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를 죽인 검사에 빙의했다-10화 (10/70)

〈 10화 〉 스모킹 건이 나왔으니 꼬리를 짤라야지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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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벅’

‘쨍그랑’

뉴스를 보고 있던 정수명이 테이블 위의 크리스탈 물컵을 벽에 홱 집어던졌다.

크리스탈 물컵은 산산조각이 나면서 테이블과 바닥에 자잘한 파편이 쫙 퍼졌고, 컵에 담겨 있던 물은 윤선경과 정수명 자신에게 흩뿌려져 튀었다.

“뭐야 이거? 윤선경! 저··· 저게 어떻게 저렇게 허술하게 새 나갈 수 있는 거야? 어? 하··· 한번 설명해봐. 설명해보라고옷!”

정수명은 어느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부들부들 떨고 있다. 물이 안경과 와이셔츠에 제법 많이 튀었고, 테이블 위에 널브러진 유리 파편 조각들이 위험해 보였는데 그런 것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윤선경도 얼른 따라 일어나면서 정수명의 젖은 와이셔츠 자락을 잡고 매달렸다.

“장관님. 진정하세요. 이러지 마세요. 밖에 보는 눈도 많고. 이러신다고 나아지는 건 없···”

정수명은 윤선경의 손을 세차게 후려쳤다.

이 때문에 윤선경은 중심을 잃고 쓰러지면 테이블 위에 손을 짚었는데 그게 하필 유리조각 위다. 많이 찢어졌는지 피가 제법 흐른다.

“지··· 진정?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윤선경 너는 저··· 저게 저렇게 나가도록 뭐··· 뭐 하고 있었어? 엉? 저런 거 모··· 못 나가게 하라고 내 옆에 자리 차지하고 앉은 거 아냐? 당신?”

윤선경 손바닥에서 흐르는 붉은 피가 정수명을 더욱 흥분시킨 거 같다. 윤선경을 잡아먹을 듯이 째려보더니 아예 멱살까지 확 잡았다. 한 대 칠 기세다.

“자··· 장관님. 의원님? 의원님. 이성··· 이성을 찾으세요.”

“이성? 이성? 무슨 개소리를···”

이때 윤선경이 유리조각에 찔려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 손을 뻗어 TV를 가리켰다.

“지금! 컥컥··· 지금 저 부분 컥컥··· 저 부분이 중요해요. 보··· 보세요. 저것!”

윤선경은 자신의 멱살을 움켜쥐고 있는 정수명의 손을, 피가 나지 않는 다른 한 손으로 꽉 잡고 말했다. 멱살을 잡은 정수명의 악력이 너무 강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숨도 못 쉴 거 같았다.

피가 뚝뚝 떨어져 내리는 윤선경의 손을 따라 정수명의 이글거리는 눈이 TV로 향했다.

***

뉴스 화면은 서한무 기자와 하대석 앵커 투샷. 서로 문답을 주고 받는다.

“클라우드 드라이브에는 죽은 김진수 씨가 아버지에게 보내는 유서가 있었는데요, 여기에 대단히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유서에 충격적인 내용이라고요? 정수명 부총리 소식보다 더 충격적인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유서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해외에 금융 계좌를 가지고 비밀리에 돈을 모으고 있는 정수명 부총리에게 매우 큰 실망을 하게 됐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늘봄 신문의 조준호 기자에게 정수명 부총리의 해외 비밀 계좌 관련된 내용을 이메일로 제보 했다고 합니다.”

"늘봄 신문 조준호 기자요? 조준호 기자라면, 평소 우리나라 지도층 인사의 숨겨진 비리라든가 사회 부조리를 끝까지 파헤치는 폭로 기사로 유명한 기자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죽은 김진수 씨는 조준호 기자로부터 아무런 답신을 받지 못했다 합니다.”

“그래요? 그건 왜 그랬을까요?”

“그런데 조준호 기자가 답신을 하지 않았다는 것보다 더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더 이상한 점요?”

“네, 죽은 김진수 씨에게 답신을 보낸 사람이 따로 있었다는 점입니다.”

“아니, 제보는 늘봄 신문 조준호 기자한테 했는데, 답신은 다른 사람이 했다? 누굽니까? 조준호 기자 대신 답신을 한 사람이.”

"네, 바로 XXX 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천우민 씨입니다."

“네? 천우민 교수요? 요즘 늘봄 신문의 고정 칼럼과 유튜브 채널로 청년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은··· 수백만 팔로워를 가진··· 바로 그 천우민 교수란 말입니까? 여권의 핵심 오피니언 리더이기도 한 바로 그 천우민 교수요?”

“그렇습니다. 죽은 김진수 씨는 천우민 교수와 세 차례에 걸쳐 이메일을 주고받았습니다.”

“아니, 잠깐만요. 천우민 교수라면 우리 H-TV 뉴스, 그러니까 지금 서한무 기자가 앉아있는 그 자리에도 여러 번 나와서 우리 사회의 병폐를 진단하고 나아갈 길을 제시하신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지식인인데요. 그런 지식인이자 지도층 인사인 천우민 교수가 이런 살인 사건에 연루돼서 이름이 오르내린다··· 아까 정수명 부총리의 이름이 나왔을 때보다 더 충격적인데요?”

“그렇습니다. 취재를 하는 저로서도 충격적이었습니다.”

“좋습니다. 충격은 그렇다 치고, 죽은 김진수 씨와 천우민 교수가 주고받은··· 세 차례나 주고받았다는 그 이메일의 내용은 뭡니까?”

“천우민 교수가 김진수 씨를 설득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설득요? 무엇을요?”

“정수명 부총리의 해외 계좌 보유가 나쁜 것이 아니라고 하는···.”

“음··· 그렇군요.”

하대석 앵커가 기가 찬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러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설득을 하려 했다는 게 아니라, 이메일로 설득에 실패한 천우민 교수가 김진수 씨가 있는 태국 파타야로 직접 가겠다고 한 점입니다.”

“천우민 교수가 김진수 씨한테 직접 간다? 태국 파타야로?”

“네. 그래서 취재진은 천우민 교수의 출입국 기록을 조회해봤습니다.”

“결과는요?”

“공교롭게도 천우민 교수가 태국 방콕에 도착한 날은 김진수 씨가 죽던 바로 그날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

윤선경은 꽉 잡고 있던 정수명의 손을 스르르 풀었다.

정수명도 윤선경의 멱살에서 손을 뗐다.

“부총리님, 조준호, 천우민의 이름이 뉴스에 나오고 있어요.”

정수명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면서 말한다.

“흐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언제나 있는 법이라더니··· 하늘이 나를 그냥 버리시지는 않는구만.”

정수명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관자놀이를 따라 몇 줄기 벌써 흘러내린 자국이 보인다.

윤선경도 손바닥의 흐르는 피를 이제서야 크리넥스 몇 장을 뽑아 지혈을 한다. 테이블 위와 바닥에는 윤선경이 흘린 피와 정수명이 던진 물컵의 물이 범벅으로 섞여있다.

“맞아요. 부총리님. 조준호, 천우민. 저 두 이름을 활용해야 해요. 때로는 꼬리쯤은 아니, 팔다리라도 자를 수 있어야 합니다. 대의를 위해서는요.”

“그래. 조준호, 천우민··· 음··· 할 수 있겠어?”

“해야죠. 안 하면 안 되죠.”

“그래요. 윤 선생. 또 한 번 믿어봅시다.”

마침 TV 화면엔 자료 화면으로 천우민과 조준호의 모습이 떠 있었다.

***

수원지검 김필중 차장 검사실.

“니가 믿는 구석이 이거였구만.”

김필중이 빙긋이 웃으면서 말했다.

“근데 스토리가 너무 흔해빠진 올드 패션 클리셰 아냐? 죽어가는 피해자가 마지막 죽을힘을 다해 아버지에게 살인자의 비밀이 담긴 문자를 보냈다··· 그걸 받은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을 죽인 진짜 범인을 극적으로 찾아낸다··· 요즘은 애들 보는 판타지 소설에도 이런 스토리는 없는 거 같던데 말이야. 쌍팔년도 수사반장 같잖아?”

“제 상상력이 쌍팔년도 호돌이 수준이라 이 정도밖에는 못했습니다. 미리 차장님 의견을 좀 구할 걸 그랬나 봅니다. 차장님 수준이면 적어도 90년대 홍콩 무비 수준은 됐을 텐데요.”

나도 웃으면서 받아넘겼다.

“하하하, 받아치는 수준 하고는. 그런데 진짜 클라우드 패스워드는 어떻게 알아낸 거야? 아니 그전에 김진수가 아버지한테 패스워드를 어떻게 보낸 거야? 죽도록 맞아서 몸 가누는 것도 못했을 사람이···.”

“사실 패스워드를 알아낸 게 아닙니다.”

“뭐라고? 그럼 뭐야?”

“김진수 씨는 작업 파일을 자기 계정의 클라우드 드라이브 말고, 아버지의 클라우드 계정 드라이브에도 따로 하나 더 올려두고 있었습니다. 일종의 백업이었던 셈인데, 그걸 김진수 씨 피살 이후에 아버지가 발견하고 제게 연락을 주신 거죠.”

“아, 그럼 그 죽은 김진수라는 친구가 미리···.”

“네. 김진수 씨는 살인범이 자신의 클라우드 계정도 삭제할 거라고 보고 미리 조치를 취해뒀던 거 같습니다.”

“영리한 친구였군. 근데 그것도 모르고 컴퓨터와 핸드폰을 망치로 박살내고 소각장에 버린 놈들은 뭐야? 닭 쫓던 개 돼버린 거군. 무식한 늠들.”

“요즘 알만한 사람들은 중요한 정보를 하드 디스크에 저장하지 않는데 말이죠.”

“그러게 말이야. 근데 너는 왜 이걸 언론에 먼저 흘렸어? 니가 먼저 발표 안 하고.”

“정수명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대중입니다. 대중은 무엇보다 대중 매체에 제일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우리 검찰 발표는 개무시하고 대중 매체를 더 선호합니다. 그래서 언론을 통해 먼저 폭로되고 검찰로 넘어오는 모습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언론이 좋아하게 만들려면 영화에나 나옴직한 스토리텔링이 있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극적인 모양을 만들었습니다. 뭐, 비록 쌍팔년도 수사반장처럼 돼 버리긴 했지만요.”

내가 멋쩍게 웃었다. 쌍팔년도 수사반장,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 드라마인데 이 참에 유튜브든 어디에서든 한 번 찾아서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음··· 그랬었군. 아버지 클라우드에 있었던 자료라고 하면 증거 조작 시비도 있을 수 있었는데. 그것도 미리 차단할 수 있고. 최용구 니 머리 잘 썼네.”

김필중이 싱긋이 웃었다.

저 웃음 뒤에는 ‘최용구 이놈 쓸만한데··· 독고다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나도 따라 웃음이 나왔다.

“죽은 김진수 아버지 하고는 이야기 잘 됐나?”

“네, 협조를 구했습니다. 아들을 죽인 진범을 잡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좋았어. 잘했어. 그리고 이 사건 수사 말이야.”

김필중이 말을 잠시 끊고 휴지를 뒀다. 나도 침을 꼴깍 삼켰다. 내가 기다리고 있는 답이 나올 타이밍이었기 때문이다.

“최용구 니가 계속 맡아서 해. 내 밑에서.”

김필중이 ‘내 밑에서’를 힘줘서 말했다. 내가 기다리던 바로 그 대답이다.

“제가요?”

일부러 놀란 척 물어봤다.

“제가요 라니? 그럼 누가 해?”

“일전에 민정수석님께서 저는 이 사건에서 손 떼게 하라고 지시하셨다는 말씀은···.”

“그건 지난 얘기고. 민정 수석은 벌써 돌아섰어. 빠르잖아, 거기는.”

후후. 백영기. 역시 빠르다.

정수명이 지지가 높고 그 지지가 자신의 통치 행위에 도움이 될 거 같을 때는 부총리까지 달아서 띄워줬다. 뿐만 아니라 어떤 의혹이 쏟아져도 검찰을 위시한 모든 권력 기관을 내세워 막아줬던 백영기다.

그런데 스모킹 건이 나왔고 더 이상 볼 거 없다 싶으니 잽싸게 꼬리를 짤라낸다.

백영기. 교활한 놈.

“수사팀을 우리 수원 지검에 꾸리기로 했어. 서울 중앙지검에서 하겠다는 걸 내가 손도 대지 말라고 윽박질러서 가져왔어. 서울 놈들 대통령님한테 잘 보일 거 같은 사건은 지들이 도리를 치려고 해. 고얀 놈들. 나 김필중을 어떻게 보고.”

이 사건을 김필중이 가져왔다는 것보다, 나한테 계속 맡기려고 한다는 것보다, 내 귀에 더 쏙 들어온 이야기는 이 사건을 서울 중앙지검에서 가져가려고 했다는 말이었다.

옛날엔 조국이 가는 곳을 알려면 눈을 들어 관악산인가 어딘가를 보라 했다던가.

지금은 대통령 의중이 가는 곳을 알려면 눈을 들어 서울 중앙지검을 보면 된다.

거기서 이 사건을 맡으려 했다는 건 백영기에게 정수명은 이제 확실히 잘라내야 할 암덩이 같은 존재가 됐다는 증명이다.

“네. 제가 가진 모든 열정을 쏟아붓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차장님.”

난 앉은 자세를 고쳐 앉으면서 어느 때보다 힘줘서 말했다.

김필중이 인사하는 내 어깨를 콱 잡았다.

“최용구! 너 정수명이 잡고 싶어 했지? 한 번 깔 데까지 까 봐. 멍석 확실히 깔렸어.”

말하는 김필중의 눈빛이 자못 결연했다.

하지만 나만큼 결연할까.

백영기를 향한 복수를 위해 넘어야 할 첫 번째 봉우리.

이제 8부 능선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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