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를 죽인 검사에 빙의했다-11화 (11/70)

〈 11화 〉 입을 막자. 뒤집어씌울 이름도 땡기자. 그게 바로...당신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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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김진수 씨가 죽던 날, 방콕에 내리셨더군요.”

XXX 대학교 철학과 교수 천우민을 소환했다.

검찰청 조사실에서 나와 둘이 마주 앉았다.

천우민은 키가 185cm는 족히 넘어 보였고 어깨가 좌우로 떡 벌어진 거구였다. 덩치만 큰 게 아니라 머리 크기는 내 머리의 두 배쯤 됐다. 검은색 쇠테 안경을 썼고, 짙은 갈색 폴라 스웨터 위에 깔맞춤을 한 자켓을 걸친 ‘스티브 잡스 패션’을 하고 있었다. 신발은 당연히 흰색 뉴밸런스 운동화.

“천우민 교수님. 교수님이시니 여기서 거짓 진술은 안 하실 걸로 믿겠습니다.”

“···”

“교수님, 김진수 씨 만나셨죠? 방콕에서 파타야는 차로 한 시간이면 가니까···.”

“그 사람··· 만난 적 없습니다.”

“만나서 뭐하셨습니까?”

“그 사람 만난 적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럼 왜 메일에는 만나러 간다고 하셨습니까? 교수님이 보낸 메일인데요?”

“메일은 그렇게 보냈었지만, 태국엔 다른 일로 갔었습니다. 방콕에는 갔었지만 파타야에는 가지도 않았습니다.”

“뭐하러 가셨습니까? 태국에. 방콕이든 파타야든.”

“파타야는 안 갔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저 같은 학자가 태국에 가서 뭘 했겠습니까? 지금 집필하고 있는 책이 동양의 소승 불교 철학이라...”

“아~ 동양 철학 관련 책을 집필하고 계세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남의 영혼에도 관심이 많으신가 보군요?”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영혼 없는 검사 칼럼을 두고 한 말이다. 내가 봐도 뒤끝 작렬이다.

“그 늘봄 신문 칼럼 때문에 기분이 많이 상하셨나 보군요.”

“기분이 상했다기보다는... 좀 놀라긴 했죠.”

“놀라요? 흥! 왜요? 너무 바른말만 있어서 그래서 놀랍던가요?”

지금까지 차분하게 내말을 받아넘기기만 하던 천우민의 목소리 톤이 갑자기 높아졌다. 난 천우민의 이런 모습을 보니 재밌었다.

“이 세상에 아니 이 대한민국에 그 칼럼에서와 같은 바른말하는 사람이 저 말고도 한두 명만 더 있었다면 아마 검사님 같은 분은 이 곳에서 이렇게 편하게 있을 수···.”

“됐구요.”

“흥! 내 말이 불편하십니까? 불편한 법입니다. 원래. 진실을 마주한다는 것은.”

“풉!”

“우습습니까? 뭐가 그리 우습지요? 제가 좀 알아도 되겠습니까? 웃으시는 이유를.”

“교수님처럼 항상 불편한 진실을 용기있게 마주 하시고, 현대 자본주의 문명을 조망하시면서, 욕망에 쩔은 현대인을 향해 준엄한 가르침과 깨달음을 주시고자 하는 분께서···.”

천우민이 미간을 찌푸린다.

“후후, 이런 말씀드리기 송구합니다만... 격조 높은 지성을 가지신 분 치고는 너무 나이브(Naive)하신 거 아닌가 싶어서요. 그래서 놀랐습니다.”

“그렇게 빈정대지 마시기 바랍니다. 검사라는 직업을 가지신 분이 이러셔도 되는 겁니까? 검사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우리 대한민국의 헌법에 명시돼있습니다. 뭐라고 돼있습니까? 검사님은 법을 공부하시는 분이시니 헌법 정도는 아시겠지요? 대답해보십시오.”

“가르쳐주세요.”

난 한쪽 손바닥을 위로 가게 해서 천우민을 향해 뻗으면서 말했다. 얼굴엔 미소를 지으면서.

“흥! 모르시나 보군요. 좋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에서 검사는 우리 공동체의 정의를 바로 세우고, 우리 모두 다 같이 잘 사는 좋은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해 봉사하라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고...”

“이 사람 아시죠?”

천우민의 문어체 장광설을 끊고 들어가면서 사진 한 장을 들이밀었다. 저 말을 끊지 않고 들어주고 있다가는 며칠이 지나도 이 조사를 못 끝낼 거 같았기 때문이다.

천우민 앞에 던져준 사진 속의 인물은 성갑수와 늘봄 신문 기자 조준호다.

“교수님 같은 정의로운 지성인께서 거짓말을 하실 리는 없고... 아시죠? 이 두 사람.”

“음···”

천우민이 사진에서 고개를 돌렸다. 사진을 보고 고개를 돌렸다는 건 시인한 거나 다름없다.

바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간다.

“조준호 기자는 교수님께서 칼럼을 게재하시는 늘봄 신문의 기자, 죽은 김진수 씨가 제보 메일을 보낸 사람. 근데 답장은 왜 교수님이 하셨죠?”

“조준호 기자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답장은 왜 교수님이 하셨죠가 제 질문이었습니다.”

“흠흠···”

“조준호 기자가 교수님께 뭐라 하던가요?”

“조준호 기자는 평소 저와 친분이 깊은···”

“그건 알구요. 제 질문은 ‘조준호가 교수님께 뭐라 하던가요’ 였습니다.”

천우민이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왼손 바닥을 슥슥 문지르기 시작한다. 긴장하면 나오는 버릇 치고는 꽤 지저분한 버릇인 거 같다. 왜 마른 때를 저렇게 밀까.

“제가 젊은이들에게 영향력이 크니까... 한 번 설득해보는 게 어떻겠냐 했습니다.”

“설득요? 뭘 설득해요?”

“김진수 씨가 정수명 부총리님께 실망한 게 있는 건 안다. 하지만 대를 위해 소는 조금은 희생될 수 있는 것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다. 높은 봉우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뻘밭을 지나야 할 때도 있고 먼지가 날릴 때도 많다. 그러면 바짓 가랑이에 진흙도 묻을 수 있고 먼지를 뒤집어 쓸 수 있는 거다. 인류 문명의 장구한 역사를 통해 증명된 바가 있는···”

“됐구요. 그래서 이메일을 그렇게 길게 쓰셨군요. 그것도 세 번씩이나.”

“민간인의 사적인 이메일을 그렇게 막 열어봐도 되는 겁니까?”

“피해자의 친권자인 부친의 허락을 받고 본 거니까 아무 문제없습니다.”

“···”

“그래서 이메일로 설득을 시도했는데 안 되니까 방콕, 아니 파타야로 날아가신 겁니까? 직접 만나서 하시려고? 강의하시려고요?”

천우민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말투가 조곤조곤했다. 목소리도 가늘고 부드러웠다. 저런 말투에 목소리로 강의를 들으면 10분도 못 버티고 곯아떨어지겠다 싶었다.

“아닙니다. 아까 말한 대로 난 김진수 그 사람 만난 적 없습니다. 절대로.”

“노트북은 어디다 어떻게 버렸습니까?”

“만난 적도 없는 사람의 노트북을 어떻게 버립니까?”

“천 교수께서 죽은 김진수의 노트북을 들고 나오는 걸 봤다는 목격자가 있습니다.”

“뭐, 뭐요? 나··· 나를?”

천우민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크게 뜬 눈이 참 맑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이 맑은 이 양반, 순진한 걸까? 아니면 나름의 방식으로 영악한 걸까.

“누가 봤냐구요? 바로 이 사람입니다. 성갑수 대표. 아시죠? 이 사람.”

내가 아까 책상 위에 놓았던 사진 한 장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뭐··· 뭐라구요? 성··· 성갑수 대표가 어떻게.”

후후, 이런 반응을 보인다는 건 자백한 거나 다름없다. 역시 수가 여러 수 낮은 양반이다.

“성갑수 대표가 어떻게 말했냐구요? 지금 천 교수께서 앉아계신 그 자리에 얼마전까지 앉아 있었으니까요. 거기 앉아서 다 자백했습니다. 천 교수께서 노트북 들고 나와서 처리했다고.”

“거짓말 마십시오. 그분··· 그럴 분이 아닙니다.”

“풉! 그러니까 성갑수 대표는 여기서 고자질 하실 분은 아니고, 노트북은 천 교수가 버린 게 맞군요?”

천우민이 한숨을 몰아쉰다. 왼손 바닥을 문지르는 오른손의 속도가 더 빨라졌다. 저러다가 껍질 다 벗겨지겠다.

“조준호 기자 이야기도 좀 할까요?”

“···”

“조준호 기자는 정수명 부총리의 언론 홍보 담당 보좌관인 윤선경이 늘봄 신문에 있을 때부터 친했던 후배 기자죠. 뿐만 아니라, 그 둘은 성갑수 대표와도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왔죠. 그건 아시나요?”

“몰랐습니다. 그들이 친하게 지내는 줄은.”

“아 모르셨다? 그래요? 성갑수는 정수명 부총리의 돈줄이고, 조준호와 윤선경은 정수명 부총리에 우호적인 언론을 받쳐주는 기둥이고, 우리 천우민 교수께서는 역시 정수명 부총리 지지자들의 정신적 지도자신데··· 그런데 그들이 서로 친하게 지내는 걸 모르신다구요?”

“···”

“뭐 모르신다고 하니, 제가 가르쳐드리지요. 아까 말씀드린 대로 셋은 정수명 부총리를 매개로 친했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터져서는 안 될 일이 터집니다. 김진수라는 청년이 정수명 부총리의 숨겨진 비리라면서 조준호 기자에게 제보 메일을 보낸 거죠. 김진수 그 청년,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긴 셈인데, 정수명 성갑수 조준호 윤선경. 이들이 작당을 합니다. 김진수의 입을 막자. 근데 직접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서 하자. 뒤집어씌울 이름도 땡기자. 그래서 선택한 이름이 바로···”

천우민이 처음으로 눈을 크게 뜨고 날 쳐다본다. 동공이 떨리고 있는 게 보인다.

“천.우.민. 바로 교수님이죠.”

천우민이 벌떡 일어났다.

“으아~”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고 쥐어뜯더니 나를 향해 소리를 지른다.

“아냐! 난 아냐! 아니라고. 내가... 내가 갔을 땐 이미 그 김진수라는 청년은 쥐어 터질만큼 쥐어 터져 있었어. 정신,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였다고. 이건 뭐 설득이고 뭐고 할 수도 없었어. 그래서 노트북... 노트북만 달라했어. 그런데...”

난 의자에 등을 기대고 뒤로 물러 앉았다. 천우민에게 말할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 친구 안 준다고··· 절대 안 준다고. 그래서 그 친구랑 실랑이를 좀 했어. 그 친구가 나를 잡으려고 일어섰어. 내가 좀 밀쳤지. 다··· 다들 그러잖아. 사람을 잡고 늘어지는데 어쩌겠어? 그랬는데 그 친구 벌러덩 자빠졌어. 정신을 잃었어. 나 확인했어. 분명히 숨··· 숨을 쉬고 있었어. 정말이야. 안 죽었다고.”

천우민은 자신을 변호할 때는 장광설에 문어체가 아닌 단문에 구어체를 자유자재로 썼다. 참 희한하다 싶었다.

“노트북만 가지고 나왔군요. 정신 잃은 청년은 그냥 두고.”

“무··· 무서워서···”

난 피식 웃음이 나왔다.

현대 자본주의 문명을 저~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조망하고 계시던 ‘현인’ 교수님께서 죽어가는 청년을 두고 그냥 나왔다니. 그것도 무서워서 그랬다니. 어린애처럼.

천우민은 정말 어린애처럼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난 이번엔 더 크게 웃음이 나왔다. 이 양반, 정말 어린애구만.

“청년들에게 영향력이 최고신데, 천 교수님 같은 지성인께서 나서 주셔야 어리석은 저 청년을 교화할 수 있다고 조준호가 말하던가요? 정수명이 그렇게 교수님을 추켜세우던가요?”

세상 꼭대기 위에 앉아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착각하는 먹물의 자의식.

정수명 조준호 성갑수가 당신의 그 착각과 자의식을 이용해 먹은 거라고 말해줄까도 싶었지만 참았다. 천우민 같은 어린애에게는 너무 가혹하다 싶었기 때문이다. 아동 학대니까.

고개를 푹 숙인 천우민이 울먹이면서 말했다.

“정수명··· 정수명 부총리께서... 친히 불러서... 식사까지 대접해주시면서... 나 아니면 안 된다고... 한 번만 도와달라고... 나 아니면 안 된다고... 그러셔서...”

“식사, 몇 번이었습니까? 정수명하고.”

“두··· 두 번···”

두 번의 식사. 나는 그게 언제 언제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죽은 김진수 씨에겐 뭐라고 했습니까?”

“숲··· 나무를 보지 말고... 숲... 숲을 보라고... ”

“숲이라고요?”

“네, 숲. 정수명 장관은 이 썩어빠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비전과 능력을 가진... 유일한 지도자라고... 나무 몇 그루 썩고 굽을 수 있다고... 그래도 숲은 숲이라고...”

“교수님한텐 정수명이 숲이었겠지만, 김진수에겐 다른 게 숲이었을 수 있었겠죠.”

“으···”

“그래도 김진수 그 청년은 뭣보다 교수님을 믿었을 텐데요.”

“흑흑흑”

“교수님이 정수명을 믿었던 것처럼 말이죠.”

천우민은 푹 숙인 고개를 다시는 들지 않았다.

정수리부터 보이는 천우민의 머리는 아까보다 더 커 보였다. 머리가 저렇게 크니 세상을 그 속에 다 넣을 수 있다고 착각했던 걸까.

나는 흐느끼는 천우민을 남겨두고 조사실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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