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를 죽인 검사에 빙의했다-9화 (9/70)

〈 9화 〉 내 본능을 다시 꿈틀거리게 하는 건... 돈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성갑수가 털어놓은 ‘정수명의 모든 것’ 중에는, 최용구의 몸에 들어온 이후 잠자고 있던 내 본능을 꿈틀거리게 만든 것이 있었다.

돈을 벌 수 있는 것이라고 하면, 특히 금융에 관련된 것이라고 하면 마치 사자가 사냥감을 채갈 때처럼 절대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본능.

성갑수가 말했다.

캘리포니아에서 마리화나가 합법화되면서 마리화나 관련 사업이 황금알을 낳는 신사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했다. 그건 나도 익히 알고 있는 일이기도 했고.

그런데···.

여기에 정수명이 손을 댔다는 거다.

5년 전 일이다.

“의원님, 마리화나가 합법이라는 말은 꼭 그걸 연기 내면서 피우기만 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죠. 그걸로 뭐든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마리화나로 뭐든 할 수 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성 대표?”

정수명의 작은 눈이 동그래져서 물었다.

“마리화나도 콜라처럼 음료로 만들어 마시는 겁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연기도 안 나고.”

“아! 마리화나를 마신다?”

과연 미국은 미국이다. 돈 되는 건 다 한다.

결국 정수명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얼터너티브 에너지 파워 (AEP)라는 마리화나 드링크 회사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근데 성 대표, 내가 거기 투자할만한 돈이 없는데···.”

“돈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돈을 만들 좋은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의원님.”

“아, 그래요? 그런데 돈이 있다 해도 그걸 미국으로 빼내가려면··· 외환거래법에··· 공직자 재산 등록 같은 것도 피해 가려면···.”

“하하하, 의원님. 제가 의원님께 아이디어를 드리면서 그런 기본적인 것도 생각해보지 않고 말씀 올리겠습니까? 걱정을 동여매십시오.”

“아이고, 우리 성 대표가 하시는 일인데 제가 걱정할 일이 있겠어요?”

이렇게 말하면서도 정수명은 성갑수에게 어떻게 할 요량인지 말해보라고 재촉했다. 돌다리도 두들겨 가면서 건너도 물에 빠질 수 있는 게 여의도 판이니까.

“의원님. 간단합니다. 돈은 태국에서 만들 겁니다. 만드는 방법은··· 차차 말씀드릴 거고, 의원님께서는 아실 필요조차 없습니다. 만들어진 돈은 조세 피난처인 싱가포르를 거쳐 미국으로 보낼 겁니다. 돈은 미국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당국의 추적 염려는 사라집니다. 아시다시피, 미국은 타국 정부의 금융정보 요청에 응답해야 할 의무가 없는 거의 유일한 나라거든요.”

“역시 성 대표십니다. 태국에서 달러를 만들어서 미국에 투자한다. 멋집니다.”

정수명은 진정 안심을 넘어 감동까지 한 모습이다.

“의원님 대권 가도에 도움이 된다면 무슨 일이든 못 하겠습니까? 하지만, 대중의 지지가 높다는 것과 대권을 잡는다는 건 다릅니다. 대권을 잡으시려면 재정 독립이 필수입니다. 지금처럼 백영기 대통령에게 의존적이어서는 곤란합니다.”

‘재정 독립’이라는 말에 정수명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돈을 누군가에게 의존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재정 독립이 안되면 대통령이 되신다 해도 백영기의 꼭두각시일 뿐 진정한 정수명 대통령이 될 수 없습니다.”

정수명은 성갑수의 손을 덥석 잡았다.

“도와주십시오. 성 대표님.”

성갑수는 태국에서 비트코인을 해킹해 거의 공짜로 생기다시피 한 돈을 싱가포르를 거쳐 미국으로 보냈고, 돈은 모두 얼터너티브 에너지 파워, AEP에 투자됐다.

주가 흐름은 좋았다. 정수명의 계좌 잔고는 천만 불, 한화로 120억을 넘나들고 있다고 했다.

120억 원이라···.

그것도 미국의 스타트업 주식으로 120억···.

대한민국의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은 참으로 꼼꼼하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빅테크든 스타트업이든 돈이 된다고만 하면 조그만 자투리 하나라도 결코 빠트리는 법이 없다.

다른 한 편으론 참으로 대범하다.

내가 월스트리트에서 펀드 매니저로 일하던 시절 알고 지내던 미국의 웬만한 부자들도 정수명이 투자한 AEP 같은 작은 스타트업 회사에 120억이나 되는 돈을 몰빵 하지는 않았다.

꼼꼼하면서도 대범한 정수명···.

백영기도 그랬다.

꼼꼼하고 대범하게 돈을 모았고, 돈을 모으기 위해 나를 이용했고, 그 돈을 이용해 대통령이 되었고, 이용가치가 없어지자 나를 죽였다.

정수명도 백영기의 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돈을 모으기 위해 청년을 이용했고, 돈을 이용해 대통령이 되려 하고 있고, 이용가치가 없어지자 청년을 죽였다.

백영기도 정수명도 시작은 돈이다.

그래서 난 정수명의 돈을 빼앗기로 결심했다. 나중엔 백영기의 돈도 이렇게 빼앗을 생각이다. 이번 ‘정수명 돈 빼앗기’는 일종의 연습 게임인 셈이다.

어떻게 빼앗을까?

수사는 검사 최용구로서 하지만, 돈을 빼앗는 건 ‘금융 천재’ 이재훈으로서 한다.

난 죽었지만, 가족 친지도 없었던 내 죽음을 누구라도 신고했을 리 없다. 죽은 곳도 황량한 사막이니 홀로 버려진 내 육체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시체조차 발견됐을 리 없다.

따라서 미국에서 나 이재훈에 대한 어떤 신분 정보도 변했을 리 없다.

정말 그럴까?

난 우선 내가 가입돼 있었던 고액 투자자들의 비공개 커뮤니티인 ‘Cash Nexus’에 접속해봤다. 역시 예상대로 접속이 됐다. 활동에도 아무 제약이 없었다.

Cash Nexus.

1억 불 이상의 자금을 운용하는 펀드매니저나 개인 투자자들만 비공개로 가입시켜 운영하면서 각자 가진 투자 정보를 교환하고, 뜻이 맞으면 회원들끼리 사모 펀드를 만들어 투자도 집행하는 커뮤니티다.

채권왕 지미 로저스, 브리지워터 회장 레이 달리오, 워런 버핏의 스승 찰리 멍거, 행동주의 펀드의 거물 칼 아이칸도 가입돼 있다.

난 바로 Cash Nexus의 투자 정보란에 글을 올렸다.

— ‘주의: AEP 얼터너티브 에너지 파워에 투자한 대한민국의 유력 정치인, 대형 비리 연루설 있음. 조만간 뉴스가 나올 예정’

몇몇 사람들에게는 같은 내용으로 직접 메일도 뿌렸다.

다음으로는 미국의 내 금융계좌에 접속했다. 역시 아무 문제없이 계좌가 살아있었다.

난 AEP에 공매도(Short)를 쳤다.

지금 AEP의 주가는 100불 근처에서 움직이고 있다.

이걸 공매도를 친다는 건, 이 주식을 빌려서 100불에 바로 팔고, 주가가 떨어지면 그때 이 주식을 다시 사서 반환한다는 말이다. 다시 살 때의 주가가 50불이면 내 지갑엔 50불의 현금이 남는다.

이번 공매도 오더 총 거래 금액은 천만 불, 한화로 딱 120억이다.

난 정수명의 이 주식을 50불이 아니라 거의 휴지로 만들 생각이다. 그러면 미국에 있는 내 계좌엔 정수명의 돈 120억이 고스란히 꽂힐 것이다.

나는 죽었지만 내 본능은 아직 살아서 꿈틀대고 있다.

***

사회 부총리 정수명이 집무실 책상에 앉아 흐뭇한 표정으로 노트북을 보고 있다. 노트북 스크린엔 미국 주식 차트와 현재가 화면이 열려있다.

“그것만 보시면 마냥 좋으신가 봐요? 장관님? 호호호.”

윤선경. 정수명의 오랜 보좌관으로 언론 홍보 담당이다.

“허허. 돈 싫어하는 사람 있나? 요즘은 좀 주춤해. 숨 고르기 하는 건지.”

“미국 연준이 금리를 올릴 거라잖아요. 금리와 주식은 반대 방향이니. 그 영향일 거예요.”

“그럼 일시적인 건가? 연준이 잠잠해지면 또 오르겠지?”

“어휴~ 욕심도 많으셔라.”

윤선경이 눈을 살짝 흘기면서 웃었다.

“내 꺼는 그래도 약보합이야. 고점 대비 5프로 정도 조정인데. 애플 좀 봐. 어휴~ 그새 20%나 빠졌어.”

정수명이 환하게 웃는다. 애플의 불행은 나의 기쁨.

“미국 주식은 한국보다 변동성이 훨씬 적죠. 시장의 펀더멘털도 훨씬 튼튼하고. 전 세계에서 돈이 들어오니 수급도 빵빵하고. 장관님은 좋으시겠어요. 나중에 저 잘해주실 거죠? 호호호.”

윤선경이 작은 눈을 또 한 번 찡긋하면서 웃는다.

“허허, 당연하지.”

정수명도 같이 웃었지만, 속으로는,

‘아~ 정말 못 생겼네. 웃을 때도 저러니 인상 쓰면 누가 와서 말이나 붙이겠나. 조금만 이뻤으면 내가 어떻게 해봤을 텐데. 쯧쯧.’

윤선경은 20년 넘는 언론계 경력 덕에 네트워크가 탄탄한데다, 어떤 이슈든지 단순화해서 대중을 설득하고 상대를 찌르는데 능수능란하다.

정수명이 당내외의 쟁쟁한 경쟁자를 모두 물리치고, 대선 주자 1위로 올라설 수 있었던 데는 윤선경의 공이 크다.

“그나저나 요즘 언론들이 잠잠해. 이게 다 윤 선생 노력 덕이겠지?”

정수명은 윤선경을 ‘선생’이라 부른다. 지금은 딱히 공식적인 직책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 부총리께서 워낙 대세시니까. 바짝 엎드려서 기회를 엿보고 있는 거죠. 그래도 안심하시면 안 돼요. 조그만 꼬투리라도 잡으면 바로 달려들 거예요. 저도 언론계 출신이지만 그 바닥 생리가 그래요.”

“그렇지. 안심은 금물...”

‘카톡~’

윤선경 아이폰에 카톡 문자가 들어왔다.

정수명에게 실례한다고 눈인사를 하고 카톡을 열었는데,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그걸 보고 정수명도 같이 인상을 썼다.

‘저렇게 인상을 쓰니까 마녀가 따로 없군.’

“윤 선생, 왜 그래?”

윤선경은 계속 들어오는 문자를 읽느라고 대답하지 않았는데, 문자를 읽어 내려갈수록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어떤 악의적인 언론 보도에도 윤선경의 얼굴색이 저렇게 변한 적은 없었는데 정수명은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윤 선생, 뭔데 그래요? 말해봐요. 같이 보든가.”

정수명이 초조한 마음에 윤선경의 아이폰으로 눈길을 옮기면서 윤선경과 거리를 좁혔다.

“H-TV가··· 스모킹 건을 잡았다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정수명을 돌아보면서 윤선경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뭐? 스모킹?”

정수명이 작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건은 제가 봐도 심각해요. 저녁 8시 뉴스에 터뜨린답니다.”

“8시?”

정수명이 반사적으로 벽시계를 올려다봤다.

“한 시간 남았어요.”

윤선경을 쳐다보는 정수명의 얼굴색이 하얗게 변했다.

***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H-TV 8시 뉴습니다.”

뉴스를 시작하는 하대석 앵커의 얼굴이 평소와는 달리 자못 상기돼있다.

“예고해드린 바와 같이, 오늘 H-TV 8시 뉴스는 정수명 사회 부총리와 관련한 단독 보도로 시작합니다.”

앵커는 목소리도 조금 떨리고 있다.

“취재 기자 스튜디오에 나와 있습니다.”

앵커와 취재 기자 투샷.

“서한무 기자, 정수명 부총리 관련 단독 보도, 어떤 내용입니까?”

“네, 정수명 부총리 이야기를 하기 전에, 기억을 되살려야 할 사건이 하나 있는데요, 얼마 전 태국 파타야에서 일어난 20대 청년 살인 사건입니다.”

“파타야 20대 살인 사건. 그 사건이라면 이미 용의자가 체포되지 않았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검경 수사에서 밝혀진 바로는, 살인 피해자 김진수 씨는 태국 파타야에서 컴퓨터로 인터넷 쇼핑몰 일을 하고 있다가 변을 당했다는 것이었는데요. 이상하게도, 김진수 씨가 숨진 곳에서는 컴퓨터나 핸드폰 태블릿 PC 등 컴퓨팅 관련 전자 기기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었습니다.”

“그럼 이번에 우리 취재진이 그 사라진 컴퓨터를 확보한 건가요?”

“아닙니다. 김진수 씨의 컴퓨터는 끝내 찾지 못했습니다.”

“그럼 뭡니까?”

“네, 죽은 김진수 씨는 다행히도, 모든 데이터와 파일을 컴퓨터에 내장된 하드디스크가 아닌 클라우드 드라이브, 즉 인터넷 저장 공간에 저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클라우드요? 구글 드라이브나 아이클라우드 같은 거 말입니까? 그럼 이번에 우리 취재진은 김진수 씨의 클라우드 어카운트에 접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는 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어떻게 찾은 겁니까?”

“그게 참 극적이었습니다. 김진수 씨는 죽기 직전, 한국에 있는 부친에게 사력을 다해 문자 하나를 보냈습니다. 그 문자에는 자신이 사용한 클라우드 계정 패스워드만 찍혀 있었습니다.”

“아! 피해자가 죽기 직전에 문자를 보냈다. 정말 극적이군요.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음 직한 내용인데요? 그래서 부친께서 그 패스워드로 드라이브에 있는 파일을 모두 봤다 이거로군요.”

“그렇습니다. 김진수 씨는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번 돈을 싱가포르에 있는 누군가의 계좌로 송금했는데, 클라우드 드라이브에서 발견한 파일 중에는 그 싱가포르 계좌 주인과 송금 내역이 있었습니다.”

“송금 내역이라면 액수도 있었습니까?”

“네, 있었습니다. 미화로 5백만 불. 한화로 60억 원에 해당하는 거액이었습니다.”

“60억요? 상당한 금액이군요. 그 큰돈을 송금받은 싱가포르 계좌의 주인은 누굽니까? 그것도 파일에 있었나요?”

“네, 놀랍게도 그 계좌의 주인이 바로 정수명 부총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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