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소뿔 단김에 뽑다간 소뿔에 찔려 죽어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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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쉬키들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김필중이 책상 앞으로 걸어 나온다.
“우선···”
장창선과 나 사이를 지나 책상 앞 가장자리에 엉덩이를 걸치고 섰다.
“우리 안에 있는 쥐새끼부터 이야기해보지.”
김필중 얼굴에 묘한 미소가 스쳤다.
“최용구 니, 우리 수원 지검에 간부가 몇 명인 줄 아나?”
“검사장님까지 합해서 총 15명입니다.”
“검사장님이 쥐새끼일 리는 없을 거고···.”
“네, 맞습니다.”
“그럼 14명 중에 쥐새끼가 있다는 말···.”
“네.”
“여기 지금 이 방에 14명 중에 두 명이 있어.”
“네.”
“그럼 이 방에 그 쥐새끼가 있을 확률이 2분의 14··· 7프로.”
“···”
“아! 14프로일 수도 있겠네. 나하고 장창선 둘 다 쥐새끼라면.”
“···”
“최용구 니··· 직속 상사를 쥐새끼라고 하려면 증거도 확실하겠지?”
“네, 그렇습니다.”
“그럼 지금 이 방에 쥐새끼가 있을 확률이 7프로야? 14프로야?”
“···”
즉답을 피했다. 이 방에 들어와 처음으로 김필중의 시선을 피했다. 잠깐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이럴 때는 필요하다. 내 말의 진정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김필중은 계속 나를 노려보고 있다.
나는 고개를 돌린 채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7프로입니다.”
“7프로. 그럼 둘 중에 하나라는 말인데...”
“···”
“증거··· 어딨나?”
“지금은···”
“니 방에 있나?”
“네. 가지고 오겠습...”
“아냐, 그럴 필요 없어.”
김필중이 책상 모서리에 받치고 있던 두 손을 스프링 튕기듯 튕기면 일어서더니, 상체를 돌려 책상 서랍을 열고 서류 봉투 하나를 꺼냈다.
꺼내 든 봉투를 들고 잠시 나를 보더니 봉투에서 뭔가를 꺼냈다.
사진 석 장.
그걸 혼자서 슥슥 넘겨보고는 내가 볼 수 있게 눈앞에 휙 들이밀었다.
“이건가? 당신이 확보했다는 그 증거. 우리 중에 쥐새끼가 있다는 증거. 이거 맞나?”
“네, 맞습니다.”
“당신은 이것보다 더 갖고 있겠지. 계좌 추적도 했겠지.”
“네, 당연합니다.”
김필중은 싱긋이 웃으면서 사진 석 장을 내 눈앞에서 거둬들였다.
그리고는···
“장창선”
장창선 이름을 부르긴 했지만, 장창선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다.
“······”
“왜 대답이 없나? 그새 입이 얼어붙었나?”
“저··· 차··· 차장님···”
“할 말 있나?”
“차장님. 자리를 물려주십시오. 말씀 다 올리겠···”
“물리기는 뭘 물려?”
김필중이 나를 턱으로 틱 가리키면서 말을 이었다.
“최용구 저 친구, 지금 다 알고 있는데. 내가 물어본 거 대답하는 거 다 듣고도 딴 소리야?”
“그게··· 저···”
“최용구 이 친구, 증거도 나보다 더 많이 확보한 거 같던데. 당신, 이제 빼도 박도 못해.”
김필중은 장창선을 계속 외면한 채 말하고 있다. 외면이 독한 말보다 더 무섭다.
“차장님···”
장창선이 털썩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조직에 누가 될 거라고는 생각···”
“정수명하고 당신, 얼마나 된 거야? 이렇게 된 게.”
김필중이 내게 보여줬던 사진 석 장을 장창선 앞에 툭 던지면서 말했다.
정수명.
현 정부 사회 부총리. 여당 4선 국회의원. 차기 유력 대선 주자. 현재 지지율 압도적 1위.
사진 석 장은 장창선이 정수명과 식사하는 장면, 골프 치는 장면, 반갑게 웃으면서 포옹하는 장면이 있다.
“정··· 정 장관이 먼저···”
“웬(When)을 물었지, 후(who)를 물었나? 아직 정신 못 차렸군, 장창선.”
“아··· 그게···”
“5년 됐지? 정수명이 지난 대선 때 후보 경선 나왔을 때부터지? 내가 알기로는 그런데. 최용구 당신은 언제로 알고 있나?”
나는 고개를 끄덕하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정 장관이 힘들다고··· 그때···”
“힘들면, 정치꾼이 힘들다고 애걸하면, 돈 받고 부탁 들어주는 게, 그게 검사가 할 일이야?”
“차장님, 죄송하···”
“죄송? 왜 나한테 죄송해? 국민한테 죄송해야지. 당신 그러고도 세금 받고 검사할 수 있겠어? 당신 누구를 위해서 일해? 정수명이 국가야? 대한민국의 주권이 정수명한테서 나오나?”
“아···”
“나가!”
장창선이 숙이고 있던 얼굴을 들어, 여전히 자신을 외면하고 있는 김필중을 올려다봤다.
김필중이 등지고 있는 창문에서 햇빛이 들어와 김필중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더 이상 애걸해봐야 소용없다는 걸 깨달았다. 천천히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나도 장창선의 뒤를 따라 나가려 했는데,
“최용구 넌 그냥 있어.”
김필중의 이 말에 돌아나가던 장창선이 어깨를 움찔하면서 멈춰 서더니, 문을 살포시 열고 방을 나갔다.
“이리 와 앉아.”
장창선이 나가고 난 뒤, 김필중은 소파에 앉아 나를 불렀다.
나는 김필중의 왼쪽 편 소파에 앉았다.
“그래···어떻노?”
김필중의 말투가 다시 억센 경상도 억양으로 돌아왔다.
“무슨 말씀이신지.”
“니 직속상관 아이가? 장창선. 저렇게 날리고 나니까 기분이 어떻냔 말이다.”
“날아간 건가요?”
“그럼 아닌 줄 알았나? 검사 하루 이틀 하나?”
김필중은 내가 앉은 반대 방향으로 다리를 꼬았다. 외면하고 앉은 꼴이 됐다.
잠시 어색한 침묵.
김필중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 사건... 최용구 니한테 맡긴 것도 처음부터 저 장창선이를 날리기 위한 거였어.”
“···”
“사건을 조폭 전문가인 니한테 붙여 놓으면, 내가 그 사건을 조폭 사건으로만 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장창선에게 주는 거고, 그러면 장창선 그 시키는 안심할 거라고 봤지.”
“그러셨군요.”
“그렇게 안심하고 있는 놈의 뒤를 칠 생각이었지. 최용구 니가 조폭들 열심히 잡고 다니고 있는 사이에 나는 별도로 준비를 했지.”
역시 치밀하다. 김필중.
“니 대한민국 검사의 3대 복이 뭔지 알지?”
“처갓집 복, 상사 복, 피의자 복··· 아닙니까?”
“후후 알고 있네. 장창선 저 자식, 상사 복 피의자 복이야 뭐 다들 비슷하니까 그렇다 쳐도, 저 시키 처갓집 별로거든. 뒤에서 밀어주는 처갓집이 있나, 박봉에 격무에 갑갑했겠지. 좀 있으면 큰아들 놈 장가도 보낸다 하던데.”
“···”
“그러니 정수명이가 던진 미끼 덥석 물 수밖에 없었겠지.”
“···”
“그래도 저러면 안 되지. 여기 일하는 우리 검사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건 몇 놈 빼면 다들 마찬가지 아냐? 지만 힘드나? 최용구 니도 처갓집 별로제?”
김필중이 말한 ‘열악한 환경이 아닌 몇 놈’에는 김필중 본인이 포함된다. 김필중은 장인이 용인과 안성에 골프장을 두 개 갖고 있는 땅부자다.
“내가 아까 장창선이한테도 호통을 쳤지만 검사가 어떻게 정치인과 손을 잡나? 대통령 님 임기도 아직 2년 가까이 남았는데, 레임덕을 앞당기는 차기 주자에게 줄을 대? 정신 나간 놈.”
이 대목에서 난 구역질이 날 뻔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정치 검사를 꼽는다면 당연히 백영기의 호위 무사라고까지 불린 김필중 자신이라는 걸 모르는 걸까.
만약 장창선이 정수명이 아니라 백영기에게 줄을 섰으면 훌륭한 검사라고 칭송했겠지.
세상만사 내로남불.
하지만 뭐 상관없다.
김필중이 무슨 소리를 지껄이든 내 목표는 하나, 나를 죽인 백영기를 향한 복수다.
김필중은 최종 목표에 가까이 가기 위한 징검다리로 이용할 뿐.
“네 맞습니다. 차장님.”
구역질을 참고 대답했다.
“그래도 장창선이 한 식구였는데, 나가면 변호사 개업은 할 수 있게 해줘야 하지 않겠나? 제 발로 걸어 나가게 해야지. 쫓아내면 변호사 개업도 못하고··· 그럼 뭐 먹고살겠노?”
“네 맞습니다.”
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언제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이번엔 내가 먼저 침묵을 깼다.
“오래전부터 심증은 있었는데, 최근에 기자 한 놈이 식사하자고 하더니 그걸 내밀더만. 아까 니한테 보여준 그 사진말이야. 제보라 그러면서. 흥! 보니까 꽤 오랫동안 뒤를 팠더만.”
“그러셨군요.”
“요즘 기자 시키들 정수명이라면 빤스 속까지 뒤지는 거 잘 알지? 장창선이가 거기 말린 거지. 벼~엉신.”
“근데 질문이 있습니다. 차장님.”
“질문? 그래 해봐”
“이번 수사 어디까지 할까요?”
김필중이 꼬았던 다리를 풀고 내 쪽을 보고 바로 앉는다. 싱긋이 웃는다.
담당 검사가 수사를 어디까지 할까냐고 물었다는 건 상관인 김필중의 지시만큼만 수사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어디까지 할까요?라고 물었나? 지금?”
“네. 차장님”
“하하, 이거 의왼데? 독고다이 최용구 시키 철들었나?”
“장창선 부장을 치기 위해 사건을 저에게 배정하셨다고 하셨는데, 이제 장 부장을 날렸으니 사건은 여기까지 하고 덮는 겁니까?”
김필중이 다시 한번 씨익 웃는다.
어차피 이 사건은 검찰 내부 단속용이었다.
정권 후반기 접어들면서 차기 유력자에게 줄을 대려는 검사들이 있으니, 대통령의 호위 무사인 김필중이 장창선을 본보기로 날려버린 것이다. 대통령 백영기가 아직 힘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시그널.
물론 이 뉴스는 민정 수석을 거쳐 대통령의 귀에까지 들어가야 한다. 그러면 김필중에게는 더 큰 힘이 실리고 검사장 승진 정도는 일도 아닌 게 된다.
“최용구 니, 정수명 잡고 싶지?”
이건 내 속을 떠보기 위한 질문이다. 이 정도에 넘어갈 내가 아니다.
“네, 잡고 싶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닌 거 같습니다. 타이밍이.”
김필중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자기가 하고 싶었던 말을 먼저 해주니 얼마나 이쁘겠나.
“하하, 최용구 철 확실히 들었네. 하하하.”
김필중의 웃음에 맞춰 나도 씨익 웃어줬다. 그래 이렇게 이 자의 맘에 들어서 백영기에게 접근한다. 내 복수 계획의 첫 단추다.
“니 말이 맞아. 지금은 안돼. 정수명 그 시키··· 너무 쎄. 거기다가 지금 돈을 전방위로 뿌려대고 있어. 그 자식 그 돈 다 어디서 나오는지.”
“···”
지금부터는 듣기만 한다. 이럴 땐 설교를 계속하도록 내버려 두는 게 좋다.
“돈만 뿌리겠나? 벌써 대통령 다 된 것처럼 하고 다녀. 장관은 누구, 공기업 사장은 누구, 떠들고 다니고 있지. 자리라면 마누라라도 팔아넘길 놈들 넘쳐나잖아. 모두가 정수명이 뒤를 빨고 다니는 놈들이야. 그 꼬라지 아니꼬와서 그냥 못 봐주겠단 말이야.”
“···”
“그래도 지금은 아니야. 소뿔도 단김에 뽑으라는 옛말.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말 듣고 단김에 뽑겠다고 덤벼들었다가 그 뿔에 찔려서 죽은 놈 한두 놈이겠어?”
“···”
“최용구, 이 독고다이 쉬키. 니가 딱 그렇게 소뿔에 찔려 죽기 좋은 놈이었는데. 이제 철 좀 든 거 같아 보이네.”
“감사합니다.”
“후후.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최용구 니 그때 이재훈이도 오바해서 그렇게 만든 거잖아? 소뿔도 단김에 빼라 그랬다면서 나서서. 뭐 VIP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셨긴 했지만···.”
김필중의 입에서 내 이름 석 자가 나왔다.
이건 몰랐다. 내가 흡수한 최용구의 기억 속에 없었던 사실이다.
김필중 이 자도 알고 있었다니···
순간 울컥했다.
네바다 사막 한 복판에서 말라죽어갔던 내가 떠올랐다.
입술이 부르르 떨렸다.
“이번 수사는 조폭이나 단순 살인 사건으로 덮어. 정수명이 잡는 건 타이밍을 보자고.”
“네.”
떨리는 입술을 겨우 진정시키면서 짧게 답했다.
차장 검사실을 나와 복도를 한참을 걷는 동안에도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김필중은 백영기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 정도로 생각했었다.
호위 무사인 그의 눈에 들어 백영기에게 접근하자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아니다.
내 복수 리스트에 김필중도 추가한다.
김필중 말고 얼마나 더 있을까.
몇 명이 됐든 반드시 한다.
꼭 하고야 만다.
복수.
***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대로.
검은색 대형 승용차 한 대가 빠져나온다.
승용차 뒷 좌석에 앉아 있는 남자.
사회 부총리 정수명이다.
금테 안경에 가르마를 오른쪽으로 단정하게 빗어 넘긴 정수명이 전화를 받았다.
“아~ 대표님. 어인 일이십니까?”
정수명의 목소리는 가늘고 높으면서도 쇳소리가 난다.
— ‘우리 쪽 하나가 당했습니다.’
전화기 너머 목소리는 낮고 굵다.
“예예, 저는 건강합니다. 대표님도 평안하시죠?”
정수명은 웃는 낯으로 룸미러에 비치는 운전기사를 살폈다. 기사는 운전에 집중하고 있다.
— ‘검찰입니다. 찍혀 나간 게.’
“대통령께서도 대표님 사업에 관심이 많으십니다.”
— ‘동문서답하시는 거 보니. 차 안이군요.”
“대표님만큼 서민과 국가를 위하는 애국자가 흔치 않지요.”
— ‘한 놈 잡아주셔야겠습니다.’
“언제 한 번 설렁탕 한 그릇 하시죠. 제가 사겠습니다.”
— ‘문자 보냅니다.’
“전화 주셔서 감사···”
‘딸깍’
말을 끝맺기도 전에 상대가 전화를 끊어 버렸지만, 정수명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정수명은 문자를 확인했다. 폰에 찍힌 건 딱 석 자.
정수명은 문자를 폰에서 바로 지우고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곤 방금 지운 문자 석 자를 속으로 중얼거렸다.
‘최. 용.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