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낚시로 인생 역전-128화 (128/130)

[제128화] 인생 역전

3일간의 축제가 마무리되고 있을 무렵.

로스카보스의 항구에는 사람들의 술렁이는 소리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그들의 시선은 일제히 한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시상식이 열리고 있는 무대에 걸린 초대형 청새치였다.

마지막 우승팀이 호명도 되기 전이었다.

나와 우리 팀원들이 서 있는 곳으로 카메라의 플래시가 연신 터지고 있었다.

잠시 후, 사회자의 떠들썩한 장내 방송이 귓가를 울렸다.

“디 오버올 위너 이즈…… 팀 어반자! 프롬 사우스 코리아!”

정신이 아득해졌다.

사람들의 술렁임이 커다란 환호성의 파도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무대에 오르던 도중, 사람들의 한바탕 웃음소리가 터졌다. 다리가 후들거려 어쩔 수 없었다. 내가 계단에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하마터면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던 것이다.

머쓱하게 웃으며 무대에 오른 우리는 사람들의 환호에 손을 흔들었다.

멀리 지구의 반대편에서 날아온 우리들을 향해 사람들의 눈동자들이 별처럼 반짝거렸다.

나는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곁에 있는 사심희에게 속삭였다.

“내 얼굴 좀 꼬집어 봐 줄래?”

말을 마치자마자 그녀의 입술이 내 볼에 닿았다.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매만지는 순간, 모든 것이 더욱 꿈결처럼 멀어졌다.

히죽거리며 우리를 올려다보는 준서의 눈길을 피해, 나는 뒤쪽에 매달린 육중한 생명체로 고개를 돌렸다.

무려 209킬로그램의 청새치.

대회의 공식 기록이자, 우리에게 종합 우승과 마지막 날의 데일리 잭팟을 안겨 준 엄청난 선물이었다.

먼저 단상에 올라와 있던 2위 미국의 제임스 후크 팀과 3위 호주의 힐디치 팀이 나에게 엄지를 내미는 모습도 언뜻 비쳤다.

펑! 펑! 펑!

대회의 전야제보다 훨씬 아름다운 폭죽들이 동시에 하늘로 솟구치고 있었다.

더 이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는 또다시 누군가의 얼굴이 맴돌기 시작했다.

수십 년 전에 돌고래와 함께 떠난 외삼촌.

나는 그가 이곳 태평양의 푸른 바다에서 그렇게 행복한 모습으로 살아 계시리라, 그렇게 믿고 싶었다.

* * *

다음 날 오전.

아침 식사를 마친 우리 일행은 공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운전석에 앉은 게코 선장은 사심희와 속닥거리느라 입을 쉬지 않았다.

전날 밤 늦은 시각까지 와인을 마시며 자축을 하느라, 그의 튀어나온 눈자위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사심희가 정리해 준 내용에 따르면, 전날 지역 언론에서 우리 팀의 우승 소식이 대서특필되었다는 얘기였다.

한국에서 찾아온 무명 아마추어로 구성된 팀이 경이적인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으며, 특히 팀을 이끈 주인공은 프로 경력이 전무한 낚시 유튜버라는 내용이 골자였다.

한국 나이로 불과 10살에 해당하는 준서 또한 대중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준서는 전날 기자들의 인터뷰에서 조만간 다시 대회에 출전하러 올 거라며 당돌한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게코 또한 이번 대회 우승으로 큰돈을 거머쥐었다.

당초에 나와 계약한 기본 수당은 물론, 종합 3위 팀에게까지 주어지는 ‘베스트 캡틴’에 해당하는 상금을 별도로 챙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게코 선장님이 고맙대요. 덕분에 새 요트를 장만할 거라고 하시네요.”

사심희가 전해 준 그의 감사 인사에, 나는 룸미러를 통해 씩 웃어 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지나쳐 가는 로스카보스의 풍경을 힐끔거리며 사심희가 장난스럽게 투덜거렸다.

“여기까지 와서 관광도 제대로 못 하고 가네요.”

“나도 아쉬워. 나중에 준서가 출전하게 되면, 그때 제대로 놀다 가자고.”

준서의 학업 일정 때문에 더 이상 머무를 수는 없었다.

영원히 가시지 않을 것만 같은 흥분과 아쉬움을 뒤로한 채, 우리는 공항에 도착했다.

게코 선장과 뜨거운 악수를 나누고 우리는 탑승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사심희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내게 물었다.

“한국에는 소식을 알린 거죠?”

“당연하지.”

“누구에게 제일 먼저 연락했어요? 아마도 제일 기뻐하실 백상효 프로님이겠죠?”

“그랬지. 하지만 제일 먼저는 부모님이었어.”

전날 밤 부모님과의 통화를 떠올리자 웃음이 났다.

큰 낚시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는 내 말에, 부모님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뭔 대단한 물고기를 잡는다고 멕시코까지 갔다냐. 다음에는 그렇게 멀리 갈 것 없다. 충주에서 열리는 붕어 낚시 대회가 있던데 나랑 거기나 나가자꾸나.’

특히 아버지의 천진난만한 반응은 나를 한참 동안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 준서의 보육원 식구들과 학교 친구들에게 줄 기념품을 사느라 우리는 면세점을 두 바퀴나 돌았다.

잠시 후 또다시 길고 험난한 여정에 대비하며, 우리는 비행기 좌석에 앉자마자 억지로 잠을 청했다.

* * *

“저기! 나왔다!”

인천 국제공항 입국장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갑작스러운 플래시 세례에 뒤쪽에 연예인이 따라 나온 줄 알았다.

“강유록 프로님 되시죠? 월간낚시에서 나왔습니다. 비즈비 우승 소감을 한마디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피싱티비 이종규 기자입니다. 시간을 좀 내 주시면 정식 인터뷰를 요청드리고 싶은데요.”

낚시 관련 잡지와 케이블 방송사에서 나온 기자들이었다.

그들에게 명함을 건네고 정중하게 인터뷰를 나중으로 미룬 이유는, 뒤에서 웃고 있던 다른 사내 때문이었다.

백상효 프로였다.

일렁이는 눈동자를 감추지 않은 채, 그가 나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서 있었다.

“백 프로님…….”

“고생했어. 우승까지는 나도 예상하지 못했는데.”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솔직히 공항에 누가 마중을 나와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몇몇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는 것만으로 놀라웠다. 그런데 백상효가 나를 직접 나와 있는 모습에 내가 큰 사고를 치긴 쳤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어이! 금메달을 따신 우럭 님이 드디어 금의환향하셨나? 유명 인사가 되시더니 우린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야. 하하하.”

장난기 섞인 목소리.

깜짝 놀라 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니, 아니나 다를까 피싱 어벤저스 멤버들이었다.

“먹지도 못할 꽃다발은 준비하지 않았어. 네가 쑥스러워할 것 같아서.”

“우승 트로피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 한번 봅시다. 허허허.”

반가운 얼굴들.

그들의 정겨운 목소리를 듣고서야, 나는 비로소 한국에 돌아왔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벌쭘하게 서 있던 준서가 장재준 영감을 발견하고 쪼르르 달려가 그에게 안겼다.

긴 비행으로 피곤에 지친 사심희도 너무 반가워 한걸음에 그들에게 달려갔다.

“어서 가자. 근사한 축하 파티가 기다리고 있거든.”

보람이가 내 짐을 낚아채며 앞장을 섰다.

몇 걸음 걸어가던 그가 고개를 휙 돌려 백상효에게 눈짓을 보냈다.

“백 프로님도 함께 가셔야죠.”

“저는…….”

“사부님이 자리를 빛내 주셔야죠. 무조건 따라오세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집에도 못 가고 곧바로 끌려가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그들의 뒤를 따랐다.

공항을 빠져나오는 길에 가만히 생각해 보니, 준서를 먼저 평택에 데려다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잠깐만요. 준서는 내일 학교 때문에 먼저 데려다주고 와야 할 것 같아요.”

저녁이 가까운 시각인지라, 서둘러야 할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내 말을 들은 멤버들의 표정이 조금 수상했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서, 설마…….”

나는 말을 더듬었다.

그러자 장재준 영감이 아련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최종 결과가 나왔습니다. 준서는 오늘 우리 집에서 묵을 겁니다. 평택에는 내일 나와 함께 가서 인사를 나눌 예정이고 말입니다.”

또 하나의 좋은 소식이었다.

지난여름 장재준 영감은 준서의 입양 절차를 개시했고, 좀처럼 심사 결과가 나오지 않아 주변의 애를 태우고 있었다.

“할아버지…….”

입양 계획을 알고 있던 준서 또한 마음을 졸이며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그는 장재준 영감을 올려다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할아버지가 뭐냐? 이제부터 아버지라고 불러야지. 배고파 죽겠다. 늙은 아부지 손 잡고 얼른 가자.”

감동의 분위기를 깨는 고동우의 심드렁한 농담이었다.

글썽이던 눈망울에서 물기가 싹 거두면서, 준서는 우리를 돌아보며 억지로 웃었다.

고동우가 내 옆으로 찰싹 들러붙어 수다를 늘어놓았다.

“그래. 청새치를 두 마리나 잡았다고?”

“그렇다니까요.”

“멕시코 해변에 늘씬한 미녀들은 없더냐?”

“……글쎄요. 저는 도통…….”

고동우의 썰렁한 농담을 들어 주랴, 사심희의 눈치를 보랴, 나는 정신없이 일행의 뒤를 밟아야 했다.

그날 밤.

서울 모처의 식당에서 이야기꽃이 만개했다.

태평양의 망망대해에서 펼쳐졌던 무용담을 늘어놓느라 사심희는 쉬지 않고 새처럼 지저귀었다.

막바지에 멤버들의 관심사가 얼마의 상금을 받았는가에 쏠렸지만, 나는 빙구처럼 미소 짓는 것으로 즉답을 피했다.

* * *

멕시코에서 돌아온 이후, 나는 약속했던 인터뷰에 일일이 대응하느라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대회의 면면을 기록한 동영상은 3회분으로 압축하여 유튜브에 올려놓았다.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으로 댓글창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10월 말의 서늘한 바람이 창문을 흔들던 어느 밤.

독자들의 댓글들을 살피던 나는 지그시 눈을 감으며 몸을 뒤로 젖혔다.

인생 역전…….

지금의 내가 이룬 모든 것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인생 역전이라는 상투적인 문구 말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눈꺼풀을 스치고 지나가기 시작했다.

삶의 지향점을 잃고 길을 헤매던 나였다.

사무실 구석에서 남몰래 사직서 양식을 펼쳐 보던 내가 불과 2년 만에 일군 성과는 실로 눈부신 것들이었다.

삼길포의 좌대에서 소위 ‘애럭’을 잡고 수선을 떨던 한 회사원이, 태평양의 망망대해를 누비게 되리라고는 나조차도 상상하지 못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단지 먹고살 정도면 충분하다던 내 소박한 바람은 기대 이상의 물질적 보상을 안겨 주었다.

낚시라는 취미 하나로 맺어진 인연들이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있을 때, 그들을 도울 수 있었던 것은 나로서도 최고의 기쁨이었다.

그렇게 모든 일들은 기적처럼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낚시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영예를 얻은 지금, 나는 나 자신에게 묻고 있었다.

너는 지금 행복해졌느냐고…….

그것은 사직서에 마지막으로 기입했던 퇴사의 목적이기도 했다.

잠시 후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행복하다.

나는 확신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완벽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마지막 화룡점정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완전한 삶의 행복.

아직 내게는 중요한 숙제가 남아 있다. 이제는 ‘비밀 프로젝트’에 종지부를 찍을 시간이다.

나는 슬며시 눈을 뜨고 휴대폰을 들었다.

최근 통화 목록에서 사심희의 번호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0