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강압수사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용의자님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 ‘이재훈, 당신은 돈이면 부모도 버리는 놈 아니었나? 널 어떻게 믿어?’
— ‘죽기 좋은 날씨네. 뜨거운 태양,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 후후후. 금융 천재 이재훈··· 다 당신 잘못이야. 내 탓은 하지 말라고.’
날 사막 한복판에 버리고 떠나가는 최용구.
강렬한 태양 아래서 말라죽어가는 나.
“헉!”
또 꿈을 꿨다.
최용구의 몸에 들어온 뒤에도 거의 매일 꾸는 꿈이다.
시계를 보니 새벽 6시.
침실에서 나와 물 한 컵을 마시고 소파에 앉았다.
다른 방에는 최용구의 아내와 6살 배기 아들 민석이가 같이 자고 있다.
이젠 내 가족이 된 아내와 아들 민석이.
나는 가족에 대한 좋은 기억이 없다.
부모님은 내가 저 민석이 나이 때쯤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고, 낯선 이국에서의 생활고는 부모의 결혼을 오래 가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이혼한 부모덕에 나는 거의 혼자 살다시피 했다.
성인이 돼서도 난 가족을 만들지 못했다.
금융 천재로 이름을 날리면서 돈은 많았기에 이 여자 저 여자를 수시로 갈아치우면서 살았다. 반년 이상을 같이 살아본 여자가 있었을까? 기억에 없다.
부모는 가끔씩 연락이 왔었지만, 같이 살 생각은 없었다. 어떨 때는 소리를 지르면서 먼저 전화를 끊기도 했었고.
최용구 자식이 날 죽일 때 ‘돈이면 부모도 버린다’ 고 소리쳤던 것도 그렇게 함으로써 내 약점을 후벼 팠던 거다. 최용구 몸에 들어와 보고 안 거지만, 상대의 약점을 최대한 집요하게 후벼 파는 것은 최용구가 즐겨 쓰는 용의자 심문 방법이었다.
“어, 일어났네요. 오늘 일찍 출근하신다고 했죠? 아침 빨리 준비할게요.”
아내가 방에서 나오면서 말했다.
최용구와 대학 때부터 연애한 끝에 결혼한 여자다.
최용구는 이런 면에서는 나보다 더 낭만적이었던 것 같다. 적어도 결혼하기 전까지는 그랬던 게 확실하다.
검사가 가져야 할 세 가지 복 중에 첫 번째가 처갓집 복이라고 하는데 평범한 집안의 딸과 결혼한 걸 보면 최용구도 처음부터 권력지향 정치 검사는 아니었다.
검사 임용 초반에는 법치, 정의, 약자에 대한 배려를 최고의 가치로 생각했던 나름 괜찮은 검사였더라는···.
하지만 처갓집 잘 만나 승승장구하는 동료와 후배들을 보면서 최용구는 ‘난 내 혼자 힘으로 해야 해!’라는 강박을 가지게 됐고 정치 검사로 변해갔다.
아내와의 관계도 이때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를 이해했다는 것이 그를 향한 나의 복수심이 줄어들었다는 뜻은 아니다.
절대 그럴 수 없다. 누가 뭐라 해도 이 최용구라는 자식은 나를 그 뜨거운 사막 한 복판에서 말라죽게 만든 자니까!
“아버지 출근하신다. 민석아! 얼른 나와서 아버지께 인사드려야지~~”
출근 시간 아침 7시.
아내가 한참 자고 있는 어린 아들을 굳이 깨워 인사를 시키는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최용구가 아내든 어린 아들이든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6살 배기 민석이는 용수철 튀듯 벌떡 일어나 현관으로 달려온다.
“아버지 잘 다녀오십시오~”
졸린 눈을 마저 뜨지도 못했으니 내가 어디에 서있는지 보지도 못하고 일단 절부터 한다. 나한테 하는 건지 허공에 대고 하는 건지 모르겠는 인사를 마치고도 민석이는 내게 눈길 한 번 주지를 못 한다.
최용구 이 몹쓸 인간. 평소에 이 어린 아들을 얼마나 두들겼으면 지 아빠랑 눈 한 번 맞추지를 못 하는 걸까.
난 서류 가방을 바닥에 놓고 민석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민석아~”
민석이의 어깨에 양손을 살포시 얹었다.
내 손이 어깨에 닿자 움찔하면서 안절부절 못 한다. 동공이 파르르 떨리면서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를 몰라 고개를 양 옆으로 이리저리 돌린다.
“민석아~ 아빠를 한 번 보렴~”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로 말하면서 민석이의 시선이 나에게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한참 뒤에 살그머니 나를 보는 민석이. 여전히 겁에 질려있기는 하다.
“그래, 착하다. 우리 민석이. 민석이 눈이 참 이쁘구나.”
“응··· 아··· 엄마도 그렇다고 해··· 했어··· 요.”
“그래 민석아~ 우리 예쁜 민석이. 내일부터는 아빠 회사 갈 때 안 일어나도 돼. 푹~ 자. 민석이 나이 때는 잠을 푹 자야 쑥쑥 크는 거야. 알았지?”
나를 보는 민석이의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놀란 표정인 건 민석이보다 아내가 더 했다. 양손으로 입과 코를 가리고 놀란 마음에 가팔라진 호흡을 가다듬고 있다.
이 타이밍에서 장난을 치고 싶다는 짓궂은 생각이 들었다.
“민석 엄마~”
아내에게 다가서면서 입을 가린 손을 잡아 내리고 그 입술에 키스를 살짝 했다.
“어머!”
아내 볼이 금세 발개지고 눈에는 눈물까지 촉촉 맺힌다.
“꺄르르르··· 아빠하고 엄마하고 뽀뽀했다. 깔깔···”
좀 전까지 졸린 눈으로 겨우 서 있던 민석이가 잠이 확 깼는지 웃어제낀다.
“나 갔다 올게. 오늘도 늦을 거야. 기다리지 말고 먼저 민석이 데리고 자.”
아내에게 다정한 웃음과 함께 날리는 멘트.
“민석 아빠···”
“까르르르··· 뽀뽀했다. 엄마 아빠···”
감격하는 아내와 꺄르르 웃는 아들을 뒤로 두고 집을 나섰다.
가족을 가진다는 것···.
이런 거구나.
***
출근하자마자 검찰청 조사실로 왔다.
오늘은 태국 파타야 사건 용의자인 홍성수 조사 첫날이다. 오늘만큼은 제대로 최용구가 돼보기로 마음먹었다.
“이 사람 알아?”
홍성수 앞에 사진 한 장을 툭 던지면서 물었다.
“모릅니다.”
홍성수가 사진을 보지도 않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오케이”
난 뭐라 말해도 상관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다른 사진 한 장을 또 툭 던졌다.
“이 사람은?”
“모릅니다아~”
이번에도 홍성수는 사진을 보지도 않았다.
“오케이”
나도 아무 상관없다는 듯 사진을 홍성수 앞에서 치웠다.
“이 사람도···”
난 다른 사진 한 장을 또 봉투에서 꺼내려다가 다시 집어넣어 버렸다.
“에잇, 이것도 모른다 그러겠지. 귀찮아.”
내 모습을 본 홍성수가 피식 웃는다.
홍성수는 지금 상황이 좀 웃기다. 검사가 수사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보여준 사진 속의 사람을 모른다고 딱 잡아뗐으면 추가로 뭔가 추궁이 들어와야 하는데, ‘오케이’ 하고는 그만이다.
심지어 핸드폰을 보면서 혼자서 키득거리기까지 한다. 뭔가 하고 슬쩍 보니 카톡질이다.
‘무슨 검사가 저래?’
홍성수 입장에서는 검사가 저 모양인 게 나쁠 거 없다.
나도 한참을 혼자 카톡질을 했는데 이것도 나쁠 거 없다. 대화 상대가 정화용이라는 것만 아니면 더 좋았을 텐데···.
— ‘정 계장, 이제 슬슬 시작할 테니 준비하고 있어요.’
이렇게 카톡을 날리고는 사진이 들어있는 봉투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홍성수의 뒤쪽으로 돌아가 섰다.
‘뭐야? 왜 이리로 오는 거지?’
홍성수는 반사적으로 경계심이 들었지만, 지금까지 이 검사가 한 짓으로 볼 때 뭐 별 거 있겠나 싶었다.
난 홍성수 뒤에 서서 봉투에서 사진을 한 장 꺼냈다.
홍성수의 눈앞에 쓱 들이밀면서 묻는다.
“이 사람도 모르지?”
“에잇, 아무도 모른다니까··· 왜 자꾸··· 헉, 이··· 이게 뭐야? 으악~”
사진을 눈 바로 앞에 들이밀었으니 피할 수도 없었던 홍성수는 사진을 보고 기겁을 한다.
난 여전히 똑같은 무표정으로 사진을 책상 위에 툭 던져놓고, 또 한 장 꺼내 홍성수의 눈앞에 쓱 들이밀었다.
“그럼 이 사람은?”
“헉, 이건 또 뭐예요? 예?”
“뭐긴 뭐야? 이런 거 첨 봐? 참내.”
나는 또 하나 꺼내 들이민다. 이번엔 아예 코에 바짝 갖다 붙였다.
“이건 어때?”
“으악~ 뭐에요? 이거··· 그만··· 그만 하세요.”
그만 하란다고 그만 할 내가 아니다. 내가 흡수한 최용구의 범인 심문법. 오늘 홍성수에게 제대로 써먹어보기로 작정했기 때문이다.
“그럼 이건?”
계속 들이밀었다.
“으억, 우웩!”
홍성수는 결국 참지 못하고 헛구역질까지 해댔다.
그걸 보고서야 나는 씩 웃으면서 내 자리로 다시 돌아와 앉았다.
“후우~ 후우~ ”
“뭘 그리 한숨에 구역질까지 해대? 깡패 새끼가 이런 거 처음 봐?”
내가 홍성수의 등 뒤에서 들이민 사진들은 21세기 파 조폭들이 저지른 일들을 찍어놓은 사진이었다.
첫 번째 사진은 피가 낭자한 바닥 위에 내동댕이 쳐진 젊은 여자의 나체 사진인데, 사진 속 여자의 양쪽 가슴은 도려내 졌고 배는 갈라져 내장이 흘러나와있다.
두 번째는 남자 나체 사진인데, 다리 사이에 있어야 할 물건이 없이 피만 낭자하다.
세 번째는 훼손된 남녀 시체 두 구를 성교하는 자세로 엉켜놓은 것이고, 네 번째는 시체에서 잘라낸 피 뚝뚝 떨어지는 살덩어리를 입에 넣으면서 좋아하는 조폭 놈 두 명의 사진이다.
“왜? 역겹냐? 나 이런 거 했던 사람이야.”
“예?”
“아니, 놀라기는··· 내가 이 짓을 했다는 게 아니고, 이 짓 했던 놈들 잡아서 처넣었다고.”
“아!”
“21세기 파라고 들어 봤어?”
“네, 들어는··· 봤습니다.”
갑자기 공손해진 홍성수.
“언론에 나온 거는 빙산의 일각이었지. 제일 심한 게 인육을 먹었다는 정도? 풉! 실제는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어. 이 자식들 완전 악마 새끼들이었지, 악마.”
“아··· 정말··· 그러네요.”
“몇 개 더 볼래?”
내가 봉투에서 사진을 꺼내는 시늉을 했다.
“아~ 아닙니다. 검사님. 아닙니다.”
손사래를 치는 홍성수.
“짜식. 비위가 약하네.”
“아··· 이런 걸 보고 누가 괜찮겠어요?”
“비위가 이렇게 약한 놈이 그래, 사람은 그렇게 모질게 패서 죽였어?”
“아~ 진짜 제가 죽인 거 아닙니다.”
“그럼 누구야? 죽인 게.”
“모릅니다. 정말 모릅니다. 검사님.”
“그래, 모르겠지.”
난 사진 한 장을 홍성수 쪽으로 쓱 밀었다. 홍성수는 인상을 쓰면서 고개를 돌렸다.
“이 사진에 가슴 도려내지고 배 갈라진 여자 있지? 경찰이 갔을 때 아직 이 상태로 살아 있었어. 이 놈들 산 채로 한 거지. 이 여자만이 아냐. 이 놈들은 이 모든 짓을 산 채로 했어. 근데 이 짓 한 새끼도 끝까지 지가 안 했다 우겼었어. 뭐 악귀가 들어서 한 거라나?”
난 갑자기 벌떡 일어나 사진을 외면하느라 왼쪽으로 돌리고 있는 홍성수의 턱을 잡아 나 쪽으로 홱 돌렸다.
“헉, 왜 이러세요.”
턱을 잡힌 채 겁에 질린 홍성수를 난 빤히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나 말이야··· 결국 그 새끼한테 자백받아 냈어.”
“으···”
“야! 홍성수”
“네.”
“내가 그 악마 새끼한테 어떻게 했을 거 같아?”
“네?”
“말해봐? 응?”
홍성수는 나한테 턱을 잡힌 채 벌벌벌 떤다.
“홍성수. 수사하다 보면 범인하고 닮아가기도 한다는 말··· 너 들어봤어? “
안 그래도 이미 공포에 질려 벌벌 떨고 있는 홍성수에게 더 큰 한 방을 날렸다.
“헉!”
순간 홍성수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자신의 턱을 잡고 있는 내 손을 털어내더니 소리쳤다.
“이거, 강압 수사 아닙니까? 강압 수사. 사람 겁 줘서 자백받아내는···.”
홍성수의 목소리는 컸지만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난 오히려 웃었다.
“강압 수사?”
“그래요. 강압 수사. 요즘 세상에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되는데? 이렇게 하면?”
“인권 침해···”
“지랄하네. 야이 새끼야, 그럼 사람 죽이고 온 놈 수사를 강압으로 하지 친절로 하까?”
“뭐라구요?”
난 홍성수에게 썩소를 한 번 날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홍성수에게 90도로 배꼽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파타야 20대 청년 살인 사건 수사를 맡은 수원지검 강력부 최용구 검사라고 합니다. 수사에 응해주신 용의자 홍성수 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배꼽인사를 마치고 짝다리를 짚으면서 묻는다.
“이렇게 하까? 이러면 너 같은 살인자 새끼가 내 친절에 감동해서 네,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죽였습니다. 이럴까?”
“아 씨바 이 검사 진짜···”
“후후, 야 홍성수. 너 지금 재밌지?”
“뭐, 뭐라고요?”
“재밌냐고오~? 응? 재밌냐고 이 쉬~애끼야!”
난 순간 오른발을 들어 홍성수 가슴팍에 대고 확 밀었다.
“으악!”
나는 뒤로 ‘쿵’ 소리를 내며 자빠진 홍성수 위에 잽싸게 올라탔다.
“강압 수사? 그래 강압 수사다, 이 새꺄. 사람 죽이고 들어온 놈의 새끼가 인권을 나불거려? 너 같은 새끼 여기서 죽어 나가도 난 그냥 옷 벗으면 그만이야. 이 씨발 새끼가~”
난 지금 당장이라도 이 홍성수를 죽일 수 있을 거처럼 소리를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