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9화] 킹덤
사심희를 태운 승용차가 남해 미조항에 도착한 시각은 점심 무렵이었다.
우리는 근처의 식당에서 생선구이 백반을 먹고 선착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간단한 낚싯짐을 들고 낯선 보트에 오르고 있을 때, 그녀가 물었다.
“빌린 거예요? 못 보던 보트인 것 같은데.”
“빨리 타.”
“쑥섬으로 가는 거 아녜요? 예전에는 섬에 보트를 댈 수 없었잖아요.”
“방법이 생겼다고 들었어.”
지난여름에 내가 구입한 보트였다.
그동안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내려와 쑥섬의 공사 진행 상황을 수시로 점검해 왔다.
“바람이 너무 시원해요. 더 세게 달려요!”
늦가을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사심희가 콧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보트가 섬에 점점 가까워지면서 예상했던 그녀의 반응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게슴츠레 눈을 가늘게 뜨고 섬의 어딘가를 가리켰다.
“정말이네요. 섬에 전에 못 보던 게 생겼어요.”
“선착장이 생겼다고 들었거든. 편하게 보트를 댈 수 있다고.”
나는 시치미를 뚝 떼면서, 선착장 쪽으로 보트를 가까이 가져갔다.
선착장은 예전에 잠깐씩 보트를 댈 수 있었던 위치에서 정반대인 섬의 북쪽에 지어져 있었다.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풍랑을 자연적으로 피하려는 목적이었다.
“저기 좀 봐요. 못 보던 건물이 있어요!”
“이런……. 이젠 무인도가 아닌 것 같네. 누가 여기에 집을…….”
“남의 사유지라면……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한번 구경이나 해 보지 뭐.”
어색한 연기였다.
다행스러운 점은 그녀가 아직 내 연기를 믿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양쪽으로 작은 보트 두 대씩 정박할 수 있는 작은 선착장이었다. 내가 계류줄을 단단히 묶고 있을 때, 그녀가 섬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녀가 발견한 건물은 선착장에서 20여 미터 들어간 바닷가에 있었다.
여전히 망설이고 있는 그녀의 손을 잡고, 나는 그쪽으로 성큼 앞장을 섰다.
“가 보자. 살림집 같지는 않고, 무슨 식당 같지 않아?”
“그러게요. 밖에 수족관이 있는 걸로 봐서는 그런 것 같아요.”
단층으로 지어진 건물에는 정면과 측면이 통유리창으로 둘러져 있었다.
억지로 내게 이끌려 온 사심희는 도둑질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연신 주변에 사람이 없나 두리번거렸다.
“이야! 정말로 식당이네. 안에 인테리어가 장난이 아닌데?”
옅은 선팅 처리가 되어 있는 유리창 너머를 가리키며, 나는 호들갑스럽게 그녀의 관심을 유도했다.
잠시 후 조심스러운 눈초리로 내 뒤에 다가선 그녀의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어쩜……. 특이한 식당이네요. 이렇게 넓은 공간에 테이블이 세 개뿐이라니. 오히려 주방이 더 큰데요.”
“이런 곳에 식당을 차리려는 사람은 대체 누굴까?”
“그러게요.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야 누가 무인도에 식당을 열 생각을…….”
그 미친놈이 바로 나다.
나를 위해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다시피 한 사심희.
카메라를 들고 다니거나 어반자TV의 먹방만을 감당하기엔, 그녀의 재주가 턱없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배를 타고 와야만 입장할 수 있는 비밀의 식당.
오직 세 개의 테이블만으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식당.
정해진 메뉴 없이 셰프가 만들어 주는 그날의 제철 해산물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식당.
그녀를 위해 나는 세상에 없는 식당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래도 이런 곳에서 식사를 하면 근사하긴 하겠어요.”
넋을 잃고 창가에 매달려 있는 사심희를 이끌고,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나중에 오픈하면 한번 와 보지 뭐.”
“그래요. 주인 나타나기 전에 빨리 가요.”
“저쪽에 갯바위로 향하는 등산로가 보이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식당 뒤쪽에 나 있는 오솔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구불구불하고 경사진 길에는 나무로 만든 계단이 섬의 정상까지 이어져 있었다.
“헉헉!”
“아이고, 힘들다.”
10여 분이나 올랐을까?
오솔길이 끝나는 지점에 아주 널찍한 잔디밭이 펼쳐졌다. 그리고 햇살이 부서지는 그곳에 또 다른 2층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만 돌아가요. 아까 그 식당 주인이 사는 곳인가 봐요.”
“가만……. 아직 사람이 살지는 않는 것 같아.”
“그래도…….”
“저길 봐. 갯바위로 가려면 어차피 여길 지나갈 수밖에 없어.”
나는 손가락으로 남쪽을 가리켰다.
원숭이 바위의 뒤통수가 햇살에 반짝거리고 있었다.
주저하는 사심희를 다시 이끌고 나는 건물의 울타리를 한 바퀴 돌았다.
그리 큰 집은 아니었지만, 울타리 안쪽으로 보이는 정원이 몹시 잘 정돈되어 있었다.
“부럽네요. 무인도에 이렇게 예쁜 집을 지었다니.”
“…….”
사심희가 넋을 잃고 그림 같은 집을 바라보는 동안, 나는 나무 울타리의 쪽문을 슬그머니 밀었다.
그가 또 뭐라고 할 것 같아, 나는 정색을 하며 선수를 쳤다.
“괜찮아. 아직 사람이 살지 않는 것 같아. 울타리를 봐. 갯바위까지 쭉 이어져 있잖아.”
“……알았어요.”
쪽문을 비집고 들어간 우리는 잔디밭을 따라 아래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양쪽으로 낮은 울타리가 갯바위 입구까지 이어져 있는 것을 살피며, 사심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섬 주인이 그 갯바위를 개인 낚시터로 사용하려는가 봐요.”
“그런 것 같네. 좋은 포인트였는데 아쉽군. 오늘이 마지막이다 생각해야지 뭐.”
마침내 다시 찾은 전설의 갯바위.
탁 트인 암반을 마주한 사심희가 신이 나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두 번째 왔는데도 처음 온 기분이네요. 저쪽 원숭이 바위도 그대로고, 저 아래 수중여들도 그대로고, 그리고…….”
어린아이처럼 사방으로 손가락질을 해 대던 그녀가 멈칫했다. 나는 그녀가 가리키는 곳으로 눈길을 돌리기도 전에 깜짝 놀라는 시늉을 했다.
“어? 또 새로운 게 있네?”
“저게 뭐죠?”
“내가 보기에는 피싱 피어가 아닐까 싶어.”
“아…….”
피싱 피어(Fishing Pier).
나는 쑥섬을 우리 둘만의 공간으로만 삼을 계획은 아니었다. 사심희가 발견한 것은 해변을 따라 섬의 전체를 에워싸고 있는 목재 덱이었다.
언덕 위의 이층집과 전설의 갯바위를 제외하고, 나는 처음부터 낚시꾼들을 위한 최고의 낚시터로 섬을 개방할 계획이었다.
“잠깐이나마 섬 주인을 욕심쟁이로 오해할 뻔했네요. 세상에 이런 건 처음 봐요. 섬 주변 어디에서도 편하게 낚시를 할 수 있게 되는 거잖아요.”
“정말이네. 아마 낚시를 엄청 좋아하는 사람인가 봐.”
여전한 유체 이탈 화법.
그녀에게 보여 줘야 할 것은 전부 선보였다. 지금부터는 마지막 퍼포먼스를 시작할 차례였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던 퍼포먼스.
나는 사뭇 무거운 얼굴로 변하여, 낚시 가방의 지퍼를 열었다.
“오늘은 뭘 잡을 계획인가요?”
“대상어는 없어.”
“그럼 이번에도 다 잡아 낚시?”
“비슷해. 하지만 오늘은 약간 다를 거야.”
습관처럼 카메라를 꺼내 든 그녀에게 나는 손을 좌우로 가로저었다.
“촬영은 필요 없어. 사시미 님에게만 보여 주려는 낚시니까. 그냥 눈으로만 봐 줘.”
“나에게만 보여 주는 낚시라고요? 무슨 그런…….”
“…….”
나는 입을 꾹 닫은 채, 낚싯바늘에 크릴 한 마리를 걸었다. 그리고 힘차게 첫 번째 캐스팅을 시도했다.
“밑밥도 없이 해요?”
“그래. 그리고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앞으로 1분 내에 돌돔 한 마리가 올라올 거야.”
“점점…….”
그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팔짱을 낀 채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잠시 후 물속을 지나치는 돌돔 떼들을 지켜보던 나는 낚싯대를 번쩍 치켜들었다.
“돌돔, 4짜 중반!”
뜰채는 필요치 않았다.
수면 위에서 허우적거리는 얼룩말 무늬를 물고기를 내려다본 사심희가 키득거렸다.
“정말이네요? 얻어걸렸군요. 하긴 전에도 비슷한 경우들이 있었죠.”
그녀는 아직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들어뽕을 시도하다가 돌돔을 떨궜지만 나는 상관하지 않았다.
미끼를 갈아 끼우고 채비를 흘린 지 5분이 흘렀다.
나는 재차 낚싯대를 곧추세우며 그녀에게 크게 외쳤다.
“이번에는 볼락이야. 크기는 20센티 초반!”
빠른 강제 집행으로 올라온 물고기는 정확히 중치급 볼락이었다. 사심희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녀의 얼굴에 작은 의혹의 빛이 번지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다시 채비를 멀리 던졌다.
채비는 정확히 내가 노리는 수중여의 밑동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이번에는 감성돔이 올라올 거야. 크기는…….”
감성돔 무리에서 대장격으로 보이는 대어가 달려오는 순간, 초릿대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4짜 중반!”
챔질과 동시에 어종과 사이즈를 외쳤다.
벌써 세 번째 퍼포먼스가 이어지는 중이었다.
사이즈에 비해 힘이 센 녀석이었다.
사심희의 얼굴에서 점점 핏기가 사라지는 모습을 힐끔거리며, 나는 빠르게 채비를 회수했다.
잠시 후 그녀에게 4짜 감성돔을 슬쩍 보인 뒤, 나는 낚싯대를 내려놓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죠? 어떻게 미리 안 거예요?”
그녀가 뒷걸음질을 치며 내게 물었다.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잠시 막막했다. 토끼처럼 변한 그녀의 눈동자를 정면으로 마주하기 어려웠다.
영원한 나만의 비밀로 감추려 했었다.
그녀에게 밝혀야 할지 수없이 많은 갈등의 밤을 지새웠다. 고민의 끝에 그녀에게만은 모든 비밀을 털어놓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지금이 그 순간이었다.
나는 멀리 바다 쪽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마른 입술을 떼었다.
“많이 놀랐을 거야. 지금 본 그대로야. 내게는 물속을 들여다보는 능력이 있어.”
“……믿기지가 않아요. 어떻게 사람에게 그런 능력이.”
“처음엔 나도 그랬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노라 결심했지만, 사시미 님에게만은 알려 줘야 할 것 같았어.”
“…….”
그녀는 침묵했다.
나는 거침없이 다음 말을 이어 갔다.
“그래. 어쩌면 나는 돌연변이인지도 몰라. 심지어 미친놈인지도 모르고.”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까 그랬잖아. 무인도에 식당을 지은 사람이 틀림없이 미친놈일 거라고.”
나는 천천히 사심희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내 말의 의미를 되짚고 있는 눈치였다.
“그럼…… 우럭 님이 이 섬을…….”
“그래. 해안가에 식당을 짓고, 언덕 위에 집을 짓고, 섬 전체를 낚시터로 만든 미친놈이 바로 나였어.”
“아…….”
충격에 충격이 더해진 상황.
나는 그녀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 잠시 후 그녀의 얼굴에 약간의 생기가 돌아온 것을 확인하고, 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했던 말을 꺼냈다.
“돌연변이이자 미친놈이야. 하지만 그게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야. 그런 나라도 괜찮다면…….”
“…….”
“나와 함께 여기 우리만의 왕국의 주인이 되어 주지 않겠어?”
“…….”
수줍게 웃고 있는 내 눈길을 피해 그녀가 고개를 떨궜다.
그러나 잠시 후 그녀가 고개를 들었을 때는, 그녀의 큰 눈망울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기다렸어요. 저는 아무래도 좋아요. 미친놈도 좋고, 돌연변이도 괜찮고, 심지어 물고기라도 상관없어요. 그게 우럭 님이라면…….”
그녀가 와락 내 가슴속으로 날아들었다.
시간도, 바다의 조류도, 공중을 떠도는 미세먼지도 모두 정지해 버린 것 같았다.
찬 바람 부는 갯바위 위에서, 나와 그녀는 한참 동안 그렇게 석상처럼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