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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인 검사에 빙의했다-7화 (7/70)

〈 7화 〉 영혼없는 검사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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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님, 차장님께서 찾으십니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는 나를 보고 정화용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말했다.

“안 그래도 갈 생각이었어요. 잘 됐네.”

“저··· 그런데 검사님.”

정화용 얼굴에 걱정 어린 기색이 역력하다.

“왜 그러시죠? 계장님. 무슨 일 있으세요?”

“이런 게 신문에···”

정화용이 신문 칼럼 하나를 내가 잘 볼 수 있게 접어서 내민다.

대충 제목만 보니 어떤 내용인지 알겠다.

“차장님께서 이것 때문에 급하게 찾으시는 거 같습니다.”

“후후,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난 대수롭지 않다면서 씩 웃어주고 검사실을 나왔다.

“차장님, 찾으셨습니까?”

“야! 최용구!”

차장 검사실에 들어서자마자, 김필중의 억센 목소리가 터졌다. 예상했던 대로다.

“너 이 쉬키. 뭔 짓을 하고 돌아댕기는 기야?”

흥분하면 언제 그렇듯 억센 경상도 사투리다.

“니! 내 경고했지? 독고다이 짓 고마하라고.”

김필중이 책상에서 나와 소파에 털썩 앉았다. 나한테는 앉으라는 말도 안 한다.

“내가 그 사건은 조용히 조폭 몇 명 넣는 걸로 덮으라고 했어, 안 했어? 캘 건 캐더라도 조용히 하라고 했어? 안 했어?”

김필중이 탁자에 있는 신문을 턱으로 틱 가리킨다.

“저 신문. 니는 저런 거 보도 안 하나?”

아까 정화용이 내게 보여줬던 그 신문이다.

“저도 제목만 봤습니다.”

“제목만 봐? 헛. 니를 콕 찍어서 죽이려고 하는 칼럼을 제목만 봐? 정신 나간 놈.”

김필중이 하도 시끄럽게 소리 질러대길래 나는 얼른 신문을 들었다.

“잠시 읽어보겠습니다. 차장님.”

글 읽는 중에는 소리 안 지르겠지 싶었다.

‘영혼 없는 검사와 민주 공동체’

칼럼 제목은 이랬고, 필자는 XX대학교 철학과 교수 천우민이다.

— ‘영혼 없는 검사. 언제까지 저들에게 민주 공동체의 정의를 맡겨둬야 하는가. 뒤로는 떡값을 받고 앞으로는 떡값 준 자를 처벌하는 자들. 저들 중에는 인육 먹은 조폭을 일망타진했다고 칭송받는 검사도 있다. 하지만 그는 앞으로는 영웅 행세를 하면서, 뒤로는 조폭보다 더한 폭력으로 시민을 겁박해 죄인을 만든다. 인육 먹은 조폭이 검사에게 빙의한 건가. 하기야 영혼이 없으니 조폭 귀신이 빙의하는 건 쉬운 일일 테다.’

“다 읽었나? 너 그거 쓴 천우민이 누군지 알아?”

“들어는 봤습···”

“들어는 봐? 헛참. 이 정신 나간 놈. 그 교수는 여권 핵심부를 들었다 놨다 하는 오피니언 리더 중에 리더야. 여당의 실질적인 당 대표 노릇을 하고 있다고.”

김필중의 목소리 데시벨이 아까보다 더 올라갔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엇? 이 시키 봐라. 니 지금 웃었어?”

김필중은 삿대질을 하면서 벌떡 일어났다. 그런데 나는 웃음이 더 크게 터져 나왔다.

“하하하하”

김필중은 어이 상실.

“니 지금 제정신이가?”

김필중이 다시 소파에 털썩 앉으면서, 신문을 들고 서 있는 나를 올려다보고 물었다.

“제정신일 리가 있습니까? 이 칼럼대로 전 영혼 없는 검사인데요.”

“지금이 농담할 때가?”

“차장님, 저 여기 좀 앉아도 되겠습니까?”

김필중이 허락하기도 전에 난 김필중 오른쪽 소파에 가 앉았다.

“니 천우민이 누군지 모르는 건 아니지? 이 작자가 이렇게 나오면 너는 이제 어디 거리에 나다니지도 못해. 이 인간, 유튜브 채널에 SNS에 장난이 아냐. 유튜브 한번 뜨면 동시 접속수가 수십 수백만이야. 그뿐인 줄 알아? 트위터 페북도 팔로워가···”

“알고 있습니다. 차장님.”

유튜브 채널, 페북··· 요즘 트렌디한 것들 가지고 아는 척 좀 하려고 했는데 중간에 씹혔다. 김필중은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는, 달래는 어조로 말을 계속했다.

“알고 있다는 놈이··· 그리고 너 아까 미친놈처럼 크게 웃어제낀 이유는 뭐야?”

“그건··· 후후. 지 무덤을 지가 파는 인간을 방금 봤으니까요.”

“뭐? 지 무덤을 지가 파?”

김필중은 내가 아직 들고 있는 신문에 반사적으로 시선을 꽂았다.

이쯤 되면 김필중도 눈치를 챌 만큼 챘다.

“최용구 너. 뭔가 믿는 구석이 있나 본데··· 말해봐. 복안이 뭐야?”

김필중이 상체를 일으켜 팔꿈치를 무릎 위에 놓고 양손 깍지를 끼면서 물었다. 억센 경상도 억양이 아닌 차분한 어조의 서울말 억양이다. 긴장하고 있다는 증거다.

“복안이라기보다는 우선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범인을 찾은 거 같습니다.”

“범인을 찾아? 무슨 소리야? 홍성수 그놈은 그럼 뭐야? 범인이 아니란 말이야?”

“네, 아닙니다.”

“뭐?”

“경찰은 홍성수가 전과자에 조폭이기도 하니까 결론을 미리 내놓고 수사를 한 거 같습니다. 주변 정황이 그런 결론을 내기에 충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홍성수는 아닙니다.”

“경찰 땅개 시키들 하는 짓이 다 그렇지 뭐.”

“홍성수는 피해자를 죽일 동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 처음부터 범인이 홍성수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넌 홍성수를 진짜 범인을 찾아낼 미끼로만 썼다. 이건가?”

“그렇습니다.”

김필중이 ‘이 놈 제법 하네’라는 표정을 잠깐 지어 보였다.

“그럼 니가 방금 찾았다는 그 범인은··· ”

김필중은 내가 들고 있는 신문에 다시 한번 시선을 준 뒤 말했다.

“증거는 확실해?”

“몇 가지만 보강하면 됩니다.”

“몇 가지 보강? 미치겠네. 야! 너 지금 상부에서 당장 아웃시키라 그랬어. 지방으로 전출시키라고까지 했다고. 전출은 내가 겨우 막아서 너 지금 여기 있는 건데···”

“감사합니다.”

“감사? 웃기고 있네. 감사고 뭐고. 상부에서 너 당장 이 사건에서 손 떼게 하라 했는데, 보강 수사는 또 어떻게 한단 말이야? 나보고 항명을 하라는 거야?”

“얼마 걸리지 않습니다.”

“아~ 이 시키 진짜.”

“그런데 차장님. 저를 아웃시키라고 상부라면 어디···”

“어디긴 뭐가 어디야? 제일 위지. 민정 수석.”

‘민정 수석’이라는 말에 나는 또 피식 웃었다.

“웃어? 하, 이 자식 봐라. 너 지금 웃음이 나와?”

“차장님. 이 칼럼에서 제가 엊그제 홍성수 몸에 손댄 걸 언급했던데···.”

“그랬지.”

대답하면서도 김필중은 이미 뭔가 짚이는 게 있는 거 같은 표정이다.

“우리 지검에서, 특히 강력부 조사실에서 있었던 일이 어떻게 그렇게 빨리 민정수석에게까지 들어가고 천우민한테까지 가서 칼럼까지 나올 수 있었을까요?”

“음···”

김필중은 소파 등받이에 상체를 털썩 파묻듯 기댔다. 안경을 벗고 얼굴을 양손으로 여러 번 마사지하듯 아래위로 문질렀다.

“흠···”

한숨도 쉰다.

“이제 감이 잡히시나 보군요. 차장님.”

“장창선. 내 이 시키를 완전히 쫓아냈어야 했어. 그래도 후배라고 처자식도 있는데 싶어서 먹고 살 거 걱정해서 봐줬더니만. 한 번 쥐새끼 짓 한 놈이 두 번 세 번 못하겠나.”

“차장님. 덕분에 그쪽의 커넥션이 더 잘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제 예상보다는 많이 빨리 움직인 거긴 합니다만. 어쨌든 오히려 잘 된 거지요.”

김필중이 안경을 다시 쓰면서 나를 보고 씩 웃는다.

“너 홍성수한테 조사실에서 때리고 그런 거··· 일부러 그랬구나. 장창선이 보라고.”

“이렇게 빨리 움직일 줄 알았다면 적당히 할 걸 그랬습니다. 후후”

“이 독고다이 시키. 완전 무대뽀는 아이구만.”

다시 경상도 억양. 자유자재다.

“그런데 차장님, 천우민이 이런 칼럼을 쓰고, 민정수석한테까지 제 이야기가 들어갔다면 정수명이 직접 움직인 거겠군요.”

“그렇지. 정수명 끗발 정도는 돼야 가능한 일이지.”

“민정수석이 움직여서 저를 치라고 명령을 했다. 그럼 정수명은 지금 안심하고 있겠군요.”

“흥! 그렇겠지. 정수명 그 자식 지금쯤 두 다리 쭉 뻗고 안심하···”

‘안심’

김필중은 언젠가 저 말을 의미심장하게 썼었다는 걸 기억해내고 말을 멈췄다.

얼마 전 이 방에서 장창선을 날릴 때 자신이 했던 말.

— ‘장창선이를 안심시킨 다음에 뒤를 칠 계획이었지.’

그렇다면 지금 그 ‘안심’의 의미는...

김필중은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리고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너 지금 정수명이의 뒤를 치겠다는 거야?”

“목표를 안심시킨 다음에 뒤를 쳐라. 차장님께서 가르쳐주신 전략이지요.”

내가 씩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김필중은 웃지 못했다. 인상을 쓰다 못해 뒷목까지 잡았다.

“야! 이 시키. 너 미쳤구나. 내가 그렇게 이야기했는데도 너 기어이···”

“전 영혼이 없으니까요.”

“정수명은 미래 권력이야. 머잖아 저기 청와대의 주인이 될 사람이라고. 백 대통령님보다 어떨 때는 더 쎄. 정수명 밑에는 천우민 같은 놈만 있는 게 아냐. 거 늘봄 신문. 그거는 아예 정수명이 꺼나 다름없어. 그뿐이야? 광화문에 나가봐. 인터넷에 들어가 봐. 정수명은 거기서 신이야 신. 그런데 니가 뭘 어떻게 한다고? 야!”

김필중이 말을 쉬고 한숨을 몰아쉰다. 아무리 말해도 내 표정엔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 좋다. 내가 말린다고 안 할 인간도 아이고.”

“감사합니다. 차장님.”

“감사는 무슨. 딱 일주일. 일주일 준다. 더 주고 싶어도 줄 수도 없어. 너 이 사건에서 아웃시키라는 상부 명령을 내가 어길 수는 없잖아.”

“네. 알겠습니다.”

“그때까지 정수명이 모가지 틀어쥘 확실한 걸 가지고 와야 돼. 일주일 가지고 모자란다? 더 하고 싶다? 그럼 너 옷 벗고 해. 알겠어?”

“네.”

내 대답을 들으려 하지도 않고 김필중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책상으로 가 앉았다. 앉자마자 의자를 창문 쪽으로 홱 돌려버렸다.

차장 검사실을 나와 내 방으로 가던 중, 강력부 부장 장창선의 방 앞을 지나게 됐다.

문이 빼꼼히 열려 있었는데 장창선이 앉아 있는 게 보였다.

마침 장창선과 눈이 마주쳤다. 장창선은 나를 보고 씩 비웃었는데, 난 깍듯하게 15도 각도로 고개 숙여 인사해주고 지나왔다.

내가 검사실에 들어오자, 정화용이 벌떡 일어서면서 맞는다.

표정이 가관이다. 똥을 씹으면 저런 표정이 될까. 거의 울려고 한다.

“검사님··· 차장님 하고 어떻게··· 이야기가 잘 되셨나요? 전 그저 걱정이 돼서···”

난 똥 씹은 표정의 정화용의 얼굴을 보고 그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하. 아니 무슨 초상 났습니까? 왜 그러세요? 계장님.”

“네? 아니 저··· 그게···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이게 보통일도 아니고···”

“계장님, 걱정 마시고. 처리해주셔야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긴급히요.”

‘긴급’이라는 말에 정화용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네? 긴급··· 어떤···”

“XXX 대학교 철학과 교수 천우민”

“헉. 그··· 그 사람을 왜···”

“천우민 교수의 최근 6개월 간 출입국 기록 확보해주세요. 금방 되죠?”

“출입국 기록요? 바로 되기야 되죠. 그런데 그건··· 왜... 아! 네 알겠습니다.”

평소 같으면 이유를 듣고 움직였을 정화용이지만, 지금은 비상 상황. 바로 실행에 들어간다.

정화용에게 일을 시킨 후, 나는 검사실 내실로 들어와 앉았다.

아까 김필중이 했던 말을 다시 생각해봤다.

— ‘지금 정수명은 백 대통령보다도 쎄’

내가 아는 백영기는 누구든 자기보다 센 놈이 있는 상황을 그냥 넘어갈 인간이 아니다.

김필중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일주일을 준다고 했다. 엄청난 선처를 베푸는 듯 생색을 내면서 말했다. 웃긴다. 누구를 바보로 아나.

일주일 안에 내가 정수명 모가지 틀어쥘 거리를 들고 오면 백영기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드리는 거고, 아니면 조무래기 검사 하나 날리면 되는 거다. 김필중에게는 잃을 게 없는 게임.

난 여기서 승부를 걸어본다. 어차피 한 번 죽었던 목숨, 나 역시 잃을 것 없는 게임이다. 내가 정수명을 멋지게 쳐내면 난 김필중을 넘어 백영기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다.

‘똑똑’

정화용이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검사님. 아까 말씀하신 천우민 교수 출입국 기록입니다.”

전광석화다. 시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가지고 오나.

“네, 수고하셨어요.”

정화용이 나간 뒤, 난 자료를 훑었다. 얼마 보지 않고서도 씨익 웃음이 나왔다.

천우민의 출입국 기록 맨 끝에 찍힌 도시 이름.

방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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