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 죽지 않을 만큼만 때리는 기술?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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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지검 강력부 조사실.
홍성수가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정화용에게 말을 건다.
“그러니까··· 저···”
“응, 난 정화용 계장. 그냥 정 계장이라고 불러. 육개장 말고 정 계장. 흐흐흐.”
“정 계장님 말씀은 제가 이 성 대표님이랑 정수명 부총리 사이에 있었던 일···”
“그래, 그래. 말해봐. 편하게.”
“네, 제가 알고 있는 거··· 주워들은 거나 직접 본 거나 말씀만 드리면···.”
“그렇지. 그렇게만 해주면 우리 홍성수 씨 사람 죽인 거는 뭐··· 약하게 처벌···.”
“아. 정말··· 그 새끼 내가 안 죽였다구요.”
처참하게 맞아 죽은 피해자 보고 ‘새끼’라니.
정화용도 불편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미간을 조금 찌푸렸는데 홍성수도 눈치챘다.
“아, 그 사람··· 제가 안 죽였다구요.”
“그래 그래, 검사님께 잘 말씀드려보자고. 아까 저 두 명 이야기도 같이··· 응?”
정화용은 이 말을 하면서 오른손으로 자신의 뒤통수를 슥슥 긁었다. 내가 이제 들어와도 된다는 신호다.
‘덜컥’
내가 조사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홍성수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나는 의자에 앉자마자 홍성수를 아래 위로 쓱 훑고는 퉁명스럽게 말을 시작했다.
“경찰 수사 결과로는 니가 그 청년을 죽인 이유가 니 말을 안 들어서라며?”
“검사님, 저 정말 안 죽였···”
“너는 니 말 안 들으면 패서 죽이냐?”
“저 정말···”
“나도 내 말 안 듣는 너 패서 죽여 볼까?”
“검사님. 제가요··· 때린 건 맞습니다. 그 새끼··· 아니 그 사람이 제 말을 안 들어서···”
“말 안 들으면 때리냐?”
“검사님. 제가요 마지막으로 그 새끼··· 아니 그 사람 때리고 나올 때··· 멀쩡했다니깐요.”
“그래서?”
“그러니까 지~인짜 제가 안 죽였어요. 때렸다고 죽인 거면···”
“죽인 거면?”
“검사님도 아까 저 때리셨는데, 만약 제가 지금 죽으면 검사님이 절 죽이신···”
“너 지금 나한테 개기는 거야?”
“아! 검사님. 잘못···”
“이 깡패 새끼가 여기가 어디라고 검사한테 개겨엇? 이 새끼가 아직 정신 못 차렸어? 내가 누군지 아직 몰라?”
“검사님. 압니다. 알죠. 죄송합니다. 저··· 검사님 물어보시는 거 다··· 다 대답할게요. 지난번 보여주신 사진··· 아, 시체 사진 말구요. 그··· 산 사람 얼굴 사진요.”
홍성수가 애걸하듯 나오자, 난 상체를 의자 등받이에 턱 기대고 다리를 꼬았다.
“그래, 그 사진. 말해봐. 알지? 누군지.”
“예. 압니다. 성갑수 대표님.”
“야! 님짜 빼. 강력계 검사한테 조폭 새끼는 그냥 새끼야. 성갑수 그 자식, 니네 조직 대빵이지? 너 그 새끼 꼬붕이지?”
“검사님, 성 대표님··· 아니, 성 대표는 벤처 캐피탈···”
“벤처? 지랄하네. 깡패 새끼가 벤처는 무슨. 너 그게 뭔지나 아냐?”
“검사님. 성 대표는 태국에서 인터넷 사업을 하려고···”
“그건 알아. 그 사업이 뭐야? 인터넷 홈쇼핑이라고 구라는 쳐 놨더라만. 진짜 한 일이 뭐야? 죽은 그 청년, 김진수 씨 전공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이고 석사까지 했던데.”
“홈쇼핑 사이트도 만들고 고객 데이터도···”
홍성수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는데, 난 서류를 탁 덮으면서 홍성수를 째려봤다.
“야이 새끼야, 그거는 니가 경찰에서 말한 거잖아. 그거 여기 조서에 다 있는데, 내가 글을 읽을 줄 몰라서 다시 묻는 거 같애?”
“아!”
“똑바로 말해. 죽은 김진수 데리고 너 파타야에서 무슨 짓 했어? 성갑수가 시킨 게 뭐야?”
“후우~ 검사님··· 저 정말···”
홍성수가 눈물을 뚝뚝 흘린다.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어댄다.
상대가 완전히 무너졌다. 이제 본 게임을 시작해야 할 타이밍이다.
“야! 홍성수”
홍성수는 아직도 훌쩍거리면서 고개를 못 든다.
난 양복 안 주머니에서 세 번 접은 A4 용지를 꺼내 숙이고 있는 홍성수의 앞에 내밀었다.
“이거지?”
홍성수는 접힌 종이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니들이 파타야에서 한 짓. 이거지?”
훌쩍거리던 홍성수가 내 말에 놀라 고개를 번쩍 든다. 내 손에서 종이를 뺏듯이 집어서 편다.
“헉! 이건!”
홍성수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문서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뭘 그렇게 놀래? 내가 너무 빠삭하게 알고 있어? 니들이 태국에서 뭘 했는지?”
“이게 어떻게...”
홍성수는 내가 던져 준 문서를 손에 쥐고 덜덜 떨고 있다.
“야! 홍성수. 너 계속 나보고 니가 사람 안 죽였다고 떼을 썼는데··· 이거 보면 넌 그냥 살인죄로 들어가는 게 훨씬 나을 거 같애. 그냥 니가 죽였다고 할래?”
문서에는 죽은 김진수의 노트북에 있던 파일 목록과 인터넷 접속 기록이 빼곡히 적혀있다.
홍성수가 의자에서 내려와 털썩 무릎을 꿇는다.
“검사님, 전... 검사님한테 협조하려고 했습니다.”
“협조? 후후, 어떡하냐? 내가 벌써 다 알아버렸는데. 없앤다고 다 없어질 거라 생각했어? 요즘 세상에?”
“검사님. 저 정말 맹세코...”
“맹세코? 너 따위 인간 맹세 관심 없어. 자~ 그럼 견적 한 번 내보까? 젤 싼 거부터...”
난 스마트폰을 들고 술술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전자금융거래법, 전자적 침해행위의 금지. 10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 벌금. 이거는 법원 가봐야 빼도 박도 못 할 만땅일 거 같고...”
“검사님··· 제가 다 이야기하겠습니다. 아는 거 다...”
“가만있어봐. 여기 찾아온 거 다 읊어야 할 거 아냐. 이거 찾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흑···”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접근 권한 없는 정보통신망 침입 금지. 이건 싸네. 5년밖에 안돼. 합이 얼마냐? 15년? 아직 갈 길이 머니까 더 들어봐.”
“흑···”
“같은 법, 악성 프로그램 전달 및 유포 금지. 이건 7년. 그럼 합이 22년.”
“···”
“타인의 정보 훼손 및 비밀 침해 등 금지. 이건 5년. 여기다가 너 살인죄는 기본이 10년. 근데 이건 약과야. 너희들 이거 금융 범죄인 거 알지? 타인 계좌에 불법으로 들어가서 금융 자산을 절취. 이거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적용 대상이야. 너 살아서 나올 수 있겠냐?”
홍성수는 자포자기다.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 없다. 이제 눈물도 안 흘린다.
“홍성수 씨.”
홍성수가 대답 없이 고개만 들었다.
“여기 의자에 앉아.”
의자 위에 털썩 앉는 홍성수.
난 최대한 목소리를 부드럽게 낮추고, 홍성수에게 가까이 다가가면서 말했다.
“당신이 안 죽인 거 맞아.”
“네?”
놀라는 홍성수.
“사람 죽일 때는 동기가 있어야 하거든. 21세기 파 그 악마들도 동기가 있었어. 황당한 거긴 했지만... 여하튼 홍성수 씨는 그게 없어.”
“검사님···”
홍성수 눈에서 다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당신을 살인범으로 만들면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있어. 난 그 사람들을 잡아야 돼. 그래서 홍성수 당신 협조가 필요해.”
“검사님. 최대한 협조하겠습니다.”
“좋아. 죽은 김진수 말이야.”
홍성수는 침을 꼴깍 삼키면서 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해커였지? 해킹 전력이 꽤 돼. 맞지?”
“네. 맞습니다. 진수는 대학에서 소프트웨어를 전공했···”
홍성수가 처음으로 피해자를 ‘진수’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나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당신들 둘··· 친구였지?”
“아!”
홍성수는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어떻게 만났어?”
“피씨방에서요. 한 3년 됐습니다.”
“성갑수 대표한테 김진수를 소개해 준 것도 당신이지?”
“아, 그건 진수가 먼저 부탁을 했어요. 중국 비트코인 거래소를 털면 큰돈 벌 수 있다고.”
“그래서 성갑수가 돈을 대서 파타야에 아지트를 차렸고.”
홍성수는 고개를 끄덕했다.
“성갑수는 얼마나 자주 왔어? 파타야에.”
“한 달에 한 번은 왔습니다. 비용을 직접 현금으로 주셨... 아니 줬거든요. 그런데 진수가 죽기 얼마 전부터는 꽤 자주... 음... 매주 왔었어요.”
“오면 얼마나 있다 갔어?”
“처음에는 하루 이틀 정도... 나중에는 며칠씩.”
“오면 뭘 했어?”
“진수하고 사업 이야기... 근데 진수가 좀 이상해졌었어요. 죽기 한 두 달 전부터. 그래서 성 대표하고...”
“싸웠나?”
“진수가 성 대표한테 대들었죠.”
“김진수가 이상해졌다는 건 뭐야?”
“진수가 갑자기 안 하던 소리를 막 하더라구요.”
“무슨 소리?”
“세상이 자기가 생각하던 거 하고는 많이 다르다고. 실망스럽다고. 그 말 들으니··· 뭐랄까 밸이 꼴렸달까. 아니꼬웠어요. 가방끈 길다고 티 내나 싶었죠.”
여기까지 말하고는 홍성수는 내 눈치를 살폈다. 가방끈이야 검사인 나도 기니까.
난 계속하라는 신호로 검지 손가락을 위로 뻗어 휘휘 돌렸다.
“진수는 중국 놈들 보안이 취약하다고 좋아했어요.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사람이 챙긴다더니, 중국 놈들이 돈 들여 컴퓨터 잔뜩 사서 비트코인 채굴해놓으면, 우리는 슬쩍 몇 개씩 빼내기만 하면 된다고.”
“그러던 해커가 갑자기 성인군자 말씀을 하니 이상했겠군. 밸도 꼴리고. 그래서 때렸어?”
“성 대표가 손 좀 봐주라고 했어요.”
“그날은? 죽은 날은 얼마나 때렸어?”
“그날도 아침에 진수가 성 대표랑 큰소리로 통화했었는데···.”
“무슨 이야기 했어?”
“정치 이야기··· 정수명 부총리가 어떻고··· 돈을 왜 정수명한테 보내냐고···.”
“정수명?”
“네, 그 사람 이야기를 했었는데··· 검사님··· 근데 전 정치 이런 거에 저~언혀 관심이···”
“응, 알았어. 그래서··· 그다음은?”
“진수랑 통화 끝나자마자 성 대표가 바로 저한테 전화를 해서···”
“손 봐줘라?”
“네. 혼 내주라고.”
“얼마나 팼어?”
“검사님. 근데 이건 정말··· 검사님께서 절 좀 믿어주시면 좋겠어요.”
난 고개를 끄덕해줬다. 그걸 보고 안심이 되는 듯 홍성수가 말을 계속했다.
“사람 때리는 것도 때려본 사람이 잘 때리는... 아! 제 말은 다른 뜻이 아니라...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저는 지~인짜 잘 알거든요. 어느 정도 때리면 죽지 않을 만큼 된다.”
난 피식 웃었다. 죽지 않을 만큼만 때리는 기술. 그것도 기술이라면 기술이다.
홍성수도 멋쩍게 씩 웃고는 말을 이었다.
“하여튼 진수를 그렇게 패 놓고, 전 바로 나와서 스트립쇼도 좀 보고···”
죽지 않을 만큼이라고 해도 얼마나 아팠겠나. 사람 패 놓고 지는 스트립쇼를 보러 나왔다니.
난 분노가 치밀어 귀싸대기라도 날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지금 때렸다가는 홍성수를 죽일 거 같았기 때문이다. 사람 죽지 않을 만큼 때리는 기술이 난 없으니까.
“12시쯤 방에 돌아갔는데··· 진수가··· 그렇게 돼 있더라구요.”
“그래서 성갑수한테 바로 전화했어?”
“네. 근데 안 받았어요.”
“안 받았다? 전화했을 때 안 받은 적 있었어?”
“잘 없었죠. 제가 전화하면 항상 잘 받으셨··· 아니 잘 받았는데...”
“김진수가 쓰던 노트북은 어디다 어떻게 갖다 버렸어?”
이 말에 홍성수가 손사래를 치면서 목소리를 높인다.
“아녜요. 정말 제가 손댄 거 아니에요. 저도 이상했던 게 와 보니까 없더라구요. 진짜예요. 근데 검사님. 그 없어진 노트북 속 내용이 어떻게 검사님한테···”
난 대답 대신 씩 웃어주고 말았다.
“여하튼 신고는 제가 했습니다. 사람이 죽었다고요.”
“근데 신고한 당신을 경찰이 범인으로 지목했고, 지금 여기 와 앉아있는 거지.”
홍성수는 고개를 푹 숙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됐어. 수고했어.”
내가 책상에서 일어나려는데, 홍성수가 어정쩡하게 같이 일어나면서 날 잡았다.
“검사님, 정말 진수는 어떻게 된 거죠? “
“어떻게 되긴? 당신이 죽지 않을 만큼만 때려놓고 나왔는데··· 누가 들어와서 지그시 눌러준 거지. 딱 죽을 만큼만.”
“아! 누가···”
“잘 생각해봐. 김진수가 죽고 당신이 살인범이 되면 누가 이익을 보는지. 당신들 둘은 이용만 당하다 버려지는 소모품이야. 김진수는 이용당하기 싫다고 저항하다가 버려졌고, 당신은 그걸 뒤집어쓰는 걸로 지금 이용당하고 있고.”
멍한 표정으로 의자에 털썩 앉는 홍성수를 남겨두고, 난 조사실을 나왔다.
오늘은 최용구 몸속에 들어온 이후, 가장 최용구스럽게 지낸 하루였다.
피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