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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인 검사에 빙의했다-8화 (8/70)

〈 8화 〉 조폭을 기업인 대접해줄 수는 없지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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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갑수 씨”

검찰청 조사실에 소환돼온 성갑수.

내가 이름을 부르자, 대답 대신 날 죽일 듯이 노려본다.

— ‘어디서 이 검새가 날 보고 씨씨 거려? ‘대표님’이라고 해야지.’

이런 말이 하고 싶은 거겠지. 표정에서 읽힌다.

— ‘왜 씨라 불러서 기분 나쁘냐? 난 니들 조폭 새끼를 기업인 대우 못 해줘. 더럽게 비위가 상하거든.’

이렇게 쏘아붙여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성갑수 씨, 홍성수가 여기 있는 거 알죠?”

“그걸 내가 어떻게 압니까? 내가 무슨 천리안도 아니고.”

성갑수는 이렇게 틱 쏘아붙이고 아예 앞에 앉은 나를 외면하고 몸을 돌려 앉아버린다.

아마 나한테 화난 것도 있지만, 돈만 받아 처먹고 나를 짤라버리지 못 한 정수명에게 더 화가 났을 수도 있겠다.

난 슬쩍 빈정거리면서 놈을 자극해보기로 했다.

“천리안 아니었습니까? 맞는 거 같던데. 게다가 염력까지 있으신 거 같던데···.”

성갑수는 고개를 돌려 날 노려보더니 다시 외면했다.

난 피식 웃어주고는 계속 빈정거렸다.

“천리안도 보통 천리안이 아니고 염력도 닥터 스트레인지 수준이시던데··· 서울에 앉아서 태국에 있는 사람도 죽이고, 그 사람이 쓰던 노트북도 가져다가 없애버리고. 그거 천리안에 염력이 없고서야 되겠어요?”

성갑수는 앞에 앉은 내가 같잖은지 내 빈정거림에도 아무 대꾸 없이 피식 웃고 만다.

“김진수가 죽었을 때 홍성수가 성갑수 씨한테 전화했었다던데, 그 전화 왜 안 받았어요?”

“···”

성갑수는 내가 무슨 질문을 하든 대답할 자세가 아니다. 아예 팔을 양옆 위로 뻗어 스트레칭까지 한다.

그러든 말든 난 질문 공세를 계속한다.

“홍성수가 전화했을 때 성갑수 씨 서울에 안 있었죠?”

“···”

어디서 개가 짖나? 성갑수는 내가 앉아 있는 자신의 왼쪽 귀를 새끼손가락으로 후빈다.

“파타야에 있었죠? 홍성수가 성갑수 씨한테 전화 거는 거 어디서 다 보고 있었죠?”

“···”

귀가 웅웅 거리는 게 파리가 들어와서 날아다니나? 성갑수는 천장을 두리번 살핀다.

“로밍해 갔는데 받으면 위치 드러날까 봐 안 받은 거죠?”

“···”

이럴 때 스마트 폰이라도 있었으면 모바일 게임이라도 할 텐데. 성갑수는 주머니를 이리저리 뒤진다.

완전 개무시 전략. 검사가 무슨 소리를 지껄여도 대답하지 않는다.

성갑수의 계산은 이렇다.

이렇게 개무시 전략으로 길어봐야 한 시간만 버티면, 어딘가에서 연락이 와서 나가게 돼있다. 정수명이가 제대로 일을 했다면 그럴 거다. 그 담에 이 애송이 검새 새끼는 바로 아웃되는 거고.

여기서 나갈 생각을 하니, 성갑수는 벌써 역삼역 오피스텔에서 같이 뒹굴 언니들 알몸이 떠오른다.

— ‘오늘은 어떤 언니하고 뒹굴까? 오래 앉아있었더니 허리도 땡기고 엉덩이도 아픈데 마사지가 왓다인 수지? 좀 못 생겨도 혀놀림이 죽여주는 희선이? 아니면 둘 다 같이? 그래 그게 낫겠다. 오늘 힘들었는데. 흐흐흐.’

“이 문서들 한 번 보시죠.”

내가 성갑수 앞에 노란색 서류 파일 하나를 던졌다.

‘턱’

제법 두꺼운 서류 파일이었는지라 테이블에 툭 떨어지는 소리가 제법 컸다.

그 소리 때문에 성갑수 머릿속에 있던 오피스텔 언니들 알몸 상상이 화들짝 사라져 버렸다.

‘이 검새 새끼가··· 지금 한참 좋았는데··· 씨~바.’

성갑수는 고개를 홱 돌려 나를 한 번 노려보고는 다시 시선을 돌려버렸다.

“아~ 무것도 안 보시겠다. 아~ 무 말도 안 하시겠다. 뭐, 좋아요. 그럼 뭐···”

나도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성갑수를 빤히 쳐다본다.

문서 파일만 덩그러니 성갑수를 향해 열려있다.

나를 외면하고 벽을 보고 앉은 성갑수.

성갑수의 옆얼굴을 보고 앉은 나.

누가 먼저 입을 여나··· 버티기 게임.

이렇게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아무리 산전수전 다 겪은 조폭 두목 성갑수래도 좀이 쑤셔 미칠 것 같았다.

한 시간 정도만 버티면 정수명이 보낸 누군가가 와서 이 상황을 끝내주리라 여겼는데 말짱 황이다. 정수명 이 새끼 도대체 일을 하는 거야 마는 거야.

그나저나 저 최용구라는 애송이 검새 새끼도 정말 독종이다. 어떻게 딱 저 자세로 움직이지도 않고 물 한 모금 안 마시고 한 시간 넘게 버틸 수 있나.

여기는 검찰청 조사실. 저 독종 애송이 검사의 홈그라운드.

둘이 이러고 오래 앉았으면 어색하고 불편해지기는 성갑수가 더한 법이다.

“흠, 흠.”

성갑수가 헛기침을 하면서 슬그머니 몸을 돌렸다.

“이게 다 뭡니까?”

성갑수는 서류 파일에 들어 있는 문서를 한 장씩 들쳐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풉!”

성갑수는 기가 차서 웃음이 나왔다. 모두 정수명과 관련된 의혹을 보도한 신문 기사였기 때문이다. 고작 이 신문 기사 쪼가리들 펴놓고 그거 보라고 한 시간 넘게 시위를 했단 말인가. 여하튼 저 최용구인가 뭔가 하는 검새 새끼는 애송이는 애송이다. 전략 수정하길 정말 잘했다 싶다.

“왜 웃어요?”

내가 물었다.

“하하하. 이게 우습지 않겠습니까?. 아니 대한민국 검찰이 이거밖에 안 됩니까? 바쁜 사람 조사한다고 검찰청까지 불러놓고 보라고 준다는 자료라는 게 그래··· 나 참 기가 차서··· 기레기 새끼들이 꼴린 대로 싸지른 거나 들이밀고. 지금 나보고 뭘 하란 말입니까? 네이버 좋은 일 시켜주려고 검찰이 있어요?”

“카카오에서 뽑은 것도 있어요.”

“뭐? 카카오? 풉!”

“우리 검찰이 그렇죠 뭐. 그래서 성갑수 씨 같은 사람들이 우릴 보고 검새라고 하잖아요.”

“하하하. 아시네? 검새. 말이야 맞는 말이지. 검새··· 쯧쯧쯧.”

성갑수가 종이를 한 장씩 넘기면서 혼잣말을 하듯 했지만 목소리는 컸다. 특히 ‘검새’를 힘주어 말했다.

그렇게 파일 안의 종이를 2/3 가량 넘겼을 때다.

피식피식 웃으면서 기사를 봤다가, 가끔씩 고개를 들어 나를 향해 썩소를 날리기도 했던 성갑수의 얼굴이 어느 순간 갑자기 얼어붙었다. 종이를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그걸 보고 내가 씩 웃으면서 말했다.

“검새라고 기레기들 꼴린 대로 싸지르는 신문만 보고 살겠어요? 가끔씩은 이런 것도 해요.”

“이··· 이게··· 어떻게···”

이 반응. 홍성수하고 어찌 이리 똑같을까라고 나는 생각했다.

홍성수를 벌벌 떨게 만들었던 바로 그 문서.

죽은 김진수가 작업했던 노트북 속에 있던 모든 파일과 인터넷 접속 목록이 빼곡히 프린트된 문서를 지금 성갑수가 보고 있다.

“후후, 성갑수 씨. 궁금해 죽겠죠? 이게 어떻게 검새 손에 들어갔을까. 귀신이 곡을 해도 모자라겠죠?”

“아··· 이··· 이건···.”

“또 말이 없으시네. 묵비권 행사 계속 하실라우?”

“최 검사, 아니 최 검사님. 제 말 좀···”

“김진수가 죽고 난 뒤에 그 노트북은 분명히 누군가가 갖고 나가서 처리했을 텐데··· 어떻게 그 속에 있던 것들이 내 손에 있을까요? 그 누군가가 누굴까요? 성 대표, 아니 성갑수 씨”

“처··· 천우민··· 이 새끼···”

걸려들었다. 성갑수는 혼잣말로 한 거였지만 나는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후후후, 이제 술술 불기 시작하는구나. 방금 천우민이라 그랬어?”

성갑수가 움찔한다.

“칼럼질 열심히 하시고, 아, 요즘은 유튜브에 SNS까지 열혈 청년 학도들한테 잘 파신다는 철학하시는 교수 말이지? 아~ 그분께서 파타야에 오셨던 모양이네? 노트북은 그분이 가지고 나갔었구나. 근데 그걸 성 대표께서는 어떻게 아시지?”

“···”

“성갑수 씨, 아까 천우민 교수한테 욕 하는 걸 보니까 그분이 나한테 노트북을 갖다 바쳤다 짐작하시나 본데. 나 그분 아직 본 적도 없어요. 그런데 성갑수 씨께서 이렇게 불어주시니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후후.”

성갑수가 한숨을 몰아쉬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니네 범법자 새끼들은 참 웃긴단 말이야. 밖에 있을 때는 피를 나눈 형제 인양 지들끼리 온갖 청승에 도원결의에 별 짓을 다 하면서도, 여기만 들어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로 물고 뜯고 손가락질하고, 저놈이 그랬어요. 난 안 그랬어요. 비열한 새끼들.”

“검사님. 제 말 좀 들어보···”

“내 말 아직 안 끝났어. 어디서 깡패 새끼가 검새의 말을 중간에 끊어? 검새가 만만해?”

“그게 아니고···”

“나 비록 검사스럽게 검새로 살지만, 니네 범법자 양아치 새끼들을 졸라 증오하는 이유가 뭔지 알어?”

이런 걸 추상같다고 하는 걸까? 겁에 질린 성갑수. 아무 말 못 한다. 비자발적 묵비권 행사.

“니네 범법자 새끼들은 말이야. 법이다 법치다 하면 졸라 씹어 대면서도, 오히려 그 법으로 돌아가는 나라를 더 좋아하지. 맞지? 그 이유가 뭘까?”

“···”

“몰라? 모르겠지. 깡패 새끼가 뭘 알겠어. 이 검새 나리께서 말해주지. 법으로 돌아가는 나라는 예측이 가능하거든. 어디를 찌르면 뭐가 튀어나올지 견적이 딱딱 나오거든. 그니까 니들은 법을 졸라 욕해대면서도 법으로 돌아가는 나라가 더 좋은 거야. 그래서 말인데, 이 검새의 평생소원이 뭔지 알아? 니네 범법자 새끼들을 전부 쓸어다가, 법이고 뭐고 안 따지고 두들겨 패고 총으로 갈겨버리는 나라 있지? 그런 데로 다 보내버리는 거야.”

성갑수는 지금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감을 잡았다.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거···”

난 성갑수가 들고 벌벌 떨고 있는 문서를 홱 뺏어서 들고 흔들었다.

“이 문서를 지금이라도 기레기들 한두 명 불러다가 슬쩍 넘겨주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응?”

“아! 검사님··· 그건 제발···”

“흥! 기레기 새끼들 물 만난 고기마냥 마구 써 갈겨대겠지? 한국의 벤처 기업인 성갑수가 중국의 가상화폐 서버를 해킹해서 돈을 빼먹었다~ 그러면 저기 서해 바다 건너 공자 왈, 맹자 왈 하시는, 아 요즘은 아니구나, 대국굴기 하신다는 대국 분들이 아시면 어떻게 나올 거 같애?”

“아···”

“캬~ 드디어 이 검새의 평생소원이 이루어지는 거지. 너 같은 깡패 새끼 법, 재판 이런 귀찮은 절차 없이 그냥 죽여버리는 나라로 보내버리는 나의 소원. 거기 제일 높으신 그분, 이번에 새로 천자 폐하 되셨다던데. 평생 해 먹는 그 고귀하신 천자 폐하께서 당신을 보면 이러시지 않을까? 짐이 인민에게 하사한 서버를 해킹한 저 동이족 오랑캐를 찢어 죽여라~”

난 잠깐 뭔가 생각하는 척하다가, 손으로 권총 모양을 만들어 관자놀이에 댔다.

“이렇게 되려나? 탕!”

내가 입으로 낸 ‘탕’ 소리에 성갑수는 정말 깜짝 놀라 어깨를 들썩한다. 정말로 총알이 머리를 꿰뚫고 나가는 거 같은 느낌이 드는 모양이었다.

환상이라 해도 총알이 지나가서 그런가? 머리 회전이 빨라진 듯 성갑수가 갑자기 의자를 앞으로 바짝 당겨 앉는다. 테이블 위에 얹은 두 손은 가지런히 모았다.

“검사님, 원하시는 게 뭡니까? 뭐든··· 하겠습니다.”

후후, 그러면 그렇지.

난 오른손을 테이블 밑으로 뻗어 밖에서도 들리게 돼 있는 마이크를 껐다.

검찰 조사 한두 번 겪어보는 거 아닌 성갑수도 마이크를 끄는 내 동작이 뭘 의미하는지 바로 눈치챘는지 입술을 앙 다물고 나를 쳐다본다.

“성갑수 씨, 내가 원하는 게 뭐 같아요?”

성갑수는 테이블 위에 널려있는 정수명 장관 의혹 보도 기사에 짧게 시선을 줬다가 바로 고개를 들었다.

“검사님, 다 드리겠습니다. 정수명이 뭘 했는지. 제가 아는 거 전부 다. 모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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