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 대통령의 호위 무사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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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최용구의 몸속에서 그의 기억, 지식, 습관을 모두 흡수했다.
맡았던 사건들.
뻐팅기는 용의자를 심문하는 노하우.
직속상관과 동료의 성향 등등···.
내 방에 배속돼 일하는 계장 정화용이 출근하는 나를 보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군기가 바짝 들었다.
“검사님, 경찰에서 태국 파타야 20대 청년 살인 사건 용의자 홍성수에 대해 구속영장 청구를 신청하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업무 보고가 곧 출근 인사다.
“그래요? 우리도 영장 청구 준비해주세요.”
“네?”
정화용이 큰 눈을 더 크게 뜨면서 놀란다. 이런 경우 최용구는 “그런 걸 뭘 물어봐? 영장 바로 때리는 거지.” 라고 반말로 받아쳤었기 때문이다.
“뭘 그리 서 계세요? 영장 치자구요.”
“아··· 네··· 거··· 검사님.”
어리둥절해하며 돌아서는 정화용을 보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최용구 자식, 그동안 얼마나 구워삶고 들들 볶아댔으면 사람이 저렇게 됐을까.
“아참, 검사님.”
자리로 돌아가던 정화용이 멈춰 돌아서면서 말했다.
“네 계장님”
“아···.”
정화용이 이번엔 더 크게 놀란다. 내가 ‘계장’ 뒤에 ‘님’까지 붙였기 때문이다.
“저··· 용의자 홍성수가 입국할 때 공항에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인터뷰요?”
“네. 워낙 언론에서 관심을 가지는 사건이라··· 기자들이 몰려갔던 거 같습니다. 여하튼 그거··· 한 번 보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유튜브 KBS 채널에 떠 있습니다.”
수사 짬밥이 꽤 되는 정화용이 저렇게 말한다는 건, 그 동영상에서 뭔가 중요한 의미가 있는 감을 잡았다는 뜻이다.
많은 현장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정화용의 감. 믿어보기로 한다.
“네, 알겠습니다. 아, 그러지 말고 이리로 와서 같이 보시죠.”
내가 책상 위에 있는 노트북을 정화용 쪽으로 조금 돌리면서 말했다.
“네? 가... 같이요?”
“네. 같이요. 계장님 코멘트도 들어볼 겸···”
“아··· 네. 검사님··· 그럼.”
쭈뼛쭈뼛 내 옆으로 오는 정화용을 보니 난 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난 이전의 무지막지한 최용구가 아니라 매너 좋은 이재훈이라니까.
유튜브에서 홍성수가 나오는 동영상을 열었다.
인천공항 입국장에 홍성수가 들어서자 기자들 수십 명이 몰려가 홍성수를 둘러쌌다.
— ‘살인 혐의 인정하십니까?’
기자 한 명이 스마트폰을 홍성수 입 앞에 바짝 들이대면서 물었다.
— ‘뭐요?’
홍성수가 질문한 기자를 죽일 듯이 노려본다. 움찔하는 기자가 한번 더 묻는다.
— ‘20대 청년을 무참하게 살해하셨는데···’
— ‘뭐? 살해? 이~씨~ 누가 누구를 죽였다는 거야? 나 아니거든? 그 새끼는··· 아··· 씨바. 뭘 좀 알고나 이야기해! 알고나 이야기하라고! 기레기···.’
나는 여기서 멈춤 버튼을 눌렀다. 기자를 노려보고 있는 홍성수의 사나운 눈매가 클로즈업으로 스크린에 가득 찼다.
“검사님. 야~ 홍성수 이 놈 이거 만만치 않겠는데요?”
“···”
“이 놈 이거 이전에 검사님께서 촥촥 단칼에 베어버리신···”
정화용이 칼을 쥐고 허공을 가르는 제스처를 한다.
“21세기 파 조폭 놈들도 이렇게 당당하지는 않았는데? 야~ 이놈 이거··· 보통이 아니네요.”
21세기 파 조폭 소탕은 3년 전 최용구를 일약 영웅으로 만든 사건이다.
그 사건에서 조폭들은 여자를 납치해 윤간한 뒤 음부를 도려내고, 남자는 회칼로 난자해 국부를 잘라내 인육을 나눠 먹었다.
하지만 정화용 말대로 이 잔인한 놈들도 막상 카메라를 들이댔을 때는 모자를 쿡 눌러쓰고 고개를 들지 못했다.
“검사님, 21세기 파 조폭 놈들도 검사님한테 수사받을 때는··· 아 물론, 검사님께서 기싸움에서 그놈들을 완전 팍팍···”
정화용이 이번엔 칼이 아니라 양 손을 펴서 당수도 치는 시늉을 한다.
“눌러 놓으셨기 때문에 그랬던 거겠지만··· 여하튼 수사받을 때는 땅바닥에 붙어서 빌빌 기다시피 했었잖습니까? 야~ 그때 참··· 우리 검사님 멋지셨죠. 제가 거기 반해서 우리 최용구 검사님 방에 들어오게 된···”
“계속 보시죠”
난 최용구 칭찬을 더 듣기 싫어서 유튜브 재생 버튼을 다시 눌렀다.
“아. 예··· 검사님. 흠흠”
— ‘이 사건. 나 아니야. 나도 함정에 빠진 거라고~. 글고 말이야, 나··· 잘못 건드리면 재미없어. 나··· 가만히 안 있을 거야. 두고 보라구요. 응?’
홍성수가 자신을 비추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소리친다.
“야~ 홍성수 이놈 이거. 뭘 믿고 이러는 거죠? 이놈 데려다가 검사님께서 본 때를···”
‘드르륵~’
때마침 내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폰 화면에 ‘부장’이라고 뜬다. 강력부 부장 검사 장창선이다.
“아··· 검사님. 전 그럼 이만···.”
정화용이 내 폰 화면을 보더니 잽싸게 자기 자리로 갔다.
난 폰을 바로 받지 않았다. 진동이 정확히 다섯 번 울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받았다.
“네, 부장님.”
— ‘어이~ 독고다이. 왜 전화를 이제 받아?’
장창선은 항상 최용구를 저렇게 ‘독고다이’라 불렀다. 부장인 자기한테 보고를 잘하지 않고 혼자서 밀어붙이는 최용구의 수사 스타일 때문에 그렇다.
“수사 자료 검토 중이었습니다.”
— ‘태국 파타야 사건?’
“네 맞습니다.”
— ‘안 그래도 그 사건 때문에 차장님께서 찾으셔. 지금 당장.’
“차장님께서요? 김필중 차장님요?”
— ‘짜식이. 그럼 우리 지검에 차장이 김필중 차장 말고 또 있냐? 하실 말씀이 있으시대. 지금 바로 차장 검사실로 올라와. 나도 같이야.’
“알겠습니다. 바로 올라가겠습니다.”
— ‘잠깐. 차장님한테 올라가기 전에 나한테 보고할 거 없어?’
난 잠깐 멈칫했다가 대답했다.
“아뇨. 없습니다.”
— ‘흥! 독고다이 시키. 너 또 니 맘대로 차장님 앞에서 내가 모르는 거 혼자서 질러대면 이번에는 진짜 가만 안 둔다. 알았어?’
난 대답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지금은 장창선 같은 부장 나부랭이의 저런 협박 아닌 협박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다.
김필중 수원지검 차장 검사.
검찰 조직에서는 차장이 부장보다 높다.
부장은 형사부 특수부 같은 한 개 부서의 장이지만, 차장은 각 검찰청의 지존인 검사장 다음의 넘버 투를 말한다. 그러니까 차장에서 ‘다음 次’는 일반 회사에서처럼 부장 다음이라는 뜻이 아니라, 검사장 다음이라는 의미의 ‘次’다.
지금 나를 부른다는 김필중은 검사장은 아닌 차장 검사지만 대한민국 여느 검사보다도 파워가 세다. 더군다나 나에게는 더더욱 중요한 인물이다.
나의 궁극적 타겟인 대통령 백영기가 후보였던 시절, 그를 둘러싼 모든 의혹을 불식시킨 백영기의 ‘호위 무사’였기 때문이다.
백영기의 호위 무사 김필중이 나를 부른다.
올 것이 왔다. 그런데 좀 빨리 왔다.
***
“어이, 최용구. 태국 사건 맡더니만 그새 얼굴이 태국 놈들처럼 이래 새까매짔나?”
나를 보자마자 김필중이 거친 경상도 사투리를 쏟아냈다. 김필중의 고향은 거제도다.
“하하, 차장님. 최용구 이 친구, 태국이 얼마나 가보고 싶었는지 사건 자료 본다는 핑계로 유튜브 비디오만 열심히 보더니만 태양빛이 아니라 모니터 전자파에 쏘여서 얼굴이 이렇게 까맣게 타버렸나 봅니다. 하하하.”
같이 들어온 장창선이 생글생글 웃으면서 나 대신 대답했다. 김필중을 나름 웃겨보겠다고 한 말이었는데 김필중은 웃음은커녕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최용구. 사건은 좀 파봤나? 홍성수 사건 말이야.”
김필중은 의자에 몸을 깊숙이 파묻고, 의자를 좌우로 돌려가면서 틱틱 내뱉듯이 말한다.
말하는 중간중간 상대를 얕잡아보는 미소를 슬쩍슬쩍 흘리는 것이 기분 나쁘지만, 검사장 승진을 눈앞에 둔 대통령의 호위 무사, 검찰의 차세대 주자답다.
“네, 차장님.”
“홍성수 그 시키 인천 공항 들어오면서 한 인터뷰도 봤나?”
정화용이 보라고 하지 않았으면 놓칠 뻔했다.
“네 봤습니다.”
“소감은?”
나한테 한 질문이었는데 장창선이 중간에 끼어든다.
“아, 차장님. 저도 그 비디오 봤는데요, 홍성수 그 자식, 간이 완전 배 밖에 나온···”
하지만 김필중은 이번에도 장창선 쪽으로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고, 때문에 장창선은 머쓱해하며 말을 중간에 끊을 수밖에 없었다. 이럴 거면 장창선은 왜 불렀을까.
“맹랑한 놈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맹랑? 풉! 그거뿐이야? 실망인데? 최용구.”
상대를 일단 깎아내리고 시작하는 김필중의 수법. 이런 거에 기죽지 않는다.
“홍성수 나이 이제 24세. 어린놈이 저나 심지어 차장님마저도 한 번 못 가져봤음직한 든든한 배후를 일찍부터 챙겨놓고 까불고 있으니 맹랑하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말하는 중간, 김필중의 뿔테 안경 너머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걸 봤다.
특히 ‘든든한 배후’를 말했을 때, 이 방에 들어온 이후 단 0.1초도 시선을 주지 않았던 장창선 쪽으로 김필중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다가 돌아오는 걸 캐치했다.
나 이재훈은 뉴욕 월가에서 타이밍의 귀재로 통했다. 금융에서 타이밍은 알파이자 오메가인데 타이밍의 귀재였으니 난 금융 천재로까지 불릴 수 있었다. 물론 그 덕분에 백영기의 눈에 들어 이렇게 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최용구의 돌파력, 나의 타이밍 캐치 능력.
난 최용구의 몸 안에서 이 둘을 조합해 백영기에게 복수를 할 요량이고, 지금은 긴 복수 여정의 첫 번째 관문인 김필중을 벗겨낼 생각이다.
“좀 더 자세하게 떠들어 봐”
김필중의 목소리 톤이 조금 높아졌다.
장창선이 다시 끼어든다.
“배후는 무슨··· 기껏해야 조폭 놈들 몇 놈 아니겠습니까? 차장님.”
하지만 김필중은 계속 무시다. 나만 쳐다보고 있다.
“차장님. 아시겠지만 저 최용구는 인육까지 먹은 잔인한 조폭 놈들도 쉽게 때려잡은 바 있습니다. 그런 제가 조폭 따위를 든든한 배후라고 말씀드렸겠습니까?”
장창선의 고개가 나 쪽으로 홱 돌아왔는데, ‘야! 독고다이. 너 나한테 보고 안 한 거 없다 그랬잖아?’라고 표정으로 말하고 있다. 하지만 장창선은 나도 무시한다.
김필중이 의자에 깊숙이 묻었던 상체를 일으켜 책상 위에 팔꿈치를 괴고 양손 깍지를 낀 자세를 했다. 시선은 여전히 나한테 고정시킨 채다.
“둘러대지 말고 결론을 말해. 뭐야? 그놈 뒤에 있는 거.”
나는 잠시 뜸을 들였다. 이래야 상대의 관심도가 더 증폭되는 법이다. 김필중이 침을 꼴깍 삼키는 걸 확인한 다음에야 입을 열었다.
“여의도입니다.”
“여의도?”
김필중의 눈꺼풀이 씰룩했다. 아무리 포커페이스에 능통한 김필중이라지만 자율 신경의 작동까지 컨트롤하지는 못한다.
장창선이 또 끼어들었다. 이번엔 삿대질까지 한다.
“야! 최용구. 둘러대지 말라고 차장님께서 말씀하셨잖아. 여의도가 뭐야? 여의도가?”
“장창선 부장.”
비록 시선은 아직 주지 않았지만 김필중이 처음으로 이름을 불렀다.
“아! 네. 차장님.”
장창선은 바로 머리를 조아린다.
“당신 가만있어. 내가 떠들라고 할 때까지 입 열지 마.”
“아···”
“여의도라면 정치인이지, 뭐긴 뭐야? 방송국 딴따라겠어? 증권사 애널이겠어? 검찰청 부장 씩이나 돼 가지고 그 정도 감도 없나?”
“음···”
장창선은 이제 끼어들지 못할 것이다. 완전 진압됐다.
“여의도 어디야? 여권이야? 야권이야?”
김필중의 말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여권입니다.”
“국회야? 정부야?”
“둘 다입니다.”
“두 놈이란 말이야?”
“의원 겸직 장관입니다.”
“알았어. 거기까지.”
의원 겸직 장관이면 몇 명 안 된다. 더 나가면 이름이 나온다. 김필중이 여기서 끊은 이유다.
김필중이 헛기침을 하면서 책상 위에 있는 크리넥스를 뽑으려고 상체를 돌렸다. 머릿속에 정리할 생각이 많다는 신호다.
크리넥스에 침을 뱉고 입 주변을 닦고 휴지통에 크리넥스를 버리는 데 걸린 시간, 2분.
그 정도면 지금까지 들은 정보를 정리하고 대책까지 내오는데 차고 넘치는 시간이다.
정리가 끝났을 테니 김필중의 머릿속에 하나 더 넣어주기로 한다.
“여권 정치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김필중이 다시 뿔테 안경 너머로 나를 노려본다.
“최용구. 너 지금···.”
장창선도 한마디 하려 했지만, 김필중 눈치를 보느라 말을 멈췄다.
“말해봐.”
김필중이 건조하게 뱉었다.
“조폭의 뒤를 봐주고 있는 것. 하나 더 있습니다.”
“하나 더?”
“네.”
“뭔데 그건?”
“여깁니다.”
“뭐, 뭐?”
이번에도 외마디 소리를 지른 건 장창선이었다.
하지만 김필중의 표정엔 변화가 없다.
“여기라면, 우리 검찰이란 말이야?”
“네”
“우리 청이야?”
“네”
“배후야? 협력이야?”
“협력입니다.”
“장관이 배후고 검찰은 협력이다?”
“네.”
“협력한 놈은? 검사야? 수사관이야?”
“검사입니다.”
“평검사야? 간부야?”
“간부입니다.”
드디어 김필중이 벌떡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