁니다.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진실은 밝혀질 것입니다.”
윤선경이 미리 준비해준 짧은 연설이 끝나자마자, 기자들의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살인 교사 의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해외 거액 계좌 은닉 혐의도 받고 있는 겁니까?”
“해외 비자금 의혹에 대해 한 말씀해 주십시오.”
아무 대답도 못 들을 거 알면서 왜 저리 질문들을 해대는지, 정수명은 짜증이 확 올라왔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기자에게 레이저 광선을 쏘거나, 기자들에게 일장 설교를 하려 해서는 안 된다. 역효과만 날 뿐이다.
기자들 뒤로는 지지자와 반대자들이 둘로 갈려 플랭카드를 흔들고 구호를 외쳐댔다.
“정수명은 국민 앞에 사죄하고, 정계 은퇴하라~”
“정수명 부총리에 대한 정치 탄압 중지하라~”
“자폭하라, 정수명”
“힘내라, 정수명”
정수명은 지지자에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주고 검찰청사로 들어갔다.
***
“반갑습니다. 부총리님.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송구합니다.”
김필중이 조사실 옆에 마련된 응접실에서 정수명을 맞았다.
“오랜만입니다. 김필중 차장님.”
‘오랜만’.
정수명은 이 말에 뼈를 담았다.
— ‘김필중 당신, 내가 준 봉투 잘 받아 챙겼잖아. 봉투만 챙겼어? 식사야 골프야 사양 않고 낼름낼름 잘 받아 처먹어놓고 지금 나한테 이래도 돼?’
이런 뜻이다.
“오랜만 맞습니다. 장관님을 뵈었던 게 하도 오래돼서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군요.”
‘기억도 나지 않는다’.
김필중도 이 말에 뼈를 담았다.
— ‘당신이 줬던 돈봉투, 접대, 골프. 그거 이미 유효기간 지난 썩은 우유 같은 거야. 까면 냄새만 풍길 뿐 아무도 관심 안 가져.’
이런 뜻이다.
조사실에 들어가기에 앞서, 둘은 소파에 앉아 커피 타임을 가진다. 수사를 맡을 검사와 수사관들을 소개해주고 덕담을 주고받는다. 커피를 다 마셨을 때쯤 되면 조사실로 이동한다. 김필중은 조사실엔 들어가지 않는다.
“최용구 검사입니다. 수사 주무입니다.”
김필중이 나를 정수명에게 소개했다.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부총리님. 조사를 맡은 최용구라고 합니다.”
나는 15도 정도 고개를 숙여 인사했지만, 정수명은 고개 숙이지 않았다.
‘최용구. 네 놈이었냐? 성갑수가 손 봐달라 했던 놈이? 두고 보자. 이 하룻강아지 새끼.’
정수명은 금테 안경 너머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썩소를 날린다. 그리고는 난 바로 무시하고 바로 김필중을 향해 큰소리 친다.
“아니, 김필중 차장. 이런 황당한 일이 어딨습니까? 김 차장도 솔직히 차~암 황당하시죠? 내가! 이 정수명이 살인 교사라니. 나 기가 차서. 어쩌다가 이런 사건을 맡으셨습니까? 그래.”
금테 안경 너머로 지어 보이는 특유의 눈웃음.
“나야 뭐, 워낙 이런 일을 많이 겪어놔서, 면역이 돼서 아무렇지도 않습니다만.”
‘아무렇지도 않다’면서 손사래를 치는 과장된 동작.
김필중은 정수명의 눈웃음과 손동작을 보자 위산이 역류해 올라왔다.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트림이 나왔는데, 얼른 팔을 들어 입을 가리고 얼굴을 돌렸다.
‘정수명 이 위선자 새끼. 여기가 어디라고 깐죽거려, 깐죽거리기는.’
김필중은 마시고 있는 커피를 정수명의 눈웃음치는 얼굴에 확 끼얹고, 빈 잔을 깨뜨려 정수명의 손사래 치는 손모가지에 박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꼈다.
김필중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정수명은 계속 건들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김 차장, 나는 이 사건을 분명히 나를 음해하기 위한 저쪽 세력의 정치적 음모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검찰이 저쪽 세력의 음모의 도구로 전락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구요, 우리 지지자들도 두 눈 부릅뜨고...”
“장관님, 저는 그만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폭력 충동을 억누르면서 김필중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제 그만 깐죽거리고 조사받으러 들어가라는 말이다.
정수명은 먼저 일어선 김필중을 기분 나쁘게 올려다봤다.
정수명의 커피 잔은 아직 반도 안 비워졌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하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 하지만 별 수 없다. 검찰청에 왔으니 검사가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일어섰다.
“김필중 차장. 성격 참 급하시군요. 이 커피라도 다 마시고 시작하는 게 예의 아니던가요? 요즘은 예의 같은 거 안 따지나 보군요. 좋습니다. 이렇게 하신다면 뭐, 시작하시죠.”
정수명도 벌떡 일어나, 김필중을 외면하고 조사실 쪽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김필중은 정수명을 향해 상체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정부 직급상으로는 차장 검사보다 부총리가 훨씬 위다. 같은 공무원으로서 윗분께 예의는 차린다. 아직까지는 그래야 한다.
***
“살인 교사라니, 이제 별 걸 다 뒤집어씌우네. 거기 검사··· 최··· 뭐라고 했죠? 이름이?”
정수명이 일부러 내 이름이 기억 안 나는 척한다.
“최용구입니다.”
“아, 그래요. 최용구 검사. 내가··· 아니 이 정부의 사회 부총리를 맡고 있는 내가, 뭐가 답답해서 파타야까지 가서 사람 하나 죽이라고 지시를 한단 말입니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 따져보려고 지금 조사하는 거 아냐? 라고 말하려다 참았다.
“성갑수 대표하고는 얼마나 되셨습니까? 알고 지내신 지.”
난 정수명을 쳐다보지는 않고 사건 파일을 넘기면서 건조하게 물었다.
“나를 후원하고 있는 많은 중소 혁신 기업인들 중에 한 사람입니다. 그뿐입니다.”
“성갑수 씨가 조폭인 건 알고 계셨나요?”
“내가 어떻게 남의 속을 속속들이 다 압니까? 후원자들 직업이 뭔지, 뭐해서 먹고사는 사람인지, 결혼은 했는지, 가족은 몇 명인지까지, 사업자 등록증까지 다 확인하면서 후원받는답니까? 후원자 호적 등본 떼보고 족보까지 확인하고 후원받아야 되는 겁니까?”
정수명이 눈을 부라리면서 쏘아붙였다. 그러면서 내 표정 변화를 이리저리 살핀다. 자신의 공격을 내가 어떻게 받아내는지 탐색하는 거다.
일단은 공격이 성공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야 마음을 놓게 되고 실수를 하게 되니까. 난 일부러 정수명을 쳐다보지 않고 사건 파일에만 눈을 처박았다.
내 방법이 통한 거 같다. 정수명이 더 기세 등등해서 말을 퍼붓기 시작한다.
“이것 보세요. 최용구 검사. 나 같은 전국적인 정치인쯤 되면 말이죠, 더군다나 대권 1순위 정치인쯤 되면 말이죠, 나를 후원하겠다는 사람 줄을 섭니다. 집 앞이고 사무실 앞이고 장사진을 친다 이 말입니다. 여기 수원에서부터 줄을 서면 저~기 부산까지 늘어설 겁니다. 그러면 우리 최용구 검사 같은 분들이 할 일이 뭡니까? 그 후원하겠다고 줄 선 사람들 중에 조폭은 없는지, 살인범 도둑놈은 없는지, 테러 그래 테러리스트도 있을 수 있지. 그런 걸 분석하고 알아내서 일망타진해야죠. 아니, 그거 하라고 국민이 세금을 내서 검찰을 두고 있는 거 아닙니까? 만약 성갑수 대표가 최 검사 말대로 조폭이었다 칩시다. 그럼 검찰이 나서서 그 조폭이 나 같은 선량한 정치인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았어야 되는 거 아니냐 이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나보고 그 사람이 조폭인지 알았냐고 물으면··· 나 참 기가 차서. 아니 내가 그걸 알아내야 한다면 도대체 검찰은 왜 있는 겁니까? 그냥 내가 검찰이고 경찰이고 다 하고 말지.”
말빨 한 번 기가 막히게 좋다. 과연 대중의 마음을 쥐었다 폈다 하는 정수명답다.
“천우민 교수하고는 얼마나 자주 교류를 하십니까?”
“누구요?”
정수명은 또 일부러 천우민의 이름을 못 알아들은 척한다.
“XXX 대학교 철학과 교수 천우민 말입니다.”
“아~ 그분. 뉴스에 나왔길래 봤어요. 참 아까운 분인데. 평소 그분께서 쓰신 칼럼도 가끔씩 감동적으로 읽고 그랬었는데... 늘봄 신문이던가? 맞죠? 늘봄 신문.”
“네, 맞습니다. 늘봄”
“참, 그런 분들, 나를 지지하시는 마음... 그 열정은 내가 이해하고 고맙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말이죠. 이런 상황이 되면 나도 참 곤란해요. 오히려 나를 이렇게 곤경에 빠뜨리는 거예요.”
정수명이 갑자기 정색을 하더니,
“아! 물론! 물론 그분들을 나 이 정수명이 버리지는 않을 거예요. 그분들 덕에 내가 있는 거고, 어찌 됐든 내 지지자니까. 아니 지지자이기 이전에 이 나라 대한민국의 국민이니까. 그분들도 모두 내가 안고 가야 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 지지자’, ‘국민’이라고 말할 때 정수명은 가슴에 손을 얹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할 때 같은 근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최용구 검사. 한 번 생각해봐요. 지지자께서 저렇게까지 하시는 데 내가... 내가 어떻게 해야 됩니까? 어떤 불순한 의도를 가진 사람이 말이야, 말도 안 되는 걸 가지고 와서 나를 해치려고 한단 말이에요. 그러니 지지자인 그분께서 자발적으로, 자발적으로 나서 주셔서 나를 지켜주시겠다고 하는데···. 아! 물론 그분께서 하신 일이 잘하신 일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건 또 절대! 절대 아니고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는 못하는 거니까요. 절대로 아니지요. 그건.”
‘절대’라고 말하면서 다시 손사래를 친다. 난 이 부분에서 위산이 역류할 뻔했다.
“내가 아무리 나를 지지해주시는 분들의 마음을 고맙게 생각하고 그분들의 지지와 응원, 실망시키지 않게 최선을 다해 일하는 정치인이라 한들, 내가 이 정수명이 그런 분들의 한 명 한 명의 마음속까지 들어가서 컨트롤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정수명이 갑자기 한숨을 한 번 쉬더니 한동안 천장을 물끄러미 본다. 한참을 그렇게 있더니 다시 나한테 시선을 내렸는데 눈에 눈물이 촉촉이 배어있다.
아까보다 더 힘을 줘서 말한다. 목소리가 조금 떨린다. 울먹이는 거 같다.
“더 살기 좋은 나라, 모두가 다 함께 잘 사는 세상을 향한 국민 여러분의 꿈. 그 꿈을 이 땅에 실현해 나가야 하는 사명. 저 정수명의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헐··· 일장 연설에 감정을 담은 표정 연기까지.
이거 미리 준비하고 와서 하는 걸까? 나도 잠깐이긴 하지만 정수명을 지지하고픈 마음이 생길 정도였다.
“아, 부총리님. 말씀 중에 죄송합니만, 잠시 실례 좀 하겠습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이제 정수명의 연설은 들을 만큼 들었고 긴장도 충분히 풀리게 만들어뒀으니 내가 준비했던 걸 할 때가 됐기 때문이다.
“뭐요?”
“잠시만 자리를 비우겠습니다.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정수명은 피식 웃었다. 이 검사 완전 깡통 아닌가 싶다. 조사 중에 자리를 비우겠다니.
“그러시든가.”
정수명은 의자 등받이에 등을 편하게 틱 기대면서 거만하게 말했다.
내가 나간 조사실에는 정수명과 정화용만이 남았다.
정수명은 정화용을 흘끗 한 번 보고는 피식 웃으면서 바로 시선을 거뒀다.
‘너 따위 수사관 하고 말 섞을 내가 아니야. 넌 끕이 안돼, 끕이’
“저··· 장관님.”
정화용이 정수명에게 다가와 싱긋이 웃으면서 말을 건다.
“뭐요?”
정화용을 흘끗 올려다본다.
“다름이 아니라, 인사가 늦었습니다··· 저는 저··· 정화용 계장이라고 합니다. 반갑습···”
“반가워요.”
정수명은 쌀쌀맞게 대답을 툭 던지고 시선을 바로 돌려버렸다.
‘어디 계장 나부랭이가 나한테 말을 걸어?’
머쓱해진 정화용은 쭈뼛쭈뼛하더니, 포기한 듯 주머니에서 스마트 폰을 꺼내 들었다.
‘계장 새끼가 조사실에서 폰을 꺼내? 이 수사팀 참 가관이구만. 조사 중에 폰질까지.’
정수명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혀를 끌끌 찼다.
“어이구, 이거 주식이 왜 이 모양인지 원.”
정화용이 스마트폰을 보면서 혼잣말을 한다.
“한국 주식 시장이 워~낙 개판이라 돈 좀 벌어보겠다고 미국에 넣었는데··· 여기도··· 참···”
정화용의 혼잣말은 계속된다.
‘근데 지금 저 계장이라는 놈이 뭐라고 그랬지? 미국 주식 시장?’
정수명은 순간 솔깃해졌다.
“마리화나 드링크가 돈이 된다 그러더니. 어휴~ 폭락을 하는구만, 폭락을.”
정수명의 표정이 순간 싹 변했다.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마리화나 드링크? 주식 폭락? 혹시 내 주식은 아니겠지?’
청와대로 들어갈 밑천이 될 피 같은 돈이 지금 허공으로 날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살인 교사 혐의고 검찰 조사고 뭐고 다 뒷전으로 밀려났다.
정수명의 등에서 식은땀이 쭉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